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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 반바지로 본 거리의 사회학

건강미 살린 ‘즐기는’패션…다리 노출은 사회진출 상징

우정제 기자 ㅣ 승인 1991.07.25(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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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백화점 미니특설매장의 아르바이트 사원 신모씨는 최근 매우 난처한 일을 겪었다. 아랫배가 나온 40대의 고객으로부터 미니스커트를 입어보겠다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전형적인 중년 체격의 이 부인은 용강하게도 무릎 위로 20cm가 올라간 초미니를 골랐다. 치마를 입어본즉 결과는 매우 심각해서, 죄어진 치마폭 속에서 최대한 강조된 ‘군살의 산’을 보며 판매원 신씨는 그만 할말을 잃었다. 그러나 부인은 만족스러워하며 같은 제품으로 넉장을 주문했다.

 젊어지고 싶다는 여성의 영원한 명제 앞에 누가 반기를 들 수 있을까. 올 여름 여성들의 최고인기 패션으로 등장한 미니나 반바지 매장에서는 이와 같은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10대로부터 30대 주부에 이르기까지 미니 애용자가 늘고 있으며 짧은 바지는 연령과 장소, 몸매와 상관없이 더욱 폭넓게 입혀지고 있다.

 시내 유명 백화점들에 따르면, 미니와 반바지의 매출은 지난해에 비해 30% 가량 늘었다고 하는데 판매율에 있어서는 2 : 3 정도로 반바지가 더욱 강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낱장 판매를 위주로 하는 캐주얼(간편복)뿐 아니라 정장류 부문에서도 반바지가 최고 인기품목으로 올라 올여름 여성의류업체 하의류 총매상 70%를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올해 유행하고 있는 미니와 반바지의 길이는 무릎 위7?30cm. 몸을 죄는 밀착형과 함께 테니스복 하의를 본딴 A라인 미니, A라인 핫팬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여간 날씬하지 않고서는 옷태를 내기가 힘들지만 “일단 입겠다고 결심한 이상 조금이라도 더 짧게 입으려는 공통된 심리를 보이며 이같은 경향은 나이와도 큰 상관이 없다”고 판매원들은 귀띔한다. 일반적으로 미니는 허리사이즈 26인치, 반바지는 28일치를 넘지 않는 여성에게 적합한데 이같은 ‘마지노선’을 지키는 것이 패션감각을 살리는 길이다.

일상복으로 뿌리 내린 스포츠웨어
 현재 시중에느 면 · 마 · 스판 등 다양한 소재의 상품이 쏟아져나와 있고 수입 실크를 사용한 고급 제품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캐주얼의 경우는 최하 4천원부터 6만원 선, 실크 제품은 4만?8만원 선인데 실크 제품의 인기는 소비 성향이 높은 한국여성들의 ‘고급 · 고가 신드롬’을 잘 반영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운동복이나 피서지에서의 레저복으로 입혀지던 반바지가 여대생이나 직장여성, 중년주부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애용하는 외출복이 된 데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우선 60년대를 풍미했던 미니의 복고현상이 세계적으로 일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80년대를 통해 이루어진 제반 생활양식의 변화가 캐주얼 붐과 함께 스포츠 레저복의 급속한 보급을 가져오는 등 패션환경의 일대 변화를 초래했다. 여기서 격식을 찾기보다 내 편안함을 중시하는 사회추세가 반영돼 반바지 선풍이 일어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풀이한다.

