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에 정신적 고통까지 시간강사 ‘博學多苦’
  • 김상현 기자 ()
  • 승인 1993.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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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에 요약 · 소개하는 논문은 반연간 학술지 《사회비평》이 창간 5주년 특별기획으로 지난 8~10월 사회과학 분야의 박사 실업자 2백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쓴 것이다. (유효 응답자 95명). 이 논문은 김용학(연세대 · 사회학)  송호근(한림대 · 사회학) 염재호(고려대 · 행정학) 서병훈 (숭실대 · 정치학) 교수가 공동 집필했다. <편집자>
 80년대 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박사 실업은 이제 대학을 중심으로한 지식 시장에서 보편적인 연상처럼 되어버렸다. 박사 실업은 사회과학계에서 특히 심해서 11월 현재 사회학 · 정치학 · 행정학 세 분야의 박사 실업자만 3백여 명에 이른다. 이같은 현상은 이고계 위주의 대학 정책으로 사회과학계의 학과 신설 및 학생 증원이 억제되어 지난 10년간 교수 충원이 거의 없었던 데다, 교육의 대중화로 국내외 박사가 급증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 사위 대학 절반의 교수 학보율이 67%에 그치는 상황에서 많은 강의 과목들은 여전히 시간강사들의 몫이다. 이들은, 고급인력을 싼값에 활용하여 재정 적자를 메워나가는 대학의 운영 전략에 속수무책으로 노출 되어 있다.

사회과학 분야 박사 실업자들은 학기마다 평균 2~3개 대학을 다니면서 3~4개 과목을 가르치고 (전임교수는 3과목), 강의대상은 학부에 편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학부 3.1과목, 대학원0.4과목). 박사 실업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학기마다 강좌를 구하는 것도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강사들은 대개 대학 시절 은사의소개(33%)나 대학 교수로 있는 동료 및 선배의 소개(32%)로 강좌를 얻는다. 이는 대학 교수들의취업 시장 자체가 학연과 다른 연고로 분절왜 있다는, 그동안 되풀이 지적돼온 사실을 뒷받침한다. 연고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외국 박사들은 귀국후 이를 자체 개발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안게 된다. 시간강사들은 강의와 강의 준비에 전체 시간의 약 35%를 투자한다. 개인 연구에 할애하는 20% 가량의 사간을 더하면 강의와 연구가 전체의 절반을 넘는 셈이다. 연구 활동의 직접적 결과인 연평균 눈문 출간 편수는 국내 박사가 2편, 외국 박사가 3편이고, 저서는 각각 0.3권 정도인 대학 전임 교수들보다 높은 수준이다.

자기가 현재 할당하고 있는 연구 시간(주당 평균 15시간)이 기대 수준의 75%를 넘는다고 답한 박사 실업자느 전체의 6%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의 주당 평균 강의 시간은 11시간, 강의 준비 시간은 16시간이다. 여기에 대학을 오가는 평균 교통 시간 10시간을 더하면 강의로 인한 부담은 더욱 커진다. 시간 강사들은 연구실은 고사하고 학생들과 면담할 수 있는 공간조차 얻기가 어렵다. 도서관 이용이 쉽지 않다는 점도 이들에게는 큰 어려움이다. 출입을 허용해도 책은 빌려주지 않는 도서관이 대부분이다. 턱없이 적은 강사료로 필요한 책을 모두 살 수도 없는 형편에서, 가의 준비와 연구 활동에 필수 공간인 도서솬으로부터 배제되는 현실은 강사들을 더욱 무기력하게 만든다. 연구 장애 요인으로 지적된 항목들은 주로 객관적 조건과 관련되어 있지만, 정신적 불안정 같은 심리 요인에도 각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체 응답자의 42% 정도가 정시적 · 심리적 불안감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강사 순수입 월 30만원
 35세의 고등 교육자가 부모나 친척의 경제적 보조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불혹의 나이를 눈앞에 두고 강요된 빈곤 상태를 타개치 못하는 이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소속감 결여, 자식들과의 거북한 관계 같은 갖가지 어려움과 싸워야 한다. 시간강사들이 3.5과목 강의로 받는 급료는 50만원 안팎 (강좌당 강사료 15만ㅇ원× 3.3과목=52만5천원). 출강에 드는 여러 비용을 빼면 순수입은 30여만원밖에 안된다. 대부분 기혼자인 이들이 지출하는 한달 최소 생활비는 70만원 정도. 올해 도시 가계 평균 수입이 1백40만원임을 감안하면 이들의 생활 수준은 도시 하층민에 해당한다. 응답자의 3분의 2 정도(67.7%)가 최근 자신과 비슷한 전공으로 취업한 교수들에 비해 자신의 학문 능력이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평가는 전임교수 임용 기준이‘학문적 능력’이라고 대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5%밖에 되지 않는 것과 직 · 간접으로 연관되어 있다.

