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일본 배우면 안된다”
  • 도쿄·남유철 기자 ()
  • 승인 1994.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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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일의 경영대가’ 오마에 박사 인터뷰…“주입식 교육이 근원적 문제”

 오마에 겐니치(大前硏一·51) 박사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일본의 유일한 경영 대가’라고 극찬한 경영학자이다. 미국의 최대 경영자문(컨설팅) 회사인 매킨지(McKinsey & Company)의 일본 지사장인 오마에 박사는, 지난 10년간 영어와 일본어로 30권이 넘는 세계적 베스트셀러를 써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올해초 마이클 포터나 피터 드러커와 더불어 오마에 박사를 세계 13대 경영 대가로 꼽았다.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난 70년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에서 원자력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오마에 박사는, 미국인 아내와 일본으로 돌아와 히타치에서 핵공학자로 첫 출발했다. 그러나 그는 2년 만에 과학자의 길을 버리고 경영 자문가(컨설턴트)로 변신했다. 그는 “이론 배경이 없는 나를 매킨지가 다시 만들고 변화시켰다”라고 회고한다. 《신국부론》이나 《일본 대개조안》과 같은 ‘일본 개혁론’ 외에도, 그는 《국경 없는 세계 경제》나 《국경을 넘어서》와 같은 저서를 통해 경제의 세계화에 독특한 관심과 통찰을 보였다. 오마에 박사는 세계화에 적응하는 기업과 국가만이 21세기를 주도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도쿄 야마모토생명보험 빌딩에 있는 매킨지 집무실에서 오마에 박사를 만나 보았다. <편집자>

 경제의 세계화 현상은 앞으로 각국 경제와 국제 무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
 세계화 현상은 앞으로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도 경제를 한 나라의 국경 안과 밖으로 갈라놓고 이해하는 냉전시대의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제품의 생산 공장이 어느 나라에 위치하는가를 따지지 않는다. 오로지 제품의 질과 매력을 따질 뿐이다. 기업에게도 국적이란 쓸모없는 것이다. 정보화 시대에 국경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정보 유입을 막을 수는 없다. 정보화한 소비자는 세계 최고 제품만을 고집한다.

 일본은 세계화에 잘 대응했는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일본은 이러한 세계 경제의 변화에 일찍 대응하지 못해 지금 심각한 위기 상황에 빠져 있다. 일본은 기술과 경쟁력에서 미국과 경쟁할 수 없고, 임금과 가격에서 중국 같은 나라와 경쟁할 수 없는 한계에 부닥쳤다. 예를 들어 구조적인 불황에 빠져 있는 일본 자동차는 앞으로 미국 자동차와 경쟁하기 힘들다. 미국 자동차는 현재 일본 자동차에 비해 30%나 값이 싸다. 북미자유무역협정으로 미국은 멕시코 노동력을 이용해 생산가를 더욱 내릴 수 있다. 멕시코 노동자의 임금은 미국 노동자의 8분의 1밖에 안된다. 반면 지난 10년간 일본 노동자의 임금은 정부 목표선보다 높게 올랐다.

 최근 미국이 경쟁력을 회복하고 있는 배경은 무엇인가?
 레이건 시절 이후 지금까지 미국 경제는 약화한 것처럼 보였다. 통계적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미국은 지난 12년간 사실 대대적인 산업구조 조정을 하고 있었다. ‘미국이 몰락한다’고 말한 사람들은 그 시기에 미국 기업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알아야 한다. 지난 10년간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미국의 경쟁력 있는 기업들은 더욱 강해졌다. 누가 뭐라고 해도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열린 시장이다. 레이건 행정부 시절 미국은 이런 시장을 더욱 경쟁적인 시장으로 만들어버렸다. 레이건은 수많은 규제를 없앴다. 아주 잔인한 조처이다. 왜냐하면, 항공업계의 경우 정부가 규제를 없애자 2백15개사가 새로 항공업에 뛰어들었다. 경쟁은 엄청나게 가열됐다. 그 결과 항공사의 67%가 도산했다. 시장 진출도 자유, 가격 설정도 자유, 도산도 자유라는 얘기다. 이런 치열한 경쟁을 거치고 살아남은 미국 회사들은 당연히 세계 최강일 수밖에 없다.

 일본 기업도 그런 식으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인가?
 통합된 세계 시장에서 최고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법은 열린 시장에서 싸워 이기는 길밖에 없다. 일본 항공업계를 보자. 항공사가 3개밖에 없다. 정부의 엄청난 규제와 통제를 받고 있다. 가격 설정에서부터 서비스 종류까지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물론 그 대가로 정부는 적정 이익과 생존을 보장한다. 이런 식으로는 경쟁력 향상에 한계가 있을 게 뻔하다. 일본은 정부 규제가 너무 많다. 관료들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지휘하고 계획하려 한다. 흔히 일본 내수시장이 경쟁적이라고 하지만 미국 시장과는 비교가 안된다. 경쟁 없는 시장에서 담금질되지 않은 기업은 국경 없는 세계 경제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미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현명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일본인들도 현명하지만 관료들 때문에 일을 그르치고 있다.

