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부패 인플레 죄의식조차 없다
  • 편집국 ()
  • 승인 1991.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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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 부정부패 원인 진단과 퇴치 방안
 사회 : 금년 들어 예능계 입시부정, 뇌물외유, 수서특혜 사건등이 잇따라 터지자 국가적 위기론까지 대두되고 있습니다. 위기론까지 나오고 있는 부패의 근원적 원인은 무엇이며, 치유책은 무엇인지 진단해보기 위해 여러분을 모셨습니다. 먼저 김해동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시죠.
 
김해동 : 부패는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스캔들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부정을 할래야 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 사회에서 부정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유치원에서부터 부패를 통하지 않고는 되는 이리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환경미화원이 월말이면 각 가정을 다니며 수고비를 받습니다. 가정에서는 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아무도 그런 일을 가지고 도덕적 비난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패의 경제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제는 오래가지 못하지요. 그리고 구조적 부패란 부패가 전사회적으로 만연되어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가 바로 그런 상태입니다. 또한 이 부패에는 일정한 시세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부정의 당사자들이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김태동
: 이번 수서사건을 예로 들어봅시다. 우선 정보수수를 둘러싼 부패가 있었습니다. ‘제소전화해’라는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비정상적 방법이 사용되었습니다. 또 매매시 특혜금융이 활용되었고 국회 건설위원회 청와대 서울시청 등의 개입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 여러 군데가 관련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한곳만 썩지 않았어도 이런 사건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부정이 만연되면 사람들이 생산행위보다는 부정을 통한 손쉬운 이득실현쪽으로 눈을 돌립니다. 인적 · 금융적 자원이 부정쪽으로 몰리게 되지요. 경제학에서는 이를 이권추구행위(rent seeking activity)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사회의 생산성이 저하되지요. 생산성이 낮아지니 물가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는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입증된 사실입니다. 따라서 부패하지 않은 서민들은 더 많은 부담을 져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가 수풀 13위국이라고 하는데 과연 청렴도도 세계 13위가 되는지 위심스럽습니다.

 박인제 : 조선조 말기에는 3정의 문란과 같은 부패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정부부문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의 부패도 심각합니다. 이는 단지 ‘뇌물’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적 경제부문에서 일종의 ‘거래행위’가 되고 있습니다. 상층부만 부패한 것이 아니지요. 이런 점에서 본다면 조선조말 3정문란 정도의 수준 이상으로 부패한 것입니다. 더욱 심각한 무제는 죄의식이 없다는 점입니다. 관련법을 살펴보면 뇌물과 탈세 행위를 벌주기 위해 66년에 제정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 생겼습니다. 이는 특히 민간부문의 부정부패에 대한 법적 제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화폐가치가 떨어졌지만 범죄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액수가 대폭 인상되었습니다. 탈세의 경우 5백만원에서 2천만원으로, 관세의 경우 2천만원에서 1억원으로 올랐습니다. 조세포탈의 경우 5천만원 이상에서 5억원 이상으로 10배나 인상되었습니다. 이는 ‘부패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러니 예전 수준의 부정이 문제될 경우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춘향전을 보면 월매가 춘향이를 면회하기 위해 엽전 몇푼을 건네주는 장면이 나오지요. 이때는 부의 수준도 낮았고 아전들은 녹을 못 받았지요. 월매의 ‘뇌물’은 그래도 애교가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축재형 · 권력형으로 부패가 일반화 되어 있습니다.

 사회 : 역대 정권들은 새 정권을 창출할 때마다 이전 정권의 부패를 단죄했습니다. 5 · 16세력은 자유당 정권의 부패를 ‘부정축재’라는 용어로 단죄했고, 박정희정권의 부패는 ‘권력형부패’, 전두환정권의 부패는 ‘5공비리’라는 용어로 치죄됐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6공비리’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고 있습니다. 역대 정권의 부패에 대한 단죄가 진정한 청산이 아니었기 때문에 부패는 갈수록 만연되고 있습니다. 권력부패를 포함해 이 사회 부패의 근원적 원인을 진단해주십시오.

 김태동
: 우선 경제면에서 보면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정부수립 이전부터 귀속재산 처리문제를 놓고 부정이 있었습니다. 그후 대기업 중심의 성장을 하면서 부정이 크게 늘었습니다. 이렇게 부의 축적과정에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음으로 해서 일반에까지 부패가 만연된 것입니다. 두 번째 경제 · 사회면에서 보면 민주주의의 미성숙을 지적하 수 있습니다. 각 주체간 견제장치가 미흡합니다. 이런 사회는 고인 물과 같아서 썩기 마련이지요. 특히 절대권력자가 부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위로 갈수록 부패가 심해집니다. 아까 박인제 변호사님이 3정문란 말씀을 하셨는데 지금 우리 사회도 조세정책 토지정책 금융정책이라는 3정의 문란을 똑같이 겪고 있습니다. 지난 3년간 매년 땅값 상승을 통한 불로소득이 GNP를 초과해왔습니다. 지난 89년에는 2배에 달했습니다.

