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오염 조사에 민간 참여해야”
  • 이성남 차장대우 ()
  • 승인 1993.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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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 冽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블라디보스토크 남동쪽 푸른 바다 동해에 액체 핵쓰레기를 버리는러시아 해군 소속의 TNT 27호와, 그 옆에 바짝 붙어 핵 투기로 인한 해양오염도를 측정하는 소형 보트 안의 그린피스 감시원들, 소방 호스로 물을 뿌리며 이들의 감시 활동을 방해하는 러시아 군함과, 결국 배가 뒤집혀 바닷물 속에 빠진 그린피스 감시원들…. 러시아가 핵쓰레기를 바다에 버린 사실이 알려지자, 즉각 주한 러시아대사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시위를 주도한 환경운동연합(사무총장·최 열)은 한국의 ‘작은 그린피스’이다.“동해 바닥 핵쓰레기장이냐? 국제 파렴치범 러시아를 규탄하자.”이들의 외침에는 러시아의 ‘배짱 외교’에 저자세로 일관해온 정부 대응 방식과는 다른 당당함이 서려 있다.

러시아대사관측 반응은 어땠습니까?
 ‘한국 국민의 걱정을 이해한다. 그러나 현재 핵 폐기물 처리시설이 부족해 바다에 버릴 수밖에 없는 러시아의 처지를 이해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만일 또다시 핵쓰레기를 버리면 전국민이 궐기대회를 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조처를 다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우리 정부의 대응 조처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19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한승주 외무부장관은 국제원자력위원회(IAEA) 말을 인용하여 “이번 폐기물의 양 자체는 많지만 포함된 방사능의 함량은 훨씬 적다”라고 답변했습니다. 국제원자력위원회는 그린피스가 가장 격렬히 비난하는 핵 추진 세력을 지원하는 집단입니다. 이번에도 러시아로부터 핵쓰레기를 투기한다는 사실을 보름 전에 통보받았는데도 국제해양기구에 연락하지 않았으며, 한국에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기구의 발언을 인용한다는 것 자체가 핵 문제에 대한 정부의 안일한 자세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정부측에 민관합동조사단 및 감시단 구성을 요청한 것도 불신감 때문입니까?
 과기처는 지난 5월 그린피스가 러시아 정부의 핵쓰레기조사백서를 공개했을 때도 해수오염 조사 결과를 ‘영향없다’고 발표했습니다. 정부의 이같은 미온적인 대응 방법 때문에 러시아가 또다시 핵쓰레기를 버렸다고 봅니다. 내용물이 전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 장관은 “방사능 함량은 적다”고 답변했지만, 결국 러시아 당국도 동해의 심각한 핵오염 사실과 그 위험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까. 신뢰 회복을 위해 민관합동 조사가 필요합니다.

조사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까?
 방사능 물질은 10~15일 만에 완벽하게 조사할 수 없습니다. 러시아가 지난 32년 동안 버린 핵쓰레기 중에는 컨테이너에 실린 고체도 상당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바닷물에 부식되면 ‘시한폭탄’에 빗댈 수 있을 만큼 위험합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어디에 깔려 있는지 조사가 전혀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또 먹이사슬을 통해 바닷속 생물에게 방사능 물질이 얼마나 축적됐는지 조사된 바 없습니다.

핵쓰레기가 해양, 더 나아가 생태계에 어떤 해약을 끼칩니까?
 방사능 물질이 아주 미량이라도 있는 음식물을 우리가 섭취하면, 그것이 우리 세포에 침입하여 암을 유발하고, 또 유전인자를 변형시키면 다음 세대에 기형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무서운 핵쓰레기가 조류를 따라 우리 연안으로 올 위험성이 매우 높습니다. 국민 1인당 연간 50kg의 수산물을 섭취하는 우리 처지에서는 날마다 식탁에 오르는 생선을 먹어야 할지 먹지 말아야 할지 걱정스럽고, 또 어민들은 당장 생존권에 위협을 받게 됩니다.

