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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판 뒤에서 뛰는 사람들

득표작전의 ‘꽃’은 사무장···참모·동책·투표구책에 ’별동대‘까지 조직

이흥환·조용준 기자 ㅣ 승인 1991.06.20(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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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투, 4투! 유인물 배포 끝났습니까? 지역장, 현수막 붙어 있나 한바퀴 돌아보세요! 지하철 입구 ‘목’에 아주머니들 나가 있지요?”

 6월10일 오전 9시10분, 서울 ㅈ구 제2선거구의 민자당 후보 선거사무소. 사무장 ㄱ씨가 일일점검을 시작했다. 투표구책(투책), 목, 맥(인파 밀집지역) 등 선거철에만 들을 수 있는 선거 용어들이 난무한다. 일반 유권자에게는 낯선 용어이지만 사무장의 지시를 못 알아듣는 운동원은 아무도 없다.

 이번 광역의회 선거에 나선 후보는 총 2천8백77명. 3.3대1의 경쟁률이다. 한 후보에게 선거사무장을 포함한 선거사무원이 평균 1백명씩만 따라붙어도 무려 28만7천여명의 운동원들이 현장에서 뛰는 셈이다. 여기에 선거철만 되면 나타나는 이른바 ‘선거몰이꾼’과 음성적인 선거운동원 숫자를 합하면 선거판에서 움직이는 인력은 어마어마한 수가 된다. 대규모의 새로운 인력시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ㅈ구의 한 민자당 후보 선거사무소에서 가동하고 있는  선거사무원 숫자는 1백30여명. 모두 선거사무원으로 등록을 마친 사람들이다. 선거본부의 사무장 밑으로 5개 선거연락소에 연락책임자가 파견되어 있고, 연락책임자가 동책과 투표구책을 움직인다. 한 연락책임자는 “일당을 벌려는 욕심에서 운동원으로 일하겠다는 주부들이 꽤 많다”고 귀띔한다. 하루 3만원 일당이라면 적지 않은 액수다.

 구의원이기도 한 사무장 ㄱ씨는 이번 광역선거에서 “강요에 못이겨” 민자당 후보의 선거사무장을 맡았다. 그가 맡고 있는 각 연락사무소 책임자들도 모두 구의원들이다. 그는 “구의원 등록한 서류의 잉크도 채 마르기 전인데 어떻게 선거운동을 하겠느냐고 극구 사양했지만 후보와의 친분 때문에 사무장을 맡았다”고 말한다.

 여당의 선거조직은 선거철만 되면 위력을 발휘한다. ㄱ사무장은 “여당은 특별한 선거전략이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평소에 관리해온 조직만 원활하게 가동시켜도 고정표는 흡수할 수 있다”면서 “여당과 야당의 선거운동 분위기가 다른 것 같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야당은 “독이 올라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반면, 여당은 유권자에게 “얼굴이나 비치는” 정도라는 것이다.

금품수수·향응제공 사무장이 도맡아
 ㄱ씨는 자신을 ‘간판 사무장’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후보의 경력이 화려하고 평소에 관리해온 조직이 방대하다는 말이 된다. 새마을금고연합회 부회장, 평통 자문위원, 새마을운동협의회 지회장, 소방서 의용대장, 국제라이온스협회 지구부총재 등 후보의 굵직굵직한 ‘명함’만 보더라도 선거사무소의 공조직을 능가할 만하다. 게다가 민자당 지구당의 부위원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구당 조직도 사실상 이 후보의 선거조직으로 가동되고 있는 셈이다.

