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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잦은 바다는 ‘죽음의 융단’

선박 충돌로 기름 유출, 하루 한번꼴… 제거 방식에도 ‘2차 오염’ 문제

허광준 기자 ㅣ 승인 1993.11.25(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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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사흘 앞둔 지난 9월 27일 오후 7시12분께, 이미 사위가 어두워진 광양만 앞바다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7시에 광양항을 떠나 항해하던 파나마 선적 8천9백59t급 화물선 비지아산호는, 예인선 302경기호에 끌려 광양항으로 들어오던 5백32t급 유조바지선 제5금동호를 코앞에서야 발견했다. 302경기호는 항해 거리를 줄이기 위해 규정항로를 벗어난다고 관제센터에 통보했으나, 비지아산호가 이를 모르고 그대로 운행해 제5금동호의 오른쪽 옆구리를 들이받은 것이다. 사로 해역인 전남 여천 앞바다에는 당시 남동풍이 초속 8~10m로 불고 파도는 1~2m 높이로 일었으며, 시야는 0.5해리(약930m)에 불과했다.

 옆구리를 들이받힌 제5금동호는 기름 탱크 4개중 3 · 4번 탱크에 5.25㎡ 정도 되는 구멍이 뚫려 순식간에 벙커C유 5천드럼 분량(약 1천㎘)을 바다에 쏟았다. 흘러나온 기름은 조류와 바람을 타고 천혜의 관광지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번져나갔다. 전남 여천 · 광양과 경남 남해 · 하동 · 사천 일대 바다와 해안이 검은 기름으로 뒤덮였다.

 이 사고로 한달 가까이 고깃배가 발이 묶였으며, 주민들은 코를 찌르는 기름 냄새를 맡으며 일방 2만8천5백~2만3천5백원을 받고 헝겊에 유처리제를 묻혀 바닷가 돌멩이 하나하나를 닦아내는 작업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장과 갯벌, 양식장에서 발생한 막대한 피해는 아직 집계되지 않고 있다.

 광양만 사건은 그 피해 규모가 크긴 하지만, 숱하게 일어나는 바다 오염 사건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90년에는 해양 오염 사고 2백48건이 발생해 유류 2천4백21t이 바다를 더럽혔고, 92년에는 2백40건(1천2백57t)이었던 것이 작년에는 3백28건(2천8백66t)으로 크게 늘어났다. 올해 들어와서는 8월까지 모두 2백37건의 크고작은 사건이 발생해 기름 5천86t이 바다로 흘러들었다. 거의 하루에 한번씩 동해 · 서해 · 남해 어딘가에서 해양 오염 사건이 일어나는 셈이다.

 항만에 드나드는 배가 많아지면 선박 사고나 해양 오염 사고가 늘어나는 게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해운항만청의 한 관계자는 “관리를 철저히 해 해난 사고를 줄일 수는 있으나 완전히 막기는 어렵다. 육상 교통에서 신호체계를 아무리 잘 갖추어도 교통사고가 나게 마련인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해양 사고는 그 피해가 널리 퍼지고 사고를 뒷감당하기가 막막하기 때문에 육상 교통사고에 비길 바가 아니다. 더구나 대부분의 해양 사고가 ‘인재’라고 판가름나는 형편이어서 더욱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부실한 관제 체계가 해양 사고 부추겨
 해양 사고와 관련하여 전문가들은 우리 항만의 관제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해양교통 관제의 기본 장비인 레이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항만은 부산 인천 울산 포항 네곳뿐이다. 그나마 울산과 포항은 대기업 등 항만을 주로 이용하는 쪽의 필요에 따라 시스템을 갖춘 경우이고, 인천항은 89년말 미국으로부터 23만6천7백달러를 주고 산 레이더 시스템이 1년도 못가 고장나 여태껏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과학적인 항만 감시장비의 대표격인 폐쇄회로 텔레비전도 현재 부산과 포항 두군데밖에 없다. 다른 곳은 초단파 · 중단파 무선전화와 같은 통신 시설이 관제 장비의 전부이다.

 관제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은 운항 선박들에게 폭넓은 해상 정보를 효율적으로 제공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외항선 선장들은, 외국에 나가면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데 한국 해역에만 들어오면 항계(항만의 영역 경계)안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고 지적한다.

 해운항만청은 이같은 관제 능력을 보강하기 위해 해상교통관제(VTS)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을 세워두었다. 이 계획에 따르면, 내년부터 97년까지 4백28억여원을 들여 전국 주요 항만에 레이더 23대, 폐쇄회로 텔레비전 15대, 초단파 무선전화 10대 등을 새로 갖출 예정이다.

 일단 바다에 기름이 흘러 오염되었을 때 이를 처리하는 방법은 세가지이다. 가장 효과적인 방제는 흘러나온 기름이 널리 퍼지지 않도록 기름 울타리(오일 펜스)로 가두고 회수기(스키머)로 끌어모으는 방법이다. 별다른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는 물리적 방법이므로 최선으로 평가되지만, 바다 사고의 특성 한계가 있다. 즉 기름이 바다에 쏟아진 후 시간이 지나면 곧 얇은 막으로 퍼지기 때문에 초기에 투입하지 않으면 효과를 얻기 어렵고, 파도가 조금이라도 일면 기름을 제대로 끌어올리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방제정 · 기름회수기 등 장비 태부족
 두번째 방법은 가마니나 볏짚, 인공 섬유 같은 흡착제를 던져 기름을 빨아들이는 것이다. 이 역시 기름이 얇고 넓게 퍼진 상태에서는 별다른 효과가 없고, 기름이 많이 쏟아져 나온 때에는 바다를 모두 덮을 수 없는 노릇이므로 한계가 있다.

