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日陀 큰스님
  • 김춘옥 부장 ()
  • 승인 1992.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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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 종교 앞세워서야?

 

공주에서 유복하게 살던 이씨라고만 알려진 日陀 큰스님(본명 金思義63)의 외증조모가 염불하다 95세에 돌아가셨다. 7일장을 치렀는데 7일 내내 放光(시신이나 시신이 안치된 가옥에서 빛이 발하는 현상)을 해 공주 전체에서 불을 끄러 오는 소동이 있었다. 두 아들은 출가를 결심했고 얼마 후 이미 가정을 이룬 손자손녀 일곱명과 손녀사위(일타 스님의 아버지)도 증손자손녀 여섯명(이중 한명이 일타 스님)과 함께 출가했다. 이로써 연안김씨 일가는 마을에서 자취를 감췄고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머슴과 소작인들도 따라서 절을 찾았다. 도합 48명이 승려가 됐고 그 대부분은 고승이 됐다.

일타 큰스님이 두 형 및 여동생과 함께 아버지 손에 이끌려 통도사로 출가한 때는 1942년. 고된 수행을 이겨내지 못해 일본행 밀항선을 타기도 했으나 54년에는 오른손 손가락 4개를 燃臂함으로써 속세의 미련과 갈들을 극복했다.

부처님 오신 지 2615년(보통 쓰이는 2536년은 佛滅시기이다)된 해에 출가 50주년을 맞은 일타 큰스님은 그동안 설법했던 보살계를 5권으로 엮어냈다(《법망경 보살계》 다라니 펴냄). 초파일을 맞아 거리에 연등이 걸리기 시작한 날 기자는 그가 20년 전부터 기거해온 해인사 知足庵에서 그를 만났다.

 

지금은 두타(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돌아다니며 수도하는 것)기간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루 일과를 어떻게 보내고 계시는지요.

조금 차이가 있지만 새벽 3시면 일어나고 밤 9~10시면 자. 일직 자고 일찍 일어나는데 아침에 종소리목탁소리가 들리니 일어나기 싫어도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어. 예불을 두 시간(좌선독경)하고 아침 먹고, 점심 먹고, 대변 보고 자고, 뭐 별다를 게 있을 수 없어(1월15~4월15일과 7월15~10월15일은 두타, 4월15~7월15일과 10월15~1월15일은 하루 평균 10시간 좌선하는 결제기간이다). 내 방 앞에 난이 많은데 사람들이 갖다 주니까 죽게 할 수 없어 물도 주고 또 붓글씨도 신도들이 자꾸 써달라고 해 처음에는 많이 써줬는데 차츰 줄여 이제는 참을 忍자 한자 써주고 있지(일타 스님은 엄지만 남은 손으로 붓글씨를 쓴다).

 

큰스님께서는 불법 수행의 三宗의 禪  敎   律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禪이 가장 중요하기는 해. 선은 사상, 敎는 이론, 律은 실천이야. 그러나 수행하는 사람이 먼저 계행으로 몸가짐을 바로 해야만 이론이라는 것도 그에 상응하게 되고 그것을 실천하는 단계가 부처의 마음에 상응하는 것이야. 수행자 가운데 禪師가 많은데 선만 하고 교나 율은 나 몰라라 한다는 식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해. 이 세 가지는 솥의 세 발과 같아. 어느 하나가 없으면 기울어지거든. 스님은 이 세 가지를 다 갖춰야 해.

 

신문을 많이 보십니까?

신문 뭐 볼 게 있어. 시간낭비다 싶어 잘 안보고 9시가 되면 텔레비전 뉴스를 가끔 봐. 비디오다 해서 갖다놔도 볼 새가 없어.

 

자운 스님 타계 이후 조계종 최고 율사로서 오늘의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보십니까?

나보다 훨씬 덕이 높은 스님이 많아 최고 율사라는 평가는 과분해. 나는 세상을 선으로 봐. 잘돼간다고 보지. 민주화해야 겠다는 생각이 因(씨앗)이야. 緣(밭)이 아직 덜 조성되었는지 모르지만 인을 얼마나 잘 가구느냐에 따라 業과 果도 좋아질 거야.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악을 불교는 어떤 방법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감옥과 법률, 판검사 수천명이 있어도 사회악을 뿌리뽑지 못하듯 부처님도 三不能을 말씀하셨어. 중생계(중생의 악)를 다 제도하지 못하고 정업(중생에 정해진 업)은 멸할 수가 없고, 무연중생은 다 제도할 수가 없다고 얘기했어. 불자도 자기 능력껏 할 수 있는데 까지만 한다는 의미지. 70이 가까워오니까 나도 정년퇴임해야겠어.

