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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된 검은 狂風 명백한 '한인 차별'

경찰 움직임 시간별 검증 "진압비 1백만불 미리 책정"

로스앤젤레스 이재호 통신원 ㅣ 승인 1992.05.14(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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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으로 사흘간 방화약탈의 공포에 떨어야 했던 한인들은 세계경찰임을 자처하며 각국의 문제에 관여하고 무력사용까지 불사하던 미국이 이렇게 무력한가 한숨지었다. 지난 2일 오전 10시 한인타운 한복판인 아드모어공원에 모여든 10만여 한인들은 이번 폭동이 흑백갈등인데도 미 정부가 고의적으로 이번 사태를 한흑갈등으로 몰고간 것이 아닌가 의문을 던졌다.

사건의 직접 원인인 로드니 킹 구타 경찰관에 대한 배심원 평결이 나오기 전부터 폭동은 이미 예상됐던 것이다. 흑인지도자들은 재판결과가 발표되기 며칠 전부터 이번 평결이 무죄이거나 흑인사회의 기대에 미흡할 경우 폭동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릴 게이츠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장은 이번 평결결과를 미리 알고 있었음을 시사하듯 흑인폭동이 일어날 경우 이를 진압하기 위해 1백만달러의 예산이 책정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미 정부가 흑인폭동을 방치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로스앤젤레스의 최대 일간지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도 1일자에서 이같은 의문점을 지적했다.

경찰출동 지연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자 게이츠 경찰국장은 "사태가 너무 급속히 발전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반응하기가 힘들었다"고 무책임하게 답변했다. 경찰의 행동지연이 로드니 킹사건의 여파로 로스앤젤레스 경찰총수직을 떠나야 하는 게이츠 국장의 분풀이 결과가 아니냐 하는 일부 관측도 있다. 한인 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는 또 다른 의문점은 "흑인과 백인간의 인종갈등에 한인을 속죄양으로 삼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미국언론은 로드니 킹사건의 평결 직후 벌어진 시위에서 흑인들은 두순자씨 집행유예 판결에 따른 시위에서 사용했던 팻말을 그대로 사용했으며 한인상점이 주요 공격목표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고 보도했다.

91년 말 현재 잉글우드에서 캄튼에 이르는 흑인지역인 사우스 로스앤젤레스에서 영업중인 한인업소는 스왑밋(Swapmeet : 여러 개의 소규모 노점상으로 구성된 상사)을 제외하고 약 6백개. 이는 이 지역 전체 업소의 80%에 해당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한인 스왑밋도 급증하고 있는데 3백여개 업소가 들어있는 캄튼패션센터를포함, 20여개 스왑밋이 성업중이다.

30일 상오까지 흑인지역의 대다수 한인상점이 불타고 약탈된 상황에서 폭도들은 이날 정오가 지나면서부터 한인타운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한인들은 흑인폭도의 공격이 시작되자 '911'에 전화를 걸어 경찰의 긴급출동을 요청했으나 경찰측의 답변은 "출동할 병력이 없으니 알아서 자체 방어하라"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정작 한인들이 경찰태도에 분노한 것은 한인타운 서쪽 웨스턴과 9가에 위치한 '키니슈즈'방화 때였다. 불타는 건물의 화재진압을 위해 출동한 소방관과 함께 도착한 경찰은 "폭도들이 인근 업소를 공격하려 하니 지켜달라"는 한인들의 요청에 "우리들의 출동 목적은 소방관을 보호하는 것"이라며 소방관의 진화작업 후 이 지역을 떠나버렸다. 폭도들이 인근 한인업소를 공격하기 시작한 때는 바로 그 직후였다.

