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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후 쇼군’ 오자와 주도…호소카와는 ‘얼굴’

일본 新전국시대 여는 ‘쇼와 세대’ 영주들 개헌 세력 결집, 거대 보수정당 창출 꾀할 듯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ㅣ 승인 1993.08.12(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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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무렵의 일본은 군웅이 할거하는 이른바 ‘센고쿠 다이묘(戰國 봉건영주)’ 시대였다. 제79대 총리로 확정된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일본신당 대표의 가계도 바로 이 혼란기에 형성된 집안이다.

 1세기에 걸친 전란 끝에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결국 천하를 평정해 통일정권을 세운 것은 17세기 초였다. 그러나 38년 간에 걸친 ‘자민당 막부’가 무너짐으로써 일본 역사의 시계바늘은 또다시 4세기 전의 센고쿠 다이묘 시대로 되돌려졌다.

 천하가 두쪽으로, 즉 각 정당의 이합집산이 두편으로 나누어질 때까지 계속될 이 전란에서 우선 일본신당의 호소카와 대표가 초대 ‘쇼군’자리에 올랐다. 호소카와는 그의 선조 기요모토가 ‘무로마치 막부’말기 혼란기의 첫 번째 권력자로 떠올랐던 것처럼 7개 정당 연립정권의 혼란기를 떠맡을 1번 타자로 기용된 것이다.

 그러나 호소카와에게는 아직 이 전국시대를 완전히 평정할 힘이 없다. 지난 총선거에서 비록 제5당으로 약진했지만 원내 세력은 아직 35명밖에 안된다. 곧 합당이 예상되는 신당 시키가케의 13명을 합친다 해도 제4당인 공명당의 51석에도 못미친다.

 따라서 호소카와는 현재로서는 단순한 ‘상징 쇼군’에 지나지 않는 존재다. 그가 연립정권의 1번 타자로 불리는 것도 그의 뒤에 더 강력한 4번 타자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新전국시대를 평정할 4번 타자는 과연 누구인가. 오자와 이치로(小澤日郞) 신생당 대표간사가 가장 유력한 후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오자와, 일찌감치 출세가도 달려
 오자와는 자민당 분열의 불씨가 된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내각 불신임안 가결부터 신생당 창당, 그리고 7·18총선으로 이어진 일련의 정변극을 연출한 장본인이다. 또 연립정권의 총리 후보로서 가장 유력했던 ‘하타(신생당 대표) 카드’를 ‘호소카와 카드’로 바꾼 이도 바로 오자와이다. 게다가 총선거 후의 일본 정국은 소선거구제 도입후 양당제 실현이라는 그의 구상에서 한치도 벗어남이 없이 전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헤이세이(平成)의 킹 메이커’‘야미 쇼군’(숨은 실력자)이라 불리는 오자와 이치로는 과연 어떤 인물인가.

 오자와는 쇼와(昭和) 17년생으로 50세를 갓 넘은 이른바 쇼와 세대 정치가이다. 호소가와 신임 총재보다 다섯 살 아래이다. 메이지(明治)·다이쇼(大正) 세대의 정치가가 아직도 권력의 상층부에 포진하고 있는 일본 정계의 상식으로 볼 때 그는 분명 애송이 정치가다.
 그러나 27세에 정계 진출, 10회 연속 당선, 47세에 자민당 간사장이라는 경력이 말해주듯 그는 호소카와나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자민당 신임 총재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출세가도를 달려왔다. 오자와가 처음 중의원 의원에 당선된 것은 69년. <아사히 신문> 사회부 기자를 그만 두고 향리 구마모토에서 처음 입후보한 호소카와는 그해 선거에서 낙선의 고배를 든다. 이에 반해 와세다 대학을 거쳐 마루베니를 퇴사한 고노는 이미 67년의 총선거 때 정계에 진출해 재선의 금배지를 달았다.

 그후 록히드 사건에 연루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의 금권 정치에 환멸을 느낀 고노는 76년 신자유 클럽을 결성하여 자민당을 탈당한다. 호소카와도 71년과 77년 참의원을 3기 역임한 후 중앙 정계에 환멸을 느끼고 83년 구마모토 현 지사로 방향을 전환한다.

