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만든 ‘폭력꾼’백골단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1.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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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지대생 姜慶大군을 사지로 몰아넣은 시위진압 경찰은 서울시경 제4기동대 소속 사복체포조 5명이다. 방석용 하얀 헬멧을 착용해 붙여진‘백골단’이란 이름을 더 악명 높은 사복체포조,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백골단 제1기로 활동하다 제대 후 <실록 백골단>이라는 체험수기를 펴낸 유인철씨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86년 인천 5·3사태의 그날, 이 땅 최초의 백골단으로서 인천 시민회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군복무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정권유지의 도구가 되었던 그 얼룩진 시간들. 이 모든 것이 나를 항상 짓눌렀다.

 시위진압에 동원되는 경찰병력은 크게 전투경찰과 사복경찰로 나뉜다. 그러나 이들이 맡고 있는 임무는 다르다. 시위현장에서 사복경찰이 맡는 임무는 전투경찰이 최루탄과 다연발최루탄(지랄탄)을 쏘아 시위대의 전열을 흩뜨릴 때, 흩어지는 시위대를 추격해 미리 ‘찍어 놓은 주모자급’을 체포하는 것이다.

 “시위진압 방침이 방어 위주에서 포위·체포 위주로 바뀐 뒤부터는 단 한명이라도 잡기 위해 끝까지 학교 안까지 쳐들어옵니다. 우리에게 가장 두려운 상대는 백골단입니다.” 시위대  전열에 자주 서는 한 학생이 말했다. 이 학생은 지난 4·19가두시위 때 백골단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머리를 맞아 7바늘이나 꿰매는 부상을 입었다.

 경찰과 가장 근접한 거리에서 시위를 하고 시위 본대의 보호를 맡고 있는 ‘전투조’학생들도 무서워하는 ‘사복’은 대부분 전·의경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기동대에 속해 있는 사복경찰은 직원중대·대원중대·의경진압중대로 나뉜다. ‘직원중대’는 85년부터 공개채용을 통해 태권도 유도 합기도 검도 종목의 유단자 중에서 선발된 무술경관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대통령이 이동하거나 국빈이 왕래할 때 경호·경비업무를 맡는다. 웬만큼 큰 상황이 아니고는 이들이 시위현장에 직접 나서는 일은 거의 없다.

 이번 강군사건을 일으킨 사람들은 군복무 기간을 사복경찰로 보내야 하는 ‘대원중대원’이다. 이들은 군에 입대한 후 전경으로 차출돼 훈련은 마친 다음 다시 사복조에 배치된 ‘병력’이다.

 “전에는 전투경찰 중 체격이 좋은 사람을 선발했지만 지금은 무작위로 차출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도 왜소한 한 사복경찰의 말이다. 한마디로 “줄을 잘못 서서”백골단이 되었다는 것이다. 단지 병역의무를 마치기 위해 백골단이 된 이들이 왜 같은 또래인 강군을 쇠파이프로 때려죽이게까지 됐을까.

 한 사복체포조는 “동료가 돌이나 화염병에 맞아 부상을 입게 되면 나도 모르게 치밀어 오르는 ‘적개심’을 억제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번 명지대 시위에서도 사복경찰 한명이 화염병에 맞아 화상을 입자 동료 사복조들이 극도로 흥분한 것으로 검찰수사 결과 밝혀졌다. ‘건수’를 올려야 하는 일선 경찰서장의 부담감과 특박·포상을 노리는 사복체포조의 과잉진압이 시위현장을 더욱 치열한 ‘사냥터’로 만들기도 한다.

 게다가 지나해 10월 ‘범죄와의 전쟁’선포 이후 시위진압만 전담하던 사복경찰은 민생치안 업무까지 떠맡게 됐다. 대규모 시위가 예산되면 밤을 꼬박 새워 방범순찰을 하고도 휴식을 취할 겨를도 없이 시위현장으로 내몰리는 게 이들의 일상사이다. 그러면 당연히 시위대에 대해 ‘감정’이 생기게 마련이고 이것이 진압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이외에도 시위진압에 나서는 사복경찰로는 ‘의경진압중대’가 있다. 전경과는 달리 지원형식으로 충원되는 의경은 원래 교통·운전·유치장·전산실·행정보조·방범순찰대와 기동대 등에 배치하기 위한 치안보조 요원이었으나 2~3년 전부터 시위진압에 동원되고 있다. 이 때문에 해마다 지원자가 줄어 내무부는 의경 모집에 애를 먹고 있다.

 유인철씨는 <실록 백골단>책머리에 이렇게 적고 있다. “남들처럼 일반 육군으로서 훈련을 받고 육군으로 군복무를 했더라면 오늘의 이 아픔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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