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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동저고리 차림으로 첫 인연

신수정 (피아니스트 경원대교수) ㅣ 승인 1991.04.04(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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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6년 1월27일 모차르트 탄생 2백주년 기념 이애내 선생님 제자발표회. 석탄난로를 땐 서울 풍문여고 강당. 색동저고리와 빨강치마 밑으로 검정 교복바지를 껴입고 머리는 참새꽁지처럼 둘로 묶고 당시 대학생이었던 박정윤 선생님의 반주로 피아노협주곡 20번 d단조를 연주한 것이 나의 서울데뷔였다. 그해 3월 시향의 전신인 해군교향악단 정기공연에서 처음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이후, 도쿄문화회관에서 뉴저팬필하머니와 협연하고 세종문화회관 개관당시는 NHK교향악단과 협연하면서 이 곡은 내게 끊을 수 없는 인연이 되었다.
 
첫 연주의 기억으로는 연주가 잘 안되던 빠른 패시지의 1악장, 그저 좋기만 했던 2악장, 대화하듯 목관들과 주고받는 3악장 등 단편적인 것들만 떠오른다. 오히려 연주 후 지휘자에게 인사 안해서 주의받던 일, 무대에 오르길 기다리면서 그옆에서 먹던 고려정의 장국밥 등 음악 아닌 것의 기억들이 더 선명하다.

 연주는 할 때마다 새로운 도전처럼 늘 어려운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도전의 보람을 맛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볼프강 자발리쉬가 지휘한 NHK와의 협연 때는 그때까지 아기자기하고 예쁘게만 여겼던 음악에 내재된 숨은 힘, 베토벤을 예견하는 것 같기도 하고〈돈 조반니〉의 땅밑에서 끌어당기는 것 같기도 한 마력을 느꼈던 흥분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 협주곡이 아니더라도 모차르트는 나와 피아노의 인연에 있어 맨 밑바닥에 깔려 있다. 어려서의 첫 무대도, 제1회 이화경향콩쿠르곡도 모차르트였다. 유학시절 모차르트홀에서 연주한 곳을 비롯, 베를린실내악단과 협연한 론도협주곡 등 꽤 많이 모차르트를 연주한 셈인데도 할수록 마음대로 되지 않아 안타까워질 때가 많다.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 슈나벨은 “모차르트는 학생이 치기엔 너무 쉽고 예술가에겐 너무 어렵다”고 했다. 학생도 아니고 예술가라고 나서기에도 모자랐가에 지난 1월27일 ‘모차르트 서거 2백주년 기념 피아노협주곡 전곡연주회’의 첫 무대에서 오랜만에 다시 피아노협주곡 20번을 연주하면서, 나는 모차르트가 산 햇수의 나이를 넘어오는 동안 나의 음악은 어디에 있나 새삼 부끄럽고 숙연해지는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는 나의 사랑임을 고백한다. 누가 어느 작곡가를 가장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모차르트를 먼저 꼽는다. 구슬이 구르는 것 같은, 아침이슬에 빛나는 햇빛 같은 영롱함. 느린 악장의 순진무구한, 단순하고 절제된 아름다움 뒤에 숨은 슬픔을 사랑한다.

 모차르트는 어린시절의 친구들을 생각나게 한다. 배재강당에서의 도미 고별연주 때 한동일의 ‘대관식협주곡’, 흰 레이스칼라에 짧은 빌로드 원피스의 국민학생 이경숙의 협주곡 21번 c장조, 숱많은 머리를 예쁘게 땋고 인형같이 분홍드레스를 입은 김덕주의 23번 협주곡, 그리고 독일 고성의 커다란 홀에서 크리스토프 에센바흐가 치던 ‘반짝 반짝 작은 별’ 변주곡, 빈 무직훼라인잘에서 들은 발터 클린의 협주곡들 …. 이런 감동과 추억들이 모차르트 피아노의 물결 같이 맑은 흔들임 속에 잠겨 있다.

 올해는 온 세계가 모차르트의 깃발로 펄럭이는 것 같다. 링컨센터는 그가 쓴 미완성의 작품까지도 음표 하나 빼놓지 않고 모두 연주한다고 하고, 신문이며 잡지들도 앞을 다투어 세계 곳곳의 페스티벌을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나 혼자만 알고 간직하고 있던 보물이 갑자기 박물관의 전시품으로 변해 만인이 주시하는 대상이 되어버린 것 같아 허전한 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한 모차르트는 2백주년의 열기가 가신 다음 2천년이 지나도 피아노학원의 고사리 같은 손가락이 더듬거리며 치는 ‘도-미솔 시-도레도’의 멜로디 속에서, 모든 것이 다 가라앉은, 노년의 피아니스트의 매듭 굵은 손가락에서, 클라라 하스킬(루마니아 출신의 여자 피아니스트)의 음반 속에서 언제나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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