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자가용족 과외허용 이후 급증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1.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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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마다 주차난 허덕…단속 피해 위조출입증까지 사용

 “교수를 폭행했든 안했든 간에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학생이 차를 끌고 학교 안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이다.”

 성균관대 사건을 지켜본 시민들이 쏟아내는 비난 섞인 목소리다. 도대체 학생이 무슨 돈으로 자가용을 몰고다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이런 곱지 않은 시각에도 아랑곳않고 이른바 ‘대학생 자가용족’은 늘어만 가고 있다.

 자가용 등교를 하는 학생의 유형은 다양하다. 아버지 차를 몰고 나오는 학생, 대입축하선물로 자가용을 받은 학생, 고액과외 소득으로 자가운전자가 된 학생 등 천차만별이다. 연세대 경영학과 3학년에 재학중인 한 학생은 아버지가 쓰던 승용차를 물려받아 작년 6월부터 자가용 등교를 시작했다. “한달 과외수입 30만원에서 기름값 5만원, 보험료 5만~6만원 등 많아봐야 12만~13만원을 제한 나머지 돈으로 용돈을 쓰면 충분하다”는 게 이 학생의 설명이다.

 서울대 음대 재학생 金모양(2학년)은 경제적 여유는 있지만 운전면허가 없어서 차를 몰지 못하고 있다. 김양은 “음대의 경우 3학년만 되면 거의 대부분이 자가용 등교를 한다”고 말하면서 “자가용 등교가 음대나 미대 학생들의 전유물이라는 것은 옛말”이라고 주장한다. 과외가 허용되면서 이른바 ‘잘 팔리는 학과’인 법대 경영대 공대생들이 이제는 음·미대 자가용 등교 숫자를 추월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경영학과 박찬수(25)군은 89년 승용차를 할부로 구입, 이를 과외에 이용하고 있다. 자동차를 이용하면 ‘기동력’이 생겨 남들이 ‘한건’할 때 몇건 이상을 할 수 있어 수입이 훨씬 좋을 뿐만 아니라 여러 용도로 차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박군의 한달 수입은 학기중에도 평균 1백만원이 넘는다.

대학 밀집한 신촌 일대는 골목이 주차장
 이렇게 학생들의 차량이 늘어나자 서울시내의 각 대학에서는 ‘차 안타기 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아예 학생 차량을 단속하는 학교도 적지 않다.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홍익대 경희대 등 서울시내 대부분의 대학에서 학생의 자동차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학생들의 자가용 등교를 단속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주차난. 교정이 넓은 탓으로 아직 학생 차량을 통제하지 않고 있는 서울대도 주차난에 허덕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서울대의 주차능력은 1천69대. 그러나 올 3월18일부터 30일까지 오전 10시30분과 오후 2시30분에 주차량을 조사해본 결과 각각 1천9백37대와 2천1백12대로 나타났다. 유치원과 남녀 중고등학교까지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경희대의 경우는 훨씬 심각하다. 주차능력 3백50대로 교직원의 차량도 수용하기 벅찬데 학생 차량까지 밀려든다면 그야말로 학교 전체가 주차장이 되는 셈이다.

 경희대 인권복지위원 금부종(경제 3년)군은 “주차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교정을 학문의 전당으로 유지하려면 학생 차량에 대한 출입통제는 불가피한 대책”이라고 못박아 말한다. 경희대는 89년부터 자가용 등교를 통제해왔는데 학내에 불법주차 차량이 발견될 경우 단속요원이 “당신의 자가용 등교가 우리의 생활공간을 침해하고 있습니다”라고 쓰인 경고 딱지를 붙인다.

 연세대학교는 89년 1학기부터 교내에 학생 차량이 일체 들어오지 못하도록 아르바이트학생20여명과 교통지도학생 18명이 아침 8시부터 낮 4시까지 2시간씩 교대로 차량을 단속하고 있다. 이 학교를 출입하려면 학교에서 발급하는 ‘딱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주차능력은 불과 6백여대인데 교직원과 교수 차량만 해도 9백대를 웃돌아 주차능력을 훨씬 넘어서는 수준이다.

 이 학교 차량단속 아르바이트생 김일범(체육교육 2년)군은 “일부 학생이 단속에도 불구하고 밀치고 들어와 다친 적이 있다”고 말한다. 연세대 정문을 지키는 수위의 말에 따르면 출입증이 없어 돌려보내는 차량이 하루 1천대에 가깝다고 한다. 연세대생 전원을 1만4천명으로 쳐도 차를 집에 두고 나오는 학생 숫자까지 감안하면 10명 중 1명은 자가용 등교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단속시간대에 차량이 통제되자 아예 단속이 시작되기 전인 8시 이전에 차를 몰고 나오는 학생도 있다. 이들은 주로 도서관에 자리를 잡으려고 일찍부터 서두르는 ‘학구파’ 자가용족이다. 연세대 중앙도서관 주위에 빼곡이 주차해 있는 차는 이들의 것이다.

 8시 이후에 나오는 자가용족 학생들은 학교 주변의 주택가로 몰려든다. 연세대 수위의 말대로라면 1천대 이상이 학교 주변 골목에 몰려드는 셈이다. 이 때문에 낮에는 신촌 주변의 골목마다 학생들이 끌고온 차량으로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더구나 이화여대와 서강대의 자가용족까지 몰려들어 신촌 일대는 어디를 가나 학생차로 붐빈다.

차 굴리는 학생 연령층 점점 낮아져
 연세대 후문의 ‘아랑’ 복사가게 주인은 “대낮에 골목에 주차해 있는 차량의 90%이상이 학생들 차”라며 “이 동네 주민이 학교에 몇차례나 항의를 해도 도대체 고쳐지지 않는다고 불평을 털어놓는다. 또 신촌에서만 10년 넘게 장사를 해서 학생들 소비패턴의 변화를 코앞에서 지켜보아온 ‘보은집’ 주인에 다르면 학생 자가용족의 연령층이 점차 낮아지고 여학생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게 특징이라고 한다.

 연세대의 학생 차량 단속을 총지휘하는 관리과 직원은 “차량통제를 하자 일부 학생들이 교내출입증을 위조해서 붙이고 다녀 하루에 10건 이상 적발한다.”고 말한다. 적발된 위조출입증은 사진복사·개인제작인쇄·복사인쇄 등 방법도 다양한데 하나의 원본에 6~7종의 복사판 위조출입증이 발견되기도 해, 전문제작소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심지어는 교내에 주차하고 있는 교직원 차량의 출입증을 몰래 떼어내 자기 차에 부착하고 교문을 통과하려다 적발되는 사례도 있다.

 학생 차량 단속을 실시하기 1년 전인 88년, 연세대 교정에는 이런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걸렸었다. “서당에 학동들의 가마행렬이 웬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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