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보선 ‘주심’은 지역정서
  • 문정우 기자 (mjw21@sisapress.com)
  • 승인 1993.08.1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후보 막바지 ‘감 잡기’ 치열…‘무소속 약진’ 두드러져

 대구 동구을 보궐선거 득표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지난 7월28일 민자당의 노동일, 민주당의 안택수, 무소속의 서 훈·김용하 네 후보가 등록을 마치고 18일 간의 공식 선거유세에 들어 갔다. 이번 대구 보선에는 단 한 개의 의석이 걸려 있을 뿐이지만, 그 의미는 정국의 흐름을 뒤바꿔 놓을 수 있을 정도로 크다. 앞으로 여야 간의 세력 판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대구·경북의 민심이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그 실체를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관심의 초점은 여당 후보인 노동일씨가 과연 무난히 당선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또 만약 유권자들이 민자당 후보한테 등을 돌린다면 그 표가 제1야당인 민주당 안택수 후보에게 가겠는가 하는 것도 주요한 관심거리다. 현재는 오히려 지역 지지기반이 단단한 무소속의 두 후보가 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들보다 더 기세를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당조직을 등에 업고 있는 후보들이 유리해질 수 있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누구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민자당측은 당초 예상과 달리 선거전이 결코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지 않는 것 같아 무척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표정이다. 민자당측에서 가장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부분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는 대구의 정서이다.
 지난 7월28일 대구 동구 을 보궐선거 필승을 위한 당원 교육장에서 민자당 선거대책본부장인 김용태 의원은 이런 말을 했다.

노후보 “대구의 반감은 과장된 것이다”
 “대구에서는 개혁과 사정이 대구 사람만 집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고 해서, 이번 선거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민자당에게 물을 먹이자는 얘기가 나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대선에서 몰표를 던져 대통령에 당선시켜 놓고 6개월도 지나지 않아 개혁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는 대통령의 발을 걸어서야 되겠는가. 그러면 어디 가서 본전을 찾겠는가. 이번 한번만 밀어주자. 밀어주고 나서 대통령에게 할 말을 하자.”

 김의원의 말에서는 민자당측이 느끼기에도 심각할 정도로 대구 유권자들 사이에 반민자·반김대통령의 기류가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따라서 민자당측에서는 현정부에 대한 대구 유권자의 반감을 누그러뜨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될 수 있으면 김영삼 정부의 개혁 얘기는 입에 담지 않으려 한다. 통일과 경제를 담당하는 부총리 두명과 안기부장, 국방부장관이 모두 대구·경북 출신이라며, 대구·경북 출신이 여전히 중용되고 있음을 애써 나타내려고 한다. 또 만약 대구 유권자들이 김대통령의 개혁에 제동을 걸면 본전도 못 건질 수 있다는 점을 은근히 강조하기도 한다.

 현재 대구 동구 을 유권자 수는 11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투표율을 높게 잡아도 60% 안팎일 것이기 때문에 민자당측에서는 3만표 선에서 당락이 결정될 것이라고 보고 당원 배가에 주력하고 있다. 대구의 현역 의원을 동책으로, 시의원을 반책으로 삼아 당원 수를 3만5천명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민자당 노동일 후보는 이 지역 토박이로 경북고를 나와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거쳐 출마하기 전까지 경북대 교수로 일해왔다. 노후보는 참신성과 개혁성을 인정받아 공천되었으나 정계에 처음 발을 내디뎠기 때문에 지역 내에서 지명도가 떨어진다는 것이 큰 약점이다. 그래서 노후보는 선거 초반 각종 단체에 얼굴 내밀기에 주력해야 할 형편이다. 민자당측은, 지명도는 시간이 가면 자연히 높아질 것이고, 엘리트 과정을 밟은 노후보의 경력과 참신성이 유권자에게 먹혀들기만 하면 선거는 의외로 싱겁게 끝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 같다.

 노후보 자신은 “너무나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걱정이 태산이다. 득표 목표고 전략이고 생각할 겨를 없이 앞만 보고 뛰고 있다”라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다. 그러나 그는 “대구 시민 중에 개혁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김영삼 정부에 대한 대구의 반감은 과장된 것이다. 결국 유권자들은 바른 선택을 할 것이다”라고 자신감을 보인다.