 국경 없는 시대에는 정부와 관료가 최대의 적이라는 말인가?
 일본이 전후 경제발전을 이루던 초기 25년 간에 관료의 역할은 중요했다. 정부가 계획을 세우고 산업 정책을 세워 추진하는 것은 일본 경제가 초기 성장기일 때 좋은 것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의 보호와 지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청·장년기가 되면 스스로 책임지고 행동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전후 50년 간을 볼 때, 전반기 25년은 일본 정부가 잘했다고 본다. 그러나 늦어도 일본이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은 79년에 정부의 간섭은 완전히 끝났어야 했다.

 ‘정부의 손’이 그 이후 더욱 커졌다는 말인가?
 커져도 엄청나게 커졌다. 이제 정부의 손은 너무 커서 아무도 이를 제어할 수 없는 지경이다. 지금 일본이 이렇게 혹독한 불황에 3년간이나 빠져 있는 것도 다 관료들 때문이다. 지금의 불황은 바로 관료들이 만들어낸 불황이다. 전반기 25년 성공은 관료들의 공이다. 그러나 후반기 25년을 망쳐놓은 것도 그들이다. 이제는 기업인들마저 관료 주도 경제에 흠뻑 젖어 있다. 문제가 생기면 정부만 쳐다본다. 기업 경영을 혁신하고, 경영 조직을 바꿀 생각은 않고, 정부에게 기댈 궁리만 하고 있다.

 일본의 경쟁력은 어떤 한계에 부닥쳐 있는가?
 21세기 경제를 주도하는 첨단 기술 혹은 정보산업에서 미국의 경쟁력은 지금 세계 최강이다. 통신·멀티미디어·정보산업 등에서 미국은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이런 부문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이 거의 없다. 일본은 이런 문제를 안은 채 21세기로 넘어가고 있다. 만약 중국이 지금도 잠자고 있다면, 그런 대로 여유가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각종 가전 제품과 자동차 실린더 헤드까지 생산하는 단계에 와있다. 외국인 투자가 들어가서 경제가 성장하면 보통 그 나라의 임금도 올라간다. 한국이 지난 70·80년대에 급속한 경제성장을 달성하자 한국의 임금은 산업화 속도만큼이나 빨리 올라갔다. 그러나 중국에는 값싼 인력이 무궁무진하다. 일자리만 준다면 최저 임금을 받고도 공장에서 일하겠다는 사람이 시골과 산간벽지에 얼마든지 깔려 있다. 이것은 급속한 산업화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임금은 상당 기간 올라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뜻한다. 결국 가격 경쟁력이라는 면에서는 한국이든 일본이든 그 어떤 나라도 중국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가격 경쟁력 향상이 문제 해결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일본 기업들은 자동차와 같은 주력 제조업에서 가격을 낮추기 위해 생산성 향상에 초인적인 노력을 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질 수밖에 없는 경기를 계속하겠다는 짓이다. 중국과 같은 후발개도국이 따라올 수 없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재빨리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환경 변화를 일본은 적절히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에게 주어진 과제는 가격 인하가 아닌 ‘가격 이전(cost transfer)’이다. 노동 임금이 관건이 되는 전통적인 제조업은 해외로 이전해야 한다.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면 국내에는 실업이 발생한다.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한 고도 산업이 자리잡기까지 주력 제조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갈 곳이 없어진다. 주력 산업을 첨단산업으로 옮기는 구조조정을 하려면 당분간 높은 실업률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본 정부나 노조, 심지어 경영자들까지도 실업 사태에는 경험이 없다. 두려운 것이다. 일본 기업은 노동자를 해고한 경험이 없고, 정부는 해고란 상상할 수 없는 극단적 조처라고 펄쩍 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죽어가는 제조업에 불필요한 노동 인력이 붙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격 경쟁력이 필요한 제조업에서 일본은 더 이상 승산이 없다. 그러나 아무도 이 현실을 바로 보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첨단 정보 산업에서 미국이나 유럽과 경쟁이 되는가?
 경쟁이 안된다. 우리는 할 수 없다. 일본은 이미 끝났다.

 ‘끝났다(finished)'라는 표현은 지나친 과장으로 들린다.
 물로 과장이다. 그러나 지나친 과장은 결코 아니다. 일본이 지금과 같은 위기에 빠진 데는 원인이 있다. 먼저 일본의 주입식 교육이 근원적인 문제이다. 21세기를 주도할 지식·정보 산업이 요구하는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인력은 지금과 같은 일본식 학교 교육에서는 양성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빌 게이츠 같은 인물이 없다. 교육제도를 바꾸면 일본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 교육제도를 바꾼다고 해도 최소 20년이 걸린다.