 김해동 : 현재의 행정규칙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지금 관급공사 노임이 1만5천원으로 되어 있는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또 차간거리만 해도 원칙대로 하면 걸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자꾸 서류를 위조합니다. 후진국의 특정 가운데 하나는 공무원이 봉급만으로 생활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부패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정치부패입니다.이는 관료들의 손을 통해 실현됩니다. 또 관료들은 정치인의 우산 속에 숨어서 신분을 보장받습니다. 기업 · 정치 · 관료가 상호 의존관계를 형성하는 것이지요.

 박인제
: 해방 이후 정치적으로는 친일, 경제적으로는 매판세력이 상호 결합하여 정통성없는 정권을 창출해왔습니다. 이를 위장하기 위해 금전으로 회유하고 새로운 권력을 창출할 때마다 대형비리가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경제정의는 간 데 없고, 실적위주 결과위주의 행정을 해나가고, 원칙은 모두 무시되었습니다. 이러한 특혜행정 속에서 절차상의 정의는 모두 사라졌습니다. ‘차관’ 자체가 특혜 아닙니까. 또 부정부패에 대한 규제가 정치적 고려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위 ‘숙정’이니 ‘정화’니 하는 것이 모두 일과적으로 끝나는 까닭은 그 때문이지요. 이를 정치적 반대자를 제거하는 명분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그런 찬바람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요.

 이문옥
: 박변호사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해방 후 수립된 역대 우리 정부는 모두 정통성을 결여한 정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편을 만들려다보니 부패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수많은 ‘대통령 하사금 사업’이 다 뭐겠습니까. 위에서부터 그러니 아랫사람들은 ;저렇게 큰 부정을 저지른 사람도 무사한데 내가 한 것 쯤이야‘하고 생각합니다. 또 통제기관에서도 적당히 처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5공 초기 삼청교육대에 관련되었던 사람들이 훈장을 받고 지금은 모두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개국공신 대접을 해주는 것이죠. 이러니 공무원들이 해바라기성으로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칙대로 살아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비참한 생각이 듭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권력자가 부패를 조장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업인이나 관료를 통제하기에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박인제 : 5공헌법에서는 공무원의 청렴의무를 처음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만큼 부정부패가 많아졌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죠. 정부에서는 툭하면 서정쇄신 운운하지만 이런 대외용 조처로 공무원 사회가 깨끗해지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역시 민주화가 핵심입니다.

 사회 : 부정부패가 이렇게 만연되면 우리 사회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김태동 : 최근의 물가나 국제수지 지표는 한국경제의 몰락을 엄중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주나 정치인 · 학자들은 지난 4~5년간 자신의 본분을 다했는지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근로자들은 그래도 열심히 일하고 노력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능올림픽에서 8연패의 기록을 세운 것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 잘한 게 뭐 있습니까. 그저 자신들의 좁은 울타리 속에서만 큰소리치고 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한국은 아직 멀었다. 우리 경쟁상대가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모두들 이권추구에만 힘을 쏟고 국제수지 흑자시절에는 땅투기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니 생산계층에서 일할 의욕이 생길 리 없습니다. 그래서 경제가 뒤죽박죽이 돼버렸죠. 지금은 흐지부지된 특명사정반만 해도 그렇습니다. ‘새생활 새질서운동’도 마찬가지지요. 실제 ‘사생활 새질서운동’을 해야 할 사람들은 하지 않습니다.

 김해동
: 역사상 정변의 가장 큰 원인은 부패였습니다. 그런데 부패를 바라보는 데는 두가지 시각이 있습니다. 첫째 부패는 결코 있어서는 안되고 반드시 척결되어야 한다는 시각입니다. 다른 하나는 부정의 순기능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즉 부패가 게으른 관료를 움직이게 하고 경제개발에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부패가 없으면 정부가 문을 닫아야 한다는 이론도 있습니다. 이런 ‘순기능’이 있기 때문에 부정척결 운운하면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면 생산이 위축된다는 논리지요. 이러한 ‘부패의 경제학’에 따르면 부정부패에 의해 재벌이 형성되고 재벌에 의해 산업발전이 가능했다. 부정부패 없이 이만큼의 경제성장이 가능했겠느냐 하는 엉뚱한 결론이 나옵니다. 실제로 외환은행장의 부정사건이 파문을 일으키자 은행업무가 거의 마비되다시피 한 적이 있었지요. 이런 주장도 고려한다면 부정의 척결은 종합적으로 서서히 추진되어야 합니다.