 

일부 스님들은 대승불교의 참정신을 들어 사회운동에 적극 나서자고 주장하지 않습니까?

대승불교는 소승불교에서 미진한 것을 확장한 것이야. 대승불교에서는 "고기도 먹지 말아라" 하는데 이는 소승에서 "죽이지 말라"는 계율을 전제한 것이지. 다른 말로 코가 덜 트인 것은 소승이고 확 트인 것은 대승이야. 그것을 대승이 자기합리화해서 "참선만 하는 것은 소승이고 중생을 위해 어쩌구 하는 것이 대승이다"라고 말하는데 이 또한 난센스지. 자기도 위하지 못하는 놈이 무슨 대승이야. 대중을 교화하기에 앞서 대중에게 교화당해. 자기 능력껏은 할 수 있겠지만 "계율은 율사들이나 지키는 것이지 선사들에겐 필요 없는 거여"라는 말은 되지 않는 말이야.

 

시민운동연합선우도량민족자주통일불교협의회 등 불교관련 단체가 적극적으로 사회참여를 하는데 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나는 그런 것 잘 몰라. 부처님 제자 가운데는 在家대중(신자)이 있고, 出家대중(스님)이 있어. 출가인이 해야 할 일은 참선하고 기도하고 중생이 찾아오면 설법해주는 것이야. 그러므로 출가의 본분을 벗어나 재가인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야.

 

민중불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언젠가 지선 스님(민족자주통일불교운동협의회 회장) 일행이 이곳에 온 적이 있어. 그때 내가 출가인이 그렇게 나서면 되겠느냐고 했더니 "전생에 의병이었던 것 같다"고 해.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런 행동이 나온다고 그러더군. 그래 참지 못하고 분통을 터뜨린다고 일이 되는 것이냐고 말했어.

 

노태우 대통령과 돈독한 관계라고 들었습니다만.

노대통령은 절에서 크다시피 했어. 그래서 그런지 그가 얻은 7백몇십만표 가운데 4백몇십만표가 불교도 표라더군. 선거 때 이왕이면 불교신자인 노대통령을 뽑자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대통령한테서 늘 초청장이 오더군. 역대 대통령 모두 전생에 불교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인 것 같아. 이조 말에 승려로 몰래 장안에 들어가 개혁운동했던 柳大致라고 있었잖아. 그의 성 '류'는 같은 ㄹ자로 시작되는 '로'로 통하고 '대'는 클 '태'로 통한단 말이야. 유대치의 사망 시점은 잘 알려지지 않았어. 40세 전후에 피신했는데 산 속에서 80~90세까지 살았다면 노대통령의 탄생과 비슷해. 그러니 노대통령은 유대치의 환생이다, 이렇게 점을 찍어 볼 수 있단 말이야. 탁몽성 스님은 이승만 대통령으로 환생했어.

 

한국 불교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학문과 수도, 중생교화에 힘쓰지 않는 것이지. 오히려 중생에 동화되는 것이 문제야. 불교는 기와집이어야 하고 교회는 늘 뾰족집이어야 한다는 선입견은 좋지 않아. 건축비가 3배나 드는 기와집으로 사찰을 짓고 문화재로 지정해 구속력을 행사하니까 문제야. 이것도 낭비야. 또 10년이면 다 썩어 자주 고쳐야 하다 보니 중생에 포교를 못해. 문제가 없는 절이 없어. 이 모든 점을 가급적 빨리 개선해야 하는데 혼자 힘으로는 어려워. 한국 불교의 개혁 필요성을 기회있을 때마다 제기했어.

 

큰스님이 소속된 조계종의 가장 큰 문제는 종권다툼입니다. 조계종의 내분을 스님 지론대로 타락이라고 보십니까?

너무 길거나 짧게 보고 말하면 안돼. 시시비비는 손바닥을 부딪쳐야 소리나는 것 아냐? 시가 비가 되고 시가 될 수 있는 것 아냐? 어쨌든 이것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다고 하면 분명히 불행한 문제야. 봉은사 땅이 15만평이었는데 정부의 꾐에 넘어가 평당 2천~3천원에 팔아버렸어. 내가 그때 중앙종회위원이었는데 그때 난 그랬어. 이조 13대 명종이 열두살엔가 등극해 어미니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했지. 그때 혼자 하기가 힘드니까 백담사의 고승을 봉은사에 모셔놓고 자문을 구했지. 봉은사 땅은 그를 위해 문정황후가 희사한 것이었어. 나라 땅을 우리가 받아 그냥 살았는데, 정부에서 도록 가져갔으니 화날것이 뭐 있느냐고 했더니 말도 안되는 소리 말라면서 내 주장을 아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었어.

