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보주식회사’ 주주는 民·官·軍
  •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3.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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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을 흔히 ‘스파이 천국’이라고 부른다. 패전 이후 기밀탐지죄와 같은 간첩죄가 형법에서 삭제되어 그같은 행위를 처벌한 법규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80년 1월에 발생한 이른바 ‘미야나가 간첩 사건’의 주·종범 3명은 자위대법 위반으로 1년 이하의 징역형이 선고되었을 뿐이다. 자민당은 ‘국가기밀에 관한 스파이 행위 방지법안’을 85년 6월 국회에 제출했으나 여론의 압력에 밀려 이를 슬그머니 철회한 바 있다.

 그러나 이처럼 겉에 드러난 사실만으로 일본을 스파이 천국이라고 부른다면 눈 감고 코끼리 만지는 격이 된다. 또 국가 정보기관이 없다고 해서 자기 나라를 ‘정보수집 무능국가’로 비하하는 일본 언론의 표현을 액면 그대로 믿다가는 우리가 바로 정보 무능자가 된다.

 한 예가 있다. 《우호적 스파이 (FRIENDLY SPIES)》. 금년 봄 미국에서 베스트 셀러가 된 책이다. 일본·독일·프랑스가 어떻게 미국의 경제 정보를 훔쳐가고 있는지 실례를 들어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데, 일본에 대해서는 무려 4개 장을 할애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일본은 전체 정보예산의 80%를 미국과 서유럽으로부터 경제 정보를 수집하는데 사용한다. 통산성과 일본무역진흥회 등 정부 관련 기관은 물론 미쓰비시·히타치·마쓰시타 같은 다국적기업이 삼위일체가 되어 활동하고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말을 바꾸면 일본은 정보를 수집하는 데서도 주식회사 형태를 이루고, 수집한 정보는 주주끼리 사이좋게 나눠 가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의 저자 피터 슈바이처는 87년 작성된 미국 중앙정보국(CIA) 비밀보고서 <일본의 대외정보·안전보장기관>을 인용해 충격적인 사실을 밝히고 있다. 즉 일본 방위청은 오키나와 이시가키 섬에 설치되 군사용 통신 시설을 이용해 한국과 대만 기업의 전화까지 도청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도청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부대는 육상막료감부(육군본부) 소속 조사 제2과 별실. 일본에서는 이를 줄여서 ‘죠베쓰(調別)’라고 부른다. 저자 슈바이처는 한국 정부가 이에 대해 수차례 항의한 사실이 있다는 것까지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죠베쓰라는 부대는 과연 어떤 부대인가.

KAL 격추 사건 증거도 제시
지난 83년 9월 일본 정부는 KAL기 격추 사실을 부인하던 소련측에 결정적 증거물을 들이댔다. 조종사와 관제탑이 교신한 기록이었다. 이 무전을 청취한 부대가 바로 죠베쓰 산하 아카나이 통신소다. 당시 이 부대의 관할처는 일본 최고 정보기관 ‘내각 조사실’이었는데, 이를 계기로 베일에 쌓인 첩보부대 죠베쓰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죠베쓰가 세인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KAL기 격추 사건이 처음은 아니었다. 김대중씨 납치 사건과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김대중씨 납치 사건이 일어날 것은 72년 8월이었다. 납치되기 전 그를 미행 감시한 사람 중에는 일본인 민간흥신소 소장도 끼여 있었다. 그 흥신소 소장이 바로 육상막료감부 조사부 출신이었다. 제대한 지 몇 달도 안돼 흥신소를 차리고, 그런 지 2주일 수 청부 맡은 일이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씨 납치 사건이 한·일 간에 정치적 해결로 유야무야되어 버리자 중앙정보부와 죠베쓰와의 관계도 더 이상 밝혀지지는 않았다.

 이 죠베쓰는 아카나이말고도 니이가타·돗토리·후카오카 등 8개 지역에 통신·암호해독·어학에 관한 전문가를 배치하고 있다. 또 요원 양성을 위해 도쿄 오다히라에 ‘조사 학교’를 두고 있으며 정보 분석과 어학 등을 집중 훈련시키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슈바이처가 지적한 한국 기업 도청 얘기는 결코 픽션의 세계는 아니다. 당연히 이들 중에는 한국어를 전문으로 하는 요원이 상당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죠베쓰의 상급부대가 육상막료감부 조사부이다. 조사부는 국내를 담당하는 1과와 해외를 담당하는 2과로 나누어지는데 이 2과의 별동부대가 죠베쓰로 대원은 약 1천1백명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육상막료감부 조사부는 형식상 막료장에게 소속돼 있으나 실질적으로 방위청 방위국이 관장하는 부대이다. KAL기 피격 때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내각조사실 관할이었으나 몇 년전 방위국 조사과로 이관되었다.

