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에 전개되는 무제한 경쟁시대
  • 문정자 기자 ()
  • 승인 1990.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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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판’ 발행으로 點化… 스포츠도祇도 3파전

 5공비리의 핵심인사로 지탄을 받고 있는 한 인사가 “내가 글러브를 끼고 링위에 올라가면 몇사람이나 다칠지 알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놨었다지만 90년대에는 신문들이 정말로 글러브를 끼고 링위에 올라가 서로 싸우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87년 6월 항쟁 및 6?29선언 이후 신문발행의 자유를 붙들어맸던 권력의 보이지 않는 사슬이 끊어지면서 새로운 신문들이 속속 등장하고 기존 신문들간의 가격?지면 카르텔이 와해되는 어수선한 시기를 지나 90년대에는 이른바 무제한 경쟁시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링위에 오르는 선수들로서는 5?16군사쿠데타 이후 거의 30년만에 처음 갖는 시합이고, 그동안 체중이 불고 군살이 많이 불어 불안하기 짝이 없는 승부가 될 것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천편일률적인 내용과 편집에 식상하고 서비스다운 서비스를 받아보지 못한 독자들로서는 ‘몇사람이 다치더라도’ 기다려온 싸움이 아닐 수 없다.

50년대만 해도 신문기업들간의 생존경쟁은 치열했다. 독자들을 확보하기 위해 아침 저녁으로 신문을 발행하고 뜨거운 증면경쟁을 벌였다. 58년에 <동아일보>를 비롯한 중앙일간지들이 모두 조석간8면을 발행하기 시작하면서 경쟁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리고 4?19 이후 언론계는 그야말로 무제한 경쟁시대를 맞게 된다.

언론계에서 경쟁다운 경쟁이 사라지게 된 것은 5?16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부터였다. 군사정부는 62년 7월31일 ‘언론정책시행기준’을 발표, 우리나라의 일간신문들을 주 6회, 36면 발행의 단간제로 묶어버렸다. 그 이후 몇차례의 일괄적인 증면은 있었지만 단간제는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어 오고 있다.

6?29선언이 나오자 그때까지 신문사간의 경쟁을 ‘자율’적으로 자제해온 신문경영주들의 모임인 신문협회는 언론의 자유경쟁시대를 선언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일괄적으로 증면이 이루어지는 등 카르텔의 관성은 계속돼왔는데 그 틀을 맨먼저 박차고 나온 것이 <한국일보>였다.
<한국일보>는 지난해 7월3일부터 월요판을 발행하기 시작함으로써 30년 동안의 금기를 깨고 맨처음 링에 올랐다.

<한국일보> 홍보실장 尹國炳씨는 “월요판을 처음 내기 시작할 때는 독자들의 호응 여부에 대해 내부에서도 회의가 많았다”면서 “그러나 지난해 7월 이후 유가독자수가 10~20% 증가했으며 특히 10월에 12면으로 월요판의 증면을 단행한 뒤로는 광고수주가 크게 늘어 12월의 경우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광고매출액이 48%나 신장했다”고 밝혔다.

지역 신문?소수의 목소리 위축 우려도
또 <한국일보>의 吳隣煥 편집국장은 “월요판을 발행함으로써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독자들의 뜨거운 격려와 함께 5공을 거치면서 침체될 대로 침체된 편집국이 활력을 되찾게 된것”이라며 “이런 분위기라면 <한국일보>가 90년대의 경쟁에서 깜짝놀랄 만한 성과를 거둘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吳국장은 또 “ ‘金日成 중국 극비 방문’ ‘미?소 몰타회담’ ‘동경특파원 임수경양 인터뷰’ ‘심효섭경무관 난동사건’등은 월요판을 발행함으로써 <한국일보가>가 거두게 된 특종이었다”고 소개했다.

신문업계의 가시적 변화로서 또 하나 지적할 수 있는 것은 69년 창간돼 20년 전통을 갖는 <일간스포츠>와 85년에 창간된 <스포츠서울>이 양분해온 스포츠전문일간지 시장에 대한 여타 매체들의 도전이다.

<조선일보>는 별도법인으로 <스포츠조선>을 창간할 방침을 세우고 오는 3월에 그 첫호를 선보이기 위해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스포츠조선> 편집국의 한 간부는 “창간작업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인사이지만 편집국 예상인원 90명 중 이미 5분의 4 정도를 확보했다”면서 “그 중 20명 정도는 외부에서 스카우트했다”고 밝혔다.

스포츠신문은 언론계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다른 신문들도 크게 관심을 보이고 있어 90년대의 스포츠신문 경쟁은 3파전을 넘어 4파전, 5파전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더욱이 <한국일보>가 월요판을 발행, 경쟁의 선두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일간스포츠>의 월요일 배달망 덕분이었기 때문에 여타매체들이 본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스포츠신문 시장에 뛰어들 가능성은 높다고 하겠다.

