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민주 新야당 추진 무소속 李哲의원
  • 박중환 편집위원대리 ()
  • 승인 1990.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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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당합당에 분노와 배신감”

국회의사당 의원회관 441호에서 만난 李哲의원의 표정은 침통했다. 악수를 나눈 뒤 의자에 앉자마자 “‘盧통’옆에 나란히 서 있던 두 金씨 사진봤지요.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라고 대뜸 물어왔다. 얼떨결에 “22일 청와대회담 장면 말입니까”라며 대답을 하려 하자 그 사이도 참지 못하겠는 투로 말을 이었다. “盧대통령의 경호원들 같지 않더냐”는 자문자답이었다.

 李哲의원과의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금배지를 단지 6년이 되었는데도 그의 말투는 여전히 ‘민주투사’이다. 그가 살아온 42년을 보면 그 체취를 쉽게 털어버릴 수 없을 듯하다. 그는 1948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부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9년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재학중 민청학련사건으로 비상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1년후 형집행정지로 출감했으나 80년의 광주사태 배후인물로 엮어지면서 다시 옥살이를 하게 됐고, 84년에야 풀려났다. 그 이듬해 2ㆍ12총선 때 신민당후보로 출마, 당선되어 12대 국회의원으로서 제도권에 진입했다. 그리고 그는 6ㆍ29선언 직후 김대중ㆍ김영삼 두사람이 등을 돌려 분당하자 총합을 외치면 무소속으로 남았다. 그는 13대국회 총선에서 무소속의 설움을 딛고 ‘홀로서기’를 이루어낸 재선의원이 되었다. 그후 평민ㆍ민주 양당의 통합을 주장해오다 두 김씨가 있는 한 통합이 어렵다고 판단, 최근에는 범민주 야당의 창당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상임위 활동과 국정감사 등을 통해 ‘교원 정보부’ ‘전교조 대책회의’, 얼마전에는 ‘5공 언론공작’의 내막을 정확한 자료로 밝혀내 국민의 시선을 모으기도 했다.

● 1盧2金의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통합선언을 처음 알게 된 순간 어떤 기분이었습니까?

엄청난 분노와 배신감이 덮쳤습니다. 침을 뱉고 싶은 기분이었고, 그 발상과 야합에 대해 저주감까지 가득했습니다.

● 정보에 밝다는 李의원은 3당이 통합한다는 소식을, 보도가 되기 전에 어느 정도 알았습니까?

언론에 보수대연합의 가능성이 보도돼 설마 했습니다. 민정당은 연말까지만 해도 평민당과 연합할 듯하다가 민주ㆍ공화 두당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를 합종이라 말하지만 사실은 정치사기극을 연출한 것입니다. 이런 야합은 지난 연말에 가시화됐지만, 그 연원은 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5공말기에 일본 자민당을 모델로 해서 만들었다는 ‘2천년대 장기집권 계획’과 흡사합니다. 4ㆍ26총선 직후 민정당이 이 계획을 시도하려 한 적이 있지요. 그때는 여의치 않자 보류했다가 지난 연말 구체화해 실현시킨 것으로 봅니다.

● 3당의 통합으로 4ㆍ26총선에서 국민들이 만들어준 여소야대의 4당구조가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국회의 代議性을 비춰볼 때 정치인들이 정계의 구조를 변경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인위적인 구조변경은 ‘정치쿠데타’라고 비난하는 쪽도 있습니다만.

나는 정계구조를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수는 없다고 봅니다. 4ㆍ26총선의 투표결과는 단순히 4당으로 나누어진 것이 아니고 민주와 반민주로 나누어졌다고 봐야 합니다. 민정당에는 쿠데타세력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표가 모였고, 평민ㆍ민주 양당에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반민정당 표가 모였습니다. 공화당 표는 지역성에 근거를 두었다고 볼 수 있지요. 반민정당 표로 60석의 의석을 갖게 된 민주당의 총재와 간부들이 국민이 던진 표의 향방과 성격을 무시하고 자신의 입지를 위해 편의적으로 바꾼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李의원의 말대로라면 4당구조를 민정당ㆍ반민정당의 양 세력을 대칭시키는 구도로 보는 듯한데요?

