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도 ‘세탁’ 되는가
  • 정희상 기자 ()
  • 승인 1992.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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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사기’ 지레 결론 ??? “성역없는 수사” 공염불


 나라 안을 온통 떠들썩 하게 해온 정보사 땅 매각사기사건을 바라 보는 국민의 관심이 차츰 바뀌고 있다. 처음에는 사건의 배후가 드러날지 여부가 관심의 핵이었 다. 그러나 상식 수준에서 제기 되는 여러 의문에 대해 검찰은 속시원한 해답을 주지 못한 채 '단순 사기사건'으로 서둘러 수 사를 매듭지으려는 태도를 보였 다. 그에 따라 국민의 눈길도 이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의지' 에 쏠리 게 되 있다. 지난 5일 언른 보도를 통해 알 려진 이번 사건은 내용이 매우 복잡한 데다 관련 인물들까지 얽 히고 설켜서 갈피를 잡기조차 어 려울 정도였다. 여기에는 일찌감 치 '단순 사기극'으로 잠정 결론 을 내린 검찰의 수사 태도도 한 몫 했다. 웬만한 공안사건 수사 때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피 의자들의 진술 번복과 거기에 질 질 끌려다니는 듯한 검찰의 수사 태도 또한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머리가 어지러워서라도 사건으 로부터 등을 돌리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수사 말미에 사건 자체 가 '세탁' 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의혹이 높아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단순 사기 극으로 보는 핵심 근거로 제일생명 윤상무가 문제의 은행예치금 2백30억원이 인출된 사실을 6월 말에야 알았다는 점을 들고 있 다. 그러나 검찰 발표와는 달리 윤상무는 최소한 지난 3~4월경 예금인출 사실을 알았다는 정황 증거가 새로 나왔다.

윤상무는 지난 2월1일 · 3월 17일 · 4월l7일· 세차례에 걸쳐 잔액을 확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일생명 황인학 경리부장이 잔 고를 확인하고 예치금이 모두 인 출된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이 에 대해 제일생명 관계자들이 어 떻게 대처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검찰과 제일생명 양측은 이 부분 을 일절 함구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인지 의문이다. 이와 함께 제일생명이 지난 5월 말 정씨 일당에게 정보사 땅 매 입의 해약을 통보한 점도 검찰 주장과 맞지 않는다. 사기 범들이 고의로 진술을 번 복하고 일부 범인들이 도피한 상 태에서 검찰이 잠정적으로 결론 내린 사건의 내용은 대략 이렇 다. 지난해 10월 토지 전문브로 커인 곽수델씨(45)와 김인수씨 (40) 일당은 정보사 땅을 미끼 로 사기행각을 벌이자고 공모한 뒤 성무건설 정건중 회장에게 접 근한다. 곽씨 일당은 정써로부터 정보사 땅 매입 승낙을 받아내고 12월 "제일생명 이 사옥신축 부지 를 찾고 있으니 그쪽에 팔라"면 서 일당 가운데 한명인 박삼화씨 (39 수배중)를 통해 제일생명 윤상무와 연결해주었다.


이 무렵 곽씨 등은 청와대 관 련자, 민자당 의원들과의 교분을 내세워 "정보사 땅 불하가 가능 하도록 힘쓰겠으니 함께 추진하 자"며 국방부 합참자료과장인 김 영호씨(52)에게 접근해 동조를 얻어냈다. 김씨는 12월 곽씨 소 개로 만난 성무건설 정건중씨 일 행과 정보사 땅 1만7천평을 평당 4백50만원(총 7백65억)에 팔기 로 약속했다. 이어 1월 21일 정씨 일행은 매 매계약서를 작성하고 김씨에게 계약금 76억 5천만원과 사례비 5억 원을 합해 81억5천만 원을 건네줬다 또 곽 씨에게는 30억원, 김 인수피에게 25억원을 사례비조로 지불했다.   성무건설 정씨 일당 은 매매가 성사될 것 으로 굳게 믿고 정보 사 땅 1만7천평 중 3 친정을 제 3자에게 팔 아 자금을 마련하고 2 천여평은 사옥부지로, 나머지 1만2천평은 대 규모 아파트 단지로 조성하는 마스터 플랜 도 작성했다. 91년 12월23일 정씨 일당은 윤상무와 만나 평당 2천만원에 비밀약정을 맺었다.


그 내용은 "은행에 2백 30억원을 예치하고 잔금 4백30 억원은 견질어음으로 지급하여 한달이 지나토록 계약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콜 금리로 물어준 다"는 것이었다. 김영호씨는 홀 해 1월21일 위조한 국방부장관 직인을 이용해 가짜 매매계약서 를 만들어 정건중씨 일당을 속였 으며 정써도 윤상무에게 이 계약 서를 보여줬다. 그런 다음 올 1 ~2월쯤에 국민은행 압구정서지 점 정덕현 대리를 시켜 2백30억 원을 빼내 사채시장에 들리고 사 업도 키워갔다. 6월 말에야 돈이 빠져나간 것 을 안 제일생명측은 7월2일 정씨 일당과 곽씨를 검·경에 고발했다. 정씨 일당은 예치금을 빼쓰 기는 했지만 제일생명을 속이려 는 의도는 없었기 때문에 사기 주범으로 몰릴까봐 지난 8일 자 수했다 김영호씨도 신변에 위험 을 느끼고 지난 달 11일 홍콩으로 도피했다가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81억원을 정씨측에 되돌려 주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곽수열씨 일당과 정건중씨 일당이 별인 2단계 사기극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방향으로 수 사의 가닥을 잡은 검찰측에 대한 불만은 이곳저곳에서 터져나오 기 시작했다. 여론은 검찰이 이 사건을 '각본'에 따라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하는 추세이고 야당 들도 그 점을 크게 경계하며 목 소리를 높였다. 우선 사기의 피해자가 보험회사이고 그 대상이 '정보사' 땅이며 발생 시기가 총선을 앞둔 권력누수기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설령 사기사건이라 해도 제일생명이 6백50억원 규모의 사업을 추진 하면서 그 주체가 어떤 사람들인 지, 또 남몰래 그 땅을 사들여도 '뒤탈'이 없을지 등에 대해 알아 보지 않았을 리가 없다. 이와 관 련해 제일생명 윤상무는 검찰 조 사 전 경찰에서 "평소 알던 군 관 계자를 통해 정보사 땅에 대한 수의계약이 가능한지 알아본 결 과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밝혀 김영호씨 외에도 군 관련자 의 언질이 있었음을 암시했다.

 홍콩으로 도피했다가 중국을 관광하던 도중 6월28일 북경호 텔에서 중국안전국 요원에 연행 돼 7월5일 천진공항에서 안기부 요원에 인계되어 압송돼온 김영 호씨에 대한 의혹도 벗겨지지 않 고 있다. 검찰은 김씨가 토지사기 단으로부터 81억원을 받고 범행 에 가담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김 씨는 압송 직후 기자들에게 "장관 도장 찍은 사람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김씨가 육사 18기로 현직 정보사령관과 동기이며 군 실력 자들과 막역한 사이라는 점으로 보더라도 위조계약서에 도장만 찍어주고 81억원을 받았다는 검 찰 발표는 신빙성이 없다.

 검찰이 수사 중반 이후 쉬쉬하 며 제일생명의 입장을 두들하고 단순 사기극임을 강조하는 이유 는 무엇일까. 검찰이 '성역' 없는 수사를 해줄 수 있으리라고 믿은 국민이 너무 순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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