 세 번째는 유처리를 뿌려 기름을 화학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이다. 계면활성제와 용제로 이루어진 유처리제는 기름 성분을 물 속 미생물이 분해하기 쉽도록 잔 입자로 나눈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름을 눈에 보이지 않게 잘게 나눌 뿐이지 ‘제거’하는 것이 아니며, 화학 물질을 뿌림으로써 또 다른 공해를 일으킨다는 문제점이 있다(부속 기사 참조).

 물 위에 뜬 기름에 불을 붙여 태워버린다든지 굳혀서 가라앉히는 방법이 개발되어 있으나 모두 부작용이 있어 잘 쓰이지 않는다. 기름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은 위의 세가지 방법을 한꺼번에 쓰게 된다. 이번 광양만 사고에서도 기름 회수기 30여 대를 동원하고 흡착제 1백36㎘를 뿌렸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는 기름 오염 사고가 나면 유처리제 살포를 최고의 방제 수단으로 알고 있다. 이에 따라 유처리제 성분으로 인한 2차 오염 시비가 끊이지 않을 뿐 아니라, 피해 어민과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이 현대적인 방제 조직과 장비를 갖추기 못한 탓이라고 진단한다. 현재 유류 2백ℓ 미만의 소량 요염 사고는 해운항만청이나 수산청 등 해역관리청이, 2백ℓ이상인 대량 오염 사고는 해양경찰청이 방제하도로 R되어 있다. 물론 어느 경우나 1차 책임은 오염을 일으킨 사람이 진다.

 실제로 사고가 나면 해운항만청이나 해양경찰청, 민간 청소업체가 기름 처리를 맡게 되는데, 문제는 이들이 갖고 있는 장비가 태부족이라는 것이다. 우선 오염 방제를 위한 배가 해경에 10척, 항만청에 13척밖에 없다. 기름 회수기도 해경에 33대, 항만청에 8대가 있을 뿐이다. 이것들도 파도가 0.5m를 넘으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가장 기본적인 장비인 기름 울타리조차 해경에 8㎞, 항만청에 16.2㎞만 갖추고 있을 뿐이다. 이 울타리는 대부분 항만 안에서 쓰도록 개발된 것으로, 파도가 조금만 높아도 전혀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 독일 27.2㎞, 일본 77㎞ 등과는 비교가 되지 않고, 영국은 모두 16㎞를 갖고 있지만 10㎞이상이 외해용이라 실질적으로 방제 효과가 뛰어나다.

 해양경찰청 방제과의 한 직원은 “장비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해난 사고는 주로 날씨가 궂은 날이나 밤에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장비를 갖추고 있다 해도 처리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30년간 바다 사고를 담당해온 (주)한국해사감정의 김석기씨는 “사건이 날 때마다 유처리제만 쏟아붓고 기름을 분산시키기만 하는 방제는 제대로 된 것이 아니다. 기름 울타리나 기름 회수기를 갖추어야 피해를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다”라고 말한다.

 또 선박이 많이 지나다녀 항상 사고 위험이 있는 항로 주변 어촌에서 유사시에 긴급하게 쓸 수 있는 방제 장비를 갖추어 두는 일도 중요하다. 가마니처럼 기름을 빨아들이는 효과가 뛰어난 흡착제를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다. 양식장이나 갯벌에 기름이 퍼지면 일단 방제를 해도 수년 동안 피해가 계속되기 때문에 작은 준비로 큰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오염방제 전담기구 만들어야
 항만청이나 해경 등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토로하는 것은, 바다와 그 오염에 대한 관할이 불명확하고 복잡하게 나뉘어 있어 사고가 나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하기가 곤란하다는 점이다. 현재 바다 · 항구와 관련한 업무는 해운항만청 ·해양경찰청 · 환경처 ·수산청, 각 시 · 도가 나누어 맡고 있다. 따라서 신속한 방제가 필요한 상황에서 각 부서간 업무협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방제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게다가 담당 공무원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전문 방제 인력을 키우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외국과 같은 전문 방제센터 형식의 오염 전담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막강한 장비와 인력을 갖춘 연안경비대에서 해상 유출 오염을 담당하며, 해양대기청 산하 유해물질방지부로부터 전문적인 기술을 지원받는다. 영국은 79년부터 해양오염방제청으로 업무를 일원화해 그동안 최고의 오염 방제 기술을 축적했다. 93년 북해 유전 사고 때는 유막을 추적하는 인공위성을 발사했을 정도이다. 일본도 해상보안청과 해상재해방지센터를 중심으로 방제 체제를 체계화하고 있다.

 바다의 기름 오염에 관한 한 우리는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못했고 또 소를 잃어버리기를 되풀이해 왔다. 그럴 때마다 수려한 연근해는 검은 재난을 덮어쓰곤 했고, 바다에서 삶을 꾸려오던 어민들은 기름냄새를 풍기며 죽어가는 바지락이나 피조개를 팔짱을 끼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오염 사고가 자연재해가 아닌 한 그 피해는 줄일 수 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다에 대한 투자’를 늘려나가는 것이다.
許匡畯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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