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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탈환’ 힘겨운 한국전 다큐멘터리

전상인 (민족통일연구원 책임연구원 ·사회학) ㅣ 승인 1993.07.29(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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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민 정부가 출범한 뒤로 방송 제작의 상대적 자유화가 브라운관의 저질화를 유발한다고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그 가운데서도 몇몇 품격 있는 프로그램들, 예컨대 sbs의 미스터리 다큐멘터리 <그것이 알고싶다>와 MBC의 정치드라마 <제3공화국> 그리고 KBS의 <다큐멘터리 극장> 등은 높은 대중적 인기와 커다란 사회적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프로그램 역시 내용의 사실성과 객관성을 둘러싸고 그동안 논란과 시비에 자주 휘말리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큐멘터리류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제작 및 방영 과정에 대한 정확한 실상이 궁금하다. 이와 관련하여, 브루스 커밍스가 지난해 출간한 《전쟁과 텔레비전(War and Television)》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현재 미국 시카고 대학 교수로 있는 커밍스는 한국현대사 연구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학자로서 새삼스럽게 소개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물론 그는 전문적인 미디어 비평가는 아니다. 그러나 결코 커밍스가 미디어 비평의 문외한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는 텔레비전 시청을 ‘즐기는’ 역사학자임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CNN을 비롯한 미국의 유수 텔레비전 뉴스 프로그램에서 한국 문제를 해설한 경험이 적지 않다.

진실 왜곡하는 텔레비전 마술

 커밍스는 특히 88년 영국의 템즈 텔레비전 방송국이 제작·방영한 <한국:알려지지 않은 전쟁(Korea:The Unknoen War)>에 자문역으로 직접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90년 가을 미국에 배포·방영되는 과정에서 제기된 수많은 저항과 반대에 부딪치기도 했다. 그리하여 그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 관련된 숨은 이야기를 스스로 풍부하게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전쟁과 텔레비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직접 개입한 세 전쟁 즉 한국전쟁·베트남전쟁·걸프전쟁과 텔레비전 사이에 얽힌 이야기이다. 텔레비전이란 무엇인가. 커밍스에 의하면 그것은 우리 자신과 세상사의 이미지를 능란하게 조작하여 시청자로 하여금 그것들을 ‘투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전파 과학기술의 산물이다. 그것은 원자화·수동화되어 있는 무력한 소비자를 미혹시키기도 하고, 필요한 경우 학자적 견해를 왜곡한다. 전문 지식이 부정확해 문맥에 맞지 않게 인용되거나, 인터뷰 내용이 편집 과정에서 자의적으로 처리되는 경우는 비단 커밍스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텔레비전의 위력은 너무나 막강하여 현대의 모든 혁명가들이 텔레비전 방송국을 가장 먼저 장악하고 싶어한다.

 커밍스는 미국이 참전한 50년대의 한국전쟁, 60년대의 베트남전쟁, 그리고 90년의 걸프전쟁을 모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인식한다. 비록 다윗의 이름은 金日成과 호치민, 그리고 후세인으로 바뀌었지만 골리앗은 한결같이 지구상 최대국 미국이었으며, 미국이 자국의 지정학적 주도권에 도전한 약한 제3세계 국가를 응징한 것이 이들 전쟁의 본질적 성격이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확연한 ‘텔레비전 전쟁’은 걸프전쟁이었다.

 그 까닭은 단순히 세계 최초의 국제적 네트워크인 CNN이 전쟁을 거의 생중계할 수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현지 주민이 겪은 전쟁의 참화가 스크린 뒤에 감추어진 가운데, 텔레비전 뉴스의 앵커맨들이 백악관과 펜타곤의 정책을 일방적으로 성원하고, 전투에 임한 미군의 용기와 직업정신 혹은 첨단과학 무기의 정확한 살상·파괴 능력에 보도의 초점을 맞추면서, 이라크 수뇌부를 광신자나 잔인한 악마로 규정하는 데 앞장섰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전쟁과 텔레비전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텔레비전 시대의 여명기에 발생한 한국전쟁은 텔레비전 스크린에 거의 비치지 않았다. 한국전쟁의 영상 기록은 텔레비전 카메라가 아닌 일반 무비 카메라와 흑백 사진기에 주로 의존했던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베트남전쟁이 수많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의 소재가 된 것처럼, 한국전쟁 역시 긴 세월이 지나 텔레비전에 의해 재구성·재해석되는 경로를 밟았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작품은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역사학자인 존 할리데이와 커밍스가 참여한 가운데 영국의 템즈 방송국이 제작한 <한국:알려지지 않은 전쟁>이었다. 《전쟁과 텔레비전》에서 가장 우리의 흥미를 끄는 부분은 커밍스가 이 다큐멘터리 필름을 제작하고 방영·배포하는 과정에서 순간순간이 정치적 갈등을 내포한 ‘전쟁의 일종’이었다고 주장하는 대목이다.