 선거운동의 ‘꽃’으로 불리는 선거사무장은 후보 선거사무소의 참모들을 진두지휘하고, 선거관리위원회에 관계된 모든 업무의 책임을 진다. 선거 뒤에 후보의 당락에 상관없이 선거비용을 선관위에 보고해야 하는 것도 선거사무장이 해야 할 일의 하나이다. 선거법을 위반했을 때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도 선거사무장이다. 선거구 내 각 동 및 통·반별 주민 성향 파악, 지역내 노인정·경로당 등 이익단체의 분류, 지리·계층별 분석 및 상인회·계모임 등 직능별 모임 분석 등 구체적인 득표 작전도 사무장의 손 안에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동책·투표구책 등 하부조직책 선정 문제는 여야를 막론하고 사무장들이 가장 신경써야 하는 일이다. 조직책 신청자들의 사람 됨됨이, 인상, 책임감, 과거 조직책 경험과 실적 등을 기준으로 치밀한 면담을 거쳐 조직책을 선정한다. 후보의 순방 수행원과 홍보물 배포조도 아무렇게나 뽑는 것이 아니다. 후보 수행원은 우선 호감이 가는 인물이어야 하고, 홍보물 배포원은 말 한마디라도 부드럽고 싹싹하게 할 줄 알아야 한다.

 사무장은 공개적인 조직 외에 별도로 비밀 직계조를 가동시키기도 한다. 5~6명 정도로 ‘별동대’를 조직, 상대 후보의 거동을 파악하거나 선거전략을 탐지하는 것이다.

 사무장들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측면도 적지 않다. 금품수수·향응제공 등 대부분의 위법·탈법 사례도 사실은 사무장의 지휘하에 이루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용산구에서 입후보한 출마자들이 선거사무장들과 같이 모여 공명선거를 다짐하는 ‘후보·사무장 간담회’를 가졌던 것도 선거에서의 사무장 역할이 크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한 가지 사례다.

“행정조직은 모두 여권 선거조직”
 서울 ㄷ을구 신민당 후보의 선거 사무장을 맡고 있는 ㅈ(43)씨는 요즈음 통 잠을 못 이룬다. 11대 총선거 때부터 조직 업무에 손을 대기 시작, 여섯 차례의 크고 작은 선거를 치러본 결코 적지 않은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이번 선거에서 처음으로 선거전의 ‘야전 사령관’격인 사무장을 맞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지역구는 야당 취약지구인 데다 그가 조직관리를 해온 과거 선거에서 야당 후보가 번번이 참패, “낙방운동만 한 셈”이었기 때문에 이번 서거에 임하는 그의 각오는 대단하다. 그가 선거판에서 터득한 진리는 “선거는 두번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거에서 지면 사무장은 죄인”이라는 것도 그를 늘 긴장시키는 불문율의 하나다.

 ㅈ씨가 상대해야 할 총 유권자수는 7만5천3백2명. 세대수로 따지자면 2만3천 세대에 달하고, 통·반 수를 계산하면 1백23개 통에 8백29개 반이나 된다. 그가 5개동 19개 투표구의 유권자를 상대로 가동시킬 수 있는 선거사무원은 1백20명 정도. 선거본부에는 기획 총무 홍보 조직 대책 정책 담당 등 참모 14명을 배치시켜 놓았고, 일선에는 동책과 투표구책 24명을 가동시키고 있다. 사무장이 통솔 가능한 조직책만 둔다는 원칙하에 통·반책은 따로 두지 않았기 때문에 투책이 최말단 조직책인 셈이며, 각 투책 밑에 참관인 각 2명과 여성담당 조직책 1명을 두어 총 20여명의 운동원이 1개동을 담당하고 있다. 형식적인 수치로 따진다면 운동원 1인이 맡는 유권자수는 5백명에 이른다. 한 세대당 3~4인 가족을 기준으로 잡으면 운동원 한 사람이 1백20세대를 맡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은밀하게 조직책을 선정하던 지난 5월말 ㅈ씨는 예기치 않았던 사태를 맞았다. 여당에서 이탈한 일부 조직책들이 선거운동을 돕겠다는 제의를 해온 것이다. 무작정 의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냉대할 수도 함부로 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ㅈ씨는 고맙다는 뜻만 저하고 정중하게 그들을 돌려보냈다.

 서울 ㅇ을구 민중당 후보의 선거사무장과 지구당 선거본부의 부본부장직을 겸하고 있는 ㅂ(33)씨는 조직면에서는 야당이 도저히 여당을 따라잡기 힘들다고 고충을 털어 놓는다. “행정·기관조직은 선거 때 모두 여권의 선거조직으로 활용된다. 통·반장으로 이루어지는 조직은 말할 것도 없다. 반면에 신설 정당인 민중당의 경우 법정 선거사무원 등록 숫자도 채우기 힘든 형편이다. 지구당 당원 2백여명이 5개 선거구 11개동 51개 투표구 전체를 맡아 뛰고 있다.”

