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활력 新바람 ‘리엔지니어링’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3.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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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흐름 바꿔 단기성과 꾀하는 경영기법…학자·컨설턴트들 ‘전수’ 활발



 어떤 건설회사가 공사를 따내고 나서 실질적으로 공사에 들어가기까지는 대개 75일이 걸린다. 이 기간에는 흔히 ‘현장을 개설한다’고 부르는 준비작업이 이루어진다. 본사에서 현장소장을 임명하고, 현장소장이 인원 계획을 세워 발령하고, 관청에서 각종 허가를 얻어내고, 공사를 기획하고, 현장사무실 가건물을 세운다.

 많은 건설회사들이 공기를 줄이기 위해 현장을 개설하는 데 드는 시간을 줄이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런데 한 건설회사가 이 기간을 25~30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외부 전문가와 사내 중견간부를 중심으로 임시조직을 짜 이 문제를 다루도록 한 지 얼마 안되어서였다. 이 조직이 고안해 낸 것은, 관례상 해당 현장소장이 하는 관 허가 취득과 가건물 축조를 회사의 전담반이 대신 하게 한 것뿐이다. 전담반은 본사가 현장소장을 임명하고, 인원을 뽑고, 공사를 기획하는 동안 맡은 일을 처리한다. 처음 일이 끝나야 다음 단계의 일을 처리하는 직렬형 업무 방식을, 어떤 일을 하면서 동시에 다른 일도 하는 병렬형 방식으로 바꿈으로써 1백40여 군데 현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 회사는 20억원 이상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90년 미국의 컨설팅회사 사장이 창안
 요즘 국내 기업들이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 ‘리엔지니어링(업무 재구축)’은 이처럼 업무의 흐름을 바꿈으로써 높은 경영 성과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리엔지니어링은 업무의 흐름을 특히 주목하고 단기적으로 큰 성과를 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기업의 일상적인 개선활동과는 다른 새로운 경영 기법이다.

 미국에서 이 경영 기법이 탄생한 것은 지난 90년 7월의 일이다. 당시 공교롭게도 미국의 하버드 대학과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이 발행하는 경영 관련 잡지에는 비슷한 취지의 글이 실렸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교수 출신으로 컨설팅 회사를 경영하고 있던 마이클 해머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업무의 리엔지니어링 : 자동화하지 마라, 오히려 지워 버려라’라는 글에서 단순한 자동화보다는 타성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같은 시기 언스트 영 대학의 토머스 데이븐포트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제임스 쇼트 교수는 《슬로언 매니지먼트 리뷰》에 실린 ‘새로운 산업공학 : 정보기술과 업무 재디자인’이라는 글에서 생산 공정뿐만 아니라 사무 업무의 흐름도 개선할 여지가 많다고 주장했다.

 리엔지니어링을 주장하는 경영학자들은 제록스나 IBM, 포트 자동차와 같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의 대기업에서 실제로 자기네 이론을 적용해 놀라운 실적을 오렸다는 사례들을 보고하고 있다. 이 때문에 90년 이후 미국의 경영 관련 잡지인 《포춘》《포브스》등은 이런 사례들에 관한 기사로 가득하다. 경영 합리화에 골몰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 경영자들 사이에서 리엔지니어링이 가장 절실한 당면 과제가 된 것은 물론이다.

 리엔지니어링이 ‘업무 흐름의 재디자인’ ‘중점 흐름의 리엔지니어링’ ‘사업 흐름의 리엔지니어링’처럼 비슷비슷한 이름들로 불리는 것도 새 경영 기법의 인기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이라는 용어는 이 개념을 창안한 사람들이 차린 컨설팅 회사 ‘인덱스 그룹’이 특허권을 가지고 있어, 아무나 이를 쓸 수 없다(창시자인 마이클 해머는 93년 마치 공산당선언을 연상시키는 ‘기업 리엔지니어링 : 사업 혁명을 위한 선언’을 발표했다).

 한국의 기업과 경영자 들이 이 기법을 주목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金孝根 교수(이화여대·경영학)에 따르면, 그동안 추진해왔던 사무혁신 운동의 일환으로 많은 대기업이 리엔지니어링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대기업들이 사업 구조를 바꿈으로써 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리컨스트럭춰링(사업 재구축)’과 함께 경영 혁신의 양대 축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많은 컨설턴트나 경영학자들이 이 개념을 도입하여 익히고 있다.

 이들 가운데서 누구보다도 열심인 사람은 李珣哲(홍익대·경영학). 그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서 리엔지니어링이라는 개념을 고안한 교수들에게 배웠을 뿐만 아니라 보스턴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미국의 유명 기업에서 리엔지니어링이 어떻게 실천되고 있는지를 직접 연구했다. 이교수는 자신의 국내외 경영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리엔지니어링의 개념을 소개한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을 발간했다. 그는 앞으로도 다양한 사례를 보충해 이 책을 연작 형태로 낼 예정이다.

부서 중시 풍토 때문에 마찰 빚기도
 많은 경영학자나 컨설턴트 들은 외국의 새로운 경영기법을 한국 기업에 도입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부서를 중시하는 독특한 기업 문화 때문에 새로운 기법을 들여오면 쉽사리 변질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 평이 좋아 많은 상담 의뢰를 받는 일본의 컨설팅 기관들조차 요즘 ‘영험’이 신통치 않다는 평을 듣고 있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한국 고객으로부터 자기네 충고가 시원찮다는 불만을 전해 들은 일본 컨설팅 기관들은 이런 불만을 털어놓는다고 한다. “부서 간의 팀워크가 그렇게 안좋을 줄은 우리로선 상상도 못했다.”

 90년에 귀국한 뒤로 벌써 많은 기업들에 리엔지니어링 기법을 전수한 이순철 교수도 비슷한 한계를 느껴왔다. 업무 흐름을 바꾼다는 것은 모든 구성원과 부서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어서 구성원들로부터 저항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가능하면 리엔지니어링에 대한 최고경영자의 의지가 확고한가를 파악한 다음 일부 중견간부들로 조직을 만든다. 그들에게 기본인 개념만 교육하고 나서는 모든 과업을 맡긴다. 건설회사의 예처럼 이 조직은 곧 현행 업무 흐름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내놓는다. 이교수는 “멍석(특별조직)만 깔아주고, 방패막이(외부 컨설턴트)만 있으면 소유경영자들로부터 불신받고 하는 중견 간부들이 업무를 획기적으로 뒤바꿔 놓을 수도 있다”라고 말한다. 물론 이순철 교수는 이 과정에서 이 조직에 리엔지니어링의 기본 개념을 교육시킨다. 그리고 끊임없는 발상 전환을 요구한다. 그는 “일의 순서나 절차에 관한 통념이나 관례에서 벗어나면 훨씬 적은 인원으로 훨씬 빨리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金芳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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