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정부 “기득권 놓지 않겠다”
  • 김호균 (중앙대 강사) ()
  • 승인 1992.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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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벌과 정부의 관계가 어색해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부동산투기 억제, 경제력집중 완화, 여신규제 강화,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통해 재벌을 ‘규제’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신산업정책에 대해 재벌은 부총리를 초청해서 그들 입장을 전달하는 등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정부가 재벌을 규제하겠다는 것이나 재벌이 정부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는 것이 사실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정부는 이미 74년에 대통령 지시로 금융여신과 기업소유 집중에 대한 대책을 강구한 바 있고 재벌은 몇해 전부터 새마을운동본부를 지원해달라는 요구에 불만을 표시하거나 정치 자금을 자신의 선택에 따라 지원하겠다고 밝히는 등 정부에 고분고분하던 자세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최근 움직임에서 특징적인 것이 있다면 신산업정책과 관련하여 재벌들이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에게도 접근하고 있다는 점과 정부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강도가 높아졌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재벌을 규제하며, 순종하던 재벌은 왜 이에 저항하는가.

 정부가 재벌규제 정책을 펴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국민경제 전체를 책임진 정부는 지난 수년 동안 한국경제에서 투자가 부동산 증권 등에 몰려 생산부문이 상대적으로 위축된 데 대한 대책을 수립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무역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한국경제의 대외경쟁력이 두드러지게 약화되면서 이 필요성은 더욱 다급해졌다.

 

정부…생산적 투자 유도하고 고위관료 기득권 유지하려

 그러나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재벌 입장에서는 부동산 투기로 이윤을 얻든 생산적 투자를 통해 이윤을 얻든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들 입장에서 본다면 생산적 투자보다는 오히려 성과가 확실한 부동산투기쪽이 훨씬 매력있는 투자일 수 있다. 요즘처럼 경기가 후퇴할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재벌을 포함한 모든 기업이 부동산 투기에만 열을 올린다면 어느 누구도 이윤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경제든 생산이 이루어져야 분배 교환 소비가 있을 수 있다. 부동산 투기에 의해서는 부가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된 부가 다만 분배될 뿐이다. 가능한 한 많은 생산이 이루어져야 분배될 것도 많아지는데 어느 재벌도 자발적으로는 불확실한 생산적 투자에 뛰어들기를 주저하므로 정부가 나서서 재벌들을 생산적 투자로 유도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가 재벌을 규제하려는 또 다른 이유는 ‘정경유착’의 다른 한 당사자인 정부 고위관료 자신들의 특수한 이해관계 때문이다. 80년대부터 정부의 위상은 재벌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있다. 정치적 민주주의 요소가 부분적으로 도입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재벌…정부예속 벗고 기존 판도 유지하려

 따라서 정부 고위관료들은 신산업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킴으로써 변화된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는 것이다. 즉 자신들이 그동안 생산된 부에서 차지하던 몫, 또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신산업정책에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당의 출현은 정부 고위관료의 이러한 시도에 맞서는 재벌들의 공동이익을 위해 현대그룹이 ‘총대’를 멘 측면이 있으며 정부의 현대그룹에 대한 제재는 이에 대한 반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재벌들은 이를 단지 현대그룹에게만 관련된 문제로 보지 않고 일종의 ‘재벌 길들이기’로 받아들인다. 재벌들은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길 것이다. 사실 그동안 재벌들은 정부의 경제정책과 거듭된 시행착오에 대해 불만과 불신을 품고 있었으며, 이러한 불만과 불신은 점차 커지고 있다. 정부의 행위에서 비생산적인 면이 늘자 재벌들은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이 작아지기를 바라게 된 것이다. 정부가 작아지고 그에 따라 비용이 줄어든다면 재벌들은 부의 분배관계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전경련이 주창하는 ‘민간주도 경제론’의 요체이다.

 재벌이 정부의 재벌규제에 대해 저항하는 또 한 이유는 신산업 정책에 의해 재벌판도가 재편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새로운 경제전략 집행은 재벌판도 재편을 수반해왔다. 60년대 수출주도형 공업화 전략과 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전략은 기존 재벌의 쇠퇴·몰락과 진흥재벌의 등장을 가져왔다. 신산업정책은 이러한 경제전략을 능가하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재벌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으며 기존의 재벌 판도를 유지하는 선에서 정책이 집행되도록 정부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경제는 정부와 재벌의 관계에서 전환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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