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와 정책타협 말도 안돼”
  • 김상익 차장대우 ()
  • 승인 1992.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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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씨‘정주영 육성 증언' 육성 반박… "사감 없지만 재벌 규제해야"


 좀처럼 언론에 나서지 않는 金鍾仁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인터뷰 자리에 앉혔다. 5월7일 아침 8시부터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1시간30분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는 鄭周永 국민당 대표의 발언 마디마디마다 반론을 펴며 재벌 규제에 대한 자신의 논리를 일관되게 주장했다. 정대표는《시사저널》에 독점 연재된 육성기록(본지 129~l33호)을 통해 김종인 전 경제수석을 호되게 비판한 바 있다. 다음은 정대표의 육성녹음 기록에 대한 그의 반박 육성녹음이다.


 정주영씨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이 많다. 그는 나를 만나 "모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라"고 말했다지만 사실은 "앞으로 몇십년 같이 사는 동안 감정이 상해서 뭐하느냐. 앞으로 잘해보자"는 말을 했다. 그걸 뭘로 받아들여야하나.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란 직책은 공적기능을 수행하는 자리다. 여기 무슨 감정이 개재될 수 있는가. 공정하게 집행하는 것이 원칙인데 그걸 예외적으로 해달라는 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잘해보자는 게 도대체 뭔가. 盧泰愚 대통령과 재계 인사와의 만찬행사자리에서 있었다는 얘기도 멀쩡한 헛소리다. (정주영씨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한잔 먹으며 내가 박정희씨 때에는 이렇게 했다 하고 이야기하니까, 옆에서 구자경씨가 약간 술기운이 돌아서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안 한다' 하고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니까 대통령께서 조금 불쾌감을 보였다…며칠 있다가 김종인 경제수석이 여러 기업실장을 다 불러 갖고서 '앞으로는 일절 과거 대통령하고 대비해서 말해서는 안된다' 하고 아주 선포를 해버렸다. 그 다음에 대화가 완전히 단절된 거다").


그런 식으로 얘기가 나온 게 아니다.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얘기하려고 했는데 일단 그 양반(정주영씨)이 얘기를 했기 때문에 바로잡기 위해 말하겠다. 사실 그때까지 대통령 집(청와대)이란 것이 일개 재벌의 집만도 못했다. 경제 규모도 많이 커졌고 대통령의 관저도 완공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내가 건의를 해서 그날 자리를 만들었던 거다. 다른 사람 얘기는 빼고, 일단 구자경씨 이름이 거론됐으니 얘긴데, 저녁을 먹은 후 차를 마시면서 사원들 주택자금 문제가 나왔다. 재벌기업엔 사원용 주택지원금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이 양반 표현이 "이런 것은 독재정권 하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식의 가당찮은 얘기를 해 분위기가 묘해졌다. 자기들은 박대통령 시절에는 저녁 먹으면서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왜 안되느냐 이렇게 말하는데, 나는 아무리 사사로운 얘기가 오가는 만찬이지만 공적인 기능이 있다고 본다. 그런 자리에서 최고통치자에게 그런 언행을 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정주영씨는 그 일이 있은 뒤 재계와의 대화가 끊겼다고 했지만 그후에도 그런 모임은 여러 차례 있었다.

“경제 전체 조화시키려면 정부 개입해야"


 경제정책 운용이란 것은 국가의 담당기관에서 경제전반의 상황을 판단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어느 특정 사회계층과 협의하고 타협해서 이루어진다고 보면 큰 오산이다(이와 관련해 정주영씨는 "3공화국 시절 박정희 대통령은 전경련의 제안을 잘 받아들였다…박정희씨 시절에는 경제관료들이 어떤 안을 만들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경제계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우리에게 꼭 사전자문을 구하는 것으로 돼있었다. 5공 때도 초반에는 이런 관행이 이어졌다”라고 말했다). 옛날에는 맘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이었기 때문에, 그런 향수 속에서 시대의 새로운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괴로움에서 나오는 얘기다. 재계와 정부가 타협을 해서 정책을 세운다면 도대체 뭐가 되겠는가.


