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액임금제, 무엇이 문제인가
  • 편집국 ()
  • 승인 1992.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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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이맘때면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임금협상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올해는 정부가 노사 간의 임금협상에 총액임금제라는 새로운 원칙을 제시하면서, 전국 7백80여개의 고임금 사업장에 대해서는 인상상한을 총임금지급액의 5% 내에서 해야 한다고 강제하고 있다.

 특히 5%를 어기는 사업장은 세무사찰 등의 공권력을 행사해 강력히 제재하겠다고 벼뤄 긴장감까지 감돈다. 이런 분위기는 임금협상의 쌍방 주체인 사용자(경영주)와 고용자(노동자) 사이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노골적인 개입으로 자칫 노동계와 정부의 대결로 번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정부 · 기업 · 노동계의 시각을 비교해봄으로써 총액임금제가 어떤 장단점을 갖고 있는지 살펴본다.

 

 임금억제책 아닌 '난국극복책'

정부가 추진하는 '총액' 기준 임금정책을 임금 억제제도로 인식하는 것은 그 취지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모든 사업장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긴 하나, 총액 기준 5% 범위 내에서의 임금타결 대상은 중점관리업체만 해당된다. 중점관리업체란 고임금 업체로 분류된 전국 7백80여개 사업체(5인 이상 전 사업체의 0.56%, 해당 근로자수는 전체 고용자의 10.1%인 1백14만4천명) 이며, 나머지 대다수 업체는 노사간 자율적 협상에 맡기고 있다. 또 중점관리업체가 5% 내에서 임금을 타결한 뒤 생산성 향상 등으로 초과이윤이 발생할 경우 근로자의 업적에 상응하는 성과급을 지급토록 적극 권장하고 있다. 그리고 5% 내 인상을 모든 근로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총액 5%의 인산 재원 환도 내에서 임금 수준에 따라 개별근로자에게 차등지급할 수 있는 보완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총액임금제를 임금억제책으로 봐선 안된다. 물론 중점관리업체로 선정된 고임금 분야의 근로자 입장에선 예년처럼 높은 임금인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경제 차원에서 저임금 근로자가 대다수인 점을 감안해 우리 경제가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앞장선다는 마음가짐으로 고임금 근로자들이 한걸음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옥 현 (노동부 노사협의과장)

 

노사 자율 협상에 맞겨야

정부는 정부출연기관과 대기업을 임금억제정책의볼모로 삼고 있다. 총액임금 기준으로 5% 이상 임금을 인상할 경우 제재조처를 가하겠다는 정부 방침은 노사의 자율에 맡겨야 할 임금협상에 정부가 강제력을 동원하겠다는 억지에 불과하다. 더욱이 정부출연 연구기관은 총액임금제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출연기관은 이윤을 내는 영리사업체가 아니며, 이미 예산동결로 몇 년째 인력이 증원되지 않아 연구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가 백년대계인 기초과학 발전을 위해 존립하는 출연기관 종사자들에게 그동안 저임금을 강요한 결과 많은 고급인력이 연구소를 떠났다. 연구소가 정부의 지침을 어기면서가지 임금 인상을 약속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이때문이다. 정부는 5% 네에서 인상한 뒤 연말에 실적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받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연구기관은 흔치 않은 외부수탁연구 외에는 이렇다할 만한 수입이 없다. 정부는 치안유지 보안과 같은 데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으면서 출연기관의 연구 인력비용은 5% 내로 제한하여 이를 어길 때에는 기관 폐쇄기관장 문책노조 제재 등의 조처를 내리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선진국이 고급 연구 인력을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 지원을 확대하고 있는 데 비하면 우리 정부는 후진국으로 뒷걸음질치려고 애쓰고 있음이 틀림없다.

안중민 (전국전문기술 노조연맹 대외협력국장)

 

성과배분제 활용이 바람직

다른 기업의 임금인상율이 임금협상에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현실에서는 가급적 모든 기업의 보편적 지불능력을 중심으로 임금이 조정되어야 바람직하다. 개별기업의 지불능력 차이는 연말에 성과배분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총액 임금제 자체는 필연적인 것이고 당위성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 물론 총액임금 5% 이내 인상이라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대해 노동계가 반발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임금수준이 높은 대기업에 대한 적정한 행정지도는 바람직하다고 본다. 총액임금 기준 5%가 현재의 경제여건이나 기업이 처한 상황을 감안하면 그다지 인색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총액 5% 정도의 재원이면 기업 간에 차이는 있겠지만 통상임금으로는 이보다 다소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임금협상의 가장 큰 변수는 임금협상을 먼저하는 기업들이 어떤 수준에서 타결하느냐 하는 점과 지침을 어긴 사업체가 나왔을 때 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총액 임금제 위반업체에 대한 정부의 제재방침은 확고한 것 같다. 다만 이를 연말까지 지켜나가려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하고 모든 업체에 대해서 차별없는 행정지도를 펴야 할 것이다. 노사 모두는 올해 임금협상에서 총액임금제의 돌파구로 설정되어 있는 성과배분쪽에 더 비중을 두고 이를 적절히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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