 그가 소개하는 선거전략 중에는 ‘유권자와 최소한 한번 만나기’ ‘전체 유권자에게 최소한 한번 홍보물 보내기’ 등이 있다. 투표율을 55%로 어림잡을 경우 선거구에서 1만5천표만 얻으면 당서권이고, 2만표를 얻으면 안정권이라는 계산하에 그는 3단계 홍보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초기에는 후보를 집중 홍보하고, 중반에는 정책 제시를 통해 민중당 후보를 차별화하는 여론을 조성하며, 종반에 접어들면 상대방을 제압하는 대결 구도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야당 후보의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투표율”이라고 지적한다.

 신민당의 ㅈ사무장도 선거전략의 초점을 투표율 높이기에 맞추고 있다. 지난 기초의회 선거 때 야당계 후보가 참패한 까닭이 43%라는 낮은 투표율에 있다고 분석하는 그는 “투표율이 최소한 65%는 되어야 여당과 정상적인 싸움을 할 수 있다. 청년 학생 등 젊은층의 기권만 효과적으로 방지한다면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D데이(선거사무장의 D데이는  투표 하루 전인 6월19일이다) 1주일 전부터 통·반장들의 선거 운동 개입을 감시하는 조직도 따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힌다.

선거운동원 사흘마다 교체
 정권 주변에는 이른바 ‘정치 마케팅’전문가들이 있다. 이들은 선거 때마다 각 정당 후보들의 예상 득표율이나 선거전략을 진단한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정당이 계산하는 고정표 대 부동표의 비율을 4대1로 잡는다. 예를 들이 1만표 중 8천표는 시국상황에 관계없이 늘 고정표라는 것이다. 따라서 집권여당인 민자당은 고정표에 ‘플러스 알파’를 겨냥, 비호남표 흡수에 총력을 기울이고, 신민당의 경우에는 호남 출신 유권자수의 80%가 곧 득표수라고 계산한다. 선거 때마다 “민자당은 부동표 흡수가 곧 선거전략이고, 신민당은 선거전략이 따로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거사무장쯤 되면 선거에 관한 이런 정보 정도는 꿰뚫고 있게 마련이다.

 선거사무장과 후보는 흔히 ‘부부 사이’로 불린다. 선거 기간에는 ‘잠자리’도 같이 해야 하고, 담배 피우는 모습만 봐도 서로의 심리상태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원만하게 선거를 치를 수 있다는 것이다. 정계 입문을 원하는 후보에게 원로 정객들은 “선거사무장을 못 믿겠으면 쓰지 말고, 믿으면 무조건 맡기라”는 충고를 하기도 한다. 특히 선거자금 관리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야 함은 물론이다. 한 사무장은 “자금은 후보가 직접 관리하고, 상황에 따라 매일 조달한다. 중앙당의 자금지원은 내가 신경쓸 바 아니다. 후보는 전체 일의 98%를 내게 이야기해준다. 나머지 2%는 후보의 고유 영역이고 사무장이 알 필요도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ㅈ사무장은 자신이 당선시켜야 할 후보의 선거자금을 3천만원 가량으로 어림잡고 있다. 하루 2백만원씩 지출된다고 할 때 15일을 뛸 수 있는 자금이다. 그러나 그는 “선거판에서는 그런 식의 계산이 통하지 않는다. 야당의 선거운동에서는 특히 그렇다. 자금·조직·정보 등 모든 면에서 야당은 열세다. 결국 야당이 기대하는 것은 ‘바람’뿐”이라면서 “동지들 고생 안 시키는, 돈있는 선거 한번해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다. 지금 돈을 얼마나 기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오늘 아침에 13만원을 들고나왔는데, 지금 3만8천원 남았다”면서 주머니를 뒤적였다. 아침마다 일선 조직책에게 자금을 배분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밤 10시의 일일점검 때 일계표 결재를 지출상황을 보고받고, 자금이 떨어졌을 때는 사무장 재량으로 모든 지출을 유보시킨다.

