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지 증명제
  • 송준 기자 ()
  • 승인 1991.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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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부는 ‘자동차 차고지 확보에 관한 법률’을 연내에 제정, 차고지를 확보한 사람에 한해 자동차를 등록할 수 있도록 하는 차고지 증명제도의 도입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이 제도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놓고 맞선 학계의 주장을 들어본다.

찬 : 최재성 서울시립대 교수.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 메디슨대 교통공학박사, 건설기술연구원 도로연구실장 역임

●차고지 증명제란 어떤 제도이며, 찬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서울시 등록 자가용의 차고 확보율은 33%에 불과하다. 약 82만대 가운데 27만대 정도의 차량만이 차고에 주차되고 있으며 나머지 67%의 차량이 도로를 점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도로 위에 무단 주차된 차량으로 인해 소방도로 등의 기능이 마비된다면 화재나 범죄가 발생했을 때 신속한 대처를 하지 못하게 되는 위험이 있다. 또 주차 차량으로 인해 출근에 지장을 받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 바꿔 말하면 도로라는 공공시설을 차 소유주들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차고지 증명제(차고지 연계 자동차 등록제)는 자동차 소유자가 주거지 내에 자체 차고를 확보하거나 인근의 유료주차장과 장기사용계약을 맺어 대용차고를 확보한 경우에 자동차 등록을 허락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의 취지는 공공시설의 사유를 제지한다는 법원칙의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차고지를 가진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상가·빌딩·아파트의 입주자 세입자 가운데 자동차가 꼭 필요한 사람이 차고가 없어 불이익을 받게 된다면 공정한 법이라 할 수 없지 않은가?
 상가나 빌딩 입주자가 이용하는 영업용 차량이라든가 세입자 소유의 자가용 등에 이 제도를 적용할 경우 어느 정도의 불이익이 돌아갈 여지가 있음은 인정한다. 그렇다고 이런 것이 공공시설인 도로를 무단 점유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다소의 불이익을 주더라도 정부의 기본 입장은 분명하고 단호해야 한다. 이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정책의 시행 자체가 흔들리게 되면 너무 많은 예외조항이 생겨날 것이다. 일부 불이익을 보는 사례에 대해서는 정상을 참작하여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부담금을 감면해주는 등 운영의 묘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이 제도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위장 주소이전, 차고지 확보가 가능한 친·인척 명의의 등록, 유료주차장과의 위장계약이 성행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비리가 생길 소지가 있지 않겠는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법원칙은 뚜렷하게 세워져야 한다. 시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행정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이를 다스리기 위해 여러 개의 새로운 법을 제정해야 한다면 작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너무 큰 일을 벌이는 격이 아닌가?
 법은 원칙을 정해준다. 나머지는 시행규칙이나 조례 등을 통해 조정이 가능할 것이다. 다른 법을 계속 만들 일은 없으리라고 본다.

●차고 배치 등 새로운 주택구조가 연구되고 주택 형태에 따라 집값이 달라지는 등 생활문화의 변화가 예상된다. 그러나 빈부격차가 큰 우리 경제구조를 고려해 볼 때 이러한 변화를 반드시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2000년대에 전체 등록차량이 1천2백만대로 추정된다고 한다. 냉장고가 처음 사치품으로 여겨지다가 이제는 필수품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자동차도 앞으로 필수품이 될 것이다. 소수의 극빈자말고는 대부분의 국민이 차량을 소유할 것이다. 국민 모두가 자기 차량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가 요구된다. 지금처럼 주차 등에서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고 공공시설을 무단 이용한다면 이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다. 언제든 이 원칙이 정해져야 하는데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한다. 주택구조와 집값 등의 변화는 장기적으로 당연한 것이다. 차를 가진 사람은 요령껏 주차시설을 확보해야 한다.

●차 등록이 금지되는 사례가 많아진다면 자동차산업이 위축될 우려가 있지 않겠는가?
 자동차는 움직이는 자유공간이다. 가능한 것은 무엇이든 갖다놓고 배타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매력적인 개인공간인 것이다. 더욱이 앞으로 자동차가 필수품화하면 차 구입욕구는 변하지 않는다. 차를 구입하려는 사람은 어떻게든 주차시설을 마련하려 할 것이지 차 구입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 이 제도를 실시하는 데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면?
 차고지 증명제가 실시된 이후 무단주차가 계속된다면 범칙금 등을 부과해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모인 시 재정은 반드시 시민의 주차난 해소를 위한 목적에만 쓰여야 한다. 정부가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전체 예산 속에 섞어 흐리멍덩하게 지출한다면 시민의 강력한 저항을 받을 것이다. 특별한 용도의 재정은 부담자의 이익을 위해 쓰여야 당연하다. 공동주차장 건설 등의 주차관련 목적으로만 사용해야 한다.

