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梓 연세대 12대 총장
  • 김춘옥 편집위원 ()
  • 승인 1992.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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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있어야 인재 길러낸다”




연간 예산 4천억원, 재학생수 2만9천명. 졸업생 12만 3천5백명, 제적 교수 9백76명, 직원 3천명, 부설연구원 34개. 오는 8월3일 대기업과 맞먹는 이 거대한 교육조직의 책임자가 될 宋 梓 교수(56·회계학)는 회계사 일과 대기업의 경영 자문역을 수십차례에 걸쳐 맡아본 ‘학자 경영인’이다. 송교수의 총장 취임 일성은 대학경영의 전문화. 55년 연세대 상대 상학과를 졸업한 후 워싱턴 경영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코네티킷 경영대학원 부교수를 지낸 송총장은 76년 연대로 자리를 옮긴 뒤 상격대학장 기획실장 교수평회의장 등 교내 주요 보직을 두루 맡아 현실경영 실력을 발휘한 바 있다. 예를 들어 그는 85년 연세대 개교 100주년 기념회관을 설립하도록 했는가 하면, 2백60억원이나 되는 학교의 부채를 재단과의 협력으로 갚아 재단으로부터 보직교수 최초로 공로패를 받기도 했다. 가족으로는 미8군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 부인 卓順? 여사(55)와 미국 시카고 의대 본과 3학년과 브라운대학 3학년에 재학중인 두 딸이 있다.

재직교수 9백76명 가운데 4백5표를 얻어 3백47표를 얻은 현직 총장보다 표가 많았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봅니까?

‘위기다. 개혁을 해야한다, 잠을 깨야 한다’라는 저의 주장이 공감대를 형성한 거죠. 원래 교수 사회는 보수적이라 변화를 원치 않았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현실 감각이 투표에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시설도 상대적으로 잘 갖추어져 재단도 튼튼한 연대에서 교수들이 위기 현실에 공감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교수들 사이에서는 대한민국 대학의 모범이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과 1등을 우리 스스로 유지하기를 원하는데, 관계에는 우리 졸업생이 없다는 인식 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위기 현실에 공감했을 겁니다.

연세대학이 처한 위기의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밝혀 주십시오.

대학 시설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콩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알맹이가 있다고 해도 껍데기가 없으면 시들게 마련입니다. 연대만 해도 3만에 가까운 학생이 있습니다. 양적으로는 세계적인 규모로 커져 있습니다. 좋은 대학에 가면 시설도 좋습니다. 하버드가 제일 좋은 대학이라고 한다면 돈이 가장 많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제일 먼저 꼽습니다. 그 대학에 대해서는 ‘가장 오래 됐고 가장 부자’라고 보통 말합니다. 연대는 대한민국에서는 가장 오래된 대학입니다. 연대가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부자인 것이 사실이지만 이 정도의 시설을 갖고는 21세기 대한민국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에는 부족합니다. 경비를 절약하느라 교실에는 페인트가 아랫부분 반밖에는 칠해져 있지 않습니다. 가끔 학생들에게 나는 페인트가 반밖에 칠해져 있지 않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반밖에는 사고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더욱이 요즈음에는 첨단 공학을 배워야 하는데 새로운 것을 배우려면 새로운 기재가 필요합니다. 새것은 다 비싸요. 선진국에서는 대학의 등록금 상승률이 인플레율 보다 높습니다. 그 사람들 얘기는 새것치고 싼 것 있느냐 하는 겁니다.

돈만 있으면 세계 일류 대학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다시 말씀드리는데 시작도 끝도 돈입니다. 돈 없이 되는 것 보셨어요?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어요. 우리가 어렸을 때는 돈 없이도 공부했어요. 지금은 투자 없이는 아무것도 이룩할 수 없습니다.

돈만 충분하다면 질도 따라서 상승한다는 말씀인가요.

그렇다고 대학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불평만 할 수는 없지요. 질은 대학의 문제입니다. 재정적 문제만 불평을 해야 하느냐 하는 점에 있어서 대학인은 반성해야 합니다. 자구책을 찾아서 열심히 할 때 도움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돈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입니다. 세계 이류 대학이 나와야 합니다. 기업도 세계 일류가 되려고 발버둥치고 있는데 일류 대학이 나오지 않는데 일류 기업이 나오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지금 대학교수의 처우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 아닙니까?

