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당 李鍾贊의원] “당내민주화 위해 백의종군”
  • 박준웅 편집위원대우 ()
  • 승인 1990.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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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대권주자가 논의될 때마다 빠짐없이 거명되던 李鍾贊의원. 그는 민정 · 민주 · 공화 3당의 합당에 의한 정계개편을 ‘최선이 아닌 次善 또는 次次善’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거대여당인 ‘民自號’에 몸을 맡겼다. 民正黨 창당을 주도했고 사무총장과 원내총무를 지냈으면서도 만년 비주류로 머물며 당내 개혁의 목소리를 높여온 그는 합당과 신당 창당과정에서도 철저히 소외됐다.

새로운 정치질서의 개막과 함께 李의원의 여권내 위상과 입지는 상당히 불투명할 것으로 주위에서 분석한다. 그런데도 그가 YS(金泳三), JP(金鍾泌) 의 두 巨木이 버티고 있는 민자당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진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1盧3金 이후의 대안’으로서의 가능성을 포기한 것인가. 아니면 대권도전을 향한 신념의 칼날을 더욱 날카롭게 갈고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해 그는 당내 민주화가 이루어지면 그 틀속에서 정정당당하게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민자당의 출범에 따라 민정당이 간판을 내렸습니다. 민정당 창당 주역의 한사람으로서 민정당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민정당은 잘한 일도 있고, 잘못한 일도 있습니다. 잘못된 일을 획기적으로 개혁한 연후에 정계개편이 이루어졌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민정당을 그 당시 권력을 잡은 분들의 피조물이라 생각하는 것도 압니다. 또 나 자신, 동기야 어떻든 그와 같은 피조물을 조형하는 한사람으로서 참여한 것은 틀립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창당하는 데 있어 첫째로 민정당만은 정권창출의 주체가 되어야겠다, 둘째로 민족세력의 결집체가 되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결국 기존정당과 마찬가지로 전락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민족정당으로 승화하려던 당초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기존정당의 연장선상에서 머물고 말았기 때문이지요. 갖가지 정견을 지닌 다수가 참여하다 보니 고유한 이념을 중심으로 한 정당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행정부의 한 도구로서, 기능주의적 정당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작년 8월 島山아카데미 세미나에서 민정당이 보다 생명력이 있는 정당으로 탈바꿈해보자는 뜻에서 개혁을 주장했던 것인데 끝내 실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민정당은 또 5공청산문제의 멍에를 질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에서 헤어날 수 없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 자신을 5공의 핵심이나 주역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습니까?

물론 5공화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저도 그 일원이었던 것을 분명히 밝히면서 저라고 5공의 공과에 대해 초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청산의 대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까?

청산할 대목이 있으면 해야지요.

● 민정당이 해체되니 마당에서 평생동지라는 개념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여러 당원들로부터 심경이 착잡하다는 내용의 편지와 전화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충분한 토론과정을 거쳐 신당에 참여할 것인지의 여부를 냉철하게 판가름하는 민주적인 결정과정을 거치도록 권유 했습니다.

● 신당에 참여하게 된 이유과 당위성은 무엇입니까. 3당합당에 대해 최선은 아니며, 차선, 또는 차차선의 방안이라고 피력한 적이 있었는데요.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났고 루비콘 江을 이미 건넜습니다. 솔직히 말해 신당에 참여한 이상 그 과정이나 방법이 어떻다고 얘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민자당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창당과정에서 짚고 넘어가지 못한 문제들을 이제는 차근차근 해결해야 합니다. 첫째로, 어쨌든 창당과정에서 특정지역을 고립화시킨 문제가 숙제로 남은 만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당적, 거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지역당적인 4당구조는 잘못되었다, 그래서 정계개편을 한 것이다’라는 대의명분에 비추어볼 때 일부 지역의 고립은 커다란 흠이 되는 것입니다. 3당합당을 차선이라고 말했던 것도 지역감정이 더욱 심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민자당은 또, 종래의 인물 위주 정당운영 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인물 중심의 정당이 아니라 제도화된 정당으로서 당내 민주화를 반드시 이루어야 합니다. 또한 이념적 차이가 있는 부분에서는 다원성을 허용해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가능성을 읽었기 때문에 신당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 3당합당으로 입지면에서 가장 손해를 본 사람이 李의원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의원은 차세대, 또는 차기대권주자라는 기대를 모아왔는데 정계개편으로 앞으로의 정치구상을 새롭게 수정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민자당에 참여한 것은 여당을 하던 관성 때문에 권력을 따라 흡수 · 수용된 것인지, 아니면 대권도전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나 소신을 바탕으로 한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신당의 창당과정에서 독립선언을 하라는 충고랄까, 요구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민정당에서의 기득권에 너무 연연하거나 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급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새로운 정당에서도 정정당당하게 나의 주장을 펴고 경쟁을 하며 떳떳하게 나아가 입지를 세워나가겠습니다. 민정당내에서 얻어진 기득권의 노예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야당지도자 중 기존정당에 잔류했던 분들과는 입장이 다릅니다. 과거 정치인들 가운데 이해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예를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나 자신도 그런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지금까지 펴왔던 개혁의 논리를 계속해서 주창해나가면 오히려 과거에 생각했던 부분을 앞당겨 구현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진정한 나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각에서 벗어나기를 거부하고 겁내고 허전하게 느껴서야 되겠습니까.