 민주당의 안택수 후보는 사실 다른 후보에 비해 여러 모로 불리한 형편이다. 경북고를 졸업한 뒤에는 서울에서만 활동해 왔기 때문에 민자당의 노동일 후보보다 지명도가 낮은 편이다. 게다가 민주당에서 보선 참여를 거부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중간에 주춤하는 바람에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에 뛰어든 것도 남보다 한발짝 늦었다.

 그러나 민주당측에서는 상황을 그렇게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 우선 순수한 야당 후보는 안택수씨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김영삼 대통령의 야당 지도자 시절 12년 동안이나 고락을 함께한 서 훈씨나, 민자당 지구당 부위원장을 지낸 김용하씨와는 성분이 틀리다는 것이다. 민주당측에서는, 서씨나 김씨가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만 하면 그날로 민자당 입당원서를 쓸 사람들이라고 깎아내린다. 두사람에게 표를 던지면 결국 민자당에 표를 주는 것과 같다는 점을 계속 홍보하면 민자당에 등 돌린 대구 민심이 자연히 민주당으로 돌아서지 않겠느냐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또 시간이 지나 후보에 대해 유권자들이 냉정히 분석하게 되면,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와 기자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보사부 대변인으로 행정 경험을 쌓고 활동해온 안후보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리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도 갖고 있다.

안후보 “막판에 가면 1·2위 다툴 것”
 안택수 후보는 “초반에는 상당히 고전할 것이다. 그러나 선거 막바지에 가면 분명히 1·2위를 다투게 될 것이다”라고 장담한다. 안후보는 “지금 대구에는 반김대통령 정서가 날로 확산돼 이번에도 민자당 후보를 뽑아주면 대구 사람들은 앞으로 고개를 들고 살 생각을 말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의 낙승을 확신한다”라고 자신한다. 안후보는 이기택 민주당 대표가 선거 참여 거부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 “이번 보궐선거는 민주당으로서는 다시 찾아오기 힘든 기회이므로 놓쳐서는 안된다”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이번 대구 보선을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혼전으로 몰고가고 있는 것이 바로 무소속 후보 두사람이다. 공교롭게도 당의 공천을 받은 두 후보는 서울대학 출신이고 그들은 경북대학 출신이다. 또 그들은 30년 넘게 지역에서 기반을 다져왔는데도 공천에서 탈락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두사람은 모두 지방 정치인에 대해 뿌리깊은 편견을 가진 중앙당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

 서 훈씨는 야권의 불모지인 대구에서 야당후로보서 세 번째 도전하는 집념의 정치인이다. 서후보는 30년 넘게 지역에서 공들여 다진 자신의 입지를 ‘중앙에서 공작을 잘해 공천을 받은’ 사람들이 30일 동안 운동해 넘보려는 데 대해 심한 거부감을 표시한다. 서후보는 지난 13대 총선 때 박준규 전 국회의장과 대결해 투표자의 43%인 2만9천여 표나 얻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낙승을 거둘 것이라고 장담한다. 또 지난 대선 때 이 지역에 오지도 않았고 운동원도 두지 않았는데 1만여표를 얻을 정도로 인기가 좋은 박찬종 신정당 대표가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줘 한층 고무돼 있다.

 그러나 13대 때 서씨의 득표를 거품이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박준규씨에 대한 지역 여론이 워낙 좋지 않았기 때문에 ‘서훈씨가 아니라 훈서씨가 나섰어도 그만큼은 득표했을 것’이란 혹평이다. 13대 때는 국민당 공천을 받았고, 이번에는 민자당과 민주당을 기웃거렸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꼬집는 사람도 있다. 또 아직도 김영삼 대통령의 사진을 광목에 싸서 고이 간직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국회의원이 되면 언젠가는 민자당에 들어갈 사람이다’라고 보는 사람이 많은 것도 서후보에게는 부담 요인이다.

 서후보는 그러나 “김대통령은 나에게 공천을 준다는 약속을 세 번이나 어겼다. 이제 다시는 민자당 쪽은 쳐다보지도 않겠다”라고 말하고 있다. 서후보는 이번에 선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인 김이례씨가 경영하던 서문시장 내의 점포 5.8평 중 3평을 처분했는데 만약 이번에도 낙선하면 다시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얘기하고 있다.

