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원·방송칼럼 ‘신경전’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1.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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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교육기획국, 평론내용 반박 ‘검토의견’ 제시··· 제작진 “공개적 논의 필요하다”

 “경제장관들의 경제진단이 주부들보다 못한 것 같아서 참 답답합니다···. 엉터리 진단으로 우리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은 현 경제팀은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개각에 경제팀도 포함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난 5월20일 오전 11시30분. MBC 라디오에서는 물가폭등을 임금인상 탓으로만 돌리는 경제장관들에 대한 질타가 거침없이 쏟아져나왔다. 주부를 대상으로 한 어느 단체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0% 이상이 최근 물가상승의 주범을 집값 땅값 전세값의 상승이라고 대답했다는 조사결과를 대면서 경제장관들의 수준을 주부보다 못한 것으로 깎아내렸다. 성균관대 무역학과 金泰東 교수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라디오칼럼>에서였다.

 그는 정치평론가 洪思德씨에 이어 89년12월 첫째주부터 <라디오칼럼>의 경제분야 진행자로 일주일에 두번씩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사회분야는 金東吉 전 연세대 교수가, 정치분야는 朴載昌 숙명여대 교수가 각각 일주일에 이틀씩 나누어 진행하고 있다. “공정한 여론이 있어야 올바른 사회를 이룩할 수 있습니다.”라는 방송취지를 설명하는 말로 시작하는 이 프로그램은 가청인구의 약 10%(3백만명 추산)가 듣는다고 방송사 쪽에서는 밝히고 있다.

칼럼, 경제장관 거침없이 질타
 이처럼 김교수의 신랄한 평가를 감수해야 하는 경제정책 당국의 감회는 어떤 것일까. 개각 결과는 그것을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5월말에 있었던 개각에서 김교수가 전한 ‘여론’은 반영되지 않았다. 어떤 경제각료도 현 경제상황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질되지 않았다. 경제팀 가운데 바뀐 재무부장관과 동력자원부 장관의 경우는 재임기간이 1년이 넘은 ‘장수장관’이었기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같은 대중매체는 정부의 경제정책을 어떻게 국민에게 전달해야 하는가. 정부의 경제정책이 제대로 국민에게 전달되는 데에 대중매체의 역할이 그만큼 크고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한국갤럽이 89년말에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이 정책을 접하는 경로의 빈도는 방송(56.6%) 신문(40.0%) 기타(2.8%) 정부발행자료(0.6%)순이라고 한다. 대중매체 가운데서도 방송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국민의 경제에 대한 관심도를 반영하여 경제관련 프로그램이 상당히 많이 늘어났다(47쪽표 참조).

 5월20일자 방송이 나가기 전에 이미 김교수의 방송에 대한 조용하지만 의미있는 경제당국의 반응이 있었다. 지난 5월2일 국민경제제도연구원에서 경제기획원 관계자들과 각 방송사의 프로듀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비공개 간담회에서는 경제기획원의 방성에 대한 ‘볼멘 소리’가 전달되었다. 경제 현안에 대한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이 국민의 경제인식 제고에 크게 기여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정부의 정책내용이 부정확하게 전달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김태동 교수의 <라디어칼럼>을 그런 사례로 들었다.

 ‘K교수의 발송칼럼’은 정부의 자료와 통계가 작성되고 발표되는 체계를 알지 못함으로써 이미 발표된 자료나 아직 발표되지 않은 일부 통계를 정부가 의도적으로 발표하지 않거나 시안을 확정된 시책인 것처럼 방송하였다는 것이다. 경제기획원쪽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책담당자를 모니터로 활용할 것과 자료와 의견교환을 활성화시키고 정부에 공익방송 기회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기획원 “정책 평가절하 당한다”
 경제기획원의 이런 ‘여론선무 작업’은 최근에 시작된 일은 아니다. 지난 89년께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경제당국이 적극적으로 이 일에 나서게 된 동기는 경제위기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정부의 경제정책이 종종 왜곡되거나 지나치게 평가절하 당하고 있다는 판단이었던 것 같다. 89년 7월 경제기획원 안에 두었던 경제교육기획관을 3개과로 이루어진 경제교육기획국으로 확대개편하였다. 그해 12월에는 경제정책에 대한 여론수렴과 경제교육·홍보기법을 개발한다는 취지로 국민경제제도연구원(원장 嚴永錫)을 설립했다. 90년 12월에 12개 경제부처 합동편집위원회와 국민경제제도연구원이 경제정책지인 월간 《나라경제》를 창간한 것도 같은 흐름에서 해석될 수 있다.

 경제기획원쪽이 비공개 간담회에서 문제를 제기한 김교수의 칼럼은 지난 4월16일에 방송된 내용이었다. 이날 김교수는 ‘장미빛 청사진’이라는 제목으로 “정부가 제3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을 서둘러 발표한 것은 지방의회 선거를 앞두고 여론을 호전시키려는 의도”이며 “이런 유형의 대형투자계획을 남발하면서 정작 국민이 알고자 하는 현실의 어두운 면은 알리지 않거나 속인다”고 비판을 가했다. 이 방송이 나가자마자 경제기획원쪽은 이 방송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검코의견’이라는 자료를 만들어서 관련부처와 이해 당사자인 김교수와 방송제작진에게 돌렸다.