● 신당에서 어떤 역할을 맡기를 기대하고 있습니까?

백의종군이라는 말은 너무 많이 써서 진부하지만 정말 백의종군하는 입장에서 새로운 동지를 발견하고 인식을 같이하며 나 자신을 대의에 접근시키고 싶습니다. 제도화된 정당으로서 당내 민주화가 충분히 이룩되고 그렇게 해서 국회가 좀더 활성화되고 또 민주주의에 크게 기여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당직을 탐내거나 어떤 역할을 맡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당내 민주주의가 충분히 된다면 그 틀속에서 경쟁도 할 수가 있고 나의 의사를 투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정치일선에 뛰어든 지 10년이 넘는데 정치인으로서의 목표를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정치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정치 · 경제 · 사회적 개혁과 통일을 이룩한 역사적 주역의 한사람이었다고 평가받고 싶은 욕망이 있을 것입니다. 아직까지 우리는 어느 정도 발전은 이루었지만 정치 · 경제 · 사회적으로 많은 갈등과 모순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지역적으로 특정지역에 편중되어 있지 않고 어려운 사정때문에 대학도 사관학교로 진학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대간, 지역간, 계층간의 중개자적 역할 또는 촉매역할을 맡고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국회의사당의 벽에 초상화 하나쯤 걸렸으면 하는 욕망도 있습니다. 외국의 국회의사당에는 한 시대를 장식한 정치인의 초상화가 즐비하게 걸려 있지 않습니까. 우리 국회의사당에도 보다 많은 사람들의 초상화가 걸려야 하고 제 초상화도 걸려지기를 희망하는 것입니다.

● 그러한 꿈이 새로운 정치질서의 형성때문에 멀어졌다고 느끼지는 않습니까?

멀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까워졌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격동이 한번 지나고나면 모든 정치인의 가치를 국민들이 평가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민정당을 창당했다는 일 때문에 저에게는 불필요한 프리미엄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자유롭고 냉정한 상태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앞으로 민자당은 여러 보스에 의한 계보정치의 가능성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의원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까?

계보정치라면 일본식 계보정치를 생각하기 쉬운데 나는 이를 혐오하는 사람입니다. 일본식 계보정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擬似민주주의입니다. 뚜렷한 색깔도 없이 후꾸다파다, 다나까파다 하는 것은 붕당적 요소이지 계보라 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이념적인 틀을 만들어놓고 그 틀과 생각이 같은 사람끼리 뭉치는 계보라면 그것은 바람직하고 이것이야말로 근대정당의 계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일본식 계보에는 찬동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계보가 자칫 지역중심으로 형성된다면 더욱더 큰 문제입니다. 지역성을 깨기 위해 합당을 했는데 다시 지역 중심으로 계보가 형성된다면 말이나 됩니까. 그래서 저는 ‘S · K’ (서울 · 경기)라는 말도 부정합니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말의 조어에 불과합니다. 또 일본식 계보정치를 하면 틀림없이 정경유착이 됩니다. 정치부패와 타락을 가져올 게 뻔한데 답습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또 요즘 논란이 되는 계보는 과장된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민자당이 창당되었는데도 민정계, 민주계, 공화계로 분류되어간다면 이는 정당공조체제지 할당체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 이의원께서는 ‘S · K’란 없다고 부인했지만 최근들어 서울 · 경기지역 지구당 위원장들과 자주 만난 것은 사실 아닙니까.

이번 창당과정에서 많은 위원장들이 동요하는 것 같아 서울 · 경기지역뿐 아니라 호남을 비롯해서 여러 지역의 사람들과 만났습니다. 그래서 창당과정에 따른 비판의 소리도 듣고 나아가야 할 방향도 토론했습니다. 지역을 중심으로 한 정치활동은 가급적 피하려고 합니다.