커밍스 교수 “방영·배포 과정도 전쟁”

 텔레비전이 공명성과 객관성을 주장하는 근거 가운데 하나는 ‘카메라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환상이다. 그러나 커밍스에 의하면 모든 사진은-정물 사진이든 활동 사진이든-작가가 렌즈를 통해 무엇을 찍고 무엇을 버릴 것을 결정하는 순간 ‘잘린다’. 그리고 그 결과는 상황적 맥락의 상실이다. 다시 말해 카메라가 찍을 수 있는 것 혹은 기록하고 싶은 것만 촬영하는 한 모든 사진은 원천적으로 편견에 감염되어 있다. 따라서 사진에 의한 역사의 변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컨대 해방 직후 인천에 상륙한 미국 병력이 서울로 진군하던 45년 9월9일의 경인가도 풍경이 ‘조용한’ 것처럼 나타난 사진은, 그 전날 인천 부두에서 발생한 발포 사건 이후 일본 경찰이 한국인들의 접근을 무장으로 막았다는 사실을 직접 전달할 수 없다.

 나아가 당시 주한미군 당국이 남긴 대부분의 필름과 사진은 점령자 혹은 승자의 기록이다. 미군의 한국 점령을 취재하러 온 미국 카메라들은 남한의 무질서와 반란, 게릴라 활동 따위를 스스로 열심히 기록할 필요를 느꼈을까. 예를 들자면, 한국전쟁을 누가 시작했는가를 정확히 기록한 사진이나 필름으로서 아직까지 확인된 것은 없다. 그러나 후일 한국전쟁에 관해 만들어진 대부분의 다큐멘터리들은 50년 6월25일 새벽에 한 무리의 대포가 ‘어떤 방향’으로 포탄을 뿜어내는 장면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뮬레이션일 뿐이다(마치 50년 겨울 북진 당시 한국군이 수통에 물을 떠 담던 곳이 압록강이 아니라 사실은 임진강이었던 것처럼).

 이렇듯 텔레비전을 비롯한 영상 기록 매체에 대해 잔뜩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커밍스가 템즈 텔레비전과 더불어 한국전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작업에 참가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영국 텔레비전이라는 점이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한국전쟁에 관한 ‘객관적인’ 텔레비전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질 수 없다는 커밍스의 판단은, BBC를 중심으로 훌륭한 텔레비전 문화의 전통이 지켜지고 있는 영국을 택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막상 템즈 텔레비전과 일을 같이 하면서 커밍스는 다양한 형태의 ‘전쟁’을 경험한다. 한국전쟁을 해석하는 문제에서부터 시작하여 전쟁 당사자의 입장에 접근하는 일, 소재들을 선택하고 내용을 편집하며 또한 이야기 전체를 서술하는 것들 모두가 ‘정확한 진실’의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자신에게는 싸움거리였다고 커밍스는 술회하고 있다.

 그 ‘전쟁’의 대상은 한국전쟁에 대한 일반적 무지와 함께, 기존의 해석 방식에 무의식적으로 안주하거나 적극 집착하고자 하는 미디어 경영자 및 종사자, 퇴임한 고우 관료와 군인, 그밖에 영향력 있는 공적 인물들이었다. 본보기로 당시 6백여 쪽에 달하는 《한국 전쟁의 기원》 제1권을 출간하고 1천 쪽이 넘는 같은 책 제2권의 초고를 끝낸 커밍스는 광복 직후 한국에서 발흥한 인민위원회가 도대체 무엇인지도 모르는 ‘텔레비전 사람들’과 더불어 일을 해야 했다. 준비 세미나가 몇 차례 진행되는 동안 자문가들 사이에 갈등과 내분이 날로 팽팽해졌을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제작된다는 사실이 관련 국가 정부들에 알려지면서 템즈 텔레비전 방송국 주변에는 유형·무형의 압력이 가해지기도 했다.

