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대화] ‘북로당’ 자료 처음 소개
  • 김춘옥 편집위원 대우 ()
  • 승인 1990.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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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ㆍ소공동위원회 연구》펴낸 沈之淵교수

87년 한국정치학회보(21집2호)에 게재됐던 한 보고서(작성자: 梁性喆교수)는 한국정치학계의 부정적 특징으로 국내정치연구와 남북한 정치비교연구가 극히 빈약한 점을 지적했다. 전공과 학ㆍ경력이 밝혀진 국내 정치학교수 4백33명 가운데 한국정치 전공교수는 31명에 불과한데 그 이유는 미국에서 한국정치로 박사학위를 받고도 귀국후 정권에 이용될까봐 전공을 국제정치로 바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풍토에서 해방이후의 한국 정치만을 연구해온 沈之淵교수(경남대)의 근저 《미ㆍ소공동위원회연구》(청계연구소 펴냄)는 출간되자 마자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해방후 3년간(45년~48년)의 정치상황은 지난 40년간 우리정치사의 압축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냐, 부르조아 민족주의냐, 등 이데올로기에 대한 논의가 바로 대표적인 예지요. 역사에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도록 그동안 소홀했던 한국정치에 대한 연구작업이 더욱 더 활발해졌으면 합니다.”

 《미ㆍ소공동위원회연구》는 해방 정국논쟁에 대한 심교수의 세번째 연구서다. 86년에 출판된 《해방정국 논쟁사Ⅰ》은 당시 뿌려졌던 (소장자에게 삼고초려해서 간신히 구한) 삐라 5백여장을 분석해서 신탁통치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87년에 발간됐던 《해방정국 논쟁사Ⅱ : 조선혁명론 연구》에서 심교수는 프로레타리아 혁명을 주창했던 좌익과 부르조아민주주의를 외쳤던 우익과의 대립양상을 연구했다.

 이번 저서는 크게 연구부분과 자료부분으로 나뉜다. 연구부분에서 저자는 미ㆍ소공동위원회를 세가지 측면에서 짚어보려고 했다. 첫째로 미주둔군은 반탁진영이 주도권을 장악해서 정부를 수립하기 원했으며 소련은 3상회의의 결정을 지지한다는 명분아래 찬탁진영이 지배하는 정부수립을 꾀했다는 점이다. 둘째로는 당시 태동하던 정당들은 자본가계급의 진출유무에 따라 심각한 견해차이를 보였으며, 다른 한편으로 미ㆍ소 양주둔군은 “호균형을 취하면서 내심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려는” 야심 때문에 남북에서 태동한 정치집단들은 민중의지지 여부를 떠나 이들 외세와 결탁해서야 비로소 권력투쟁에서 승리했다는 점이다. 세번째로 저자는 남로당과 북로당의 정책구상을 비교했다.

 북로당은 북한에서 실시됐던 제반 개혁들을 남한에서도 확대ㆍ적용함으로써 통일정부를 수립하자고 주장한 반면 남로당은 통일정부수립 문제만은 미ㆍ소 공위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고집했다가 그후 미ㆍ소 공위가 결렬되자 남로당이 붕괴했다는 것이다.

 비교하면서 미ㆍ소공위가 결렬된 후 남로당이 왜 붕괴했는가를 살펴보았다.

 3백87면중 2백12면에 할애된 자료 가운데는 통일원자료실에 보관돼 있는 마이크로필름을 풀어 쓴 북로당관계 자료와 워싱턴 국립기록센터에서 찾아낸 미ㆍ소공동위원회관계 자료들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소장 정치학자로서 확고한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심교수의 앞으로의 계획은 해방정국에 존재했던 세당 가운데 인민당(한민당과 조선신민당은 이미 연구됨) 연구와 각 정당간의 논쟁을 주제별로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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