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개발원에 ‘금치산 선고’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1.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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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때부터 잡음, 올 사업예산 전액 집행유보 … 앞으로의 위상 큰 관심사

 개원 3년째를 맞는 재단법인 한국방송개발원(원장 이상설?이하 개발원)이 ‘금치산 선고’를 받았다. 지난해 신청한 공익자금 35억원 가운데 사업예산 16억 9천9백만원이 최근 공보처로부터 ‘전액 집행유보’ 통보를 받은 것이다. 지난 3월12일 공익자금을 관리하고 있는 한국방송광고공사는 개발원측에 보낸 ‘91공익자금 지원 세부사업계획 확정통보’에서 연구개발비(약2억원)와 방송장비구입비(약15억원)전액의 집행을 유보한다고 밝혔다.

 개발원의 이같은 ‘가사상태’는 개발원 내부에서, 그리고 개발원을 둘러싸고 그간 누적돼왔던 구조 문제가 원인이 되었다. 공보처의 ‘집행유보 결정’은 공보처의 개발원에 대한 ‘평가’(재단법인은 해당 정부부처의 관리를 받는다)로 보인다. 또한 “개발원의 오늘을 있게 한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는 강원용 방송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9일 사퇴함에 따라 개발원의 앞날은 어떤 식으로든지 곧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89년 3월 “방송에 관한 조사?연구?실험제작?연찬활동을 통하여 방송의 질적 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된 개발원은 지난해까지 별다른 여과과정없이 ‘충분한 예산’을 확보했다. 공익자금을 방송위원회가 심사했던 것이다. 첫해에는 70억원의 공익자금을 배정받아 고작 6%만 집행,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개정된 방송법에 의해 ‘공익자금관리위원회’가 예산을 심사하면서, 개발원의 올 예산은 예산안(74억원)대로 통과하지 못하고 절반 수준인 35억원으로 대폭 깎였고, 다시 거기서 그 절반인 17억여원이 집행유보 상태에 있는 것이다.

 방송광고공사의 결정을 최종 승인하게 되어 있는 공보처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 집행유보를 받은 예산의 대부분은 장비구입비”라고 밝히면서 “현재 예술의 전당 자료관을 빌려쓰고 있는 형편에 방송장비를 들여놓을 경우 임대가 만료되는 내년 8월 다시 옮겨야 하는 만큼 공익자금의 사용이 적절치 못하다는 판단을 내려, 예산만 승인하고 그 집행을 유보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DBS도 모르는 이사진과 간부들
 방송개발원은 설립 당시부터 잡음이 많았다 우선 그 인적 구성이 강원용 전 방송위원회 위원장의 주변 인물들로 이루어졌다는 것이었다. 개발원은 12인으로 구성된 이사회(이사장 이영덕)를 비롯, 연수실 프로그램개발실 자료부 등 3개 부서를 주축으로 감사실과 사무국 등의 지원부서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사진은 크리스찬아카데미 관련인사나 지연 등‘강원용 인맥’이 주요인물(이사장 외 3명)이며 일부 간부진 역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이사진과 간부들은 방송전문인력이 아니었다. 방송에 대한 식견과 소양이 없는 이들-스탭과 캐스트들 구별하지 못하며 직접위성방송인 DBS(Direct Broadcasting Satellite)를 동아방송으로 알고 있을 정도라고 개발원 관계자는 말한다-에 의해 움직여지는 개발원에 대한 방송현장의 외면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방송학계에서도 호의를 보이지 않았다.

 이같은 불협화음은 내부에서도 일어났다. 설립 당시 20명이었던 연구원이 현재 5명만 남아 있는 현실이 그 단적인 예이다. 신문방송학 석?박사 출신인 전?현직 연구원들은 “연구원이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럽다”고 말한다. 고급인력이 타이피스트 같은 기능직으로 전락해 있다는 것이다. 연구원이 연구논문을 발표한 경우도 없다. “방송의 질적 향상을 위한 연구를 하게 해달라”는 요구에 간부진은 “여긴 연구소가 아니다”라고 묵살해버린다는 것이다. 개발원 속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사진이 바뀐다 해도 비전문인들이 실무를 관장하는 한 개발원의 앞날은 여전히 비관적이다”라고 말한다.

 방송법 개정에 따라 방송위원회의 위상이 변화되는 것과 아울러 지난 연말 공보처는 개발원 ‘수술작업’에 착수하려고 했으나 현 이사진이 공보처의 제안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16일 정관을 개정하기 위한 이사회가 열리기로 했으나 무기한 연기된 것이다.  공보처의 제안은 이사진을 방송전문인 7명으로 축소하고 공익자금 대신 현 방송사의 출연금 위주로 개발원을 꾸려가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개발원이 안고 있는 문제점과 앞으로의 위상 등에 관해 개발원 이상설 원장과 인터뷰를 가지려 했으나 이원장은 인터뷰를 거절했고, 이영덕 이사장은 외유(적십자사 일로 베트남 체류중. 4월중순 귀국 예정)중이다.

 그렇다면 개발원의 새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일부에서는 폐지론까지 나오고 있다. 즉 방송인 연수나 프로그램실험제작?방송자료실 등의 기능은 이미 기존 방송사가 갖고 있으며 최근 들어 민간 차원에서 방송인력 양성기관을 설립하고 있어 공익자금난 축내는 개발원은 필요없다는 것이다. 개발원 설립 당시 이사였던 최창섭 교수(서강대?신문방송학과)는 “개발원의 존재이유는 궁극적으로 방송내용의 향상에 기여하는 것이다”라고 전제하고 “개발원은 설립당시로 돌아가 원점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우선 현 이사진을 개편하고 현업방송인을 적극적으로 수용, 방송현장과의 유기적 연관을 가져야 한다”고 최교수는 지적한다. 개발원 구조개편론은 공보처나 최교수의 시각처럼 ‘이사진 개편’으로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직제개편에서 한걸음 더 나가야 한다. 개발원의 ‘가사상태’를 안타까워하는 한 학자는 “개발원이 뉴미디어 등장과 함께 진행되고 있는 ‘방송환경의 지각변동’에 대비하는 기초연구기관의 성격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간의 연구는 정치권과 맞물린 방송제도 분야에 치중되었고 뉴미디어에 대한 시각도 사회?문화적인 접근 위주였다는 것이다. 방송에 대한 학문적 연구와 뉴미디어에 대한 정치?경제학적인 조명작업이 시급한 것이다. 또한 개발원의 앞날을 결정하는데 있어 “공익자금 사업의 최종 소비자는 국민”이라는 평범하지만, 늘 간과되고 있는 원칙론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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