 반면 오자와는 그의 정치적 대부 다나카와 정치적 스승 가네마루 신(金丸信)의 비호 아래 체제의 수호자로 성장해 간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85년의 2차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내각에서 자치 장관 겸 국가공안위원장으로 처음 입각한 후 87년의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내각에서는 관방성 장관에 임명되어 미국과 현안인 소고기·오렌지 시장 개방 및 건설시장 개방 문제를 간단히 매듭지었다. 이때부터 미국 정부는 오자와 이치로라는 정치가를 주목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케시타가 리크루트 사건에 연루되어 퇴진하고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내각이 들어서자 오자와는 47세로 자민당 정치를 요리하는 간사장직에 올랐다. 다케시타파를 장악한 가네마루가 적극 밀어준 덕택이다.

“미국 종속 탈피·자위대 무장” 강조
 오자와는 간사장 시절 절대 권력을 휘둘렀다. 걸프전쟁 때는 전쟁분담금 1백30억엔 갹출을 진두지휘했다. 당시 애머코스트 주일 미국대사는 얼굴 총리 가이후는 아예 상대하지 않고 오자와를 집중 공략했는데, 이 때문에 오자와는 일본을 미국의 ‘현금자동인출기’로 만들었다는 비난과 함께 대미 종속파라는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오자와는 단순한 친미파 정치가는 결코 아니다. 《도쿄 인사이드 라인》의 도시카와 다카오(歲川隆雄) 편집장은 오자와의 대미관은 종속보다 초극 쪽에 가깝다고 평한다. 즉 일본의 ‘제2 開國’을 외치는 오자와의 신보수주의는 자민당 보수정치의 근간을 이루어 온 이른바 ‘요시다 독트린’과의 결별 내지는 초극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요시다 독트린’이란, 일·미 안보를 기축으로 해서 재군비에 돈을 적게 들이는 대신 그 여력으로 경제를 재건한다는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의 ‘경무장, 경제우선 주의’를 말한다. 오자와는 총선거 직전에 발간한 자신의 저서 《일본개조계획》에서 ‘요시다 독트린’과의 결별과 미국 종속으로부터의 독립을 소리 높여 외쳤다.

 오자와는 또 평소의 지론을 자민당 간사장 시절부터 직접 실천해 왔다. 영유권 분쟁 지역에 소해정 파견, 자위대의 캄보디아 파병 등은 그가 간사장으로 있을 때 직접 깐 레일에 따라 이루어졌다. 헌법개정 문제 등을 다루는 이른바 ‘오자와 조사회’에서는 자위대의 해외 파병이 현행 헌법 아래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고, 《일본개조계획》에서는 이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자위대 개편과 헌법 개정을 주장했다.

 이렇게 보면 일본의 정계 재편은 정치 개혁 문제보다는 궁극적으로 헌법 개정 문제가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를 것이 분명하다. 공산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은 정치 개혁의 핵심 과제인 소선구제 도입을 이미 당의 기본방침으로 결정한 상태이다. 이에 따라 오는 연말이나 내년 초의 차기 선거는 정원 5백명에 직접선출 2백50명, 비례대표 2백50명의 이른바 ‘소선거구제 병용제’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오자와가 구상해온 정계 재편의 첫단계인 소선구제 도입이 이루어지면 헌법 개정 문제가 본격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오자와는 개헌 정당과 호헌 정당으로 일본 정계를 양분할 생각이다. 이럴 경우 자민당을 비롯한 각당 내부는 개헌 세력과 호헌 세력으로 나누어진다. 이 개헌 세력을 결집하여 자민당을 뛰어넘는 거대 보수 정당을 탄생시키겠다는 것이 오자와의 최종 시나리오다.

 오자와는 또한 ‘다나카의 미니어처(모조인형)’라는 이미지 때문에 대중적 인기를 거의 누리지 못하는 정치가다. 그는 90년 총선거 직전 재계에 2백억엔 대의 특별 헌금을 요청해 여론의 집중 화살을 받았다. 다음해 도쿄 도지사 선거에서는 현직 스즈키 지사를 고령이라는 이유로 끌어내리려다가 실패해 오히려 간사장직을 물러나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정치 행태는 다나카의 금권정치와 강권 정치를 빼닮았다는 비난을 받는다. 또 가네마루의 도쿄사가와 큐빈 사건과 다케시타의 황민당 사건에 그가 어떤 형태로든지 연루되었을 것이란 의혹이 아직도 해명되지 않았다. 따라서 오자와는 자신의 강성 이미지와 낡은 정치 수법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앞으로의 과제이다.

