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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의 세월' 배상하라

고문당해 정신병 앓는 문국진찌 소송…진상 규명.고통 분담 절실

이성남 차장대우 ㅣ 승인 1993.10.28(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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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권인숙양 성고문 사건, 김근태씨 고문 사건을 일으킨 5?6공 '고문 정국' 실상을 고발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군사정권아래서 수많은 지식인과 운동권 학생에게 자행된 밀실 수사와 고문 관행은, 그동안 이를 부인?은폐해온 당국과 정보 기관에 협박당한 피해자들의 함구로 정확한 피해 실상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앞서 말한 몇건을 제외하고도 고문 피해자에 대한 법적?사회적 응징이 가해지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최근 오랫동안 고문후유증에 시달려 왔고, 지금도 고려대부속 구로병원 정신병동에 입원중인 문국진씨(34)의 부인 윤연옥씨(30)가 국가를 상대로 낸 '고문 피해에 따른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은 매우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고문후유증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피해자가 그들이 겪어온 고통의 실상을 사회에 '공표한' 첫 소송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는 문씨 개인에 대한 피해 배상이라는 의미말고도, 5?6공 시절 수사 기관으로부터 고문당한 익명의 다수 피해자에게도 중요한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큰 무게가 실린다. 이 사건을 맡은 백승헌 변호사는 "이번 소송 제기를 계기로 현재까지 드러나지 않은 익명 피해자들에 대한 적절한 역사적 평가와, 엄존하는 피해를 국민이 분담하는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한다"라고 말한다.

3~6개월씩 일곱 번 정신병원 입원

 이돈명 백승헌 이석태 김형태 조용환 변호사를 소송 대리인으로 한 고소장에는 '고문행위와 발병후 구호의무 불이행으로 원고는 이제까지정신적으로 말할 수 없는 큰 고통을 당해 오며 막대한 치료비를 지출했고, 노동 능력 상실로 소득을 올리지 못하여 경제적으로도 큰 고통을 당했다'면서 '앞으로 같은 이유로 적극적?소극적 재산상 손해와 정신적 고통을 당할 것이 명백하므로, 이 모든 손해를 금전적으로 모두 산정할 수 없는 것이나 10억원의 배상을 청구한다'고 되어 있다.

 고문피해 소송이제기된 10월31일에는 서울 향린교회에서 '문국진과 함께하는 모임' 발족식이 있었다. 고 박종철군 부친인 박정기씨를 대표로 한 이 모임에는 문익환 계훈제 김근태 송경용 최의팔 인재근 최정순 등 재야와 종교계 인사들이 참석하여 "문씨의 고통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면서 이 사건이 문씨 개인의 것일 수 없다고 호소했다. 문익환 목사는 "우리가 강조하는 민족 민주 자주 통일의 가장 기본은 인권 수호에 있다. 나는 통일 운동을 제쳐놓고라도 고문 피해자의 고통에 동참하는 일부터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라고 말했다., 85년 9월 민청련 사건으로 구속되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그 역시 혹독한 고문을 당한 김근태씨는 "아무도 구원의 손길을 뻗쳐줄 수 없는 고립된 상황에서, 항거불능 상태로 집단 폭행을 당하는 동안 한 마리 짐승이 되었다가 작은 미생물로 축소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라고 증언했다. 김씨는 "누가 고문의 실상을 물으면, 의식 저편에서부터 혐오감과 저항감이 솟구쳐 올라 많이 잊었다고 대답했지만, 사실은 그 악몽을 떨쳐내지않고는 정상인으로 살아가기 어렵겠다는 생각에서 잊고자 발버둥쳐 왔을 뿐이다"라고 털어놓았다.

 문국진씨는 86년 노동운동과 관련된 '보임다산' 사건으로 수배중 청량리경찰서에 자수했다. 이 때 3일 동안 고문당하며 조사를 받다가 발작 증세를 일으켰다(30쪽 상자기사 참조)

