‘청와대 전화’ 속 民心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2.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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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6개월… 장난전화부터 정책제안까지 하루 80여통



지난해 11월1일 대통령 비서실은 2대의 청와대 대표전화를 일반국민에게 공개했다. 민원전화(730-5800)는 각종 민원을 상담하고 문의할 수 있도록 만원비서실에, 또 안내전화(737-5800)는 청와대 직원 사칭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총무비서실에 각각 설치했다. 10월에만 청와대 사칭 사기사건이 무려 8건이나 터졌으나 청와대에 이를 확인할 채널이 없다는 여론의 비판이 있은 뒤였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일개 국민’이 자신의 억울함을 최고권력자 앞으로 직접 호소할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요즘 민원전화는 하루 평균 66통(92년 4개월 평균치)이, 안내전화는 20여통이 걸려온다. “전화를 공개한 초반에는 말그대로 폭주했습니다. 꽤 줄어든 게 이 정도입니다.” 민원비서실 직원의 말이다.

 민원비서실은 현재 민원전화만 받는 전담 여직원 2명을 따로 두고 있으며, 4명의 서기관급 직원이 이를 분석ㆍ정리한다. 또 총무비서실에 걸려오는 안내전화는 일반 직원7명이 틈틈이 받는다.

 안내전화 설치 후 한달간 직원사칭 여부를 물어오는 전화를 일일이 확인한 결과 약90%가 “청와대에 없는 사람”으로 밝혀졌다. 요즘은 비율이 약 50%로 떨어졌다고 한다. 총무비서실 관계자는 “전화를 걸어오는 상대방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기 때문에 수사할 수도 없다”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청와대 이름을 팔아 사기를 치거나 행세를 하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활개치며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행정절차상 대부분 해당기관으로 되돌아가

 민원전화에 걸려오는 전화의 약 93&%는 단순 개인민원이다. “누구한테 돈을 빌려줬는데 갚지 않는다. 대신 받아달라“는 부탁 전화에서부터 ”왜 나한테만 세금을 많이 부과하느냐“는 항의전화까지 매우 다양하다. 시간을 다투는 사안이 아니면 일다 서면으로 진정서를 내라고 안내한다. 단순 개인민원은 사안에 따라 처리 방법이 다르다. 크게 공람처리ㆍ관련부처이첩ㆍ직접처리 등 세가지로 나뉜다.

 공람처리는 민원자가 횡설수설하거나 믿지못할 할을 할 경우에 접수대장에만 올리고 종결짓는 것을 말한다. 아예 작정하고 장난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도 있다.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음담패설을 늘어놓거나 욕설을 퍼붓는 전화 때문에 곤욕을 치릅니다.” 민정비서실 여직원에 따르면 매일 세 번씩 문안인사를 해오는 엉뚱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안녕하십니까, 거기 청와대죠. 너는 육사생 아닌 육사생 박○○입니다”로 시작해서 “저는 지금 얼어죽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지금 사우나탕에서 전화하고 있거든요”라는 식이다. “청와대에서 내귀에 도청장치를 해놨다”면서 생떼를 쓰거나 “취직을 시켜달라”며 애걸하는 전화도 있다.

 대개의 민원이나 민원전화는 해당 행정부처로 이첩된다. 민원비서실 관계자는 “아무리 청와대라 하더라도 행정절차가 있는 것이고, 사실 해당기관으로 넘길 수 밖에 없는 민원이 대부분이다”라고 설명한다. 결국 민원이 처음 발생한 부서로 되돌아가는 ‘민원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나 행정절차를 기다릴 수 없는 급박한 사안이나 상식에서 벗어난 행정기관의 횡포, 그리고 일선 행정기관의 직무태만이 지적되면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처리한다. 지난 1월31일 새벽에 교통사고로 고등학생 3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을 화장하기 위해서는 검사의 ‘변사처리에 관한 지휘서’가 있어야 하는데, 때가 구정연휴 직전이라 가족들은 꼬박 1주일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구 청와대가 해당 검찰에 직접 지시를 내려 1시간 만에 해결했다. ㅇ시청 위생계장은 관할 요식업체에 부하직원의 결혼을 알리는 청첩장을 돌리다 적발돼 한직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민원전화의 약 6%는 국정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동성동본 혼인금지 제도를 폐지하라거나 자동차 10부제를 계속 실시하라는 전화는 지속적으로 걸려온다. 특히 간통제 폐지 입법예고가 발표된 이후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는 여성들의 의견이 쇄도했다고 한다. 총선 기간 중에는 금권ㆍ타락 선거를 고발하는 전화가 주종을 이뤘다. 민정비서실은 이런 정책제안을 항목별로 분류, 매주 한번씩 열리는 수석비서관 회의 때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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