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학회에 소·동구 학자 ‘과소비’
  • 김춘옥 편집위원대우 ()
  • 승인 1990.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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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권 연구 현황과 문제점-외형적 성과보다 심층 분석을

공산권연구협의회에서 81년에 지적한 우리나라의 공산권 연구에 대한 문제점은 첫째 전문가양성을 위한 교육제도의 미비, 둘째 유관지역 언어교육의 취약, 셋째 연구자료의 부족, 넷째 국제적인 학술활동의 미약, 다섯째 이 분야 전문인력의 취업난 등이었다.

 그러나 81년에 제기 됐던 이 문제점들은 이제 상당한 수준으로 개선된 상태다. 우선 관련 언어학과 전공자들의 취업난은 이제 옛일이 되었으며 오히려 기업 차원에서 어학연수를 보내는 등 자체 인력을 확보를 위해 부심할 정도로 상황이 바뀌었다. 연구자료의 부족을 탓하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쏟아지는 정보를 제대로 처리할 시간과 인력이 부족할 정도가 됐다.

 소련 · 동유럽 · 중국의 전문가들을 초청한 국제학술회의는 이제는 너무도 많아서 누가 언제 다녀갔는지조차 모를 정도가 되었다. 유관지역 언어학과들이 속속 설립되었으며 현지의 어학학교에서 어학실습을 하는 학생들의 수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희망적이고 발전적인 상황개선 속에서도 북방국가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는 전문인력의 양성이다. 아직까지도 대학에 설치된 본격적인 관련 지역학과가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대학에 설치된 지역학과는 대체로 관련 국가의 언어와 문학은 중점적으로 교육할 뿐, 지역전문가로 양성하는 교과과정은 거의 무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련 · 동유럽지역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소가 아직까지 한 곳도 없으며, 산업연구원(KIET)이나 대외정책연구원 등 일부 연구소에 소수인원으로 구성된 연구팀이 운영되고 있는 정도이다.

 둘째, 자료들이 효율적으로 이용되지 못하는 점이다. 소련 등 공산권을 이웃처럼 다닐 수 있게 되었고 개방과 개혁으로 모든 상황이 바뀐 지금에도 <프라우다>나 <인민일보>등 공산권 지역의 신문이나 잡지를 구독하기 위해서는 비밀자료취급인가를 받아야 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많은 양의 자료가 각급 도서관이나 연구소 사이의 정보교환과 홍보의 부재로 말미암아 사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관련지역 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한 재정지원의 효율성이 낮다는 점이다. 정부와 일부재단에서 지원하는 상당량의 재정지원은 전문인력의 양성을 위한 장학금 · 연구비 지원이라기보다는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실적 위주의 행정 때문에 대규모 학술회의를 주최하는 쪽으로 지출되고 있다. 연구비 지원의 경우도 학문적 수준 향상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논문집 발간 그 자체를 주 목적으로 하는 듯한 인상을 많이 주고 있다. 전문가가 많지 않은 여건에서 부득이한 사정이었겠으나, 지금까지 발표된 논문의 대부분은 비전문가들에 의해 작성돼 연구비 나눠먹기식의 결과밖에는 되지 않고 있다.

자격미달의 외국학자도 화려하게 포장돼

 넷째, 불필요한 국제학술회의를 열어 재정을 낭비하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국제회의는 최소한 5백달러 정도의 원고료와 비행기 티킷 · 호텔 · 식사 · 체재비 등을 전액 부담하는 조건으로 현지 학자들을 초정하고 있다. 외국학자 5~6명이 참가하고 일류호텔에서 열리는 학술대회를 조직하는 데는 최소한 몇천만원은 거뜬히 든다. 소련 · 동유럽 학자들이 한국 학술회의참가를 갈망하고 초청해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이유도 한번의 한국여행에서 1년치 월급정도는 간단히 만질 수 있다는 매력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이들 외국학자들이 발표하는 논문 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초청할 만한 학문적 수준이 없는 자격미달의 학자도 화려하게 포장돼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초정학자의 전공과는 상관없이 주관기관의 입맛대로 이루어지는 세미나도 깊이 반성해야 할 내용이다. 이를테면 역사학자에게 한소경제협렵과 전망을 부탁한다든가하는 것이 그것이다. 또한 학교내에 훌륭한 회의장 시설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비싼 경비를 축내면서 시내 최고급 호텔을 사용하는 과소비 역시 시정을 요하는 문제이다.

 다섯째, 전문인력의 낭비다. 현재 이 지역의 정치 · 경제 · 역사 · 언어를 공부한 몇 안되는 전문인력마저 효율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이 지역 전문가들은 해외학자 초빙 학술회의를 주관하는 일로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야 하며, 셀 수 없이 많이 개최되는 세미나의 주제발표와 토론에 참여해야 하므로 학문적 축적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다. 극소수의 전문인력을 한데 모아 체계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연구기관이 없는 것은 인력낭비의 구조적 요인이다.

북방기관에 대한 심층적 분석은 거의 없어

 여섯째, 연구수준의 낙후와 불균형이다. 지금까지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발표된 연구주제는 거의 대부분의 최근의 정치·경제동향, 개혁의 방향과 관계되거나 우리의 진출전략 등 주로 정부의 정책입안에 사용되는 것에 그치고 있다. 이들 북방국가의 정치 · 경제 · 사회 · 역사 · 문화 등을 깊이있게 다룬 심층적인 분석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연구 영역은 균형이 잡혀 있지 않고, 발표되는 연구결과도 참신성이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진출전략 · 대응방안에 집중된 재정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북방정책이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은 연구비 지급이나 논문의뢰는 한국학계의 연구안하는 고질적 풍조에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앞으로 소련관계 학술연구에서는 전문인력은 한 곳에 모으는 작업과 함께 자료의 체계적인 수집과 기존 유입자료의 교환 및 공유체제가 확보되어야 한다. 그리고 낭비적인 학술회의 지원 재정은 가급적 장학금 · 연구비로 전환해야 하며, 지역학과의 개설 등 체계적인 인력양성기관의 설립과 전문인력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한 방안들이 강구되어야 한다. 일본의 경우처럼 전문인력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현지국가 파견, 진출전략 수립 등 구체안을 마련하고 실행할 일이다. 정책대안의 연구에만 집중되는 연구 불균형을 극복하자면 깊이있고 세부적인 연구주제와 이에 걸맞는 충분한 연구시간을 부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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