 

얼마 전에 한 유명인사가 책을 냈는데 스님들에 대해 독설을 퍼부어 화제가 됐지요. 그 책에는 "이들의 대부분은 양아치들, 깡패 아류들 아니면 폭력잡배들이다? 등의 내용도 있습니다. 그러자 불교계에서는 스님들도 대학을 나와야겠다, 그래야 불교계의 수준이 높아지고 일반대중들이 더 존경하지 않겠는가 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스님들이 다 대학을 나와 학문이 높아져야 한다는 말에는 찬동해. 그럴 수만 있다면 당연히 그래야겠지.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스님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서 질이 높아질 수 있다면 그래야겠지.

 

스님들의 자질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낮은 사람도 많지. 자기 아버지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되겠어. 앞에서 질문한 내용에 대해서는 시인도 부인도 할 수 없지만 어느 사회나 그런 범법자는 있어. 그걸 가지고 중들 사이에 그런 사람이 많다고 하는 것은 불교를 비방하기위한 독설이지. 인격이 의심스러워.

 

불교가 옛날처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학문을 닦고 수도를 많이 해서 대도인이 나와봐. 지금 태국 같은 데는 '상카라자’(승황)의 영향력이 일반 왕보다 높아. 그 밑에는 큰스님이 여섯 분 있는데 그들은 강아지 부르듯이 장관을 부를 정도야. 불교가 국교라고 해도 좀 과할 정도지. 한국 불교는 이조 5백년 동안 너무 오그라들었고 일제시대에 땅 속에 묻혔다가 근근이 이제 꺼내놓으니 볕을 옳게 못봐 어리둥절하는 시기야. 학문 높고 도력이 높은 큰스님들이 많이 나오면 문제될 게 없어. 그런 분이 없으니까 경찰서장이 와도 벌벌 떨고 하지. 또 인연이(정치인과 승려와) 닿아야 하지 않겠어? 전두환 전 대통령은 합천읍내는 다녀가면서도 해인사에 한 번도 안왔어. 이순자 여사가 기독교 신자고 어쩌고 해서. 기독교는 남을 마귀라고 배척하는 경향이 심하거든. 그러다가 환갑잔치를 한다고 여기까지 왔다가 소문이나서 승가대 학생들이 쫓아버렸어.

 

불교계의 앞날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도인만 많이 나오면 잘되지. 불교는 1천6백년 역사와 전통을 지닌 뿌리깊은 나무야. 하루이틀, 몇십년 흔들린다고 해서 뿌리가 뽑히지는 않아. 정치인들이 꼭 종교를 앞세워.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은 꼭 장로라고 써서 내게 우편물을 보내더군(일타 스님은 김영삼 장로, 손명순 권사가 보낸 초청장을 보여주었다.)

 

기독교도 그렇습니다만, 불교가 요즘 너무 기복신앙쪽으로 가지 않느냐 하는 비판이 있습니다.

기복신앙이 나쁠 게 있나. 자기 집이 편안해야 남도 생각할 여지가 있는 거지, 자기집이 불안한데 남만 생각해서야 되겠어. 다만 너무 치우치면 안되는 거지. 부처님 말씀에 기복이라는 것은 약을 먹기 위해 사탕을 먹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했어. 佛法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그 방편으로 필요한 거지. 두 가지를 모두 배척하거나 한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해야 돼.

 

가장 존경하는 스님은 누구입니까?

종단에서 제일 추앙받는 성철 종정이지. 학문도 수도도 높은 분이니 첫째로 쳐야지.

 

‘주지’를 '走之'라고 풀이하시며 83년부터 해인사 주지를 2년 하시다가 그만두셨는데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자격이 없으니까.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나이 70이니 죽을 계획밖에 뭐 있겠어. 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바쁘지. 그래서 아이들이 뭐 책 만든다고 녹음기 갖다 대고 하는 것이 다 귀찮아.

 

초파일을 맞아 《시사저널》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십니까?

불교에서는 언제나 연등을 많이 켜. 연꽃에는 세 가지 뜻이 있는데, 연꽃이라는 것은 진흙 속에 있어도 진흙이 묻지 않고 청정무구해. 그리고 연은 다른 것과는 달리 꽃을 피우자마자 열매를 맺지. 불교인이든 비불교인이든 자기 마음을 연꽃과 같이 하고연꽃에서 배우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 냉수먹고 속차리라는 말이 있는데, 그게 아니고 차 한잔을 끓여 마시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으면 시간의 여유, 하는 일의 여유도 가질 수 있지. 그래서 나는 글씨를 쓸 때 필호를 三餘子, 다시 말해 세 가지 여유를 가진 사람이라고 해. 바쁜 가운데서도 여유를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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