오히려 민중연합과 반민중연합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반민중연합은 3ㆍ4ㆍ5공화국의 쿠데타세력과 그들의 비호세력들로 구성돼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반민중연합세력들이 보수를 자처하는 것은 그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보수의 위장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처럼 반민중세력들이 보수인 양 외칠수 있는 데에는 정치질서를 왜곡시키는 두가지 요인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남북분단으로 군이 비대해졌고 이념이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런 분단 상황을 악용한 쿠데타세력들의 정권찬탈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쿠데타는 5ㆍ16, 유신, 10ㆍ26, 12ㆍ12 등 네차례나 있었지요. 이같은 보수의 위장을 벗기지 못한 데 대하여 정치인의 한사람으로 결과론적인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 정통야당이었던 민주당이 거대 보수여당인 민주자유당에 들어가 민정ㆍ공화 두 당과의 조화를 이루려면 많은 걸림돌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민주당의 전신인 신민당에 12대 때 원내로 몸담았던 경험에 비추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으로 봅니까?

김영삼ㆍ김종필 두 私黨이 ‘보수대야합’에 참여해 얼핏 보기에는 잘 되어가는 것 같이 보이지만 2~3개월 지나면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은 3당이 현실적 이해에 급급해 ‘대야합’에 일치된 듯하지요. 그러나 3당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할 단계에 이르면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지요.

● 구체적으로 그 균열이란 어떤 것일까요?

 예컨대 지구당위원장의 자리는 하나인데 세 당이 합쳐졌으니 최소한 3배수로 늘어난 셈이어서 조정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지요. 중앙당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지역구 당원의 체질이 여당과 야당 사이에 큰 차이가 있어 그들이 서로 어울리기는 아주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중앙당 간부쯤 되면 총재의 노선에 쉽게 적응하는 성향이 있지만 지방의 평당원은 사정이 다릅니다.

● 지구당 위원장의 조정문제는 한 선거구에 2~6명씩 뽑는 일본식 중선거구제를 도입해 해결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그것만으로 3배수를 해결할 수 없을 것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13대부터 소선거구제를 도입하면서 의원수가 2백29명으로 상당히 늘어났습니다. 중선거구제를 도입하려면 현재의 2백24개 선거구를 1백~1백50곳으로 줄여야 합니다. 더욱이 원내의석을 7백~8백명씩 무작정 늘려 평통자문회의처럼 만들 순 없지 않겠습니까.

● 지자제 의회 의원선거가 예정대로 올 상반기에 있을 듯합니다. 만약 민주자유당이 창당된 이후 치루어진다면 결과는 어떨가요?

아마 민주자유당이 독차지할 것으로 봅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의회구성과 같은 선거는 본래 여당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는 데다 거대한 보수여당이 생겼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총선거와 대통령선거가 있다면, 그때에는 국민적 지지가 상대적으로 야당쪽에  크게 몰릴 것이라 기대섞인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 거대여당의 창당으로 민주당내 통합파의원 중 상당수가 대열을 이탈하는 등으로 통합파들의 입지가 상당히 어려워졌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통합파의원들의 움직임은 긴박하게 돌아가는 듯합니다만 앞으로의 대책을 마련한 것이 있는지요? 

민주당의 잔류의원과 평민당의 범야민주세력 통합을 주장하는 의원, 그리고 무소속의원 등을 축으로 원내의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원이 아마 20명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원외이지만 조순형ㆍ홍사덕씨 등 민주대열에 잔류해 있는 옛동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온건민주적인 재야ㆍ학계ㆍ종교계ㆍ법조계에도 우리들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많이 있다고 봅니다. 이들 원외세력을 힘의 축으로 합해서 진정한 민주연합정당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마지막 단계에서 평민당을 포함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 최근 며칠새 통합파의원들이 자주 만나 대책을 숙의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직 구체적인 통합계획을 세우지 못한 듯하군요.

지금 평민당의 사정이 매우 어려워져 이 당에 소속된 통합파의원들의 몸가짐도 그만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 잠시 지켜보는 상태에 있습니다. 김대중 평민당총재가 살신성인의 결단을 내려야 할 때인데 그럴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 실망이 큽니다. 지금은 민주세력권내에 힘의 축을 분야별로 형성하는 데 주력하는 단계입니다. 민주당 잔류의원들은 이미 모아둔 돈으로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사무실을 곧 열 것으로 보이고, 평민당 통합파의원들도 약간씩의 돈을 거두어 사무실을 마련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어느 정도 진척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 화제를 조금 달리해 이번 정계개편의 씨앗이 된 색깔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색깔론 자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앞서 지적한대로 한국 정치가 보ㆍ혁구도가 아닌 쿠데타세력과 반쿠데타세력으로 나누어져야 한다고 보고 있어요.

● 그렇다면 우리사회에는 진정한 보수세력이 없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혁신세력은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합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사회에 진보, 혁신 그리고 주체사상파까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계에는 다소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세력은 있겠으나 혁신세력은 없고, 있을 수도 없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이런 현실로 미루어볼 때 보ㆍ혁의 논리란 전혀 타당성이 없는 셈이지요. 요즘 보ㆍ혁논리와 보수대연합의 야합을 보면 권투선수가 상대할 선수 대신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시합을 벌이는 꼴이지요.