● 항간에는 朴哲彦정무장관이 독주를 하고 있지 않느냐는 반발도 큰 것 같은데요.

그분은 대통령의 뜻을 가장 잘 전달받아 창당의 일선에서 수고하고 있고 창당과정에서는 보안을 유지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중집위에서 본인 스스로 보안을 지키느라 공개 못한 점이 있어 누를 끼쳤다며 앞으로 모든 점을 공개하겠다고 얘기했습니다. 박장관이 주류를 형성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모두가 비주류를 형성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주류, 비주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너무 당권투쟁적 요소로 보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 대통령제와 내각책임제 중 어느쪽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작년 8월 도산아카데미 발언 때에 당시 여권 수뇌부에서 추진하고 있던 내각책임제에 대해 시기가 이르다는 견해를 밝힌 적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헌법에는 많은 권한이 국무총리에게 위임되어 있어 국무총리가 실제로 내각책임제적 정부를 운영해볼 수 있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거대여당이 됐으니까 그런 시도가 안되겠지만 국무총리에게 내각구성권을 위임해보면 어떻겠느냐는 구상이었습니다. 그러면 예를 들어 민정과 평민, 민정과 민주, 민정과 공화 사이의 연립을 시도해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선 가장 어려운 평민당과의 연합부터 시도해보고 평민당이 거절했을 경우 민주당과, 그리고 다시 공화당과 연합하는 식의 역순으로 내려오면 상당히 많은 정치발전이 있지 않겠느냐 생각했었습니다.

● 이의원의 그러한 정계개편 지론이 결과적으로 빛을 보지 못한 셈입니까?

김영삼최고위원이 오랜 정치경험과 민주당 때의 실패를 들어 연립은 어렵다며 합당을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설령 어렵더라도 한번 해봤어야 하며 그것이 정치발전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내각책임제를 하면 연립은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정치수단입니다. 그런데도 처음부터 불가능하다는 논리에는 찬성하고 싶지 않습니다.

● 이번 임시국회는 새로운 정치질서에 따른 국회운영의 시금석이 되는 셈인데 어떤 양상으로 진행될 것으로 봅니까. 또 어떤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까?

합당의 여파가 남아있어 굉장히 소란스럽고 정치공세가 가장 맹렬한 국회가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자칫 거센 정치목소리 때문에 국회가 다른 방향으로 가지 않을지 우려됩니다. 이런 때일수록 이성을 지키면서 이번 국회가 무엇을 할 것인지 정리하고 넘어가야지요. 이번 국회에서는 합당에 대한 명분도 살리고 과거문제에 대한 가시적 청산과 함께 미래지향적인 비전도 제시해야 합니다. 지자제 준비도 갖추어야 하지요. 따라서 정치적인 공방 때문에 중요한 문제들이 뒤틀려 어느것 하나 해결하지 못한 채 끝나서는 안됩니다. 민자당으로서도 거대여당의 힘만 믿고 밀고나가려 해서는 안됩니다.

● 이의원은 과거 민정당 때에도 진보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고 특히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전향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었는데요.

통일문제에 있어 저는 기본적으로 점진주의자입니다. 접촉을 통한 변화의 기반위에서 통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통일방식에 대해 재야좌파에서는 기능주의적 통일방식이라고 비난할 지 모르나 무턱대고 나서는 통일지상주의는 오히려 통일에 걸림돌이 됩니다. 체육회담에 있어서도 우리가 양보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북한과 경쟁관계에 서지 말고 안아들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통일에 한걸음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의 개방을 요구하지만 막상 개방되었을 때 우리의 대비도 덜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내부에도 많은 모순과 갈등이 있지 않습니까. 이를 먼저 해소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민자당은 거대여당이 됐으니 진보적인 세력이 원하는 사항을 미리미리 알아서 선수를 쓰는 정당이 되어야지요. 그럴려면 이제 정동도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야 합니다. 다시말해 과거처럼 사람 위주의 정당, 특정인이 좌지우지하는 정당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 인물 중심의 정당을 탈피해야겠지만 현재 상황으로 보아 YS나 JP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 정치선배들을 무참하게 대접해서는 안됩니다. 그분들은 정치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분들이니까 잘 모시면서도 그분들에게 어떤 맹점이 있다면 시정하도록 해야지요. 40대 기수론이나 세대교체론들은 다 그분들 용어입니다. 우리들은 그런 용어를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당도 제도에 의해 뒷받침되는 당이 되려는 큰 노력이 있어야지 과두에 의한 정당이 되어서는 시대의 역논리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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