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회복 운동 벌이는 '피난소장‘
  • 정희상 기자 ()
  • 승인 1993.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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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일 낮 서울 신림동 경인선 전철 철길 옆에 붙은 3층 건물의 허름한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은 김재호씨(29·신림동 외국인노동자상담소 소장)는 부리나케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가 이 날까지 국내에 불법 취업한 외국인 노동자의 사망 소식을 접한 것은 올해 들어서만 벌써 스물다섯번째이다. 그때마다 사건 현장을 누비며 국내에 아무 연고가 없는 시신을 수습하고 사망자 처리 대책에 뛰어든 김씨로서는, 겨울로 접어들어 부쩍 느는 외국인 노동자 사망 소식에 “절망스럽다”는 말로 심정을 표현했다.

 그가 지난 4월 신림동 외국인노동자상담소를 연 것은, 노동자들이 받는 갖가지 불이익을 상담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해 보기 위해서였다. 그 과정에서 작업중 손발을 절단당하고도 불법 체류자라는 딱지 때문에 하소연할 곳 없이 떠도는 외국인 노동자와 감금노동·강간·임금체불·질병 등에 시달리다 공장을 뛰쳐나와 당장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외국인들이 속속 이곳을 찾았다. 일종의 ‘피난처’가 된 셈이다. 그래서 상담소 이름도 이제 ‘외국인 노동자 피난처’라는 말을 같이 사용한다.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간 외국인 나그네는 총 4백여명 하루 평균 7~8명이 이곳에 모여들어 세끼 식사를 라면으로 때우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거나 문제를 해결하고 귀국길에 오른다. 그 과정을 돕는 것이 바로 김씨가 하는 일이다.

 갈수록 늘어나는 외국인 노동자 사망 때문에 김씨의 하루는 24시간으로는 턱없이 모자란다. 한 사람의 시신을 치우기가 무섭게 날아드는 새로운 사망 소식 때문에 월급을 못받았다거나 공장에서 손가락이 잘렸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김씨는 그동안 상담을 전담해 오면서 느낀 점을 한마디로 “우리 사회의 어두운 양심이 세계에 알려질까 두렵다”라고 말한다. 외국인 사망이 느는데도, 보상 한푼 없이 외면해버리는 실태가 비일비재함을 보기 때문이란다.

 외국인 노동자 시신을 인도받아 화장시킨 뒤 유해를 자기 배낭에 담아 짊어지고 다니다 출국하는 해당국 출신 노동자 손에 들려 보낸 적도 두 번이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우리 사회의 떨어진 양심을 회복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인권운동을 경실련 등 시민 단체와 연대해 ‘한국인 양심 회복 운동’차원으로 확산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丁喜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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