 한국은 일본을 쏙 빼닮았다. 일본이 겪는 문제가 한국에게는 무엇을 의미하나?
 지구상에서 한국과 일본처럼 유사한 산업 구조를 가진 나라는 없다. 지금 일본의 문제는 곧 한국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한국과 일본 경제의 스펙트럼 혹은 구조는 너무나 유사하다. 다시 말해 일본이 겪는 문제는 한국에게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절대로 배워서는 안된다. 일본이 걸어온 길을 답습해서도 안된다. 외국으로부터 배우려면 차라리 싱가포르나 대만 혹은 스위스 미국에게 배워라.

 한국 정부도 행정 규제 완화 작업을 하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부패를 몰아내고 실명제를 실시하는 등 많은 개혁 작업을 했다. 야당 지도자 시절에 생각했던 개혁을 실천에 옮긴 것으로 안다. 이제 문제는 경제이다. 경제는 정치 개혁보다 어렵다. 변화를 말하기란 쉽다. 그러나 경제에 변화를 일으키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한국 정부는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려고 적극 노력하고 있다. 외국 자본이 한국에 오겠는가?
 내가 볼 때 외국인 투자가 한국에 갈 가능성은 전혀 없다. 성공적인 사례가 없다. 미국이나 유럽 혹은 일본 기업인에게 물어보라. 어느 나라가 사업하기 가장 힘드느냐고. 열이면 열, 대답은 한국이다. 지난 40년간 한국은 외국 기업인에게 지극히 관료적이고 규제 심하고 배타적인 나라라는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심어 왔다. 그런 나라에 누가 투자하겠는가. 외국인 투자가 들어오지 않으면 기술도 들어오지 않는다. 국경 없는 경제 시대에는 외국 기업이든 일본 기업이든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기업이 자국에 와서 경제 활동을 하도록 하는 국가가 승리한다. 기업의 국적을 따질 필요가 없다. 그 기업이 자기 나라에 와서 창출하는 고용과 경제적 부가 중요한 것이다. 외국인 투자는 두가지 이유에서 이루어진다. 저임금을 활용하기 위해서이거나 내수시장에서의 판매를 위해서이다. 한국은 이 두가지 조건을 다 만족시키지 못한다. 게다가 한국은 일부 대기업이 독점 내지는 과점하고 있는 시장이다. 정부의 국내 기업 보호는 가히 세계적이다. 세계적인 기업 입장에서 한국은 얼마든지 무시해도 되는 시장이다. 한국은 이런 문제점들을 우선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한국 정부나 관료들이 이런 문제를 인정하리라고 상상하기 어렵다. ‘일본은 끝났다’고 말했지만, 일본은 그동안 경제적 부를 많이 쌓았다. 그러나 한국은 지금 시간이 없다.

 일본도 경제성장기에 외국인 직접 투자는 거의 없었다. 그래도 선진국으로 진입하지 않았는가?
 일본이 한국처럼 발전 단계에 있을 때 세계 경제는 지금처럼 통합적이고 개방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은 외국인 투자 없이도 그럭저럭 제조업 분야에서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외국 기업이든 국내 기업이든 많은 기업이 활동할수록 그 나라의 경쟁력이 올라간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외국 기업들은 일본 시장이 뚫기 어렵고 규제도 많다고 늘 불평한다. 그러나 일본에는 지금 3천개가 넘는 세계적 기업이 진출해 있다. 일본 국민총생산의 10%가 일본에 진출한 외국 기업에 의해 창출된다. 일본도 외국 기업이 사업하기 편한 나라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좋든 싫든 일본 시장은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다. 일본은 미국 다음으로 큰 시장이다. 같은 선진국 시장인 미국이나 유럽 소비자를 위해 만든 제품은 일본에서 즉시 상업화가 가능하다.

 산업 구조, 산업 경쟁력 등 한국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다소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언을 해줄 수 있는가?
 세계화하고 있는 경제 환경에서 한국은 지금 독특한 위치에 놓여 있다. 이런 환경 변화 속에서 한국은 먼저 왜 한국의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는지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처방은 다른 어느 나라로부터도 배울 수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나 기업은 최근 방향을 세계화로 잡고 있다.
 국경 없는 경제시대에 세계화는 한국에게 분명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세계화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른다. 가장 어려운 단계의 세계화는 내부의 세계화이다. 나라와 기업, 그리고 국민 개개인이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만이 그 나라와 기업과 국민이 세계 시장으로 뻗어 나갈 수 있다. 이런 내부의 세계화 없이 세계화가 가져오는 이익을 얻을 수 없다. ‘일본을 따라 잡자’는 식의 지극히 한국적인 의식은 과거에는 한국 경제 성장에 큰 장점이었다. 그러나 이제 세계는 변했다. 지나치게 한국적인 국민 정서는 국가 발전에 도리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도쿄·南裕喆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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