90년대를 내다 볼 때 <한국일보>의 월요판 발행은 ‘신문들의 싸움’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것이다. 조석간 발행, 주요지방도시에서의 현지 발행 등 말 그대로 사활을 건 보다 큰 싸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조석간 발행은 워낙 예산과 인원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어떤 신문이라도 단시일내에 시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주요 지방도시에서의 현지발행은 빠른 시일내에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 각 신문은 서울시내의 교통체증으로 배달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서울시내에서만이라도 지역별로 현지발행을 해야 할 형편이다.

신문들의 무제한 경쟁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5공시절 기존 신문들은 권력에 의해 신문발행이 억제된 가운데 과점상태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기 때문에 그같은 자본을 바탕으로 한 경쟁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또 대기업화된 신문들의 경쟁으로 말미암아 지역신문으로서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부심하고 있는 지방신문들과 소수의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창간되고 있는 ‘작은 목소리’들이 타격을 입게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과거와 같이 ‘사상의 자유로운 경쟁시장’을 물리적 힘으로 억제하는 일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되며 모든 선택은 독자들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생존 위한 생존권 박탈
1989년 12월24일 0시, 경향신문사의 ‘해직5인’은 이날을 ‘죽음의 순간’이라고 선언했다. 바른 언론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몸부림의 결과가 끝내 ‘해직강요’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 참단한 심정은 이들 당사자 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동료사원들, 그리고 해직을 ‘강요’한 경영진마저도 똑같이 나누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의 해직사태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회사안 또는 제3자 사이에서 가르는 편리한 논리로 풀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내부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에만 진실로 그 아픔을 같이 할 수 있고 어떤 비판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 회사측의 입장이다. 전체 가족의 생존권을 위해 일부 기자의 생존권을 박탈해야만 하는, 참으로 역설적이나 그만큼 불가피한 상황에까지 회사의 경영사정이 몰려 있었다는 것이다.

‘5공의 홍보도구’였음을 자괴해 마지 않던 경향신문사 구성원들은 87년 ‘6?29’ 이후 지난 2년반 동안 극심한 경영난 속에서 바른 신문으로의 재창간을 위해 매우 힘든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는 노조를 비롯한 일선 기자들은 물론 경영진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추진해왔던 것이다.

해직된 李成洙기자(조사연구실?전노조위원장), 姜琪錫기자(체육부?전노조부위원장?언노련 홍보실장), 高永信기자(문화부?전회사발전위원회 노조측 간사), 曺成煥기자(체육부?전노조사무장), 朴仁奎기자(외신부?전노조교육선전부장) 등 5명은 초대 노조집행부(88년 3월~89년 3월) 핵심간부들로 이같은 재창간 운동을 적극적으로 일으켰던 기자들이다. 편집권독립 등 자유언론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다른 언론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끈질긴 노력을 폈던 ‘경향노조’에 대해 언론계 내부에서는 ‘선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바로 그것이 이들 노조간부에 대한 해직 사유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를 재벌과 그 뒤에 있는 권력의 언론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회사측은 이를 경영합작을 위한 뼈아픈 ‘결단’, ‘고육책’이라는 내부적 문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6공 이후 정부와 사실상 결별한 사단법인 경향신문사는 악화된 경영난 타개를 위해 재벌기업과의 합작 교섭에 주력해왔다. 회사형태를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그 지분을 일정비율로 나눠갖는 방식이다.

이 작업은 처음 ㄹ그룹을 대상으로 이뤄지다가 백지화된 뒤 ㅎ그룹과의 접촉을 시도, 교섭이 시작된 지 거의 1년여만에 현재는 마무리 단계의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향측으로서는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그동안 이번 해직자를 포함한 일부 전임 노조간부들에 대한 인사조치, 현 노조의 활동유보 가능성 시사 등 많은 부분을 내주면서까지 협상에 임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진척이 없자 경영진은 전임노조 핵심 5명이 협상의 마지막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판단, 어쩔 수 없이 黜社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 가족들에게 안겨줄 선물꾸러미 대신 해직통고장을 손에 쥐었던 5명은 그날 이후 매일 아침 7시50분부터 신문사 사옥 앞에서 ‘출근투쟁’을 벌인 뒤 언노련 사무실에서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언노련과 기자협회는 ‘이번 해직이 경영난을 악용, 권력이 강요한 사건으로 6공식 언론탄압’이라고 규정, 강력한 대응을 하고 있으며 경향노사는 이에 고소장과 노련탈퇴로 맞서 사태 추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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