응답자들은 학문 능력보다 재단이나 대학 본부와의 연분, 해당학과 교수와의 개인적 연줄 등 비학문적 특성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인식은 현직 교수의 전반적 연구 활동에대한 인색한 평가와 맥을 같이한다. 현직 교수들의 연구 활도에 대하여‘약간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한 사람은 6.4%에 그친 반면, 93.6%에 이르는 응답자가‘그저그렇다’나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박사 실업자들이 보기에 교수 채용 때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은 ‘재단 · 교수와의 개인적 연분’이다. 교수 채용 과정에서 비리를 직접 목격한 사람이 응답자의 3분의 1에이르고, 이들 중 과반수가 재단에 기부금을 내도록 요구받았거나 그러한 현장을 목격했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아쉽다”
 인력 활용 면에서 국가적 낭비를 개선하는 데는 무엇보다 국가 차원의 획기적 조처가 필수적이다. 그간의 경험과 고통을 바탕으로 박사 실업자 자신들이 베안한 정책 제언 가운데에는 눈여겨볼 만한 항목들이 많다. △시간강사의 제도화 : 시간강사를 대학교원의 일원으로 통합해야 한다. 신분 · 연구활동 보장, 연구 여건 마련 등이 시급하다. 현재의 대학 재정으로는 어려우므로 정부의 재정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교육세의 일부를 여기에 쓰는 것도 한 방법이다. △박사급 전문 인력 활용 방안 개발 : 교수 확보율을 높여야 한다(현재 50%에서 80~90%로). 인문 · 사회 과학 분야를 영역별로 세분화하고 그에 따라 대학 및 정부의 부설 연구소를 활성화한다. 사회과학 분야에서 활동하는 박사 실업자를 3백명이라고 보고, 이들의강의 수입을 평균 50만원으로 잡으면, 개인당 월 50만원의 보조를 생각하면 간단하다.

즉,연구소에 배치하는 대가로 원 1억5천만원(50만원 · 3백명)의 예산을 추가로 편성하면 되는 것이다. △사회과학계 학과 증설 : 전국 1백70개대학 중 사회학과는 30개 대학에만 설치돼 있으며, 정치학 · 행정학과 또한 많은 대학에서 설치하지 않고 있다. △연구비 지원 : 학술진흥재단의 지원 정책에 박사 실업자들을 포함해야 한다. 이들이 사회학 · 정치학 ·행정학 세 분야에서만 연간 3만명의 학생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연구비 지원은 교육 수준 향상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박사 실엉ㅂ 문제와 그것이 구조적 원인을 시장 경쟁 원리로 해결할 수 있다는 진단에는 교육 부문 전체의 개혁을 백안시하는 위험한 발상이 숨어 있다. 교육 부문이 건강해야 국가도 건강하다. 박사 실업자들이 교육을 떠나 낭인이 되기 전에, 그리하여 한국의 대학이 부실한 인적 자원을 대향 배출하는 오염원으로 전락하기 전에,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金相顯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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