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로 人間愛 나눈다
  • 이선기 (과학저널리스트) ()
  • 승인 1990.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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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정보의 나눔터 BBS모임… 전국에 회원 2만명

최근 컴퓨터 사용자들 사이에 BBS열풍이 불고 있다. BBS란 ‘Bulletin Board System’의 약어로서 전자게시판을 의미한다. 전자게시판이란 PC와 모뎀이라는 통신장비를 이용하여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개적인 정보의 게시판, 즉 상업성이 배제된 ‘정보의 나눔터’라고 할 수 있다. 그 원리는, 공중전화선을 이용하여 PC와 PC 사이에 연결통로를 만들고 전화요금만 지불하면 PC의 화면을 통해 문자정보를 상호 교환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BBS모임이 창설되려면 모임의 주관자 즉 시솝(Sysop; System Operator)이 필요하다. 시솝의 자격요건은 따로 없고 단지 16비트 PC 이상급의 컴퓨터 1대와 20만원 상당의 모뎀1대, 그리고 BBS운영에 대한 확고한 의지만 있으면 된다.


 현재 BBS 모임은 전국적으로 1백여군데 정도 있으며, EMPAL(엠팔 : 363-8813), 달구벌 네트, 바이트 네트 등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BBS들이다. 국내의 BBS인구는 약 2만명선으로 추정되는데 대부분 대학생과 30대 초ㆍ중반의 직장인들이 구성원이다. 그러나 간혹 국민학생이 시솝을 맡는 BBS도 있으며 무려 7군데의 BBS에 복수 가입한 극성스러운 국민학교 5학년 회원도 있다. BBS 열기는 앞으로 더욱 어린 학생층으로 파급될 것임에 틀림없다.


 서강대 3학년에 재학중인 백용험군이 운영하는 BBS의 경우는 주로 자정 이후부터 새벽 3시까지의 시간의 이용하여 시사성 있는 주제를 선택, ‘터놓고 얘기합시다’식으로 진행된다.

“통신하다보면 누구나 휴머니스트 된다”


 BBS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채팅(Chatting)에 있다. 즉 누구인지 모르는 미지의 회원과 컴퓨터를 통해 만남의 기회를 갖는 것이다. 만일 BBS가 국제적인 규모로 발전되면 프랑스의 일류디자이너와 중국요리사, 아프리카의 탐험대, 그리고 지구 반대편의 국민학생 컴퓨터 천재들과도 디스플레이 화면을 통해 만날 수 있다. 그러한 날은 머지않아 틀림없이 오게 된다. 컴퓨터에 관심을 가지게 된 영국총리나 소련의 서기장이 어느날 당신의 컴퓨터 화면을 통해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고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7백명을 넘는 컴퓨터 동호인들로 이루어진 대형 BBS인 엠팔의 경우, 대학생이 50%가량을 차지하지만 가장 나이어린 등록회원은 국민학교 1학년이고 최고령 회원은 80세다. 중학교시절부터 틈만나면 청계천 세운상가에 드나들어 컴퓨터 경력이 10년째가 되는 엠팔 회원 정재훈씨는 “컴퓨터가 냉정하고 비인간적인 기계라는 낡은 선입견은 버려야 합니다. 통신을 하다보면 누구나 휴머니스트가 되게 마련이죠. 컴퓨터의 세계에서는 독불장군은 그만큼 뒤떨어집니다”라고 BBS예찬론을 편다. 엠팔이 정식발족한 88년 6월부터 지금까지 인간성회복의 도구로서 컴퓨터가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많은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RH마이너스 수혈자를 구하는 BBS 공고 덕분에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일이며, 광주의 한 회원이 부친상을 당했다는 급전이 한밤중에 BBS 화면에 떠오르자 다음날 새벽 버스터미널에 10여명의 회원들이 문상객으로 모였던 일 등 훈훈한 미담을 들려주는 정재훈씨의 표정에서 한국 BBS의 1세대라는 긍지와 신념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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