나는 그 사람이 무엇 때문에 나를 비판하는지 모르지만 한가지 얘기하자면 이렇다. 그 양반의 언행이나 모든 걸로 봐서 오랜 기간 정당을 생각했다고 본다. 3년 전엔가 관훈클럽에서 "대한민국에 믿을 만한 지도자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건 일개 기업인으로서는 상당히 도전적인 얘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꿈을 꾸고서 자기를 대한민국을 구원하는 정치인으로 부각하려다가 작년에 국세청에 의해 세금관계 부담을 지게 되니까 자기가 상처를 받았다는 것에 대한 묘한 심리적인 갈등을 표출한 것이다. 정주영씨는 작년 9월 나를 찾아와 세무조사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국세청에서 세금을 징수하는데 그걸 적당히 조절할 기능이 내게 없으니 우리 모든 것을 법대로 수행하는 자세를 가집시다"라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 사람은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세상을 적당히 보려는 사고에는 동조하지 못한다. 내가 제일 기분이 나쁜 것은 최근에 그 영감님이…나도 화나는 김에 얘기해버리면 그분도 그리 편하시지 못할 텐데, 그렇게 얘기하는 게 아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재벌에 대해 악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제를 놓고 볼 때 지나칠 정도로 불균형하게 어느 일방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식으로 경제운용을 하면 민주화도, 경제발전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난 30년간 산업화를 하는 과정에서 경제에 대한 큰 충격을 겪어 본적이 없다. 일방적으로 그쪽은 편안할 정도로 커가면서 힘을 축적했다. 재벌을 적대시하는 정책 입안이란 게 무엇이냐. 아무리 자유주의 시장경제라고 하지만 최소한 틀은 있어야 할 것 아니냐. 시장경제라는 것은 공정한 경쟁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시장경제의 장점은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 약육강식의 원리를 시장경제라고만 생각하면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장경제의 메커니즘 속에서 자기 스스로 안정을 유지하지 못하니까 결국 정부가 정책적으로 개입하게 된 것이다. 경쟁을 할 수 있는 여건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으므로 그에 따라 정책적으로 조정을 해주는 것이 정부 고유의 사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본질적으로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전제로 하며, 기업인은 합리성을 바탕으로 이윤을 극대화한다.


개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제조업을 해서 돈을 벌든, 부동산투기를 해서 돈을 벌든, 서비스업을 해서 돈을 벌든 그 사람으로선 가장 합리적인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합리성과 국가 전체의 합리성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전체 경제를 조화있게 끌어가기 위해서는 정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것을 반재벌 정책이라고 하면 경제정책 운용에 대한 기본인식조차 안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시장경제 원리는 경쟁을 원칙으로 한다. 자기네가 편리한 자유경쟁 원리는 좋고, 자기네가 불편한 자유경쟁 원리는 싫다, 이건 말이 안된다. 근로자들이 임금협상을 하면서 힘의 논리만을 앞세울 때 왜 정부한테 공권력이 개입하지 않느냐고 한다. 근로자들이 힘을 가지고 하면 사회의 모든 것이 파괴될 염려가 있으니까 공권력을 개입해달라는 얘기다. 똑같은 논리로 자기네들이 가지고 있는 힘을 지나치게 작동할 경우 사회 전반의 화합을 가져오지 못하니까 정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간섭 말라고 하려면 요구도 말아야"


 경제력 집중 문제는 이렇게 생각한다. 경쟁을 제한하는 시장상황은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겠다, 따라서 과점이나 독점은 가급적 방지해야겠다, 이런 것이 일반적으로 경쟁원리를 주장하는 사람의 논리다. 무엇 때문에 시장에서 경쟁을 하는가. 소비자 보호를 위해 경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무수히 많은 공급자가 시장에 존재하는 것이 소비자에게 유리하냐, 그렇지 않으면 소수정예가 경쟁을 했을 때 유리하냐. 이것은 경쟁의 형태와 효율성을 따지는 것이다. 이 문제를 가지고 이론적으로 논란이 많으나 오늘날의 자본주의 형태나 국제화 과정에서 볼 때 시장경제의 원리에 의해서 경제력은 집중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집중의 형태가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자동차 회사가 하나 있는데 이 회사가 국제경쟁을 해가면서 엄청나게 커지는 것도 경제력 집중이다. 그런 집중은 좋다. 그러나 이것도 대강대강 조금 하고, 저것도 조금 하고, 이렇게 해가면서 한 기업이 몇십개의 기업을 거느리면서, 이 기업이 효율적이냐 저 기업이 비효율적이냐 하는 것도 판단하지 못하는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그룹군, 이러한 식의 집중이라는 것은 경제적인 효율이 없다. 기업 하는 분들과 얘기하다 보면 자유시장경제를 말하면서 무엇 때문에 정부가 간섭하느냐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려면 다른 데서도 정부에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서 연간 통화량이 얼마다 하고 중앙은행이 발표했으면 그 범주 내에서 일하는 것이 자유시장 경제원리에 맞는 얘기다. 그런데 통화량이 적다 어떻다, 자꾸 이런 식의 논리를 전개하는 사람이 많다. 입으로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얘기하면서 실제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운용 메커니즘이 뭐냐 하는 데는 인식이 잘 안돼 있는 것 같다. 이런 데서 자꾸 갈등이 생겨난다.  왜 정부의 정책이 일관성이 없느냐,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 일관성이 없게 정책하려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하도 여기에서 뭐라고 아우성, 저기에서 뭐라고 아우성, 그러면 신문에 오늘은 통화가 부족해서 문제, 내일은 통화가 많아서 문제, 오늘은 국제수지가 문제, 내일은 물가가 문제, 이런 식이고 보니 제대로 자기 방향을 확고하게 잡지 못한 사람은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난 벌써 15~16년 전부터 이런 얘기를 한 사람이다.