미국에 살아남는 이유를 크게 두가지고 봅니다. 상대적으로 지도자가 깨끗합니다. 지난번 토머스 대법관 임명할 때 보세요. 1백5일 동안 그 사람 집의 쓰레기까지 뒤졌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다가 안 되니까 옛날에 희롱했느냐 아니냐를 가지고 나오지 않습니까. 그거야 둘이서 한 일인데…. 그만큼 철저합니다. 미국이 살아남아 있는 두 번째 이유는 대학이 일류이기 때문입니다. 아까 보여드렸던 세계의 일류 대학 관련기사보도에서도 보듯이 거의 3분의2이상이 미국의 대학입니다. 미국의 기업은 이제 이류입니다. 시시한 대학교 많으나 몇 개의 끌고나가는 일류 대학이 있기 때문에 그 사회가 살아 있어요. 그곳에서 창조적인 것이 나오는 겁니다. 

일류 대학이라는 정의는 어떻게 내린 겁니까?

그것은 참 주관적인 것입니다. 세계가 하나가 되어가고 있으므로 우리의 가치관만으로 일류 대학을 얘기해서는 안됩니다. 제가 일류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른 교수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목적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집니다. 연대는 정관 제1조에 ‘기독교적 지도자를 양성한다’ ‘대한민국의 고등교육 이념에 맞는 교육을 실시한다’라고 돼 있습니다. 우리 학교의 이념을 만족시켰느냐 아니냐만을 갖고 평가해야 합니다. 즉 한국에 필요한 지도자를 양성하고 있느냐 아니냐 이것만 가지고 평가해야 합니다.

대학이 지금보다 더 발전해야 한다는 대학인들의 희망은 사회 전체의 발전과 그 구성원의 동의가 있어야 달성되리라고 봅니다.

불행하게도 그같은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는 기업인들을 만나면,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가 되려면 기업이 돈을 벌 수 있는 만큼 벌어서 저축할 수있는 만큼 저축해서 나눠줄 수 있는 만큼 대학이나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나눠줘야 하며 나눠주는 기업이 많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의 풍토는 시설을 운영하면 내가 했지 왜 나눠주느냐 하는 식입니다. 그래서 대기업이 병원도 하고 무엇도 하고 이런 식입니다. 서양처럼 이미 있는 병원에 이름 쓰고 나눠주면 안됩니까. 그렇게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입니까. 그러나 우리도 받을 자세가 돼있으냐 하는 반성을 해야 합니다. 온당치 못한 방법으로 번 돈으라도 기분이 좋아야 씁니다. 대학도 그동안 문제가 있었으므로 그 사람들만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대학도 이제는 아마추어가 경영하는 시대는 지났다’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전문 경영인에 버금간다고 생각하십니까?

경영학 선생을 하려면 실무를 알아야 하므로 미국에서 회계사 사무실에서 일했고 한국에서도 기업과 많은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현실감각을 누구보다 많다고 생각합니다.

경영인 총장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학교 내에서의 교육 관련 문제는 부총장이나 그런 분들이 계시니까 맡아서 해야 하고 총장은 외국의 총장과 마찬가지로 대외적인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기업의 총수도 밖의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특히 사립대학 총장은 재원 조달은 물론 학교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밖의 일을 많이 해야 합니다. 《시사저널》을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졸업한 동문들도 관리를 해 주어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재원조달이므로 외국처럼 전체 예산의 10~20% 정도의 정부 지원을 끌어내는 등의 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 연대의 정관 제1조에 명시된 대로 기독교적 지도자를 양성하는 데 주력할 예정입니다. 우선 도덕적인 우월성 없이 학문적 우월성이 안 나와요.

기여입학제를 찬성하신다고 했는데 이같은 방식의 재정조달에는 반대 여론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찬성합니다. 학교 교육이라는 것은 자연과학 실험하듯이 딱딱 자를 수는 없어요. 우리나라의 대학 입학교사는 정부가 획일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94년부터는 자율화시켜 나간다고 하니까 그 과정에서 대학이 우수 인력을 뽑을 때 점수에만 의거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점수 위주의 입학제에서 기여입학제를 실시하기는 아주 힘듭니다. 선진국의 입학제는 점수만을 위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수학능력시험(SAT)도 보고 고등학교 내신성적도 내지만 면접 전문가들이 있어 사람 됨됨이를 볼 뿐 아니라 이 사람이 대학에 얼마나 기여할 것인가를 판단한 후에 뽑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여입학제를 실시해야 큰 부작용이 없지 지금 사회에서 생각하듯이 몇 년도에 어느 정도의 몫은 기여입학제에 따라 뽑는다고 정해 놓는다면 80년대초의 졸업정원제처럼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모든 대학이 같을 수 없으므로 획일적으로 실시할 수는 없습니다.

