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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敵將을 존경하는 직업군인들

안재훈 (객원편집의원) ㅣ 승인 1990.03.04(Sun)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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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베블린의 한 찻집에서 미국의 CIA, 소련의 KGB, 영국과 프랑스의 정보기관인 MI-5와 SURETE의 거물 스파이들이 모여 한탄을 한다. 이들은 냉전시절이 그립다. 이제는 동 · 서협력 평화시대인지라 군사비밀이 의미가 없어지고 할 일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이것은 최근 한 유머칼럼의 이야기이다.

세계대전의 공포를 없애고 역사의 방향을 잡은 정치지도자들의 뒤에는 숨어 있는 智將들의 공로가 있다. 평화정착을 위해 노력한 이들은 비교적 미디어의 관심권 바깥에서 가상적국의 장군들과 피차 신뢰를 쌓는 접촉을 가져왔던 것이다.

펜터건(美 국방부)을 30년간 취재하고 국방관계 저서를 많이 써낸 미국의 원로 언론인 조지 윌슨씨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 합찹의장 윌리엄 크로우 제독과 세르게이 아크로메예프 전 소련군 총사령관의 공로가 크다. 그밖에 많은 군인들이 미 · 소군축합의의 선두주자로서 길을 닦아왔다. 특히 이들 두 사람의 우정은 의미가 크다.”

아크로메예프는 작년 7월 美의회 청문회에 나와 4시간에 걸쳐 공개 증언한 인물이다. 가슴에 소련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동 · 서의 군축문제를 구체적 숫자를 들어가며 증언한 모습을 두고 미국의 언론들은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보도했다. 그는 미국이 소련에 선제공격을 하지 않을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사실 군부의 이같은 확신이 없으면 정부는 군축에 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크로메예프가 88년말 전군 총사령관직과 국방차관직에서 돌연 예편됐을 때 관계자들의 억측은 구구했다. 당시 정보관계자들의 결론은 소련군부가 고르바초프의 지나친 군비삭감과 그의 측근인 비둘기파 아크로메예프의 주장에 반기를 든 것으로 해석했다.

훌륭한 장군은 강경도 온건도 아니다. 정확한 현실적 평가를 내릴 수 있는 판단력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아크로메예프는 87, 88년 레이건의 백악관 만찬에 고르바초프를 수행했으며 현재까지 군사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보좌관 역할을 하고 있다.

크로우 제독과의 우정은 양국 군부 지도층의 빈번한 방문외교를 가져왔다. 특히 작년엔 소련의 군함들이 美해군기지를, 그리고 미국의 전함들이 소련 군항을 방문하여 쌍방이 축제무드에 싸인 경우가 있었다.

크로우 제독과 아크로메예프의 후임 미하일 모이세예프 장군은 89년 6월 모스크바에서 양국이 우발적 군사행동을 사전방지하기로 한 조약에 서명했다. 이것은 83년 9월 KAL기 격추사건이래 美 · 蘇군부가 동시에 원하던 바였다. 금년 1월1일부터 적용됐는데 군대끼리 통신을 하게 되면 이는 이미 적대개념이 없어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작년 12월6일, 8일엔 양국의 전투기가 피차 영공침해를 한 일이 있다. 긴급 출동한 요격기들은 서로 적기와 교신하고 에스코트하였는데 이것은 돌발사고를 피하기 위한 계획된 훈련이었다. 군함과 지대공미사일, 관제탑까지 동원됐었다.

소련의 장군들이 미국언론과 직접 접촉을 하는 것은 얼마전까지는 없었던 일이다. 최근에는 공산당정책위원회 군축 수석대표인 빅토르 스타로두보프 장군이나 니콜라이 체르보프 장군 등이 외국기자와 인터뷰를 할 정도로 군축외교에 智將들이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얼마전 2년만에 소련을 방문한 헨리 키신저 전 美국무장관도 蘇군부가 전통적인 보수군대에서 혁신적인 현대화를 걷고 있는 것을 확실히 보고왔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달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열렸던 나토와 바르샤바 조약군 장군들의 모임은 전쟁의 위험이 상존하는 중무장된 한반도인들에게는 참으로 부러운 광경이었다. 35개국 총사령관들과 수많은 군장성들이 먹고 마시고 토론하며 서로 사귀는 며칠을 보낸 것이다. 미국 대표단은 콜린 파월 합참의장 인솔하의 수십명이었으며 동유럽 5개국은 최근 새로이 임명된, 정치혁명 이후의 신입 사령관들이 참석했다.
불가리아의 도브레브 참모총장, 헝가리의 보르시츠 총사령관, 그리고 체코와 폴란드 장군들의 연설문을 읽으면 유럽에서의 동 · 서 군사대결 가능성은 이미 지나간 역사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한가지 공통점은 自國의 국방은 민주주의에 입각, 수호하겠다는 의지들이다. 불필요한 군비경쟁을 민간경제로 전환시키는 시급성을 인정하는 군인들이야말로 참다운 智將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체코군인들은 이미 ‘동무’ 호칭을 못하도록 했으며 동독군인은 서독으로 이주하여 서독군 복무를 계속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불가리아는 군사예산 85%를 민간경제로 전환한다고 한다. 헝가리 총사령관은 소련점령군은 곧 철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동 · 서 양진영의 군수뇌들이 모여서 이와 같은 토론을 벌인 것이다. 전쟁터에서 적장을 존경하는 직업군인들의 이야기는 영화와 소설에서나 보는 멜러드라마였다. 그러나 시저, 나폴레옹, 알렉산더 대왕, 그리고 美남북전쟁의 리 장군과 그란트의 이야기 등은 급변하는 요즘 세상이 역사의 반복같다는 느낌을 주는 장군들의 세계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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