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파수’ 분노어린 망향가
  • 강상현 (동아대 교수·언론학) ()
  • 승인 1993.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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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투위 해직 기자들의 18년 민주언론 투쟁 자료집 《자유언론, 내릴 수 없는 깃발》

언론인이 언론사를 향해 언론자유를 요구하는 것은 불성설인 듯이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언론은 그것이 명백한 현실이었다는 점에서 비극적이었고, 그러한 비극의 고통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현대사에서 언론자유를 억압·봉쇄해 온 1차적 인자는 정치 권력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언론자유를 억압해 온 또 다른 인자가 그러한 지배 권력과 유착한 언론사 내부에 존재해 왔다는 사실은 실제에 부합되는 만큼의 ‘인지적 대우’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언론사가 언론자유를 수호하려는 언론인의 자구적 노력을 본격적으로 그리고 강압적으로 외면하기 시작한 오욕의 상징적 사건은 74년 말과 75년 초를 경유하면서 벌어졌다.

한국 현대언론 사료로서 중요한 가치
 국내의 대표적 일간 신문의 하나인 <조선일보>의 경우, 74년 12월에 당시 유신체제를 옹호 찬양하는 유정희 국회의원의 기고문을 논설위원실의 손을 거쳐 일방적으로 게재한 것에 항의한 두 기자를 해고했고, 이듬해 기자해고의 부당성에 대해 집단 항거한 기자 30여명을 파면하거나 무기정직 처분한 미증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74년 12월 권력의 강압에 의한 광고해약 사태를 경험했던 <동아일보> 역시, 75년 들어 경영진의 부당한 편집권 침해와 인사 조처에 집단저항하던 기자 1백30여명을 무더기로 해임 또는 무기정직 처분했다.

 외부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언론자유를 수호하고, 유신체제 아래서 왜곡·굴절된 언론을 본연의 자리로 되돌리기 위한 일선 기자의 ‘아래로부터의 반성적 자체 혁신운동’이 경영진에 의해 압살당한 것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사태는 그후 두 신문은 물론 국내 언론의 전반적 성격을 재인식하게 만들었고, 아울러 그 운명과 구도까지를 규정짓는 결정적이고도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이 사태 이후 언론의 신화에 대한 국민들의 ‘순박한 믿음’은 매우 다행스럽게도 깨져 버렸고, 국내 언론은 권력의 시녀로 더욱 철저히 예속되고 말았다. 이러한 경향은 5공 신군부 세력에 의한 80년의 언론통폐합조처와 언론인 대량해직 사태에서 재확인되고 더욱 보강되었다.

 언론 현장을 지키려다 그 현장으로부터 쫓겨난 언론인, ‘신문 없는 신문기자’들은 그 후 각기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를 구성하였고, 80년에 축출당한 언론인들 역시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를 결성하여 재야 언론인이 되었다. 이들 해직 언론인을 중심으로 84년 12월 민주언론운동협의회가 결성되어 기관지인 《말》을 통해 대항언론의 한 전형과 <한겨례신문> 같은 대안적 언론이 창출된 것은 결코 우연으로 돌릴 수 없는 것이라고 하겠다.

 최근 조선투위에서 발간한 《자유언론, 내릴 수 없는 깃발》(두레출판사)은 강권에 의해 현장을 박탈당한 해직 언론인들의 자유 언론 쟁취 및 언론민주화를 위한 18년 간의 집념어린 투쟁의 역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75~93년 18년 간에 걸친 조선투위의 활동에 대한 주관적 또는 역사적 평가서라기보다는 그때그때의 소식과 함께 선언·성명·결의·질의·진술·서한·진상 등을 있던 그대로 거의 빠짐없이 알차게 묶어낸 자료집으로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자료집의 구성은 70년대 초 유신체제 아래 조선일보사 기자들의 자유언론선언문에서부터 조선투위 발족의 직접 계기가 된 3·6자유언론실천운동의 여러 자료를 묶은 ‘유신독재의 언론탄압과 조선투위의 탄생’, 70년대 중·후반 해직 기자들의 법정 투쟁과 동아투위와의 연대투쟁 자료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운동의 대열에 서서’, 5공 정권 하에서 민민운동과의 발전적 연대투쟁과 민주언론운동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의 자료를 모은 ‘전두환 정권의 폭력정치와 언론운동’, 87년 6공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독자적인 활동 및 언론노조와의 연대투쟁 그리고 해직언론인원상회복쟁취협의회(원상협) 구성 등과 관련된 ‘원상회복과 언론민주화를 위한 연대투쟁’이라는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힘의 논리에 의해 부당하게 ‘방출된’ 조선투위 구성원들의 18년 간에 걸친 피끓는 하소연과 몸부림의 기록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국내 자유언론 또는 민주언론운동의 물꼬를 트고 그 흐름을 지배해 온 하나의 큰 목적이었다는 점에서 현대언론사를 이해하기 위한 귀중한 사료적 성격을 갖는다.

 또한 자유를 자유롭게 하는 기본적 자유로서의 언론자유는 언론사 외부의 정치 외압(권력의 논리)에 의해서만 침해되는 것이 아니라, 언론사 내부의 관료적 통제(언론자본의 논리)에 의해 얼마나 체계적으로 억압되고 기만되는지에 대해서도 생생한 자료들을 제시해 주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사의 3·6 자유언론실천운동 과정에서, 그리고 그 이후의 일련의 법정 투쟁과 현재까지의 원상협 투쟁에 이르기까지 사내 기자집단(또는 노조)이나 조선투위의 요구에 대한 일부 경영진의 조변석개식 반응과 그릇된 언론관에서, 독자들은 자유언론의 실현을 가로막는 언론의 내적 근거를 쉽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은 조선투위의 활동이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웅변하고 있다. 유신체제 아래서 삶의 고향으로부터 추방당한 이들이 5·6공을 거치면서 지금까지도 제 고향으로 돌아갈 기약 없이 표류하는 ‘보트 피플’의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다. 춥고도 기나긴 군사정권 하의 정치적 겨울에 제 일터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직종의 해직·해고자들과 마찬가지로, 조선투위 32인을 포함한 많은 해직 언론인들은 이른바 ‘문민 시대’가 열린 지금에도 ‘고향의 봄’에 대한 분노 어린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이 지금 그리워하고 바라는 바는 ‘기자로서의 책임을, 지식인으로서의 의무를, 인간으로서의 성실을 관철하고자 한’ 자신들의 투쟁이 바른 평가를 받아 제자리를 찾는 일이며, 그들이 분노하는 것은 자신들의 원상회복 요구에 대해서는 여전히 냉담한 반응만을 보인 채, 군사정권 아래서 내부로부터 자유언론에 재갈을 물리던 바로 그 장본인들이 지금 ‘민주화’와 ‘문민 시대’를 열창하는 역설의 노래를 지휘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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