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수달의 우정에 인간들 ‘죽임의 절교’
  • 속초·한종호 기자 ()
  • 승인 1991.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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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내내 생명의 은인 방문한 ‘속초 명물’ 서울 수족관 이주 1주일만에 사망

 어미를 잃고 헤매다 우연히 사람의 눈에 띈 어린 野獸, 집으로 데려가 극진히 돌봐준 주인공과의 사이에 삭튼 우정, 장성할수록 드러나는 야성의 이빨과 이를 두려워하는 인간들, 마침내 어딘가로 실려가는 가련한 짐승….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봤음직한 이야기의 한토막이다. 이것이 실화라면 한층 흥미롭고 거기에 報恩이라는 동양적 요소까지 가미되면 더욱 눈물겹다. 얼마 전 이같은 일이 우리 곁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 흥미와 감동에 비해 결과는 너무도 초라하고 비극적이다. 사연은 이렇다.

 90년 5월 어느날 아침, 여느때와 같이 야간 근무를 마치고 막 잠자리에 든 申允燮 수경(26·속초해양경찰서 청호 선박신고소·91년 3월2일 전역)은 신고소 앞에서 난장을 피우고 있는 동네 조무라기들을 쫓아보내려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은 어디서 났는지 바다수달 새끼 한마리를 잡아놓고 장난을 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신수경은 꽥 소리를 질러 아이들을 쫓고 새끼 수달을 건네받았다. 새끼수달은 두손에 쏙 들어올 정도로 작은 크기였고 완전히 지쳐 늘어진 모습이었다. 수산대학을 나온 신수경은 얼마 후 그것이 희귀한 바다수달(천연기념물 330호)임을 알 수 있었다. 며칠 뒤 방파제로 나갔다가 신수경은 청초호 방파제 근처 바다에서 새끼수달 몇 마리를 달고 가는 어미수달을 보았다.

 신수경과 바다수달의 우정은 이처럼 우연한 계기로 시작됐다. 신수경은 처음엔 게를 삶아주었지만 수달은 입도 대지 않았다. 그래서 근처에 접안하는 어선에서 명태 파지(부스러진 생선)나 잡어 등을 얻어다 주니 그제야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10여일을 선박신고소 부엌에 있는 냉장고 뒤에서 보낸 수달은 몸이 좀 커지자 뒷집 화단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헌병’(신고소에서 기르는 개 이름)하고도 친해져서 신수경이 주는 저녁식사를 마친 뒤엔 헌병과 함께 제법 어울리기도 했다.

 날이 갈수록 점점 많은 생선먹이가 필요했고 가끔은 헌병이 먹다 남긴 라면까지 먹어치웠다. 신수경은 근무가 없는 낮이면 낚시질을 해 황어나 돔새끼를 잡아다 주었고, 폭풍이 불 때면 미리 생선을 많이 얻어다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였다. 수달도 신수경만 보면 온갖 재롱을 부렸다. 신수경이 밥을 먹고 있으면 옆에 와서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수달이 웬만큼 자라자 신수경은 수달을 바다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어느날 밤 수달을 안고 방파제로 나갔다. 헌병이 뒤를 따랐다. 바닷물이 밀려드는 방파제 너머 모래사장에 수달을 내려놓고 신수경은 신고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새벽근무를 서기 위해 일어나보니 수달이 사무실에서 헌병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수달은 아예 방파제에 구멍을 파서 보금자리를 만들어놓고는 해만 지면 슬슬 신고소로 ‘출근’해 밤새도록 놀다가 돌아갔다.

신윤섭 수경 떠나자 野性드러내
 이렇게 시작된 수달의 신고소 방문은 1년이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됐다. 처음엔 심심풀이로 생각했던 신수경도 수달을 기다리게 됐다. 주변 사람들은 “은혜를 잊지 않는 영물”이라며 감탄했고, 신문과 방송도 기사화했다. 신수경이 전역한 뒤에도 수달은 매일 저녁 잊지 않고 신고소를 찾아왔다.

