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만이 민주계가 사는 길”
  • 박준웅 편집위원대우 ()
  • 승인 1990.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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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근의원 金泳三최고위원에 ‘진언’… 당 주도권 다툼에 악법개폐 등 뒷전 될지도

‘개혁을 통한 안정, 안정 속의 개혁’을 내세우며 3당합당에 나섰던 민자당의 개혁의지는 실종되었는가. 특히 거대여당내의 야당을 자임하며 민주화를 외치던 민자당내 민주계의 野性은 어디로 갔는가.

지난 17일 金泳三최고위원이 10여일의 ‘上道洞농성’을 풀고 청와대회담에 나서던 날, 김최고위원의 측근인 ㅂ의원은 민자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날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으므로 盧대통령으로부터 개혁조치를 위한 확답을 얻어내야 하며 그것이 바로 金최고위원과 민주계가 사는 길이라고 진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김최고위원은 노대통령과 金鐘泌최고위원 朴泰俊최고위원대행 등이 참석했던 7시간 가량의 회동에서 그동안 마음속에 갖고 잇던 생각들을 털어놓고 오해를 푼 것으로 알려졌지만 개혁에 관한 부분은 깊게 논의되지 않았던 것 같다.

회동이 끝난 뒤 김최고위원은 개혁추진의 가능성을 묻는 기자 질문에 “어느 시대나 완급이 있다. 악법개폐문제 등도 있짐나 주택 전월세금 폭등 때문에 자살하는 일이 생기고 있으니 이런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물론 그날 회동의 성격이 개혁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해서 어떤 결론을 끌어내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ㅂ의원을 포함한 일부 민주계 의원들은 개혁의지가 김최고위원의 완급 우선 순위에서 뒷전으로 밀린 게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민주계의원들로서는 여소야대 시절 야권의 최대 투쟁목표였던 광주문제나 金大中총재 기소문제, 보안법 안기부법 경찰중립화법 등 현안들이 그대로 창고에 처박힌 채 먼지가 쌓여가고 있고 지자제 · 실명제가 실종되는 일 등이 견딜 수 없는 짐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김최고위원은 여당으로 변신하더니 이루어놓은 게 무어냐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과 선거구민들의 질책을 등에 업은 계파 소속 의원들의 ‘채근’에도 무언가 확답을 들려줄 필요를 절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도 그가 당내의 이견을 물리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단은 뚜렷하지 못하다. 수적으로 단연 우세한 민정계가 동조하지 않고 있는 데다 공화계가 민정계보다 더욱 수구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최고위원은 동요가 있을지도 모르는 계파의원들을 단속하기 위해서도 개혁과 당풍쇄신의 목소리를 더욱 높이며 당내 발언권을 강화하려 할 게 분명하다.

민자당내 각 계파의 최대관심은 인사권이나 재정권을 포함한 당운영의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에 쏠리고 있다.

우선 당의 지도체제문제를 두고도 3계파는 의견을 달리하고 잇어 당헌 당규의 최종 마무리 과정에서 또  한차례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현재 3계파는 노대통령을 총재로, 김영삼 최고위원을 대표최고위원으로, 김종필 최고위원과 박태준최고위원대행 이외에 湖南인사 및 여성계대표 등 4명을 최고위원으로 하자는데에는 이론이 없으나 대표최고위원의 권한과 역할에는 해석을 달리하고 있다.

민정계는 당을 대표하는 총재가 당무를 총괄하는 최종책임을 지고, 대표최고위원은 총재로부터 위임받은 당무를 총괄 집행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입장이다. 대표최고위원이 당무를 관장하되 총재와 대표최고위원의 관계는 上下관계라는 것이다. 공화계는 김종필최고위원이 “당 운영은 사실상 최고위원간의 합의제가 될 것이며 최고위원은 전당대회에서 선출하고 대표최고위원은 당 총재가 임명하게 될 것”이라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반해 민주계는 총재가 당을 대표하고 통괄한다는 데에는 동의하면서도 주요업무와 주요정책결정을 제외한 대부분의 당권은 대표최고위원이 위임받아 다른 최고위원과의 ‘합의’가 아닌 ‘협의’를 거쳐 행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대통령이, 당은 대표최고위원이 각각 맡아야 하며 특히 개혁정책의 추진 및 당의 기강확립을 위해서도 당은 사실상 대표최고위원 중심의 1인지도체제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밖에도 계파간에는 지자제협상, 증시부양책, 보궐선거 후유증처리 등 현안과 당무처리를 놓고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계파간의 대립과 충돌은 언제 무엇이 발단이 되어 또다른 분쟁을 일으킬지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민자당이 개혁이나 정책개발을 제쳐둔 채 제몫찾기 경쟁에만 매달릴 때 국민들이 민자당을 버릴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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