孔魯明 외교안보연구원장
  • 김춘옥 국제부장 ()
  • 승인 1992.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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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찰과 상호사찰 별개”


 “해라” “못한다“ ”된다“ ”안된다“. 냉전시대의 판문점 정전회담에서와 같은 ‘벙어리 귀머거리의 대화’가 남북한 핵통제공동위원회에서 오가고 있다. 고함으로 일관됐던 지난달 27일의 이 위원회 회담 이후 남북한 합의서가 휴지 조각이 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우려도 일고 있다.

 우리측 孔魯明 위원장(60·외교안보연구원)은 그러나 낙관적이다. 그의 낙관이 33년 간에 걸친 개인적 외교관 경험에서 나온것인지의 여부는 두고봐야 할 것이다. 주 러시아 영사처장에서 지난 1월18일 외교안보연구원장으로 취임한 공원장을 만났다.

 

핵통제공동위 5차 접촉이 고함으로 끝난 이유는 무엇입니까?

고함은 노상 있으니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한번은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북한군 3명을 사살한 사건을 거론하자 북측이 “의제와 상관없는 것 왜 거론하느냐”고 발끈하기에 “당신이나 나나 회담대표인데 이는 합의서 위반 아니냐”고 맞받은 적이 있습니다. 또 한번은 내가 “핵문제 해결 않으면 미·일과의 관계개선도 안된다”고 하자, 북측이 “우리는 자주로 살지만 남쪽은 미·일을 추종하며 산다”고 해서 “그 말 취소하라”고 소리친 적이 있습니다.

 

핵통제공동위 운영이 교착상태에 빠진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5월27일 이전에 세 번에 걸쳐 위원접촉을 해서 사찰규정을 구체적으로 만들기 위한 문안작업을 하기로 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북측에서 사찰규정 이전에 이행합의서 내용을 토의하자고 제의해왔기 때문입니다. 그 주장을 보면 비핵공동선언은 선언 형식이므로 불충분하고 구체적 이행합의서가 있어야겠다는 것이었어요. 우리는 애초부터 비핵공동선언 그 차체가 집행적 조항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를 검증하기 위한 사찰규정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양쪽에 필요한 것은 사찰을 실시하기 위한 사찰규정을 마련하는 것이지요. 저쪽에서는 자꾸 이행합의서를 먼저 만들자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국민학교 시간표처럼 첫 시간에는 사찰규정을, 둘째 시간에는 이행합의서를 토론하자고 제안했지만 결국 안됐습니다.

 

우리측 사찰방안의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물론 남북의 합의를 거쳐야겠지만 일단 우리측의 방안은 이렇습니다. 사찰의 대상은 핵물질 핵시설 협의가 있다고 일방이 주장하는 핵무기와 핵기지 등 4가지입니다. 사찰방식은 첫째 1년에 4번씩 최대 16곳의 핵시설을 대상으로 하는 정기사찰이 있습니다. 16곳이라지만 4곳일 수도 있고 1곳만 4번 사찰할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는 혐의가 있는 장소(40군데)를 선정하여 이를 수시로, 가급적 짧은 시간(24시간) 전에 통보한 뒤 사찰하는 이른바 특별사찰입니다. 북한이 특별사찰에 반대하는 이유는 ‘상대방이 지정하고 쌍방이 합의한 곳’을 사찰하기로 한 비핵선언 위반이라는 것이죠. 상대방이 지정했다고 해서 다 열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열어보이자는 것이고, 그래야 의심이 풀리지 않겠느냐 하는 주장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는 납득할 만한 우유를 대야겠지요. 유럽에서는 세부사찰은 안돼도 최소한 시각적 사찰은 허용합니다.

 

남북 상호사찰에 미국측의 참가를 고려하고 있습니까?

애초부터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국내 능력만으로도 얼마든지 검증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국가기술수단(NTM)을 동원해서 수집된 정보를 우리와 공유할 것입니다.

 

핵 문제로 남북합의서에 규정된 분과위 활동이 마비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까?