도덕적 우월성이 학문적 우월성에 우선한다고 하셨습니다. 도덕적 우월성은 어떤 방식으로 가르치실 생각입니까?

상대적으로 우리 학교가 가장 잘하고 있습니다. 연대 학생들이 그 점에서도 가장 낫다고 봅니다. 졸업하려면 4학기 동안 매주 한번씩 채플시간이 있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이같은 말을 듣는 사람과 안 듣는 사람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안 그렇게 생각해요? 열번 찍어서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도덕적 우월성 교육을 위해 무시험 입학제를 구상하시는 겁니까?

94년부터 무시험 입학제를 실시한다는 일부 보도는 와전된 것입니다. 어떻게 언제부터 실시한다는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것 같은 과정에서 그 점도 고려해 본다는 뜻입니다. 이미 연대는 50년대에 무시험을 실시한 적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연구해서 본고사를 없애고 내신 성적만으로 입학을 결정하는 방법을 생각해 본다는 뜻입니다.

내신성적을 잘 받으려고 고등학교에서는 지금 많은 부조리가 성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대학에서 가지고 있는 가장 정확한 자료의 하나는 고등학교때 공부 잘한 학생은 대학에서도 공부를 잘 한다는 것입니다. 이 상관관계가 아주 높습니다. 대한민국 고등학교 선생님들을 믿어야 합니다. 내신성적에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 무서워서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 해마다 1백만명의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 몇 명 정도는 교사로 인해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요.

현실주의자이십니까 이상주의자이십니까?

세상을 그렇게 흑백논리로 보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학생들에게 현실적인 정의로 있고 이론적인 정의로 있다고 말합니다. 내 전공이 회계학인데 이 두가지의 정의가 가까워질수록 좋은 것이지요.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이 땅이 천국’이라고 제가 나가는 교회(아현동중앙교회 장로)에 쓰여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아주 현실적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빨리 이 두가지를 좁혀나가는 것입니다.

총장 직선제가 실시된 후 두번째로 선출된 총장이신데, 이번 선출 과정을 보고 직선제의 폐해를 말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하면 폐해가 없습니까? 이것도 사회의 흐름에 따라 나온 방식인데 앞으로는 변할 것입니다. 현 시점에서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총장 선거운동에서 정치인 못지 않은 득표활동을 했다고 비난이 자자합니다. 좋은 방법은 아니지 않았나 봅니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보셔야죠. 세상일 하는데 완전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정치하는 사람에 비해 우리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잣대가 너무 높다 보니 부작용을 낳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나 잣대를 올려놓고 판단한다고 해도 제가 당선자라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저는 하나의 표본이 된다고 봅니다. 원칙에 의거해 소견서를 만들어 교수들에게 돌리는 등 선거 공영제를 따른 겁니다. 그 전에는 무작위로 5명을 선정해서 투표했는데 이번에는 마지막에 10분씩 소견 발표를 했습니다. 부작용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보다는 얻은 득이 더 많았다고 봅니다.

시위 학생을 모으느라 마이크로 방송하는 학생들과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사이에 벌어졌던 연대의 ‘도서관 논쟁’은 요즈음 대학 분위기를 한마디로 요약하는 사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임자로서 편은 든다면 누구의 편을 들겠습니까?

흑백논리로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의사표시를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되잖아요. 인도에서 시위를 하면 되지 않습니까.

앞으로 연대 시위는 없어지겠습니다.

간디 영화를 보세요. 대한민국이라고 해서 간디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있습니까? 대한민국의 표본이 되는 사람은 불의에 대한 항의를 표시하는 방법도 달라야 합니다. 정부도 인도에서 평화적으로 시위한다면 민주사회 원칙에서 받아들여야 하지 않느냐 이 말이예요.

8월3일 취임을 앞두고 지금의 심정은 어떻습니까?

막상 되고 나니 두려운 마음도 있어요. 이 많은 식구와 대한민국의 시선이 집중되더군요. 제가 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구나 깨달으면서 실수하지 않고 바르게 하게 해달라는 제목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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