반 : 박병소 서강대 교수.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스웨덴 웁살라대학 이학박사. 서울시 교통체계개선위원회 위원장 역임.

●이 제도를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90년 9월 집계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주차용량은 전체 차량의 약 28% 정도를 수용할 수 있을 뿐이다. 즉 전체 차량의 3분의 2 정도는 주차장 없이 어딘가에 방치돼왔다는 얘기가 된다. 지금까지는 이런 무단주차를 용인하다가 갑자기 어느 날 이후부터 차를 새로 구입하는 사람에게만 규제를 적용한다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 위배된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예컨대 다세대 주택 같은 경우 집앞 주차장을 누구의 소유로 할 것이며 그것이 정해진다 하더라도 나머지 사람들은 어쩔 것인가. 차고지 증명제가 강행되면 차량을 보유하려는 사람이 줄어들 것인데 이 또한 문제이다. 지난해 차량생산 4개 업체가 생산한 자동차는 수출용 40만대, 내수용 90만대를 합해 모두 1백30만대에 달한다. 환산하면 거의 10조원 정도의 큰 시장으로 우리 GNP의 1%에 해당된다. 자동차업계의 금년 생산목표는 3백~4백만 대로서 GNP의 2~3% 정도이다. 21세기에는 GNP의 5~10%를 차지할 것이라고 한다. 자동차산업은 경제성장의 선도산업이다. 차고지 증명제는 자동차의 보유 가능성을 좁혀 자동차산업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차고지 증명제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차량을 장만하자는 붐이 일어나 차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소의 문제가 있더라도 공공시설인 도로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방치할 수 없다 는 주장이 있다. 이를 위해 엄한 법 원칙이 세워져야 하지 않는가?
 법의 원칙이 서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80년대 초 차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때는 방치하다가 이제 와서 주차장 문제로 차량구입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의 복지는 무시돼도 좋은 것인가. 전체 차량의 72%에 해당되는 이미 구입된 차들이 도로 위에 무단으로 주차돼 있는 것은 용인되고, 새로 구입하는 차는 주차장을 구비해야 한다는 것은 일관성을 잃은 처사라고 본다.

●불법주차 차량들은 소방도로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 제도는 적어도 차량의 증가를 막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이는데….
 한마디로 시기상조이다. 이 제도가 효과를 거두려면 정부가 파악한 전체 주차장 용량이 전체 차량의 70% 이상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처음 이 제도가 거론된 것도 이 안이었는데 노재봉 전 총리가 무리하게 몰아붙여 내년에 실시하기로 결정했다는 말을 들었다. 최근 교통부의 교통정책을 보면 마치 ‘자포자기한 심정’에서 일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여론을 수렴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을 수립하기보다는 밀어붙이기 위주의 양태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통난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어떻게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 아닌가?
 국민의 신임을 얻을 수 있는 정책을 찾아야 한다.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지난 걸프전쟁 기간에 교통부가 ‘승용차 10부제 운행’제를 실시할 때 이로 인해 자동차경기가 위축되지 않겠느냐 하는 지적에 상공부 관계자들은 오히려 좋아했다고 한다. 1가구 2차량 현상이 앞당겨질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보아 속임수 행정에 맛들인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한두 번 이런 현상이 드러나면 국민 사이에 가치관의 혼란이 오고 불신풍조가 생겨 심지어는 선의의 정책까지 악의로 해석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주택양식이나 주거문화에도 변화가 올 것이다. 장기적으로 이런 변화들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주차장을 건물 안에 장만할 여유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차공간을 마련할 능력이 없어 결국 노상주차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울시 일부 변두리에서 도로에 주차선을 그어 그 동네 차 주인의 주차를 유도하는 정책을 시행한 적이 있는데 성공적이란 말을 들었다. 이런 방법을 포함하여 주차용량이 전체 차량의 70% 이상을 소화할 수 있을 때만 이 제도의 시행이 가능한 것이다.

●적당한 대안이 있는가?
 소유 자체를 금지할 것이 아니라 범칙금 제도를 마련, 이 재원을 이용하여 주차시설을 늘려간 다음 적정용량의 주차시설이 확보되었을 때 이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 순서이다. 상가나 빌딩의 반지하 공간을 이용해 공동주차장 건설을 유도하고 재정지원을 해 준다든가 동네주차장 등을 세워 가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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