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牧民 비리가 개혁 망친다"
  • 정리. 문정우 기자 (mjw21@sisapress.com)
  • 승인 1993.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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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구청장 고백…기관장 특권남용 등 지역사회 지도층 비리 실태 고발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지 4개월여.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숨가쁜 변화가 계속되었다. 고위 공직자들이 무더기로 구속됐으며 과거 군사 독재 시절의 비리가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김영삼 정부의 개혁에 대해 갈채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개구리처럼 뛰는 방향을 모르겠다거나 위에서부터의 개혁이 아래로 이어지고 있지 못하다는 비난도 거세다. 최근 김영삼 정부의 개혁의지에 동감하며 나름대로 지역 행정을 쇄신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지방 대도시의 한 구청장이《시사저널》에 익명을 조건으로 자신이 보고 듣고 겪은 지역사회의 개혁 현장 모습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는 현역 지역 기관장으로서는 하기 어려운 얘기를 많이 해주었다. 그의 얘기가 현재 지역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혁의 한계를 지적하는 동시에 앞으로의 개혁 방향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판단해 구술 형식으로 정리해 본다. <편집자>

 현재 진행되고 있는 김영삼 정부의 개혁을 지켜보면서 지역민들은 마음 속으로 갈채를 보내지만 정작 현실로 돌아와 자신을 돌아보게 되면 새삼 변한 게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주민들이 지역 기관장을 보면'김영삼 정부의 개혁이 보기는 좋은데 먹고 사는데는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한다.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구청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얘기지만 냉정히 판단해보면 그다지 변한 게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저 구청이나 동사무소에서 마주치는 공무원의 인상이 조금 부드러워진 정도라고나 할까.

 내가 구청장에 취임한 지는 몇 달 되지 않는다. 나는 취임 당시 자신만만했다. 중앙 정부의 의지가 확고하기 때문에 나만 잘 하면 관할 구역의 부조리와 부패를 어렵지 않게 일소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그것은 매우 순진한 생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촌지 . 향응 없애자 뒷조사 . 비방투서
 나는 구청장에 취임하자마자 맨 처음 출입기자와 기관원 들에게 달마다 지급하던 월급성 촌지를 없앴다. 구청에서는 그동안 이들에게 매월 2백만원, 1년에 2천4백만원 정도를 지급해왔다. 나는 기자실도 없애려고 했지만 직원들이 하도 만류해 보류했다. 하지만 기자가 과분한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그들은 기자실도, 전화도, 사무실을 지키는 여직원도 모두 공짜로 쓰고 있다. 하다 못해 기자실에서 마시는 음료수까지. 나는 기자나 기관원과 식사나 술자리를 함께하는 것도 자제했으며 그들이 가져가던 돈으로 관할 구역의 어려운 사람을 돕거나 경조사에 보태도록 했다.

 그러자 전혀 예기치 못했던 사태가 벌어졌다. 기관원들은 나의 재산과 과거 경력, 하다못해 군에 있었을 때의 일까지 캐고 다녔다. 그들이'아무개 구청장은 아마 몇 달 버티지 못할 것이다"라고 소문을 퍼뜨리고 다닌다는 얘기가 내 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기자들은 나에 대해서는 동정란에조차 한줄도 취급하지 않았다. 아마도 취임하고 나서 몇 달 동안 지역 신문에 한줄도 보도되지 않은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구청장 집무실을 반으로 줄이고 칸막이도 없앴다. 문도 유리문으로 바꿔 구청장이 누구와 얘기하고 있는지 밖에서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러자 주민들은 좋아하는데 지역 유지들은 매우 싫어했다. 취임 초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드나들던 사람들이 차츰 발길을 끊었다. 그러더니 그들이'이상한 사람이 하나 구청장으로 와서 지역 분위기를 흐려놓고 있다"고 비난하고 다닌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공교롭게도 경찰청이나 검찰청에는 나를 비방하는 투서가 빗발쳤다. 나는 간편한 작업복을 주로 입는데 투서 중에는'구청장이 공산당 옷을 즐겨 입는다"는 어처구니 없는 내용이 담긴 것도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구청장이 지역 주민이나 부하 직원과 인화하지 못하므로 갈아치워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현재 지역에서 조그만 권세라도 누리고 있는 기득권층은 개혁에 대해 코방귀도 뀌지 않고 있다. 그저 잠시 피해야 할 소나기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지역 기관장 중에 개혁 의지를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집요하게 모함하며 쫓아내려고 한다.