무소속 두 후보, 지역 연고 두터워
 무소속 후보 중 또 한사람인 김용하씨는 민자당에 직접 물을 먹였다. 여권표 분산을 막기 위해 민자당에서는 지구당 부위원장을 지낸 김씨의 출마를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으나 김씨는 끝내 후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보궐선거를 총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민자당의 김윤환 의원이 만나자고 요청했으나 김씨는 후보 출마 선언을 한 직후에야 김씨를 만났다고 한다.
 그래서 김후보는 기자들이 정말 끝까지 버틸 것이냐고 묻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민자당측에서 나와 얘기 끝났다는 식으로 계속 언론에 흘리고 있는데, 단 한번도 사퇴 문제에 대해 민자당측과 논의해본 일이 없다”라고 주장한다.

 김후보의 강점은 이 지역 토박이 중의 토박이라는 것이다. 이곳에서 13대째 살고 있으며, 가장 전통이 깊은 반야월 국민학교를 거쳐 경북고·경북대를 나와 현재 주유소를 경영하고 있다. 후보 중에서 등록 재산이 월등히 많을 정도로 재력도 갖추고 있다. 김후보의 한 운동원은,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이웃들과 끈끈한 정을 나눠왔기 때문에 지금 확보돼 있는 표만 2만표는 족히 될 것이라고 자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에서는 김후보가 모든 언론의 예상을 깨고 금배지를 달게 될 것이라고 점치는 사람들이 뜻밖에 많다.

 김후보가 내건 문구는 ‘순수한 지역 국회의원이 되겠다’라는 것이다. 대구가 오늘날 전국의 대도시 중 소득이나 생활 환경 면에서 손꼽히게 못살 곳이 돼 버린 것은 국회의원들이 당선만 되면 서울로 짐 싸들고 올라가 자신의 영달만 꾀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는 “국회 회기 중에도 서울에 머물지 않고 비행기로 출퇴근할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김후보는 과거 유신 때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역임하는 등 개혁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행로를 걸어왔다는 약점이 있다. 민자당 공천 과정에서도 그런 점 때문에 탈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시의회 의원감은 돼도 국회의원 그릇은 못 된다”고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지역에서 기업을 하고 있는 처지에 끝내 민자당과 반목할 수는 없을 테니 결국은 사퇴하리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아직 선거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누가 당선되는가가 아니고, 표를 분석해볼 때 과연 대구의 민심이 김영삼 정부로부터 떠나고 있다는 결과가 나오겠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런 결과가 나온다면 이번 선거에서 가까스로 승리했다 해도 민자당으로서는 심각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현정권의 지지기반 중 절반이라고 할 수 있는 대구·경북이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철언 의원, 여론조사서 여전한 인기
 매우 흥미로운 통계 수치가 있다. 대구 <영남일보>의 의뢰를 받아 대동연구소가 조사해 최근 발표한 ‘대구 시민 정치의식 여론조사’결과가 그것이다. ‘대구 지역 출신 국회의원중 신뢰감이 가는 사람 한사람만 선택해주십시오’라는 설문에 응답자들은 이만섭·유성환·강재섭·박철언 의원 순으로 꼽았다.

 이같은 조사 결과를 놓고 대구에서는 아마도 논란이 많았던 모양이다. 우선 ‘대구에 반민자당·반김대통령 정서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은 허구가 아니냐. 대구 시민들이 신뢰하는 사람들은 김영삼 정부에서 각광받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냐’하는 의문이 제기됐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해보나마나라고 결론을 내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박철언 의원에 대한 인기가 여전히 사그러들고 있지 않은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반론도 나왔다. 파렴치한 부정축재자로 몰려 있는 박의원의 인기가 높은 것은 바로 현정권에 대한 대구 시민의 반감을 대변한다는 얘기다. 김대통령에게 중용되고 있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보내는 것은 현실적인 힘을 인정하는 것뿐이고 박의원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이 대구사람들의 본심이란 것이다.

 아무튼 현재 대구 유권자들의 마음 속에는 김대통령과 민자당에 대한 기대와 반감이 공존하고 있는 것 같다. 그 같은 복잡한 심경이 이번 선거에서는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매우 흥미롭다. 또 지역 정치인을 무시하는 풍토에 반기를 든 무소속 의원들이 그 와중에서 어떤 성과를 거둘지도 관심거리이다.
文正宇 기자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