 커밍스에 따르면 한국의 姜英勳 주영대사는 템즈 텔레비전 방송국과 영국 외무부에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서 자신과 할리데이의 역할을 제외할 것을 요구했으며, 나아가 한국 정부는 영국의 대처 정권과 함께 북한측 자문가의 영국행을 막았다고 한다. 또한 한국측 자문역으로 참가한 金宗輝 박사(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는 한국전쟁 기간 남한 내에서 자생한 게릴라는 한명도 없었다고 주장했고, 이를 반박한 커밍스에게 ‘당신은 북한을 완벽히 대변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후 취재차 서울에 온 템즈 방송국 스태프는 한국 정부로부터 ‘최소한의’ 협조만을 얻었다.

 북한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했다. 87년 여름부터 평양행을 준비한 커밍스와 다큐멘터리 제작팀은 ‘사전 준비’ 작업이 필요했던 북한 당국의 입국 허가를 지루하게 기다려야 했다. 또한 인터뷰를 포함한 현지 취재는 한국전쟁의 본질적 성격에 관한 의견의 ‘타협’을 전제로 했다. 커밍스는 그것이 ‘내전’이었다고 주장했으나, 북한 측은 한국인을 상대로 미국이 벌인 제국주의 전쟁이었다고 맞섰던 것이다.

 템즈 텔레비전이 제작한 <한국:알려지지 않은 전쟁>은 88년 여름 런던에서 첫 전파를 탔다. 한편 미국의 공영방송 PBS의 보스턴 채널인 WGBH는 처음부터 이 다큐멘터리 필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원했다. 그러나 필자가 그것을 처음 접한 것은 88년 가을 미국 하버드 대한 구내의 비디오 앞에서였다. 당시 미국에서 나돈 소문은 한국 정부가 PBS/WGBH에게 여름철 올림픽이 끝나기 전까지 <한국:알려지지 않은 전쟁>이 방영되지 않도록 강력하게 요구했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PBS/WGBH가 템즈사로부터 프로그램을 입수하여 북미 지역에 방영한 것은 90년 11월이었다.

 런던에서 보스턴까지의 2년 동안 PBS/WGBH는 내용 재검토를 통하여 프로그램 일부에 대한 수정을 시도했고, 따라서 한국전쟁 다큐멘터리는 미국에서 보이지 않는 정치의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그 과정에서 PBS/WGBH는 커밍스와 할리데이를 소외시키는 대신 미국 정부내 정보 관리 담당자들을 전문가로 활용하여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미국의 입맛에 맞아 떨어지도록 개작했다. 그리고는 그 모든 작업이 ‘사실’과 ‘정확성’에 근접시키기 위한 노력이라고 주장했다.

보스턴판 필름, 미국 시각으로 원작 개악

 그리하여 런던판 오리지널 다큐멘터리가 진실을 주장하는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는 ‘정치적 균형’을 추구한 결과 ‘알려지지 않은 전쟁’으로 자족하는 대 그쳤다면, 보스턴판 개정 필름은 한국전쟁에 관한 어떤 ‘定說에 성실이라는 외관과 객관성이라는 외투를 다시 입혀 그것을 ’매우 잘 알려진 전쟁‘으로 개악하고 말았다. 커밍스에 의하면 이것은 미국 텔레비전의 문제만이 아니라 미국식 자유주의의 한계이기도 하다.

 커밍스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그런데 문제의 이 <한국:알려지지 않은 전쟁>은 런던과 보스턴을 거쳐 다시 한국에서 ’전투‘를 계속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방영권을 수입한 MBC는 89년과 90년 6월에 특집 형식으로 내보낼 계획이었으나, 68 군데나 가위질을 했는데도 한국방송위원회로부터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다. 한국방송위원회는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에 내용 검토를 의뢰했는데 ’미국에 대한 그릇된 시각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국내 방영을 거부당할 것이라 한다.

 한국에서 <한국:알려지지 않은 전쟁>이 방영된 것은 92년 7월, ’우스꽝스럽게도‘ 주한미군 방송인 AFKN 채널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 프로그램 방영을 도중하차시켜 달라고 요청하였고, 미군방송 당국은 ’곧 방영이 재개될 것‘이라는 말을 남기면서 이를 수용하였다. 오는 7월27일로 한국전쟁이 중단된 지 만 40년이 된다. 이래저래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텔레비전 안팎에서 벌어진 두 한국전쟁의 내막과 본질, 우리는 이제 그것이 정말로 알고 싶다.
全相仁 (민족통일연구원 책임연구원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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