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가 미덕이라는 ‘미신’
  • 이대근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
  • 승인 1991.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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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9년의 세계대공황을 맞아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크나큰 위기에 빠진다. 이위기로부터의 탈출을 위한 극적인 처방으로 나타난 경제이론이 다름아닌 케인스의 ‘일반이론’이다. 케인스의 일반이론은 세기적 불황의 늪으로부터의 탈출고리를 총수요의 조작에서 찾았다. 말하자면 물건을 만둘 수 없어서가 아니라 만들어 놓은 물건을 팔리지 않아서가 문제라는 것이다. 유효수요의 부족, 바로 그것이 미국의 실업률을 24%로 끌어올리고 물건값을 폭락시켰으며, 세계무역을 3분의 1선으로까지 후퇴기킨 원흉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각국은 대공황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가 앞장서 총수요, 곧 유효수요의 진작을 위해 떨쳐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 케인스이론에 따른면 저출이 미덕이 아니라 소비가 미덕이다. 사람들이 각자 자기 앞날만을 생각해 저축에 힘을 쏟으면 그만큼 사회적 총수요는 줄어들어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가는 죄악이 되고, 그대신 흥청망청 소비에 열을 올려 사회적 총수요를 증대시키면 그것은 나라의 경제를 구제하는 미덕이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우리의 경제이론에 있어서도 저축보다 소비가, 또한 생산쪽보다 소비쪽으로 더욱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제한송전 일보 전인데도 소비성향 부추기는 정비
 과연 그럴까. 미국 등과 같이 경제가 고도로 발달해 공급과잉인 나라에서는 그럴 법도 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절대적 공급부족 상태에 있는 개발도상국에 있어서는 한푼이라도 더 모아 자본축적에 이바지해야 옳을 일이다. 공급과잉의 선진국에 있어서도 그들 내부의 소득분배의 불평등 문제라든가, 또는 부자들의 낭비풍조로 말미암은 천연자원 고갈현상과 같은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결코 소비가 더 이상 미덕이 칭송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선진국 중심적이고, 또 어떻게 보면 반문명적인 케인스이론이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에서 크게 기세를 떨치고 있다.

 작금의 전력부족 문제만 해도 그렇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전력공급 예비율이 60%에 달했었는데 어느새 지난 5일에는 예비율 2.6%라는, 제한송전 일보 전까지 갔다고 한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3백20여개 기업에 의한 53만kw의 절전협조가 없었다면 이미 제한송전에 들어갔을 것이라는 설명이기도 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심각한 전력난을 겪은 북한에 어떻게 하면 남한 전력을 원조해줄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던 처지가 아니었던가. 연평균 13.7%씩 전력소비가 폭증하였으닌 그럴 법도 하다. 예비전력이 좀 있다고 해 지난날 정부당국이 앞장서 잇단 요금인하 등 전력소비 촉진정책을 펴지 않았던가. 그래서 호텔 은행 등 접객업소는 말할 것도 없고 정부청사나 공공건물, 심지어 새마을열차 안까지도 너무나 냉방이 잘 되어 긴팔 와이셔츠의 정장차림으로 한여름을 호사하며 보내지 않았던가.

 폭발하는 건설경기만 해도 그렇다. 정부가 무리하게 2백만호 주택건설이다 하여 앞장서 건설경기를 부추긴 결과 동네마다 10년도 채 안된 멀쩡한 집들이 허물고 그 자리에 층수 높은 새집을 짓고 있지 않는가. 본래 민간 주택 건설이란 투자수요라기보다는 소비수요에 속한다. 새집을 짓거나 집을 늘리는 것은 그만큼 개인의 소비성향을 높이는 것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최근 몇 년간의 건설붐을 타고 우리의 소비성향이 얼마나 고양 되었는가는 피부로 느낄수 있다.

케인스이론 빨리 버려야
 정부는 케인스 유효수요이론의 철저한 신봉자였음인지 줄곧 국민의 소비성향을 부추겼다. 5공정권은 흑백텔레비전의 컬러텔레비전으로의 무리한 대체를 통해 국민의 소비성향을 조장하고, 이머 무리한 자가용차 보급으로 국민의 환심을 사고자 하였다. 80년대 후반부터는 개방화의 물결에 발맞춰 국민의 소비패턴은 말할 수 없이 고급·사치화 되었다.

 듀젠베리의 말을 빌릴 필요도 없이 사람의 소비생활이란 처음부터 하방경직적이다. 올라가기는 쉽지만 내려오기란 어렵다. 뿐만 아니라 고소득층에 의한 고급의 소비패턴 도입은 곧바로 중·저소득철의 그것에 영향을 끼쳐 사회 전체의 평균 소비성향을 가일층 제고하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지닌다. 특히 오늘의 한국 사회와 같이 부동산 투기 등으로 불로소득을 올린 졸부들이 판치는 데다가 저소득층의 임금수준 또는 급상승하는 상황에선, 사회적 평균소비성향을 제고하는 ‘전시효과’가 좀더 크게 나타날 것이 틀림없다. 자기집 마련을 푸기한 채 자가용부터 굴리는 풍조 등이 이를 잘 말해준다.

 정부는 말로만 과소비를 억제한다는 등 허풍을 떨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가 아직까지는 결코 소비가 미덕이 될 수 없다고 하는 소비자 행동강령부터 정확히 인식하고, 각 경제주체들을 올바로 일깨워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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