 그후 문씨는 기소유예로 석방되어 88년 9월 윤연옥과 결혼했다. 그러나 이듬해 가을 임신 7개월인 아내 앞에서 병세가 재발했으며, 그뒤 거의 해마다 한번씩 재발해 지금까지 일곱차례 병원에 입원했다. 입원 기간은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 정도이다. 따라서 문씨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아내 윤씨에 따르면, 병이 재발할 때마다 문씨는 "누가 나를 미행한다, 집안에 도청 장치가 돼 있다, 안기부에서 나오지 않았느냐"라며 심한 공포와 불안 증세를 보인다고 한다. 90년에는 "안기부에서 나와서 너를 강간하지 않았느냐, 나의 행동을 일일이 안기부에 보고하는 것은 아니냐"라며 윤씨의 목을 조르기도 했다.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주인집에서는 방을 내달라고 하고, 어떤 엄마는 자기 아이가 문씨의 네살배기 딸 해인이와 놀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 잠자는 애를 껴안고 몰래 운 적도 많았다는 윤씨는 "한 인간이 파괴되어 가는 모습을 더 이상 주저앉아 지켜보지 못할 것 같아 소송을 냈다"고 말한다. 윤씨는 또 "80년대 '운동권' 사람들에게 자행된 무자비한 투옥과고문의 현장 속에서 한 인간이 이렇게 처절하게파괴되었음을 세상에 알리고, 인간성을 파괴한 잔혹한 고문과 고문의 두려움으로 정신분열을 일으킨 사람을 미친 척한다며 방치한 살인적 행위에 대한 진상이 철저히 규명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문씨가 입원하기3일 전인 6월23일 아내 윤연옥에게 쓴 편지를 보면, 고문의 기억이 얼마나 그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를 괴롭히는 온갖 괴로움들, 미발달된 우리의 운동, 나약한 육체, 이 사회가, 이 생존이 강제하는 하루하루의 어김없는 삶의 굴레. 아! 우리의 생명,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물 고문으로 숨 벅찬 순간 또는 전기가 생체를 관통하여 의식을 잃는 그 무시무시한 고통을 또다시 겪지 않아도 된다는 그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기쁘구려. 당신은 아직도 이 동 터오는 새벽의 시대에 암울 속에 갇혀 있는가요?'

 현재 문씨가 입원해 있는 고려대부속 구로병원 신경정신과 정인과 박사는 진단서에 문씨의병이 '정신분열증'이라 적고, 발병 원인에 대해서는 "86년 12월 첫 입원 당시 수사과정 중 증상이 발생해 국립 정신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시작한 것과 현재까지의 치료 경과로 보아 심리적 고통이 상당 부분 작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또 문씨를 치료해온 동료 신경정신과의원 배기영 박사는 소견서에서 문씨의 병이 국제질병 분류기로 298.4에 해당되는 '심인성 편집증적 정신병'이라고 밝히고 있다. 국제질명 분류에 따르면, 분류기호 '298.3은 어떤 정서적 스트레스에 의해 명백히 유발된 편집증적 상태로, 이 스트레스는 공격이나 위협으로 종종 오해된다. 그런 상태는 특히 수감자에게서 일어나기 쉽다'고 한정되어 있고, '29834 심인성 편집증적 정신병은 298.3에 망라된 급성 반응보다 더욱 지속되는 여느 형태의 심인성 또는 반응성 편집증적 정신병으로 정의된다'고 했다. 배박사는 또 80년 11월 덴마크의학회에서 실시한 고문 피해자들의 정신적 피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상자 1백35명 중 75%인 1백1명에게서 이상 증상이 발생한다고 보고된 점과, 또한 고문후유증으로 불안?우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정신분열 증상이 있다는 보고를 감안할 때 문씨의 증세는 고문후유증, 혹은 고문에 의한 반응성(심인성) 편집증적 정신병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인권운동 사랑방'(대표 서준식)에서는 국제 인권 단체에 문국진씨 사건과 관련된 자료들을 발송하고, 이 단체들과 연대하여 군사정권에서의 고문후유증에 대해 현정부가 책임질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사업을 펼쳐 나갈 예정이다.

최 동씨, 고문후유증에 시달리다 자살

 90년 8월7일 한양대에서 분신자살한 최 동씨의 경우도 고문에 의한 인간 파괴의 참상 그 자체이다. 80년 성균관대 국문학과에 입학한 뒤 10여년 동안 학생 운동과 노동 운동을 해온 최씨는 89년 1월 '인천?부천 노동자회' 사건으로 홍제동 치안본부대공분실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20여일 동안 잠의 거의 재우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를 받던 중 그는 칫솔대를 날카롭게 갈아 자해를 시도하여 기도가 1㎝ 이상 찢기는 상처를 입었으나 아무런치료도 받지 못한 채 조사를 받았다. 이때부터 그의 수면 기능이 파괴되고, 심한 우울증과 피해 망상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구치소로 넘어간 후에도 여러 달 동안 방치돼다가 종로신경정신과에서 외래진료를 받은 결과 우울증과 정신분열 증세로 구치소 밖에서 치료할 수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최씨는 끝내 '구치소에서 가해진 음모로 폐인이나다름없게 됐다'는 유서를 남기고 삶을 포기하고 말았다.

 85년 9월 민청련 사건으로 김근태씨와 함께 연행, 구속된 이을호씨(당시 서울대 철학과)도 고문의 악령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다. 이씨는 9월2~25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과 잠 안재우기 등 혹독한 고문을 받으며 조사를 받던 중 정신 질환 증세를 보였다. 가족이 석방을 호소했으나 9월25일 서대문 구치소로 이감되었다. 그곳에서 인왕선 검사가 취조하는도중 10월2일 심한 정신분열 증세를 일으켜 15일 서대문 시립병원에 이송되었다. 이 기간에 가족이 이씨에 대한 병원의 비인간적 조처에 항의하여 11월23일 국립정신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에 이송된 뒤 감정유치 명령에 의하여 정신분열 증세로 판명되었지만 석방이 보류되었다. 통상 2개월로 정해진 감정유치 명령을 9개월을 끌며 다섯차례 연장한 끝에 86년 6월5일 석방되었다.