신세대 선두주자는 3선의 다케무라
 자민당 오부치파의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전 대장성 장관도 오자와의 대표적인 정적이다. 하시모토는 이번의 자민당 총재선거에 입후보를 결심했다가 이미지 실추를 염려하여 선거 직전에 포기한 자민당의 간판스타 중 한사람이다.

 하시모토와 오자와는 본래 다나카의 총애를 받고 성장한 정치가들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85년 다나카를 배반하고 다케시타파를 설립하는 데 앞장선 이른바 ‘7인의 사무라이’였다. 하타 스토무(羽田孜) 신생당 대표 역시 똑같은 행동대원이었다.

 이들 셋은 연령이나 당선 횟수도 엇비슷해 다케시타파에서도 치열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었다. 하시모토가 58세에 당선 11회로 약간 앞서나, 하타 역시 57세에 9회 당선 기록을 갖고 있는 고참 정치가이다.

 <아사히 신문>이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아에라》의 평가에 따르면 ‘쇼와 세대’라고 불리는 신세대 지도자와 선두 주자는 의외로 신당 사키가케의 다케무라 마사요시(武村正義) 대표이다. 아직 3선 경력밖에 없지만 그가 시가 현 지사일 때 보인 행정 능력과 정책 입안 능력이 크게 평가되었다. 2위는 호소카와였는데, 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는 평점을 받았다. 그 뒤를 하타·오자와·야마하나 사다오(山花貞夫)(사회당 위원장)·하시모토의 순서로 추격하고 있다.

 일본의 새로운 다당 전국시대도 당선 횟수에 따라 자리가 보장되는 위계 사회는 아니다. 그 예로 자민당의 연공서열식 당운영 방식은 50대의 고노가 총재로 선출됨으로써 종말을 고했다. 또 파벌 총수가 아닌 그의 등장으로 자민당의 파벌 정치는 더 이상 가동이 불가능한 상태다.

 세대 교체도 이 전국시대의 도도한 흐름이다. 미야자와·와타나베 미치오(渡邊美智雄) 같은 다이쇼 세대는 이제 무대에서 사라졌다. 대신 호소카와·고노 같은 쇼와 세대가 이 시대의 새로운 ‘봉건영주’로 등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의 새로운 다이묘(大名), 즉 신세대 지도자들이 몇사람을 제외하고 한국과는 무관한 집단이라는 점을 그냥 보아 넘겨서는 안된다.

 호소카와 신임 총리는 구마모토 현 지사시절 충청남도와 자매결연을 맺은 바 있다. 저서 《히나의 논리》(지방의 논리)에서 그는 한국과의 우호는 청소년 교류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또 그는 일본의 지방 자치단체로서는 처음으로 한국 여고생 수학여행단을 받아들였고, 충청남도 도청에 직원을 파견하기도 했다.

호소카와는 ‘교파派’ 오자와는 ‘반한派’
 본인과 무관한 과거사를 들추는 것이 반드시 현명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자민당의 하시모토 전 대장성 장관의 경우 조선 총독부 정무총감을 지낸 오노 로쿠이치로(大野緣一郞)가 그의 외조부다. 오노는 ‘내선일체’를 부르짖던 제7대 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의 오른팔로서 창씨개명 등을 적극 추진한 장본인이었다.

 사회당 분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민련의 에다 사쓰키(江田五月) 대표는 아버지가 광복전 선린상고를 잠시 다녔다. 또 하타 신생당 대표는 작년 1월 미야자와 총리와 함께 대장성 장관 자격으로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오자와는 90년 10월 자민당 대표단을 이끌고 북한노동당 창당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김일성 주석과도 회담했다. 정치 스승 가네마루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는데 그후 더 이상 북한을 옹호하는 입장을 보이지는 않았다.

 오자와는 또한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강경파로 알려진 반한 정치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방일 직전 그의 ‘엎드려 절하기’발언은 너무 유명하며, 91년 6월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한국이 반일교육을 실시하는 한 한·일간 우호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저서 《일본개조계획》에서도 그는 “일본이 반드시 침략자는 아니다. 메이지의 계몽가 후쿠자와 유기치(福澤論吉)는 조선의 개혁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신세대 지도자들을 단순히 ‘친한’ ‘반한’이라는 구태의연한 잣대로 평가하는 것도 문제는 있다. 앞으로 이들이 주로 할 ‘신일본’이 바로 우리가 거래해야 할 상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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