 80㎝ 정도의 크기로 자란 수달은 신수경이 떠난 뒤부터 서서히 野性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피해를 입는 일도 생겼다. 몇 달새 동네 강아지7마리, 닭5마리가 물려죽었다. 나루터 입구 韓伊順씨(62)의 해변횟집 수족관에까지 뛰어들어 새치 광어 우럭 등 좋은 ‘횟감’들을 모조리 길바닥에 패대기치기도 했다. 집집마다 수돗물을 받아놓은 물통에 안 들어간 곳이 없고, 부엌 반찬그릇을 요절내기 일쑤였다. 동네 아낙들을 놀라게 하는 경우는 다반사였다. 처음엔 호의적이던 주민들도 피해가 잇따르자 신고소를 찾아와 조처를 요구했다. 그러던중 4월중순경 서울 63빌딩 수족관에 근무하는 林東赫씨가 신고소를 찾아왔다. 자기에게 넘겨달라는 것이었다. 신고소장 李宗炫경장(36)은 “희귀동물이고 여기서 키우는 것이니 안된다”며 그냥 돌려보냈다.

 속초시 청호1동은 6·25 당시 피난민 집단 거주촌으로 해안철책 주변이라 자연녹지로 묶여 개발이 금지돼 있기 때문에 40여년 전의 허름한 가건물이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 단열이 안돼 여름이면 아예 문을 열어놓고 산다. 이곳 주민들은 동네 명물도 좋지만 열어놓은 문틈으로 수달이 들어와 어린애라도 물면 어떡하느냐며 대책을 요구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아무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주민들의 뜻에 따라 7월초 金永?(53) 청호동 1통장과 시의원 呂錫昌씨(63) 등은 이경장과 상의해 수달을 적당한 곳에 보내기로 의견을 모았다. 처음에는 별도의 수족관을 만들어 키우자는 제안도 나왔다. 그렇지만 예산 5백만원을 마련할 길이 없어 포기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이경장은 임동혁씨가 두고간 명함을 보고 전화를 걸었다. 7월14일경 임씨가 동료직원과 함께 우리를 갖고 다시 찾아왔다. 그러나 낯선 얼굴이라 생포는커녕 수달에 접근도 못하고 돌아갔다. 7월19일 새벽 1시20분, 할 수 없이 낯이 익은 신고소 전경들을 동원해 그물을 이용, 수달을 생포해야만 했다. 다음날 아침 10시 수달은 주민 1백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헌병’과 함께 서울로 떠났다.

“인간의 무지가 빚은 어이없는 비극”
 그러나 수달은 서울로 간 지 1주일만인 지난 7월26일 저녁 죽고 말았다. 수족관측은 “처음 3~4일은 붕장어 양미리 등 먹이를 잘 먹다가 5일째부터 설사를 했다. 수의사의 진단 결과 장출혈 증세가 발견됐다. 주사와 투약을 했지만 죽고 말았다”고 해명했다. 수달을 입수한후 뒤늦게 그것이 천연기념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당황해하던 수족관측은 사색이 됐다. 일반에 선보이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천연기념물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생포시 반드시 당국에 신고하도록 돼 있다. 문화부 당국자는 “관계 법령과 동물의 습성에 대한 무지가 빚은 어처구니없는 사고였다”고 말한다.

 ‘비보’를 접한 신윤섭씨나 선박신고소 대원들은 아쉬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신씨는 “계속 그곳에 있었다면 언젠가는 바다로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하며 아쉬워했다. 한동안 ‘속초의 명물’ ‘보은의 珍客’으로 사랑받던 바다수달은 엉뚱하게도 서울 한복판에 우뚝 솟은 현대식 자연보호의 상징 63빌딩 수족관에서 최후를 맞아야 했다.

 인간이 자연을 ‘정복’이 아닌‘보호’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러나 인간의 오만함은 ‘보호’라는 미명 아래에서도 이처럼 파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금 63빌딩 수족관에 냉동보관된 채 관계당국의 처리만을 기다리고 있는 바다수달의 주검은, 이같은 인간의 치부에 소리없는 항변을 보내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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