 당시 함께 구속된 김근태씨는 자기가 받았던 고문을 이렇게 진술한다. "처음에는 물 고문으로부터 시작됐다. 칠성판에 꽁꽁 묶인 채 샤워 꼭지와 주전자에서 물이 쏴아 하고 쏟아져 내려왔다. 물에 빠져 죽을 때의 고통과 공포 속에 처넣어진 것이다. 전기 고문을 할 때는 처음에는 짧고 약하고, 그러다가 점점 깊고 강하게, 중간에는 다시 약해지다가 갑자기 강한 전류를 보낸다. 뜨거운 불인두로 온몸을 지져 바짝 말라 바스라지게 하는 것이다. 핏줄을 뒤틀리게 하고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마디마디 끊어지는 듯한 고통이었다."

"국화꽃 피면 미친 악령이 되살아난다"

 김씨와 같은 강도로 고문을 받았을 이씨는 석방후 계속 입원 치료를 받아왔으나 완쾌되지 않았다. 86년 12월, 90년 10월, 91년 10월, 92년 9월, 이렇게 해마다 가을이면 어김없이 행방불명되거나 안방에 놓인 국화 화분에 불을 지르는 등 고문의 악령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올해도 국화가 도심의 가을 정취를 풍요롭게 수놓기 시작하자, 아내 최정순씨는 최근 심경을 이렇게 털어놓는다.

 "또 10월이다. 어머니와 나는 요즘 하루하루를 살얼음 디디듯 살아간다. 작년 이맘 때도 서울대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에 우리집은 지금 초긴장 상태이다. 발병 시기에는 잠을 안자고 이상한 행동을 해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어머니와 나는 남편의 건강을 위해 약과 정성을 다하지만 우리 힘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 이전부터 3년을 내리 입원하는 소동을 치렀기 때문에 올해라도 건강하게 넘긴다면 12월31일에 나는 만세를 부르려 한다."

 과거 군사정권을유지하는 도구로 악용되어 조직적이고 적극적으로 저질러진 고문수사 관행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은 문민정부의 몫이되었다. 김근태씨 고문 사건과 관련하여 6공 재판부에서조차 전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소속 경관에게 고문 사실을 인정하여 실형을 선고했던 사실을상기하면, 이 소송의 결과가 그리 비관적이지는 않을 것 같다. 당시 재판부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무시되고 부정되는 사회 안정과 국가 안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피고인들이 수사 업무에 집착한 나머지 이같은 행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용서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도덕성을 강조하는 문민 정부가 군사정권 잔재를 일소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한 고문 피해의 실상을 낱낱이 조사하고, 이같은 야만 행위가 다시는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문국진씨는 이렇게 정신질환자 됐다

?86년 10월12일 : 3월 치안본부에서 수사한 이른바 '보임다산' 사건 관련자로 지목받아 수배 생활을 하던 중 청량리경찰서에 자수.?유치장에 구속된후 3일 동안 취조실에서 잠을 안 재우고, 공포 분위기 속에서 조사가 이루어짐.?3일후 부모와 첫 면담이 이루어졌을 때 부모가 사간 통닭을 보고 "나를 통닭같이 고문하려고 사왔느냐"며 발작을 일으킴.?정신과 검진을 받게 해 달라는 부모의 애원이 묵살된 채 수사가 계속됨. 문씨는 구치소 안에서 자신의 오줌을 먹고, 모택동?레닌이 되어 팔짱을 끼고 전경들을 감시하는 등 정신분열 증세를 보였으나, 경찰은 오히려 일부러 미친 척한다며 구둣발로 강타함. 청량리경찰서 대공과와 유치장에서 40일간 생활

?86년 11월22일 : 구속만기가 되자 검찰로 송치해 성동구치소 독방에 이감. 창살을 부수고 자기가 눈 똥을 복도에 쏟아버리는 등 계속 난동을 일으키자, 여러 사람이 있는 방으로 옮겼으나 계속 발작을 일으킴. 이어 구치소내 정신병자 수용방(10일간)으로 옮겨졌으나, 간수 1명이 군홧발로 계속 찼다 함. 그후 징역방에 끌려가 손발과 온몸이 꽁꽁 묶이고 얼굴에 검은 수건을 뒤집어 쓴 상태에서 4일 동안 쪼그리고 갇혀 있다가 다시 독방으로 보내짐. 부모가 면회갔을 때 문씨는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부모 앞에 성기를 내보이고소리를 지름.

?86년 12월12일 : 검찰 송치 20일후 부모에게 '이 문제로 말썽을 일으키지않겠다'는 각서 받고 중곡동 국립정신병원에 입원케 함. 87년 2월28일까지 치료받은 후, 퇴원할 때 기소유예 처분 받음.

?88년 9월 : 윤연옥과 결혼. 이후에도 고문후유증으로 인한 정신 질환을 앓고 있으며, 현재 고려대부속 구로병원 정신병동에 입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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