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 증원계획 현실 모른 탁상공론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1.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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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대 교수들, ‘보고서’ 통해 공학교육 근본개혁 요구

 본래 1만5천명 수용 규모로 지어진 서울대 관악캠퍼스에는 현재 3만여명이 북적댄다. 중앙도서관의 열람석은 모두 4천3백7석으로, 83년 이후 한자리도 늘지 않았다. 교수 1인당 학생수도 평균 22명에 달한다. 전기세 나가는 것이 무서워 해만 떨어지면 학생들은 강의실과 연구실에서 내몰기에 바쁘다. 학생들이 휴식을 취할 만한 곳도 턱없이 부족하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학생들은 처마 밑에서 강의실이 비기를 기다려야 한다.
 
서울공대 교수들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견인차가 되어온 공과대학의 살림살이는 더더욱 말이 아니다. <공학교육은 발전하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이공계 대학생을 대폭 증원할 것이라는 최근의 정부발표와 거의 때맞춰 공개돼 정부 관계자들을 심란하게 하고 있다. 교수들은 이 보고서에서 “고급인력이 부족하다는 산업계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정부와 대학행정가는 학생정원의 증가만을 반복, 오히려 교육의 질적 저하만을 가속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교수 1인당 학생수는 31명으로 미국이 칼테크(3명)나 매사추세츠공과대학(4.5명), 일본 도쿄대(10명) 등과 비교하기조차 쑥스럽다. 교수 1인당 평균 7.5과목을 가르치고 있는데 강의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교수 1백60명이 증원돼야 한다. 학생 1인당 연간 실험실습비는 5만6천원으로 75년부터 16년째 제자리걸음이다. 75년에는 제법 ‘큰돈’이었으나 이제는 중산층 가정의 한달 부식비나 유치원생의 1년 학습재료비에도 못미치는 액수이다.

 보유하고 있는 기자재 중 71%가 낡았거나 폐기해야 할 것들이다. 기존의 쓸만한 장비나 새로 들여온 장비도 유지?보수비가 부족해 운용에 애를 먹고 있다. 교수들은 부족한 예산을 메우기 위해 없는 시간을 쪼개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다. 교수들이 지난해 정부나 기업체로부터 프로젝트를 받아 학교살림에 보탠 액수는 정부지원액(34억원)의 3배에 가까운 98억원이다.

 <공과교육은 발전하고 있는가>를 대표집필한 李冕雨(공학연구소 소장)는 이 연구가 누구를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한다. 그는 대학교수 기업인 국가가 모두 반성하자는 뜻에서, 또 모두가 살아남자는 뜻에서 50번을 썼다 고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고 말한다.

 이교수는 “정보통신혁명의 급속한 전개로 우리 산업계가 그동안 구축한 산업구조와 기술이 한계를 보이고 있어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의 대열에서도 밀려날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정부나 기업이 근거없는 낙관주의에 빠져 있는 것 같다. 공학교육을 이대로 방치하면 한국 경제는 5~10년 안에 파국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그는 “우리는 지금 가장 우수한 학생들을 체계적으로 바보로 만들어가고 있다”면서 “지금 국민총생산의 몇 %를 지원할 것이냐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미국이나 일본의 절반만이라도 지원해야 한다는, 그런 의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실험장비 등 정부지원 없이는 발전없어
 교수들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정부의 증원계획에 대해서 “도대체 현실을 너무 모른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공대 학생회장 吳元圭군(건축학과4년)은 “기존의 대학과 학생들에 대한 대폭적인 지원이 병행되지 않는 한 공대생의 증원의 별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 공대에는 학과 도서관은커녕 전용 도서관도 없고 그 흔한 PC실조차 없는 과가 태반이다. 공대생들이 애용하는 간이식당의 경우 위생검사를 했다 하면 불합격 판정을 받을 정도로 후생복지 시설도 엉망이다”라고 말한다.

 졸업정원제의 희생자가 되어 학교를 떠났다가 복교했다는 81학번 ㄱ군(화공과 4년)은 “정부의 조처는 내일 제사에 쓰려고 오늘 새끼돼지를 사오는 격”이라고 비꼰다. 산업계는 당장 고급두뇌가 모자란다고 아우성인데 신입생이 학사가 되고 석사가 되고 박사가 되고 군대까지 마치려면 도대체 몇 년이 걸릴 것이냐는 얘기이다. 그는 또 “10년 전 입학했을 때보다 지금이 오히려 더 교육내용이 부실한 것 같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반문한다.

 국내 사립공대들의 형편에 비하면 서울공대 교수와 학생의 푸념은 오히려 ‘배부른 소리’인지 모른다. 사립대학 교수들간에는 “서울대학에는 쓸모없으나 그래도 쇳덩어리가 있는데 사립대학에는 그나마도 없다”는 얘기가 벌써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정부의 지원액은 전체예산의 1%정도에 불과하며 교수 1인당 학생수가 70명이 넘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양대 교무처장 李昌九 교수는 “공과대학에 대한 획기적 지원이 없으면 우리니라와 선진국의 기술격차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교수와 학생의 배율이 95년도까지는 1대20, 2000년까지는 1대10 안쪽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교수는 정부의 이공계대생 증원계획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지만 “살림살이를 꾸려나갈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하다”고 털어놓는다.

서울공대 보고서에 총리실은 신경곤두
 정부는 지난 3월13일 산업계의 요구에 따라 기술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92학년도부터 95학년도까지 전국의 이공계 대학 정원을 매년 4천명씩 1만6천명을 증원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또 이와 함께 국립공대를 확충하기로 하고 추진기구를 구성키로 했다고 밝혔다.

 국립공대 확충방안에 대해서는 현재의 서울공대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인원을 증원할 것인가, 아니면 별도의 국립공대를 설립할 것인가, 제2공대의 부지를 어디로 정할 것인가 등 상당히 구체적으로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그동안 수도권 인구집중을 이유로 서울지역 대학의 증원을 반대해온 건설부도 이번 계획이 盧在鳳 총리가 취임한 이후 벌어는 첫번째 교육개혁사업인 만큼 적극적으로 반대의견을 개진하지 않아 부처간의 이견조정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견됐다.

 그런데 그와 같이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가는 과정에서 공학교육의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서울공대 교수들의 연구보고서가 발표된 것이다. 교수들의 보고서에 대해 총리실에서 가장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보고서를 낸 교수들은 “교육행정가들이 번번이 교수들의 의견을 묵살해 학교가 이 지경이 됐다. 이제는 기업이 땅에 묻은 돈, 이 사회가 과소비로 흥청망청대는 돈의 일부나마 학교에 투자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교수들은 모처럼 대학문제에 대해 스스로 진단한 끝에 내린 처방이 또다시 묵살되고 말지나 않을지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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