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 비리 온상은 무기 조달구조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4.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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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탄 도입 사기사건’과 관련해 아직도 명쾌하게 풀리지 않고 있는 수수께끼가 있다. 문제가 된 포탄들은 과연 국내에서 생산할 수 없는 것들인가 하는 점이다. 군수본부가 애당초 사들이려고 했던 포탄은 90㎜ 무반동총 산탄, 105㎜ · 155㎜ ICM탄 등 세 종류이다. 국내에서 이 포탄들을 생산할 수 없다는 군 · 경 합동 수사본부의 주장과는 달리 생산이 가능하다고 믿는 방산 전문가들도 많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포탄을 왜 굳이 외국에서 사들였을까. 특정 무기중개상들을 위해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한때나마 일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국방부 군수본부가 외국에서 사들일 수밖에 없는 사정은 딴 데 있었다는 게 국내 방산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즉 단기 계약밖에 허용하지 않는 군수 조달 구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방부 군수본부가 무기를 포함한 군수 물자를 사들일 때 기준으로 삼는 법령은‘예산회계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대부분의 계약은 1년 단위로 정부의 예산단가 기준에 따라 이뤄진다. 그런 만큼 계약의 융통성이 별로 없고, 납품 규모가 크지 않으면 이윤이 제대로 보장되지도 않기 때문에 국내 방산업체들은 군수본부측에서 미리 주문이 들어오지 않거나 주문량이 적을 때는 공장을 돌리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급히 군수물자 필요할 경우 무기중개상을 통해 외국에서 사들일 수밖에 없다. 한 방산 전문가는 “군수본부가 재래식 무기를 급히 구해야 할 경우 여러 나라에서 조금씩 사들일 수밖에 없어 그만큼 사고 위험이 커진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군수 조달 구조의 골격을 이루고 있는 각종 규정은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비현실적이다. 반면 방산업체와 무기중개상들로서는 음석적인 로비에 대한 유혹을 느끼게 된다. 음성적인 로비의 비용보다 이익이 훨신 크다면 언제고 재발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군수 비리 문제는 경제학적인 접근이 필요한 분야인지도 모른다.
 무기체계를 도입하는 경우는 지나치게 많은 규제가 문제가 된다. 어떤 무기를 도입하거나 개발하는 데는 무려 여덟 번 넘는 심의를 거쳐야 한다. 각각의  심의 과정에서 해당 사업이 얼마나 지연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방산업체 입장에서는 사업에 제동이 걸릴수록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 방산업체의 고문은 “사업이 한달 늦어지면 대략 5억원, 6개월 늦어지면 30억원을 손해본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그보다 싸게, 발리 결정되도록 만들 방법이 있다면 방산업자들이 그 길을 뚫기 위해 전력투구할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방산업체들의 경영난도 ‘보다 싼 해결책’을 선호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80년대 초반부터 정부 조달 규모가 급격히 줄자 국내 방산업체의 가동률은 40%를 밑돌고 있다. 현재 일부 방산업체들은 감원계획을 세우고 있고, 중소 방산업체들 가운데 일부는 도산 위기에 처해 있다.

 무기 도입 · 개발 절차가 늦어지면서 발생하는 문제는 그뿐이 아니다. 실제로 무기를 사용할 부대의 의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가 하면, 획득한 무기를 배치할 즈음이면 이미 도입한 무기가 노후해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실제로 해당 무기를 사용하는 부대의 불만이 만만찮은 실정이다. 결국 군수 조달 절차는 단순화하되, 해당 무기체계를 더욱 더 집중적으로 심사할 수 있어야 한다. 국방부는 지난 7일 ‘포탄 도입 사기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율곡사업뿐만 아니라 군수 조달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국방제도개선위원회(위원장 육군 중장 張 城)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군수 조달구조를 개혁하지 않는 한 군수 비리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이 위원회가 태동됐다는 점에서 출발은 좋은 셈이다. 2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될 국방제도개선위원회가 전직 국방부장관들과 퇴역 장성들의 발목을 잡는 군수 조달 절차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주목된다.
金芳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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