 성균관대 황선진 교수는 이같은 유행의 가장 직접적인 이유로 건강과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꼽는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에어로빅이나 수영 등으로 몸매를 단련하는 여성들이 부쩍 늘어났고, 이같은 스포츠의 생활화를 통해 스포츠웨어가 거리로 나오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요즘 여성들에게 인기있는 반바지 스타일은 조깅팬츠에서 온것이고 타이즈처럼 몸에 착 달라붙는 레깅스는 자건거 선수들의 사이클링 팬츠를 응용한 것이다. 도 중년 주부들의 클래식한 반바지는 골프복을 모방하는 등 스포츠에어는 이미 일상복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황교수는 또 중산층 여성들 사이에 일어난 스포츠 붐에는 변화된 미의식이 크게 작용했다고 진단하다. 80년대 말 미국에서 여배우 제인폰다에 의해 주도된 ‘군살빼기’ 운동 등의 영향으로 세계적으로 탄탄한 근육미가 새로운 여성미로 제시되자 너도나도 스포츠로써 건강하고 싱싱한 아름다움을 가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군살이 없는 건강한 몸매로는 가수 마돈나가 대표적인 모델이 되었다.

 반바지 열풍의 또다른 원인은 편안함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공통 심리라고 할 수 있다. “반바지를 한번 입으면 다시는 치마를 못 입는다”는 말이나올 만큼 벗기가 싫어진다고 하는데 미니스커트보다 훨씬 활동이 편해 직장 여성들의 출근복으로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이경우는 반바지 위에 재킷을 걸침으로써 숙녀다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하지만 상하의 한 벌로 보다는 캐주얼한 반바지 위에 클래식한 재킷을 걸치는 ‘짝짝이’ 스타일이 유행이다.

 패션평론가 허준씨는 이와 같은 현상을 기존의 획일성에 대한 젊은 세대의 거부 심리로 풀이하면서 이제 패션의 개념은 ‘입는 것’에서 ‘즐기는 것’으로 변했다고 설명한다. 많은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비슷해진 근래에와서는 대와 장소와 목적에 따라 옷을 가려입던 과거의 TPO(Time Place Occasion)개념이 무너지고 FOP(Formal Official Private)개념이 새로이등장해 프라이비트, 즉 ‘개인의 욕구와 취향’이 의복 선택의 주된 동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결혼식장에 갈 때나 문상을 갈 때, 직장에 출근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으려는 이러한 경향은 취미생활과 레저붐을 타고 미니와 반바지 선풍을 마들어 냈다고 설명한다.

 이화여대 의류직물학과 임숙자 교수 역시 미니와 반바지 현상을 젊은 세대의 자기 표현으로 해석했다. 임교수는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 등 80년대에 치른 두차례의 국제 스포츠 행사가 한국 젊은이들의 옷 감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대학생층에서는 특해 해외연수 등 빈번한 국제교류가 캐주얼의 문화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한다. 또, 젊은 층이 미나나 반바지를 선호하는 데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과 자유로운 자기 표현의 욕구, 남을 의식치 않는 개인주의 심리가 복합되어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반바지를 여기저기 찢어 입는 ‘해괴한’ 현상은 젊은 세대의 반항적 파괴심리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서구에서 수년 전에 일어난 이 유행은 지난해 국내에도 상륙, 서울 압구정동이나 방배동 카페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되었다. 허벅지에 구명을 내 맨살을 드러내거나 둔부를 찢어 안에 레깅스를 받쳐 입는 이 유행은 보는 이에게 성적 연상을 불러일으키려는 심리로도 풀이되고 있다.

핫팬츠는 과도기적 스타일
 한편 서울대 의류학과의 김민자 교수는 패션의 내적 자율성을 강조하며 주기성 이론으로 미니현상을 풀이한다. 패션이란 항상 일정 기간을 단위로 되풀이되기 마련인데 20세기에는 30년 주기설이 가장 유력하다는 것이다. 60년대의 미니가 90년대에 다시 찾아왔고 핫팬츠는 항시 미니에서 맥시(복숭아뼈나 그 아래로 내려오는 치마)로 갈 때 나타나는 과도기적 스타일이라고 설명한다.

