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해 볼만한 남녘의 봄바다
  • 거제·여운연 차장 ()
  • 승인 1991.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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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낙조 본 뒤 싱싱한 생선회 즐길 수도

 4월 들어 남녘으로부터 밀려오는 꽃소식은 겨우내 콘크리트 숲속에서 허덕이던 도시인의 마음을 잔뜩 부풀게 한다. 이맘때 답답한 일상을 훌훌 털고 어디론가 떠날 수 있다면.

 굳이 여름휴가까지 기다릴 필요없이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이라도 먼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하게 짐을 꾸려 멀리 남녘의 봄바다를 찾아가 세상일을 잠시 잊어보자. 출렁이는 바다, 기슭에 부딪히는 물결 소리, 아침저녁으로 통통거리는 뱃소리, 물새들의 날갯짓 하며…

 무엇보다 바닷가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은 장엄한 일출·낙조 광경이 아닐는지. 찬란한 빛의 조화를 지켜보는 일이야말로 바쁜 일상을 위한 훌륭한 재충전의 시간일 것이다. 오염 소동의 회오리가 한바탕 휩쓸고 간 터이지만 자연은 여전히 진국스런 소박함을 간지하고 있어 여행자들의 마음을 놓이게 한다.

 해는 어느곳에서도 바라볼 수 있지만 오묘한 조화를 드러내는 곳은 따로 있다. 마산에 28년째 살고 있는金寅洙(57·해양한의원 원장)씨의 안내로 몇군데 일출·낙조 명소를 따라가본다. 한의사인 김씨는 30여년간 해사진만 카메라에 담아온 집념의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해를 바라보는 일은 생명을 배우는 일”이라며 붉은 해에 무한한 외경을 느끼고 찾아 다니는 사람이다.

■거제 해금강 : 한국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거제도 최남단 해금강의 일출광경은 매우 아름답다. 사자바위 돛대바위 십자동굴 미륵바위 등 기암절벽과 견우직녀송 천녀송절벽에 석란·풍란이 천태만상의 조화를 이룬 섬을 배경으로 찬란한 일출이 펼쳐진다. “천지개벽이야! 눈이 번쩍 뜨인다/불덩이가 솟는구나 가슴이 용솟음친다/여보게 저것 좀 보아! 후끈하지 않은가.”(해돋이 시조 중에서)

 해금강 바위섬은 바다속에서 넷으로 갈라져 네 개의 절벽 사이로 십자가형 수로가 뚫려 있다. 이 수로 사이로 배가 드나들 수 있어 절벽의 빛깔과 형태, 초목의 변화를 볼 수 있다. 앞바다와 서쪽 충무에 이르는 해역은 모두 한려해상국립공원에 포함된다.

 유일한 호텔인 해금강호텔 뒷산 우제봉에서 바라보는 낙조도 일품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수평선 위로 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포착하기란 1년에 몇차례뿐. 인근의 유명한 학동 동배숲에서의 일출도 볼 만하다.

 거제도 앞바다는 예로부터 청정하기로 유명하다. 난류 한류의 교차로인 해금강 해안에는 갖가지 어족이 계절따라 풍어의 성시를 이룬다. 줄만 내리면 도미 농어가 줄줄이 낚아오려져 낚시꾼들에겐 더할 수 없이 즐거운 곳이다. 4월엔 도다리회와 숭어회가 식욕을 돋우고 5월에 접어들면 참돔과 논어가 사랑을 받는다.

 숙박시설은 해금강호텔의 경우 1실에 2만5천원으로 비싸지 않은 편. 거의가 토박이 주민들이 사는 50여호 민가에서 민박을 받는다. 최근 1년 사이 섬 일대 도로포장을 끝내 교통편도 좋아졌다. 육로로 자동차 여행을 한다면 주변의 자연관광을 만끽할 수 있어 금상첨화일 듯. 그런 뒤 해금강에서 유람선을 타면 이 일대 절경을 샅샅이 볼 수 있다. 유람선이 항해 도중 관광객들을 잠시 내려주는 외도는 마치 남태평양의 휴양섬 같은 환상적인 곳이다. 개인소유로 알려져 있는데 20여년간 가꿔놓은 열대림과 자연림이 함께 어루러져 해금강 인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꼽힐 만하다. 관광철에는 부산에서 해금강까지 네 차례 배가 다닌다.

■통영군 달아공원 : 남해안의 아름다운 항구 충무의 드라이브 코스로 꼽히는‘산야일주도로’ 선상에 있다. ‘미륵도일주도로’라고도 불리는 이 길은 총 24㎞ 길이로, 아스팔트가 단정하게 깔려 있다. 경남 통영군 산양면 소재.

 한려수도를 육지에서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유일한 전망대가 있는 곳이다. 학림도 송도 저도 등 20여개 섬이 둥실 떠 있는 해상경관을 배경으로 연출되는 일몰의 장관은 절경 중의 절경이다. 또한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섬과 바다는 임진왜란 당시 승전고가 울려퍼졌던 유서 깊은 역사의 현장.

 달아공원에 들르면 누구나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도중에 횟집촌도 많은데 낙조를 구경하고 내려오다 ‘만지도’란 횟집에서 봄철 도다리회를 맛보고 나면 여행의 피로를 한결 덜 것이다. 가을철엔 광어회가 일품.

■남지읍 번개늪 : 경남 창녕군 남지에 있는 아름다운 저수지. 마산에서 대구를 잇는 구마고속도로로 30㎞쯤 달리면 나타난다. 장개못이라고 하는데 맑은 호수같은 넓다란 저수지는 오염과는 거리가 멀어 낚시꾼들이 몰리는 곳이다. 봄철보다는 특히 겨울철에 투명한 하늘을 배경으로 붉게 물드는 낙조가 장관이라는데 김인수씨 말을 빌면 “번개늪은 수호지에 나오는 양산박 같은 곳”이라고.

 이곳에서 조금 더 가면 고소도로 남지교 밑 낙동강 하류에서의 일출이 볼 만하다. 본래 남지는 땅콩과 채소 재배지로 유명한데 아침 해를 본 뒤 근처에 즐비한 장어 향어 송어 횟집에 들러 매운탕을 즐기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여행 일정이다.

■남지철교 : 경남 창녕군과 함안군 사이의 구도로를 잇는 다리. 다리 옆에 있는 사찰능가사를 끼고 용화산 절벽과 무심하게 흐르는 낙동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낙조는 바닷가의 일몰 풍경이 아닌데도 그 규모와 빛깔이 웅장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조금만 거슬러올라가면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곳이 나온다.

 마산에서 가자면 20㎞ 정도. 도 여기서 30분쯤 가면 유명한 마금산온천이 나온다. 이웃해 있는 부고온천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데 비해 마금산은 한적하고 전원적인 운치가 담뿍 담겨 있어 답답한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귀로에 들러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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