 그밖에 방위청은 ‘중앙자료대’라는 정보수집 부대를 운영하고 있다. 그 중 제2과가 아시아를 맡은 부서다. 국내외 자료를 조직적으로 수집해 번역·분석하는 것이 이 부대의 임무인데, 매월 약 1백 쪽에 달하는 《군사자료 월보》 《기술자료 월보》를 발행하고 있다. 물론 이 월보는 대외비이며, 앞서 지적한 ‘미야나가 간첩 사건’은 이 중앙자료대를 무대로 해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일본에서는 죠베쓰를 ‘JCIA'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이 부대는 방위청과 자위대에 소속된 첩보부대이지 미국 중앙정보국이나 한국의 안기부와 같은 권한이 부여된 정보기관은 아니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을 공안조사청과 같은 공안 조직을 최고 정보기관으로 치는 경우도 있다. 그밖에 경찰청이나 도쿄 경시청을 꼽는 사람도 있다.
 경찰청이나 경시청의 공안담당 부서는 대개 외사과이다. 경찰청 경비국 외사과는 전쟁 전에 ’조르게 간첩 사건‘을 적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경시청 공안부 외사과 역시 미야나가 간첩 사건과 김대중씨 납치사건 수사로 크게 명성을 떨쳤다.
 외국인에 대한 경비와 정보 수집이 주목적인 이들 외사과는 재일한국인과 조총련의 거동을 감시하는 것도 큰 임무 중의 하나이다. 또 예전에 모택동이 중병에 걸렸다는 정보를 제일 먼저 알아낸 것이 일본 경찰청이었다는 일하가 있듯이, 해외 주재 대사관에 파견한 요원들이 수집하는 정보도 엄청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정경조사회 《남북한 요람》 발행
 또한 외무성이나 통산성 등 각 부처 별로 각기 별도의 정보수집 통로를 갖고 있는 것도 일본의 큰 특징이다. 예를 들어 통산성은 주한 일본대사관에 정식으로 상무관을 파견하는 한편, 산하 단체인 일본무역진흥회 서울 사무소에 산업조사원이라는 직책으로 따로 직원을 파견해 관련 정보를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대장성 역시 산하 단체인 국제금융정보센터나 일본증권경제연구소 등에 파견한 직원을 통해 정보를 자체 수집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수집한 각종 정보의 최종 종착역은 어디인가. ‘내각조사실’이 바로 그곳이다.

 내각조사실은 미국 중앙정보국과 같이 일본의 정치경찰기구를 통합할 목적으로 52년5월 발족한 기관이다. 전신은 전쟁 전에 여론 조작과 언론 통제를 전담했던 ‘내각 조사국’인데, 역대 실장은 관례인 양 경찰청 출신이 맡아왔다. 또 외무성 출신이 차장직을 맡는 것도 똑같은 관례이다.

 내각 관방에 소속된 내가조사실은 총무·국내·국제·경제·자료 등 5개 부서로 나누어져 있다. 인원은 내각조사관·내각사무관·조사관·내각기관 등 1백50명 규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중 약 3분의 2가 각 부처에서 파견한 요원들이다.

 이렇게 인원과 조직이 비교적 왜소하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내각조사실을 단순한 정보분석 기관으로 낮춰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산하 외곽 단체만 해도 10개가 넘는 것이 그 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NHK 국제국, 라디오 프레스 통신사, 지지통신의 내외 정보조사실, 동남아시아연구회, 내외사정연구회, 세계정경조사회 등이다. 또 민간인 학자와 지식인들에게도 수시로 토론 연구, 정보 수집을 위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내각조사실의 정보 네트워크는 엄청날 정도로 방대하다.

 이 중 세계정경조사회의 2부 5반은 《한국·북조선 요람》을 만들어 배포하는 곳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이 책은 남북한 전체의 기본 자료와 정보를 압축해 놓은 것인데, 각 부처의 한반도 담당자와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에게는 필독서이다.

 이 세계정경조사회가 세인의 눈길을 끌게 된 것은 67년 일어난 간첩 사건 이후부터이다. 이 회에 소속된 한 직원이 소련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사건이다. 이 때 내각조사실과 정경조사회 그리고 미국 중앙정보국과의 관계 등이 샅샅이 폭로되었다.

 전쟁 후에 탄생한 내각조사실은 겉으로는 해외공작이 금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실상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예를 들어 발족 3년 뒤에 일어났던 기밀문서 유출 사건 때는 방위반 소속 요원이 사우디 실업가를 불법 감금한 예도 있다. 또 그후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청소년평화우호제에 내각조사실 요원이 사진기자로 위장해 입국했다가 발각된 적도 있다.

 내각조사실을 관장하는 사람은 관방장관이다. 역대 장관의 면면으로 보더라도 내각조사실의 비중이 보통이 아님을 읽을 수 있다.

 후지나미·가토 전 관방장관, 가이후 전 총리, 모리 전 정조회장, 오자와 전 간사장 등 역대 실력자가 모두 이곳을 거쳐갔다.

 얼핏 보면 피라미드식 거대 정보기관은 존재하지 않지만, 민·관·군이 삼위일체가 되어 ‘일본 정보주식회사’를 차려 놓고 있는 것이 일본의 실상이다.
도쿄·蔡明錫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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