정부는 해양오염 실태조사를 위해 ‘온누리호’를 급하기로 결정했는데, 환경운동연합측의 승선 신청 및 동승 여부가 결정되었습니까?
 여태까지 이런 조사활동에 민간 단체의 참가를 허용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이번에도 정부 당국자들끼리 조사단을 구성하여 갔다 와서는 ‘아무 일 없다’고 결과를 발표할 것입니다.

가설이긴 한데, 2차 핵투기가 이루어질 경우 현실적으로 러시아에게 어떤 제재조처를 가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국제 외교관계는 힘의 관계이기 때문에, 물리적인 힘으로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봅니다. 가능한 방법은 국교 단절이나 경협 중단 같은 외교 압력을 가하거나, 전국민이 참여하는 대규모 항의 집회를 여는 일, 또는 세계가 러시아에 공동 대응하는 일 등입니다. 옛날처럼 전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외교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다른 나라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하기 위해서는 피해당사국인 우리가 주도권을 갖고 문제를 풀어가야 합니다.

핵이 인류 발전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전혀 인정하지 않습니까?
 핵은 한마디로 ‘죽음을 향한 완행열차’입니다. 핵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질 중에 가장 위험한 것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핵물질 중에서 가장 위험한 물질이 플루토늄인데 이것은 1g만으로 1백만명에게 폐암을 줄 수 있는 물질입니다. 이것이 반으로 줄어드는 데 2만4천년이 걸리며, 1백만년이 지나야 청산가리 정도의 독성으로 바뀝니다. 이런 물질이 바다에 들어갔을 때 어떤 해약을 미칠 것인지 규명되지 상황에서, 환경 운동가로서는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린피스 회원의 자격요건은 무엇입니까?
 아무나 그린피스 회원에 가입할 수 있지만, 저는 회원이 아닙니다. 그린피스는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환경운동을 하는 단체이므로, 우리는 한국 실정에 맞는 환경운동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린피스나 환경운동연합은 동등한 차원에서 연대 활동을 해 나갈 예정입니다. 그린피스 핵책임자 숀 버니와 94년 4월22일 지구의 날에 그린피스 무지개호를 초청하기로 잠정 합의했습니다. 인천에 배가 입항하면 거기서 환경과 핵에 대한 대규모 전시를 한 뒤, 서울에서 시민이 참가하는 대규모 환경 행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이 그린피스처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단체로 성장할 수 있겠습니까?
 한 나라의 환경 수준은 시민 참여율과 비례합니다. 인간과 자연,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 간의 관계 회복을 기본으로 하는 환경운동은 시민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세계 각국에 27개 지부를 두고 있는 그린피스는 회원이 5백만명이고, 1년 예산이 2억달러(1천6백억원)입니다. 국내 첫 민간환경 단체로 17년째를 맞는 환경운동연합은 현재 1만1천여 회원이 월 5천원씩 내는 회비로 운영합니다. 3년 안에 10만 회원을 확보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핵 위험 요소는 무엇입니까?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하지 못하도록 외교적인 대처가 필요합니다. 또 핵발전소 위험을 막기 위해서는 ‘투명정책’실현이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합니다. 유신시대 이후 핵 문제를 통제해온 우리 정부는, 거대한 시멘트와 철로 된 핵발전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공개하고, 국민 여론을 정책에 반영해야 합니다. 체르노빌 핵 누출 사건은 핵 통제 정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국내에서 가장 심각한 환경 문제는 무엇입니까?
 환경은 전체가 거미줄같이 연결되어 있어서 물·공기·땅·쓰레기를 두부 자르듯이 나눠서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점(지역적)으로 연결된 대기보다 선으로 이어진 수질의 오염이 더 피부에 와닿지요.

미래의 지구 환경운동 방향은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국가 단위의 환경운동에서 국제적인 연대가 활발해지는 방향으로 갈 것입니다. 자기 나라가 아무리 잘해도, 이웃 나라에서 오염물질이 날아와 산성비가 내리고 바닷물이 오염되고 오존층이 파괴되면 인류가 모두 해를 입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환경에 관한 한 국경이 없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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