그 당시,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식으로 경계재발이란 것을 죽 해가면, 6차 5개년 계획 정도 끝나면 경제력이 정치력을 능가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그랬다. 지금 그 사람(재벌)들은 어떻게 보면 '나는 치외법권적인 상황에서 살고 싶다' 이런 사람들이다. 민주화 사회라는 것은 룰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다. 우리는 헌법에다 경제의 민주화를 정부가 책임지고 실현해야 한다고 박아놨다. 분배고 뭐고 다 2차적인 문제고 처음부터 시장경제 룰이 확립되지 않으면 안된다. 경제활동을하는 사람들이 각기 일정한 제약을 받으면서 룰을 지키려고 해야지, 나는 그 룰이 필요없다. 이러면 그 사람은 한국서 못 사는 것이다. 6공 경제정책에 시행착오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토초세라든가, 주택 2백만호 건설이라든가, 이런 것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2백만호 건설이란 것은, 당시 나는 야인으로 있었지만, 그 당시 분위기로 봐서 정치적 결단이었다. 경제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것도 감내한다는 결심을 했기 때문에 추진했지 그렇지 않았으면 못했다.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잠자리가 불안정하면 근로자들의 생산성도 올라갈 수 없고 임금을 자제할 수 없다. 정책이란 것은 선택을 하는 것이고, 선택을 하기 위해선 우선순위가 정해져야 하는데 기필코 무엇보다 앞서서 주택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결정했으면 그것은 현정부가 감내하는 것이다. 그 결과 최근에 와서 집값이 떨어지는 것도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상황을 호도하기 위해 하는 얘기가 아니라 1~2년 동안에 거시경제 수치를 근사하게 하고자 하면 할 수도 있다. 흔히들 물가와 국제수지를 얘기하지만 공공요금 다 동결해버리고 한 1~2년 더 끌고가면 내부야 어떻게 썩어가든 간에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다. 그리고 투자를 많이 안하고 국내에서 억제정책으로 가면 국제수지도 그렇게 크게 구멍 안난다.


그러나 그러고 난 다음에 결과가 무엇으로 나타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소련과 동유럽 경제가 왜 망했나. 30년, 40년 동안 빵값도 똑같고 집값도 똑같으니까 공급할 능력이 떨어졌던 거다. 요즘 전력 사정을 보라. 과거에 전기요금은 물가 때문에 내리기만 하는 걸로 했다. 그러다 보니 결국 공급능력이 줄어 여름철 되면 단전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전기가 5시간 중단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냉장고에 있는 음식은 다 썩어버릴 텐데 거기에서 오는 국민 경제의 손실을 생각해야 한다. 전기요금 1백~2백원이 문제가 아니다. 경제라는 것은 상식 속에서, 자연적인 현상 속에서 파악하고 대처해야지 획기적이고 특이한 방법은 있을 수 없다. 기발한 발상으로 시작한 정책은 과거 30년간의 산업화 과정을 돌아볼 때 그 순간은 명쾌한 듯하지만 결과는 좋을 것 없었다. 한국이 지금 선진국 단계냐 아니면 개발도상국 상태냐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인식 없이 정책을 펴면 성공할 수 없다.

“6공 경제정책 나중에 옳게 평가받을 것"


 나와 부총리의 관계가 불편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누가 자꾸 말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얼마 전 어느 경제주간지에서 내가 이승윤 부총리 때는 과천을 자주 갔지만 최각규 부총리 때는 한번도 안갔다고 했는데 이부총리 때도 밤에 딱 한번 갔다. 주식값이 6백선이 깨졌다고 해서 난리가 나서 회의하러 갔다.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조처에 대해서 재벌들이 제일 기분 나빠하더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내가 청와대에 들어간 것은 90년3월19일이다.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이 나올 때였다. 총체적 난국이란 것이 다른 요인도 있었지만 부동산 문제가 컸다. 토지공개념 얘기도 많이 하고 있을 때였는데, 불이 나면 일단 불을 끄고 새로 정리할 생각을 해야지 불 끄는 방법만 자꾸 얘기해 봐야 소용이 없다.


내가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2년 동안내 목을 잘라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던 것 같다. 나는 우리나라 사회가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재계가 기분 나쁘면 누구 목 자르고, 이런 사회 분위기라면 별로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경제정책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만, 나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2년 전 내가 들어갈 때 내세운 것은 제조업의 공동화를 막고 경쟁력을 회복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업종 전문화를 빨리 시작해야겠고 부동산투기를 억제해야 돈이 딴 데로 못가게할 것 아닌가. 만약 부동산값이나 집값이 2년전 같았으면 선거결과가 어떻게 나왔겠느냐. 경제정책을 한 단면만 보아서는 안된다. 요새 국제수지 적자가 줄고 물가도 진정될 기미가 보인다. 나는 들어갈 때 효과는 2년 뒤에나 나타난다고 말했다. 6공 경제는 거품 속에서 시작했다. 시작할 당시의 여건을 제대로 놓고 분석해야 한다. 6공 경제정책은 나중에 옳게 평가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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