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세 없이 피해보상도 없다”
  • 로스앤젤레스·이재호 통신원 ()
  • 승인 199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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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한인, 세금 신고 안해 보상 힘들듯··· 가짜 세금신고서까지 등장



 ‘4·29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으로 피해를 입은 한인 중 상당수가 연방정부로부터 보상을 받기는커녕 피해보상 신청조차 못하고 있다.

 연방비상재해관리청(FEMA·이하 재해관리청)의 폭동 피해 접수는 13일로 끝났지만, 한인 피해자들이 얼마만큼 누락되었는지는 아직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업체 복구를 위해 절대 필요한 중소기업행정(SBA) 융자의 신청 조건에 미달하는 피해 한인이 거의 절반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재해관리청이 실시하는 피해보상책은 무상으로는 식료품을 구입하는 식량표(푸드 스탬프) 발급, 주택이나 아파트 등에 대한 월세보조와 실업수당이 있고 유상으로는 중소기업행정 저리 융자가 있다. 그러나 한인 피해자들은 “재해관리청 계획의 대부분은 재해복구를 위한 것이지 실제로 사업 재건을 도와주는 것은 드물다”며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영세 피해 상인에 대해 빨리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많은 한인이 사업체 복구를 위해 목돈을 빌릴 수 있는 중소기업행정 융자에서 신청 조건에 미달하는 이유는 평소 사업체의 각종 구비서류를 제대로 갖춰놓지 않았거나 세금 신고를 정당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폭동의 진원지인 사우스센트럴 지역에서 주류상점을 운영했던 김모씨는 “월 3만달러의 수입을 올렸으나 세금신고 때는 1만달러로 보고했다”며 신청한 중소기업행정 융자금이 얼마나 나올지 몰라 초조해한다.

 실질소득을 낮춰 세금을 신고한 업주들은 그래도 스왑밋 상인들보다는 나은 편이다. 버몬트와 맨체스터의 ABC 스왑밋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던 정모씨는 피해보상 신청조차 하지 못했다. 정씨는 “어머니날 대목에 대비해 이자돈까지 얻어 3만2천달러 상당의 물건을 사들여 놓았었다”면서 “세금 보고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에 하소연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넓은 공간 속에 여러 점포가 들어가 있는 스왑밋의 상인들은 판매세 등을 받지 않고 싼 가격에 물건을 팔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사태로 피해를 본 다른 상인들도 정씨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한인 회계사 신고서는 철저히 검토하라”

 이밖에도 사업체 구비서류를 제대로 갖추지 않아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청임대를 얻어 장사하던 박모씨는 한인 임대주로부터 관련 서류를 받아두지 않아 10만달러 상당의 물건값을 보상받을 길이 없어 막막해한다. 박씨는 “원래 점포를 임대했던 임대주가 6월에 재계약을 할테니 그때 서류를 작성해 주겠다고 해 기다리던 중 폭동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이처럼 많은 한인들이 세금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아 피해보상 대상자에서 누락되자 가짜 세금신고서가 나돌고 있다. 연방정부와는 별도로 2천만달러의 예산을 책정해 우대금리보다 낮은 이자율로 융자를 해주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한 한인 공인회계사가 작성한 세금신고서로 융자를 신청한 한인들의 서류를 철저히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한인공인회계사협회 임원직을 맡고 있는 이 회계사는 건당 2천달러 가량을 받고 가짜 세금신고서를 작성해 융자 신청을 대행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를 당한 2천여명의 한인이 결성한 ‘한인상인 피해자협의회’는 미국정부로부터 실질적인 피해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자, 지난 15일 로스앤젤레스 시청 앞에 모여 즉각 피해보상을 해줄 것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법을 개정해서라도 피해자에게 45일 내로 보상하라”며 이것이 관철될 때까지 농성하겠다“고 말한다.

 이 협의회 이정 회장은 “그동안 미국정부의 보상은 생계에 큰 지장이 없는 건물주를 상대로 이루어왔다”면서 “생계가 막연한 상인에 대한 보상이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금에 근거해 보상을 해주고, 보상을 받아 영업을 재개하는 상인으로부터 다시 세금을 거둬들인다는 미국정부의 원칙은 문제삼을 수 없는 것이다. 그동안 세금 신고를 제대로 안한 상인을 상대로 특별한 보상을 해준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세금 신고를 조작하며 생활비를 벌다가 단번에 가게 하나를 토해냈다”라는 자조적인 반성이 많은 것을 보면, 이번 로스앤젤레스사태는 앞으로 이곳 한인이 미국시민으로서 세금 신고를 정직하게 할 계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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