 이번 광역의회 선거에서 민중당은 각 선거구의 선거자금 한도액을 1천만원으로 잡아놓았다. “1인당 단돈 1천만원으로, 발로 뛰는 선거”가 민중당이 내건 선거 캠페인의 하나다. 민중당의 ㅂ사무장은 ‘1천만원’이라는 액수의 산출 근거를 이렇게 밝힌다. “우선 기탁금으로 4백만원이 들어간다. 선전 벽보나 소형인쇄물 등 홍보물에 3백만원, 선거본부 요원들의 숙식비 등 인건비로 2백만원, 나머지 1백만원은 사무용품이나 손님접대비 등 잡비로 잡혀 있다.” 그는 “선거자금을 더 조달할 수 있더라도 1천만원으로 선거를 한번 치러봄으로써 돈 안 쓰는 선례를 남겨보자는 것이 민중당의 당론”이라고 밝히면서 “선거법을 위반하려 해도 그럴 능력이 없다”고 말하다.

 지방의회의원선거법에 따르면 한 선거구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선거 차량(선박 포함)의 수는 3대다. 신민당 ㅈ사무장은 현재 후보 소유의 승용차 1대와 자신의 오토바이 1대로 선거구 골목길을 누비고 다닌다. 민중당의 사정은 더욱 어렵다. ㅂ사무장은 “지역구 전체 5개 선거구가 3대의 자동차에 매달려 있다”고 말한다.

 사무장의 하루는 새벽 1~2시경의 귀가로 시작된다. 4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나서 7시에 선거사무소로 출근하면 곧바로 후보와 각 참모들이 참석하는 회의를 시작한다. 전날 배포한 홍보물의 양을 확인하고 당일 배포할 양도 정하며, 수정된 선거전략을 숙의하기도 한다. 오전 일과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출근길의 홍보물 배포와 서거구내 단체 방문이다. 후보를 수행할 적도 있다. 오후에는 주로 시장이나 상가 등 ‘표’ 밀집지역을 돈다. 해질 무렵에는 주부들이 몰리는 시장 입구 등 ‘목’을 지키고, 밤에는 골목을 누비면서 각 가정에 유인물을 투입하기도 한다. 호별 홍보물 투입은 물론 선거법 위반이다. 하지만 선거원들은 “선거법이 호별 방문을 금지시켜놓았기 때문에 홍보물 투입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으면서 선거법의 비현실성을 꼬집는다.

 지역 순방보다는 주로 사무실을 지킨다는 야당의 한 사무장은 하루 평균 4백통의 전화에 시달린다면서 “선거운동을 하다보면 수면부족 등으로 정신이 흐려지게 마련이다. 선거사무원들도 마찬가지다. 3일 정도 가동시키고 다른 운동원으로 교체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운동원을 3일에 한번씩 교체할 경우 최대한 20일의 서거기간 중에 6~7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3일 교체론’을 역설한다.

 야당 선거사무장들의 역할이나 선거운동 방법이 ㅈ씨나 ㅂ씨의 경우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민중당 ㅂ사무장의 말대로 “선거법을 위반하려 해도 위반할 자금능력이 없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낙하산 공천’을 받고 ‘오로지 돈’으로 선거를 치르는 후보의 당선을 위해 뛰는 비교적 ‘여유있는’ 사무장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 후보가 낙선하게 되면 그 시간부터 선거사무장과 선거사무원들은 ‘말 못하는 죄인’이 되고 만다.

 이번 광역선거는 14대 총선의 전초전으로 평가된다. 여야를 막론하고 각 지구당위원장들이 시·도의회 후보 못지않게 발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이번 선거 결과가 자신의 입지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6공화국에서 처음 치러지는 정당 중심의 전국 선거라는 것도 이번 선거의 특징 중 하나다. 여야가 총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후보의 50%가 기업인이라는 사실도 자금 살포 등 선거 과열을 부추기는 원인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선거사무장이나 운동원들 대부분은 처음으로 광역 지방의회 선거를 치르는 셈이다. 후보에게 ‘죄인’이 될지언정 국가에 ‘죄인’이 될 수는 없다는 자세가 그들에게 요구되는 선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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