 64년 메리 퀸트에 의한 창안된 미니스커트는 기존의 심미안에 대한 일대 반격이었다. 지구촌의 여성들로 하여금 일제히 허벅지를 드러내게 한 이 ‘사건’은 패션에 있어 새로운 애로티시즘의 표현이자 여성해방의 한 표현이었다. 여성의 몸에서 다리가 매력의 최고봉으로 등장했으면 동시에 다리는 여성의 사회진출과 지위 획득을 의미했다. 고대로부터 이미 다리를 노출해온 남성들에게 있어서는 다리는 곧 ‘활동’과 ‘경제력’을 상징했는데 이제 여성들도 남녀평등을 외치며 다리를 드러내게 된 것 이다.

 복식사에 있어 하나의 혁명으로 불리는 이와 같은 사건은 실은 1920년대에도 잠시 나타났었다. ‘선구적인’ 직장여성들에게 의해 1927년 사상 최초로 무릎을 드러내는 외출복이 탄생했다. 뭇남녀의 경원과 질시를 한몸에 받았던 이들 여성들은 퇴근 후 술집에 들러 한잔하기는 즐겼는데 이를 비꼬아 이 옷에 ‘바람잡이 스타일’이라는 불명예스런운 딱지가 붙었다.

 사내아이 차림의 이들 ‘바람잡이’들 역시 종래 여성들의 이상적 아름다움이었던 어머니의 이미지를 거부했다. 풍만한 가슴에 졸라맨 허리, 부풀린 엉덩이의 곡선 대신 이들은 무릎을 드러내고 중세 말 이래 5백년동안 착용해온 코르셋을 벗어던지게 되는데, 이는 60년대의 미니 애호가들이 브래지어를 벗어던진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아무튼 60년대 서구의 여성해방운동은 그후 실패한 운동으로 판정이 났다. ‘육감적인 여자’를 거부사고 가정으로부터의 해방을 선언한다는 것이 오히려 허약한 여성상을 만들어냈다. 인형처럼 머리를 부풀리고 납작 가슴을 만들다 보니 튀기(당시의 대표적 모델)같이 깡마른 몸매가 선풍을 일으키게 되었다. 요즘 젊은 남성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무스형 머리손질 역시 60년대식 ‘피터팬 신드롬’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찰이 자막대기를 들로 아가씨의 위를 쫓던 60년대 말 한국의 미니는 서구의 여성해방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무릎 위 30cm’는 사회의 풍기를 문란케 하는 단속의 대상이렀을 뿐 성의 해방을 의식한 여성들의 주체선언은 아니었다. “40?50대 부인들까지도 미니를 안 입으면 안될 듯이 느꼈던” 그 시절에는 유행이 개성을 무시하는 사회의 획일적인 ‘압력’이었다.

한국여성 패션은 이미 국제 수준
 60년대와 달리 최근의 유행이 다양한 스타일 속에서 미니와 핫팬츠의 공존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이는 사회의 성장이 일정 수준에 이르러 소비자가 능동적으로 옷을 선택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기 때문인데, 괄목할 만한 의류산업의 발전도 여성들의 패션감각을 길러준 큰 요인이 되었다.

 한편 보다 큰 시각에서 볼 때 이와 같은 패션의 다원화는 후기 산업사회의 특징적 현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절대가치가 무너진 이 시대에는 패션에 있어서도 갖가지 교류의 혼재양상이 나타나는데, 미국식이나 유럽식 패션으로부터의 중심해체가 일어나 △생태계 파괴에 주목하는 에콜로지풍 △민속풍 △기존체제에 도전하는 전위패션등 다양한 사조로서 공존하게 된다. 도심의 거리를 뒤섞인 미니와 핫팬츠, 미디와 샤넬, 전통 복색 등은 바로 가장 첨예한 시대 정신의 표출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유행이란 그것을 차안해내는 제1자에게는 즐거운 시도이며 그것을 채용하는 제2자에게는 하나의 모험, 거기에 합세하는 제3자에게는 희화’라는 말이 있다. 유행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개성을 무시한 획일화가 일어날 때 한낱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적어도 90년대의 한국에서 더 이상 이같은 희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대다수 평론가들이 “한국 여성은 이미 국제적 수준의 패션의식을 갖추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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