남북대화가 모두 정지된 것은 아니고 분과위 토의는 계속한다는 입장입니다. 또 남북 간에 공식 대화채널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지만, 북한은 여전히 대화의 장 밖에서 종래의 통일전선 차원의 일을 하는 등 이중적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범청학련 결성, 범민족대회 등이 그것입니다. 또 최근들어 북한이 남한 기업과의 개별 접촉을 통해 합작유혹을 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습니다. 북한은 남쪽기업과 직접 접촉하겠다는 입장을 일방적으로 고집하고 이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교류협력분과위에서는 정부당국의 승인 아래 민간교류를 하자는 제안에는 집요하게 반대하면서 돌아서서는 개별접촉을 꾀하는 것은 대회의 신뢰를 해치는 일입니다.

 

최근 한·미·일의 대북한 압력이 가중되고 있고 북한이 국제사찰을 받고 있는 만큼 그 결과를 기다려봐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우리도 국제사찰 결과에 관심을 갖고 있고 그 결과에 따라 대응방안도 찾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라는 국제기구에 의한 사찰이고, 상호사찰은 비핵선언에 따른 남북 간의 사찰이기 때문에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견해는 남북간에 상호사찰이 이뤄져야 북한의 비핵화 조처를 확실하게 검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국제원자력기구 사찰은 북한이 신고한 핵물질 및 시설만의 사찰인 반면, 상호사찰은 상대방이 지정하고 쌍방이 합의한 것을 기본으로 특별사찰을 통해 의심이 가는 대상을 사찰할 수 있어 핵의혹 해소에 적절한 수단입니다.

 

이동복 고위급회담 대변인의 기자간담회 내용 즉 북한이 플루토늄 15kg을 생산했다는 내용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처럼 별도의 발표를 한 배경은 무엇입니까?

글쎄요. 핵 문제에 관한 정부 대변인은 핵통제공동위원장입니다. 따라서 이동복대변인의 발언은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닙니다. 그날 모임도 ‘발표’가 아니라 그저 대변인이 자청해서 가지들과 비공식적인 간담회를 했을 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이 대변인이 말한 것도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 ‘그러한 가정이나 계산이 있을 수 있다’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지난 1일의 정부내의 남북관계 고위전략회의에서는 어떤 방안이 논의됐습니까?

논의의 내용을 모두 공개할 수는 없지요. 대체적 골자는 핵문제의 조기해결이 남북관계진전에 필수적임을 북한측에 알아듣도록 만드는 방안을 논의한 것입니다. 이미 정원식 총리가 북한을 상대로 발표한 성명도 논의된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렇다고 당장 핵통제공동위를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북한이 적절한 시기에 생각을 바꾼다면 검토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 전략은 한·미·일 3국협력 등 국제적 압력이 중심이 되는 것입니까?

일단 우리 스스로도 여러 가지 설득방법을 갖고 있습니다. 남복관계 진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많은 말은 여러 가지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 모두 국제사찰뿐만 아니라 상호사찰이 만족스럽게 이뤄져야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이 국제사찰만으로 넘어갈 수 있으리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미국 일본은 이미 각각 자기의 채널을 통해 그런 입장을 전달했고 유럽 각국도 곧 그런 의사를 전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제사찰에서 북한의 핵위험이 밝혀지지 않을 경우 상호사찰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한스 블릭스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의 평양방문은 우리가 그 동안 가져온 의혹을 몇가지 풀어주었습니다. 영변에 북한이 짓고 있는 핵시설 가운데 건물이 80% 설비가 40% 완성된 것이 있는데, 그것이 재처리시설이라는 것입니다. 북한은 이를 방사화학실험실이라고 부르는데 국제원자력기구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이것이 틀림없는 재처리시설이라고 합니다. 또 북한은 미량의 플루토늄이 추출되었다고 하는데 그 양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를 밝히지 못한다면 불완전한 사찰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국제사찰 결과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과 상호사찰을 별개입니다. 북한은 바로 이점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국제사찰을 통해 유리해진 국제여론을 배경으로 상호사찰 협상에 입하겠다는 속셈인 모양인데, 국제사찰은 그 자체가 제약이 있어 의혹이 가실 수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정부는 일본이 조·일수교회담에서 핵문제에 대해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평가합니까?