 사회 : 서서히 추진되어서는 안될 상황같은데, 부패퇴치 장치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김해동
: 제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정을 없애려면 우선 공공통제를 강화해야 합니다. 국민통제를 활성화함으로써 부정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개행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이 관행으로 자리잡아야 합니다. 그 외에 공직자 재산등록제 등이 민주적 절차를 통해 강화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행정의 중립이 필요합니다. 특히 경력직 공무원의 중립에 사활이 걸려 있습니다. 검사나 경찰서장과 같은 경력직 공무원들은 정치적 보호가 없으면 자리를 지키지 못합니다. 사법부도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합니다. 이런 조처들을 취하기 위해서는 최고통치자의 결심이 필요합니다.

 박인제 :  앞으로 지방자치제를 실시할 예정인데, 제 생각으로는 무엇보다 의정이 공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국민이 참여하는 청문회 등을 통해 예산감시 등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각종 법적 구제절차가 정비되어야 합니다. 또 토지 및 금융분야에서 실명제를 실시해야 합니다. 공무원의 신분보장을 위한 특별한 장치도 필요합니다. 요즘의 대형 비리와 관련, 이를 국가적 위기로 몰아가서는 안됩니다. 차제에 모든 부정과 비리를 다 까발려야 합니다. 구조적 원인, 구조적 개혁 운운하면서 구조타령만 할 게 아닙니다. 개인의 윤리문제도 큽니다. 각 개인의 자성을 촉구해야 합니다. 이 양자가 맞물리지 않으면 개선은 무망합니다.

 김태동
: 우리 사회에 만연된 부패는 ‘조직화’된 단계에 도달해 있습니다. 부패세력이 조직화되어 있다면 우리는 ‘반부패세력’을 조직화해야 합니다. 중요한 일일수록 첫걸음이 중요한 법입니다. 이런 노력이 부패 자체를 없애지는 못하겠지만 부패의 팽창을 억제하는 기능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려면 시민들이 앞장서야 합니다. 특히 주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것들이 시민운동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것들이 시민운동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것들이 시민운동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첫째 정부기능의 축소입니다. 작은 정부가 된다는 것은 GNP에서 차지하는 예산의 비중을 줄인다는 말입니다. 5공 때를 보면 6공 때보다 비리는 훨씬 많았지만 물가와 예산이 안정되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제적 영향은 적었습니다. 둘째 독점기업이 약화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금융산업개편 · 여신관리완화 등을 통해 불행하게도 독점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세 번째 투기를 통한 불로소득을 막아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성실한 근로기풍을 조성해야 합니다. 네 번째 실명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작년에 실명제를 유보한 것은 부패세력의 반부패세력에 대한 승리를 의미합니다. 다섯째 깨끗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문옥 : 저는 공무원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철저한 직업공무원 정책으로 비리를 차단해야 합니다. 직업공무원제는 규정은 되어 있지만 하급 일반직 공무원들은 힘이 없기 때문에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공무원에게 단결권을 보장해줘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공무원 상호간에 동류의식을 심어주고 먹고살 만큼의 생활수준을 유지해주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지자제선거를 잘 치러야 합니다. 제가 서울시를 감사할 때 이야기인데, 선거 때 정보비 32억원을 ‘시장구두지시’로 빼서 선거자금으로 쓴 것을 발견했습니다. 지자제가 실시되어 진정한 국민의 대표가 뽑히면 이렇게 종이 한 장으로 수십억원을 빼내 전용하는 일은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사람을 뽑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세 번째 공인회계사의 감사가 독립적으로 제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개편이 필요합니다. 현재는 자유경쟁으로 수임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능력껏 활동하게 한다는 명분은 있지만 사실상 공인회계사들을 기업주에 종속시키는 제도입니다. 따라서 이를 지정수임제로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권한 내에서 당당하게 활동해야 합니다. 네 번째 언론에서는 촌지거부운동을 해야 합니다. 언론은 각 분야를 모두 보고 있지 않습니까. 공정보도를 통해 감시를 해야 할 언론이 촌지를 받는다면 언제 독약이 되어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덧붙일 것은 부패와 관련없는 공무원이 훨씬 많다는 사실입니다. 몇몇이 뛰니 옆 사람들도 따라서 뛰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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