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감축, 불가피한 대세
  • 변창섭 기자 ()
  • 승인 1990.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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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美국방장관 “93년까지 5천명” 사실상 합의… 해빙무드 · 美재정적자로 주둔 명분 시들

주한미군 철수설이 나팔소리처럼 갑자기 시끄러워지고 있다. 6 · 25이후 한반도 전쟁재발 ‘억지력’으로 지난 40년간 이 나라에 주둔해온 미군이 국제적인 화해무드, 미국정부의 재정적자 및 그에 따른 국방예산 삭감과 한국의 국제적 지위상승 등 일련의 복합적 압력으로 마침내 한국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주한미군의 감국 내지 철군의 시기는 언제며 그같은 배경은 무엇인가? 루이스 메네트리 주한미군사령관은 작년 7월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 “한국군의 현대화 등 현추세가 지속된다면 90년대 중반 이후 미군의 한국주둔 필요성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 주한미군의 위상을 두고 전개되는 韓美간의 움직임은 메네트리의 관측이 앞당겨질 수도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이는 지난주 방한한 딕 체니 미국방장관의 발언에서 뚜렷이 나타났다. 李相?국방장관이 배석한 내외신기자회견에서 체니장관은 “주한미군의 재조정문제는 해외주둔 미군의 재조정과 관련해 고려해야 하며 이런 측면에서 감군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주한미군의 위상변화가 이제 자국의 현실적인 이해에 따라 빨라질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작전권 이양’은 상징적 의미에 불과

이같은 워싱턴의 입장변화는 주한미군의 감축문제와 관련, 한국의 외무 · 국방장관, 주한미대사, 주한미군사령관으로 구성하는 4인위원회를 두기로 韓美양측이 합의한 데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체니 장관은 李장관과의 회담에서 미국의 국방예산절감과 태평양지역주둔 미군재조정계획에 따라 오는 93년까지 필리핀, 일본,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약 12만명의 미군 가운데 10~12%를 감축할 계획임을 밝히고 한국도 예외가 아님을 들어 오는 93년까지 약5천명의 주한미군의 감축이 불가피함을 설명했다. 이같은 감축안은 1월29일 미국정부가 국내외 80여기지 폐쇄결정의 일환으로 대북한 견제력의 상징인 주한미공군의 5개기지 중 수원 · 광주 · 대구기지를 폐쇄하고 그에 따라 2천명의 행정요원을 감축한다고 발표한 지 2주만에 나온 것이다. 이 경우 주한미군은 현재의 4만4천명에서 80년대초 레이건행정부 출범 당시의 규모와 비슷한 수준인 3만7천명으로 조정되는 것이다.

체니 방한을 계기로 주한미군 위상에 대한 워싱턴의 입장은 작전권, 방위비분담, 감축 등 3가지 측면에서 과거보다 한층 분명히 우리측에 전달되었다.

이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작전권이양문제와 관련해 체니장관이 盧대통령에게 “앞으로 한국이 방위의 주도적 역할을 맡고 주한미군은 지원적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적극적인 역할교체론을 강조했다는 점인데 이는 자연히 현행 한미연합사의 지휘체계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평화시 작전권이양을 위한 조치로 한미야전사를 해체하고 현재 메네트리 주한미군사령관이 겸임하고 있는 지상구성군사령관과 군사정전위 수석대표를 한국장성으로 보임하는 방안이 있다. 그러나 지상구성군 사령관직의 한국군이양의 경우, 설령 한국장성이 지상구성군 사령관이 되어도 판문점~문산~동두천~서울을 잇는 이른바 引繼鐵線(tripwire)지역에 배치된 미보병2사단의 통제권은 여전히 주한미군사령관에 귀속되기 때문에 지상구성군 사령관직의 이양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미측이 작전권이양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온 배경에는 철군의 전단계조치라는 의미와 함께 이 문제가 反美의 한 원인으로 작용해왔다는 점에서 작전권이양을 통한 反美감정의 무마라는 측면도 고려했을 가능성이 있다.

체니장관이 이번 방한중 내심 가장 비중을 둔 사안은 한국의 방위비분담금 증액건이었는데 이는 미측 대표단 가운데 헨리 홈스 방위비분담대사가 포함되어 있는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미국측은 일본정부가 90년부터 주일미군이 고용한 日人 근로자의 인건비 전액을 부담키로 한 예를 들어 현재 한국이 주한미군 직접비로 부담하고 있는 연 3억달러 외에 미군기지의 한인근로자 1만3천8백명의 연급여액인 3억8천만달러까지 추가부담해 주기를 요청했으나 한국측은 이들의 의료보험료와 퇴직금 8백만달러 정도만 부담할 의사만 밝혔을 뿐 “가능한 한 능력범위내에서 방위비분담액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는 신중한 태도로 일관했다.


분담금 과도 요구 땐 한국서 ‘감축’ 택할 듯

체니장관은 한국의 경제성장을 들어 “한국도 자국안보를 위해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고 강조해 방위비분담액을 대폭 증액할 것을 요구했으나 李장관은 日本 · 西獨의 경제력이 한국의 4~5배에 이르며 특히 미군 1인당 지원비 부담액이 4만5천달러로 일본의 4만3천달러, 서독의 2만달러보다 많음을 들어 미측의 요구에 난색을 표명했다.

그러나 미국정부가 NATO 동맥국이나 日本처럼 주한미군의 유지비를 가능한 한 한국측에 떠맡기기로 결정한 만큼 앞으로 방위비 분담액 증액을 놓고 양국간에 불편이나 마찰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우리측은 ‘한미연합’ 태세가 지장받지 않는 범위내에서 미군감축은 “신축성 있게 대응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져 향후 분담금 증액 요구에 합리적으로 대응하되 요구가 무리할 경우 감축쪽으로 택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회담에서 용산기지이전 문제도 논의됐는데 특히 90년대 중반까지 기지 이전을 완료함에 있어 주한미군의 감축이 있을 경우 “이전 계획에 반영한다”고 발표한 점은 향후 새 기지 규모가 감군을 예상, 지금보다 대폭 축소될 것임을 시사해 주목된다.

이번 회담의 성과 중 한가지 특기할 만한 것은 한미 양국이 그동안 주한미군의 존재에 관해 과민반응을 보여온 북한측의 입장을 정치적으로 수용, 향후 주한미군의 감군을 대북한 군축카드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세련된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그러나 ‘안보의 현장’에 사는 우리로선 향후 주한미군의 감군에 따른 방위비증액이란 힘겨운 부담을 피할 길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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