일본은 북한의 핵개발이 자국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중요한 문제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미 수교회담에서 그런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나카히라 조·일수교회담 일본측 대표 역시 북한 핵문제가 만족스럽게 해결되지 않으면 관계진전은 어렵다는 말을 했습니다.

 

핵사찰을 유엔 안보리에 상정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습니까? 국제원자력기구가 북한이 핵시설과 물질을 은폐하고 있음을 입증하지 못해도 안보리 상정이 가능합니까?

그것은 하나의 가능성에서 장차의 문제로 남아있을 뿐 현실적인 문제로 정부 내에서 검토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국제사찰의 결과 중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그 시정을 국제기구가 북한에 요구했는데도 북한이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 제기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상호사찰 불이행을 근거로 제기할 수는 없습니다. 아직은 그런 문제를 이야기할 단계가 아닙니다.

 

북한이 상호사찰을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 생각에는 북한이 비밀리에 핵개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만약 북한이 비핵선언을 진지하게 이행하려 한다면 상호주의에 입각한 사찰을 이처럼 완강하게 거부할 이유가 없지요. 북한은 군사기지를 개방해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모양인데 자기들은 남한의 미군기지를 보겠다면서 왜 자기쪽 군사기지는 핵기지가 아니라면서 안보여주겠다고 하겠습니까.

 

이를 북한 내부의 남북협상파와 군부강경파가 있어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가능하다고 봅니다. 동서의 모든 군축사찰의 원칙은 대칭과 상호주의였습니다. 그런데 북한만은 자기들은 보여주지 않으면서 상대방만 보려고 합니다. 속된말로 얌체라고나 할까요, 말도 안되는 주장입니다. 우물쭈물해서 신고된 것만 국제사찰을 받고 국제여론을 무마할 수 있으리라고 오산을 한 것 같습니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과연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을까요?

그에 대해서는 몇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첫째는 김주석의 말처럼 북한이 핵개발의 능력이나 의사가 없다는 가설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최소한 65년부터 IRT-2000이라는 실험용 원자로를 갖고 있고 80년부터 일체 외국사람이 참가하지 않은 채 제2원자로(5MW출력)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가스 냉각식으로 영국이나 프랑스가 원자탄을 개발할 때 사용한 것과 같은 종류입니다. 또 위성사진이나 한스 블릭스 총장의 방문에서 핵시설의 존재가 드러났습니다. 이같은 의혹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두 번째 가설은 북한이 핵개발을 해왔지만 그동안의 국제적 압력과 어려운 국내사정을 고려하여 일본의 경협,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한 셋방세계로의 진출을 위해 개발을 중단 또는 포기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입니다. 이런 가설을 믿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세 번째는 상당 정도 핵연구와 개발이 이루어졌고 플루토늄도 상당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가설입니다. 소련 KGB의 정보에 따르면 이미 기폭장치를 개발했다고 하며 또 《코메르산트》라는 모스크바의 경제주간지에 따르면 57kg의 플루토늄이 북한에 밀수됐다고 합니다.

 

정부는 세 번째의 최악의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정책을 마련하고 있습니까?

그것을 꼭 내입으로 말해야겠습니까. 정부는 허황된 것보다는 사실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항상 안전영역을 두고 생각해야 합니다.

 

사찰방안을 일부 수정하여 타협의 여지를 찾을 계획은 없습니까?

현재 우리의 사찰방안은 상당히 훌륭한 것입니다. 서로의 의심을 해소하는 데 가장 적합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사찰 대상 가운데 절반인 곳이 군사시설인데 그것도 북한측과 협의를 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지금은 아직 토의도 시작하기 전에 문 앞에서 옥신각신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북한이 사찰에 성의를 보이지 않을 경우 대우그룹의 합작투자 등 남북경협을 유보할 방침입니까?

이미 밝힌 바와 같이 경제교류는 핵문제의 해결을 기다린다는 입장입니다. 두만강 특구개발은 아직 계획단계이기 때문에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고향방문단 교환 등 인도적 차원의 교류는 영향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회담대표로서의 역할과 외교안보연구원장으로서의 역할 가운데 어느 쪽에 비중을 두고 계십니까?

회담대표 일에 8할 정도의 시간을 쏟아야 합니다. 대표끼리도 모이고 회담 준비에 상당한 시간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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