 이들 지역 유지는 대부분 지방의회 의원자리를 차지하고 있거나 관변 단체의 장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다. 말이 나왔으니까 지역 의회에 대해서 한마디 해야겠다. 지역민들은 지난 지방의회 선거 때 아예 관심을 갖지 않거나 별다른 생각 없이 사람을 뽑아 그 폐해가 실로 막심하다. 단적인 예를 들겠다. 지난 회기에 우리 구의회 의원은 밥값만 하루 평균 1백50만원을 썼다. 구의회 의원은 모두 40명인데 하루 세끼 1만원짜리 밥을 먹었다고 해도 1백20만원 정도면 족할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의회에 나올 때면 아침밥도 집에서 안 먹고 의회에 나올 때면 아침밥도 집에서 안 먹고 나오는 모양이다. 대통령만 칼국수를 먹으면 무엇하나, 엉뚱한 곳에서 국민의 세금이 모두 새고 있다.

 이들 지역 의원들이 그저 돈이나 흥청망청 쓴다면 그런대로 참아줄 만하겠다. 그러나 자기들끼리 추잡한 파벌 싸움에 정신이 팔려 관할 구역의 정작 중요한 일을 결정하고 심의하는 일을 소홀히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우리 구 의회의 경우 판공비 유용 등 내부 문제를 가지고 서로 다투는 바람에 장마기를 앞둔 수방대책 예산 심의 등을 아직도 미루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해 나는 우리 시의 관변 단체에 대해 감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감사를 해보고 나도 깜짝 놀랐다. 시의 보조를 받고 있는 관변단체가 모두 60여개나 됐다.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단체가 수두룩했다. 그들이 시로부터 돈을 받아 쓴 내역을 조사해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구멍가게의 경기장부도 그보다는 나을 것이다. 단체장이 마치 주머니 돈처럼 멋대로 유용한 흔적이 역력했다. 정밀하게 감사해 보고서를 올렸으나 아무도 책임지지는 않았다. 그저 감사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전국 지방 도시 어느곳에서도 지금까지 관변 단체에 대해 제대로 감사를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감사를 실시하려면 기관장은 온갖 음해와 모함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관장을 괴롭히는 적은 관청 내부에도 있다. 나는 지역 내의 부조리를 일소하기 위해 은밀히 일을 추진하다가 번번히 실패하곤 했다. 사전에 정보가 누설되기 때문이다. 지역 유지들과 평소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어온 지역 공무원들이 고자질을 하는 것이다. 관청 내부의 그 수많은 첩자들을 어떻게 소탕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나는 지금도 버스를 타고 다닌다. 하지만 우리 구청 직원의 50% 정도는 승용차가 있는 것으로 안다. 버스를 타고 다니는 구청장이 취임하자 구청 주차장은 텅 비었다. 그대신 구청 주변 골목길과 주차장은 공무원의 승용차로 붐비게됐다. 월급이 70만~80만원인 사람들이 어떻게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지 의아스럽기만 하다.

구청장 정보비는 감사대상도 안돼
 사실 말단 공무원만 탓할 일이 못된다. 기관장들부터 말단 직원과 고통을 분담하려는 자세가 돼 있지 못하다. 구청장의 경우 1년 판공비가 5천만원, 정보비가 5천만원 정도된다. 정보비의 경우는 누가 어떻게 썼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감사 대상도 아니다. 영수증도 필요없다. 그래서 그동안 기관장들은 대부분 이 돈을 자기 주머니 돈으로 생각해왔다. 웬만한 큰 도시의 경우는 시장의 정보비가 2억원 정도 된다. 그런 돈을 투명하게 집행하지 않으면서 아래 직원을 엄히 다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 지방 관서에서 하루 속히 척결해야 할 것은 관급 공사와 관련한 비리이다. 관급공사는 따내는 사람만 따낸다. 공무원이 아마도 자기 집을 지을 때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눈에 불을 켤 것이다. 드물지만 간판도 없는 유령 회사가 관급 공사를 따내는 경우도 있다. 전관 예우라고나 할까. 전직 기관장이 공사를 따내는 경우인데, 그들은 공사를 맡고 난 다음에 회사를 설립하기도 한다. 그래서 전혀 사업 실적도 없는 회사가 대기업에게 하청을 주는 촌극도 벌어진다. 관급 공사를 시의원이나 구의원이 맡는 것도 큰 문제이다. 행정을 감시해야 할 사람에게 시정을 맡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역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할 소리는 아니지만 만약 민간 대기업에게 시나 구청의 운영을 맡긴다면 현재 예산의 10분의 1만 가지고도 훌륭하게 해낼 것이다.

 나는 지난 20여년간 공무원으로서의 긍지와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해왔다. 그 결과 변변한 집 한칸 마련하지 못하고 아내에게는 그 흔한 제주도 구경 한번 시켜주지 못했다. 아이들이 바르게 커 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 애들이 자랄 때 맛난 것 한번 마음놓고 먹여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후배 공무원에게까지 나처럼 살라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들도 자기 또래의 젊은이처럼 차도 몰고 다니고 휴일에는 가족들과 명승지로 놀러다닐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사회로부터 그만한 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다. 엉뚱한 곳으로 새나가는 돈줄을 차단하고 공무원에 대한 처우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혁은 또다시 공염불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행정에도 경영 쇄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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