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에 이르는 정신병
  • 신기남 (변호사) ()
  • 승인 1991.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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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병 시기·완치 가능성 여부에 따라 판결 달라

 결혼한 지 3년이 지난 아내가 둘째 아들을 출산한 이후부터 정신이상 증세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시어머니에게 폭언을 퍼붓고 무단가출도 여러 번 하고 돈도 없이 택시를 타고 돌아다니는가 하면, 수면장애·망상·무분별한 감정표현 등 정신분열 증세가 심해 요양원에 입원, 3년째 치료를 받고 있다. 남편은 비장의 하급 행정공무원으로서 박봉을 가지고 두 아들을 부양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아내의 치료비까지 부담해야 하니 도저히 감내할 능력이 없어 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배우자의 정신질환을 이유로 제기하는 이혼소송에 있어서 법원은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나. 민법에 정해진 재판상 이혼사유 중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라는 것이 있는데 법원은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문제의 경우가 이러한 사유의 범위 안에 들어가는지를 심사한다. 이건을 기본적으로는 법관의 자유재량에 맡겨져 있지만 판례상으로 일정한 기준선은 설정되어 있다. 정신질환이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우선 그 질환이 결혼 전부터의 기왕증이었는데 상대방이 몰랐던 것이냐, 아니면 결혼생활 도중에 새로 발생한 것이냐가 하나의 기준이 될 것이다. 또한 그 질환이 불치의 것이냐 아니면 호전 내지 완치가 가능한 것이냐가 더욱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대체로 결혼 전의 기왕증이었다면 법관은 훨씬 관대하게 이혼판결을 내릴 것이다.

 문제는 함께 결혼생활을 영위해오는 도중에 발병한 경우이다. 사실 한쪽 배우자의 정신질환에 대해 상대방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으므로 이것을 이혼사유로 삼기에는 동정의 여지가 있다. 그래서 법원은 한층 엄격한 기준을 설정하여 구체적인 타당성을 추구하려 한다. 그 증상이 얼마나 심각한가, 호전 가능성이 정말 없는가, 그로 말미암은 가정의 피폐상황은 어느 정도인가 하는 점을 일일이 들춰볼 것이다. 그 결과 비록 발작적 정신이상 증세가 일어나고 있고 재발 가능성이 있다 해도 현재 치료중이어서 그런대로 결혼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면 이혼사유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대법원 판례집에는 그러한 취지로 이혼청구를 기각한 1971년의 판례가 실려 있다. 1991년 1월에 선고된 대법원 판결을 보자. 그 사실관계는 이글의 첫머리에 설명한 내용 그대로이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 대하여 혼인을 계속할 수 없는 사유라고 보아 남편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인 부산고등법원의 판결이 타당하다고 인정, 아내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의 판결이유는 이렇다. “피청구인(아내)이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여 혼인관계는 파탄에 이르렀으며 청구인(남편)에게만 이러한 상태를 감내하고 살아가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가혹하고 두 아들의 양육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온 가족이 헤어날 수 없는 고통을 받더라도 배우자간의 의무에 따라 한정없이 참고 살아가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피청구인의 딱한 사정은 이혼 당사자간의 재산분할청구와 사회적인 부양의 문제로 어느 정도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을 뿐이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지만 각자가 가지의 건강에 유념하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버림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 급변하는 시대 조류 속에서의 엄청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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