● 보수대연합의 기류는 경제위기론과 기득세력의 불안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1955년 일본의 자유당과 민주당이 통합해 자민당이 창당될 때에도 이와 같은 분위기가 가중되면서 촉진되었다고 역사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일본수상를 지낸 후쿠다씨는 그의 회고록에서 당시 경제위기론과 보수위기론은 자유당과 민주당의 통합을 위해 보수그룹에서 주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의 보수기류도 이런 맥락에서 보는 시각도 있는 듯합니다.

 과연 우리 경제가 위기상황입니까? 저는 침체라고 봅니다. 침체의 원인은 우리 경제가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구조문제와 미국의 통상압력에 있다고 분석합니다. 쿠데타세력들은 마치 좌파가 노동계와 학원을 지배하려 하기 때문에 대처해야 한다는 논리로 탄압하지만, 그런 논리는 공작입니다. 이런 공작은 이미 예측되어온 시나리오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 어쨌든 보수대연합은 현실화됐고 거대여당인 민주자유당은 앞으로 계보정치를 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 정치문화속에서 과연 계보정치가 제대로 될지 의심을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만?

여당 정치인들의 생리를 보면 힘이 있는 곳에 몰리지요. 일본의 자민당은 이와 많이 다릅니다. 일본에서는 오야붕과 꼬붕 관계가 철저하고 협상결과에 대해 깨끗이 승복하는 풍토가 마련되어 있지요. 그러므로 자민당의 계보정치는 가능하지만 한국의 여당에선 자민당과 같은 계보정치가 불가능하리라고 믿습니다. 자민당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더 해야겠습니다. 창당될 민주자유당을 자민당과 비유하는데, 그것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자민당은 건전한 자유당과 민주당이 통합한 정당이지만 민주자유당은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공화당과 민정당을 뿌리로 해 출범했다는 점에서 부도덕한 정당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광주만행과 같은 엄청난 일을 저지른 정당을 일본의 자민당과 비교한다는 것은 애당초 잘못이지요.
 
● 李의원은 통합파의원 중 김대중ㆍ김영삼 두 총재에 대해 노골적인 비난을 다소 자중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런 자세는 두 김씨에 대한 비난이 양당의 통합에 바림직하지 않기 때문에 취한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보수대연합에 합류한 이 시점에서 김영삼총재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겠습니까.

 김영삼씨는 자신의 영토를 버리고 민정당에 투항한 패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날 김영삼씨가 보여준 반독재투쟁은 존경받기에 충분했지요. 한때 단식투쟁으로 사경을 넘는 결단도 보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대통령선거 때 ‘군정종식’을 외쳤던 그가 갑자기 그 ‘군정’에 합류해 5공를 계승하겠다고 스스로 나선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습니다. 김대중씨도 이 단계에서 새로운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도 자신의 현 입지를 고수하기에 급급해 한다면 더 큰 비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 올봄 정국이 불안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국민들이 많습니다. 평민당이 1천만명 서명운동과 개헌부당성을 장외집회로 맞서 보수대현합의 구도를 저지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노동계의 春鬪와 겹치게 되면 봄 정국은 다시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법도 한데?

신당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1盧2金이 화해ㆍ용서ㆍ단합을 위해 합당을 한다고 말했지만 그런 修辭와는 달리 오히려 불화와 분열이 생길 것입니다. 정치는 국민의 뜻을 통합하는 장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국민의 여론을 금가게 만들어놓았습니다. 농담이지만 부산에 있는 주유소는 올봄 아마 기름장사가 잘 될 것 같군요. 화염병이 다시 날을 것 같기 때문이지요.

● 2월 임시국회가 열리면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향후 자세를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3당이 현격한 견해차를 보였던 국가보안법 등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주목됩니다.


 제가 소속된 문공위만 해도 개정해야 할 법안이 많습니다. 방송법의 경우 민정ㆍ공화당의 이견으로 개정을 못하고 있는데 민주당이 여당에 가세하게 됐으니 개정하기는 틀린 듯합니다.

● 李의원은 상임위 활동에서나 국정감사에서 어는 의원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폭로해 스타가 된 의원으로 알려졌는데 무슨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는 것 같은데요?

문공당국에 스파이를 많이 심어놓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지만 그런 것은 없습니다. 의원 사무실과 지역구 사무실에서 무보수로 일해주는 10여명의 선후배들이 자료를 수집ㆍ정리해주어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소속이라 당직도 가질 수 없고 그만큼 행동반경도 좁아져 한계를 많이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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