 이 자료에 따르면 반박의 골자는 이렇다. 국토종합개발계획은 국토개발에 대한 장기적이고도 종합적인 방향을 정립하는 계획으로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3차계획은 90년 상반기부터 예정된 일정에 따라 작성되었고, 92년초부터 시행되기 위해서는 올해 상반기에 계획안이 발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형투자계획들에 필요한 재원들도 투자가능한 수준이다. 추후에 그것이 알려졌을 때 정부가 져야 할 부담을 고려해보면 정부가 일부러 부정적인 측면을 알리지 않는다. 그가 발표하지 않고 있다고 한 통계들은 대부분 일정계획에 따라 발표시기가 정해지지 않은 것들이거나 일부는 발표되었고, 어떤 것은 잘못 이해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간담회 자리는 그의 방송을 들으면서 가지게 된 문제의식을 여러 방송제작진들과 의논해보려는 자리였던 것이었다. 또 그날 모임에서 방송과 경제당국간에 협력 가능한 분야로 지적된 ‘정책담당자에 의한 방송모니터링’은 이미 실시되고 있었던 셈이다.

 경제기획원에서 언제부터 방송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가시적인 결과는 김교수의 방송내용에 대하 것이 최초의 것이다. <한국일보>에 매주 한번 ‘경제칼럼’을 쓰고 있는 서울대 郭秀一 교수(경영학)의 경우도 “내 칼럼내용을 겨냥한 것임이 분명한 반박자료를 받았고 여기저기 전달되는 것을 알았지만, 크게 중요하지 않다 싶어서 내버렸다”고 밝혔다. 반박의 대상이 된 칼럼은 과도한 정부규제에 관한 것이었다고 한다.

 경제기획원 경제교육기획국장인 이상태씨는 방송모니터링의 목적을 이렇게 설명한다. “주목적은 경제평론가들의 성향과 주장을 파악하는 내부자료로 활용하자는 것이었고 부차적인 목적은 잘못된 사실이나 통계를 바로잡아주자는 것이었다.”

 방송모니터링안을 고안해냈다고 밝힌 한 서기관이 설명한 취지는 약간 다르다. 그는 “주목적은 틀린 사실이나 통계를 바로잡자는 것이며, 경제평론가들의 좋은 의견을 수렴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주장한다. “올해 봄 이 방법을 생각해냈을 때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했다”면서 “아직 시작단계인 만큼 억측은 말아달라”고 말했다.

방송, 당사자에겐 ‘의견’선별적으로 전달
 김태동 교수는 경제당국과의 자료·통계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면서 자신의 방송에 대한 경제기획원의 ‘검토’를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전달받은 자료가 특별히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것이라는 인상은 못 받았지만 이미 행해진 또 다른 검토의견이 있으면 반드시 받아볼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4월16일자 방송에 대한 검토의견은 상당부분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재반박의 여지가 많은 것들이었다고 말했다.

 <라디오칼럼> 제작위원인 姜熙哲씨는 “그런 자료가 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정식으로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면서 “공개적인 방송에 대한 비판도 수용할 건 수용하고, 반박할 건 반박할 수 있게 공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사자에게 검토의견을 전해주었으므로 이미 공개적인 것이라는 경제기획원쪽의 주장에는 다소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사자에게 전달되는 검토의견이라는 것이 선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5월13일과 14일에 방송된 <라디오칼럼>에 대해서는 4월16일자에 비해서 짧지만 차원이 틀린 방식의 검토를 하고 있는데 당사자에게는 전달되지 않았다. 경제기획원에서는 단순히 요약만 해놓은 것이라고 하나 “경제정책을 단순히 성장이냐 안정이냐 하는 식의 일원적이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성장정책을 가진자에게만 유리한 것으로 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다”는 ‘검토’가 실려 있다.

 단순히 경제용어나 현상만을 설명하는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모니터링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진의를 의심케 하는 부분이다.

 당사자들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경제평론가들과 경제당국의 이런 논의들이 공개되고 논쟁거리로 되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만일 방송을 통해 소개된 틀린 자료나 통계, 편향된 시각에 대한 모니터링이 국민에게 공개되지 않는다면 많은 국민은 잘못된 비판에 현혹되는 것이 된다. 만일 옳은 자료나 통계, 올바른 시각에 대한 비난이 일부 경제전문가들에게만 전해진다면 이들은 특정 경제평론가를 항상 틀린 말만 하는 사람으로 잘못 판단할 수도 있다.

 경제부처 산하 연구기관에도 자료나 정보를 제대로 제공해주지 않는 경제정책 당국의 정보·자료 독점을 극복하고, 어떤 주장에 대해서도 그것을 토대로 공개적인 논의를 거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공개적인 비판에 대한 은밀한 비난은 올바른 여론 형성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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