여기서 한인들은 과연 한인타운을 지킬 경찰력이 전무했는가에 큰 의심을 품고 있다. 폭동이 시작된 29일 로스앤젤레스 한인언론이 한인타운을 양분해 관할하는 윌셔와 램파트경찰서에 대치상황을 알려달라고 요청했을때 두 경찰서는 각각 3백여명의 순찰대와 형사대에 비상근무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자체방어 한인, 총기소지 혐의로 체포돼

한인타운을 지키겠다고 경찰이 출동한 것은 약탈이 시작된 지 6시간이 지난 하오 6시께. 램파트경찰서 소속 여성경찰관 3명과 남성경찰관 2명이 2대의 순찰차를 타고 나와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이들은 그러나 바리케이드를 넘어 질주하는 폭도들을 수수방관했고 결국 폭도들은 5명의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인상점을 또다시 공격했다.

같은 시간 백인지역에서도 폭도들은 방화를 저질렀다. 윌셔경찰서가 관할하는 베벌리 힐스 인근 백인지역의 대형마켓에 불길이 솟았을 때 그때까지는 보이지도 않던 십여대의 경찰차가 출동했으며 각 지역에서 출동한 여러 색깔의 소방차가 장시간 진화작업을 벌였다. 또한 베벌리 힐스 인근 쇼핑센터에 폭도가 10여명 침입했을 때도 경찰이 5분 만에 출동해 이들을 모두 체포했다.

한인들이 더욱 분개하는 것은 무장 한인들의 체포이다. "알아서 방어하라"는 경찰의 답변에 한인들은 총기로 무장하고 자체방어에 나섰다. 그러나 경찰은 자구책에 나선 한인들을 총기소지 혐의로 체포하고 총을 압수했다. 미국법은 총기소지허가를 받은 사람이라도 외부에서 총을 밖으로 내보이는 것을 불법화하고 있다.

한인타운의 전자상점인 '킴스TV' 직원들은 세차례에 걸쳐 폭도들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탄약이 떨어져 상점을 포기하고 후퇴했다. 이때 출동한 경찰은 한인들을 땅바닥에 엎드리게 해 수갑을 채웠다. 이유는 총기소지. 총격전을 벌이던 폭도들이 한인들이 총기를 소지하고 있다고 신고하자 득달같이 출동해 체포한 것이다.

한인타운을 지키기 위해 나선 한인청년단과 해병동지회 단원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이들은 "외부에서 총을 들고 있으면 현 상황에서 누가 폭도고 누가 상점 주인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총기소유자는 체포한다"는 답을 경찰로부터 들었다.

백인들의 '고의성'을 주장할 만한 또 다른 사건은 이번 흑인폭동 동안 미국의 주요 텔레비전 방송사의 보도태도. 폭동발생 후 미국 텔레비전은 하루종일 이를 보도했다. 이 방송을 지켜본 교포들은 이번 사태를 한흑갈등으로 몰고가려는 시도가 역력하다고 입을 모았다. 로드니 킹사건으로 미 전역이 백인에 대한 비난으로 들끓던 작년에 두순자사건이 터지자 미국의 주요 언론, 특히 텔레비전은 로드니 킹사건은 접어두고 연일 두순자사건에만 매달려 사건을 확대해나갔다. 이번에도 폭동이 발생하자 사건의 본질과는 무관한 두순자 사건의 나타샤 할린즈양 가족과 인터뷰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폭동이 마치 한흑갈등에 기인한 것처럼 시청자들이 느끼게 된 것은 틀림없다. 채널7(KABC)방송은 특히 심했다. 테드 커플이 진행하는 <나이트 라인>에서는 "한인이 흑인에게 먼저 총을 쐈다"라는 흑인의 주장을 아무 여과없이 방영했고 한인에게는 반박할 인터뷰도하지 않았다. 보다 못해 박종상 로스앤젤레스 총영사는 KABC측에 한인들이 공포탄을 쏘는 장면을 방영하지 말도록 정식으로 항의했다.

이처럼 왜곡편파보도도로 흑백문제를 한흑갈등으로 몰고가려 했던 방송들은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된 2일 흑인폭동지역을 청소하는 백인들의 모습을 제일 먼저 보도했다. 흑인을 돕는 백인의 모습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인종문제로 골치썩고 있는 미국 정부가 한인타운을 고의적으로 방치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은 미국 정부가 분명히 풀어야 할 과제다. 인종차별의 원인과 치료방법은 미국의 역사에서 찾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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