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살버릇 기르는 환경 캠프
  • 김당 기자 ()
  • 승인 1992.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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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로빈클럽 … DMZ 자연관찰



유한 킴벌리 … 여고생 ‘그린캠프’
 나는 지구와 거기에 살고있는 모든 생물, 특히 나도 그 일원인 인간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러나 나는 이 지구에 두명 이상의 아이를 결코 낳지 않을 것이며 아직 때묻지 낳은 자연을 지키고, 쓸모없게 돼버린 곳을 원래대로 만드는 데 전력을 다할 생각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지난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미국의 뉴스 전문 방송사 CNN의 모회사인 터너방송기구 회장 테드터너의 말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터너회장은 열렬한 환경운동가이다. 그는 해양 생태계 보호단체인 쿠스토협회(회장 자크이브 쿠스토)를 후원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 월드워치연구소(소장 레스터 브라운)에서 발행하는 지구환경연감인 《지구환경 보고서》를 수년 전부터 자기 방송국 직원들과 미국의 모든 국회의원, 《포춘》지가 선정하는 세계 최고경영자 5백인에게 해마다 기증해 오고 있다.

 

 환경교육은 “요람에서 무덤까지”해야

 이 개성있는 환경운동가가 펼치는 ‘책 보내기 운동’의 목적은 그들이 보도나 논평, 입법 활동을 할 때, 그리고 새로운 사업이나 투자를 구상할 때 늘 ‘지구환경’을 염두에 두도록 하려는 것이다. 지구환경을 보전하는 데는 개인의 의식변화와 실천도 중요하지만 언론인, 정치인 그리고 기업인의 마음을 먼저 움직임으로써 그 변화를 더욱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작 터너 자신의 마음은 언제, 어떤 계기로 움직였을까.

 그 답은 ‘세살 때 익힌 버릇’에 있다. “나무들이 산성비로 죽어가는 것이 걱정되어 잠 못이루고 돌고래가 그물에 걸리는 꿈을 꾸다 잠에서 깬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는 고백에서 드러나듯 터너가 환경운동가가 된 배경은 그의 어린시절 체험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 이원섭씨(서울시지회 부회장)에 따르면 터너 회장은 미국의 유명한 오드본협회 회원으로서 어릴 때부터 그 협회에서 주최하는 자연학습 캠프에 참가해 자연의 소중함을 체득했다는 것이다.

 외국에는 이처럼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자연학습장(그린캠프)이나 환경교육 프로그램이 많다. 이미 지난 72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제1차 세계환경회의에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환경교육이 필요하다”는 데 합의한 환경 선진국들은 특히 탐구기법(실험 관찰 토론등)을 강조한다. 한국교육개발원 최돈형 박사(환경교육연구부장)는 “환경에 대한 태도는 어릴 때 형성되기 때문에 초 · 중학교 과정에서는 태도 가치관 신념 같은 정의적 영역을 중시하는 교육방법이 효과적이다. 우리나라의 환경교육은 강의 위주여서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교육여건상 학교에서 받지 못한 현장학습은 가정과 사회의 몫일 수밖에 없다. 특히 방학은 학교에서 외운 환경지식을 응용하고 실험 · 관찰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셈이다. 실제로 환경 선진국에서도 환경 · 사회 단체가 마련한 다양한 ‘그린 캠프’가 방학중에 집중돼 있는데 그 특징은 대부분 기업들이 앞장서서 지원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유럽에서 대표적인 환경보호기업으로 꼽히는 스웨덴 볼보자동차의 경우 다양한 자연관찰 및 탐구학습용 부교재(지도, 돋보기, 꽃씨, 관찰기록지 등 관찰 · 실험 도구 세트)를 개발해 무료로 보급하고 있다. 이 같은 교육 투자는 어쩌면 예비 고객에게 자사의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멀리 보는 장삿속일 수도 있다. ‘미래의 소비자’는 환경보전을 고려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이 지금보다 훨씬 더 두드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도 본격적인 자연·환경 캠프가 등장해 청소년들이 어릴 때부터 자연을 조화와 공존의 대상으로 보는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의 ‘에코로빈클럽’(회장 이승우)에서 시작한 자연관찰 캠프와 유한킴벌리가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운동’의 환경보호 프로그램의 하나로 4년째 열고 있는 그린캠프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자연 훼손하지 않는 휴가문화 정립해야

 환경-생태계를 뜻하는 ‘에코’(Eco)와 숲을 지키는 울새인 ‘로빈’(robin)을 합친 이름의 이 어린이클럽은 야외 교육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자연과의 친교를 길러주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이 클럽은 미국 오드본 협회, 일본 야조회 등과 친교를 맺고 이들 자연관찰 학습법을 도입해 그동안 산성비에 몸살 앓는 소나무에 석회가루를 뿌려 치료하기, 김포 바닷가에 나가 개펄의 생물과 철새의 먹이사슬 살피기 같은 활동을 펼쳐 왔다. 이 클럽은 회원제(입회비 2천원)로 운영되며 국민학교 3학년~6학년생이면 자연관찰에 참여할 수 있다.

 이클럽은 환경보호 모범부대로 대통령표창을 받은 바 있는 육군 7사단과 자매결연해 지난 7월12일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민통선 안에서 자연을 관찰하고 학습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날 참가자들(학부모 포함 1백40여명)은 나비반 산비둘기반 산천어반 가제반등으로 나뉘어 장병들과 함께 비무장지대 안에서 곤충을 채집하고 산새 소리를 녹음하는가 하면 손그물로 계곡의 담수어를 채집하거나 가제를 잡아 관찰기록을 적는 등 진기한 체험을 했다.

 에코로빈클럽은 이 행사에 대한 반응이 좋다고 판단해 8월에도 같은 장소에서 1박2일(8월15~16일) 동안 자연관찰 캠프를 열 예정이다. 이원섭 부회장은 “그날 어린이회원들은 장병들과 함께 낮에는 계곡에서 잡은 물고기로 찌개를 끓여 먹고 밤에는 산양 오소리 묏토끼 같은 동물과 반딧불을 관찰하게 된다. 특히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북두칠성을 생생히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유한킴벌리가 산림조합중앙회와 공동 주최해온 그린캠프는 여고생(매년 1백명씩 3박4일)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특징이다. 이은욱 홍보실장에 따르면 국가에서 마련한 좋은 자연학습장을 활용해 어릴 때부터 숲을 무서워해온 청소년들에게 ‘신비한 산소공장’을 소개하자는 뜻에서 이 캠프를 열게됐다고 한다. 원래 화전민 자녀들이 다녔던 분교에 만든 설악산 임간수련장에서 열리는 이번 4기 캠프(8월3~6일)에 참석하는 여고생들은 “자연을 지키는 것이 우리를 지키는 것”이라는 주제로 40시간 동안 실험-실습교육을 받게 된다.

 일반적인 야외캠프가 대개 자연이나 환경을 양념으로 끼워넣거나 강의실만 야외로 옮겨 놓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설정임에 견주어 그린캠프는 나무 전문가들의 지도로 철저한 실험·실습 중심으로 진행한다. 이은욱 실장은 “실내에서는 산림의 환경적 기능을 소개하는 시청각교육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모두 준비된 장소로 이동하면서 나무 나이와 용량 측정, 병든 나무 치료하기, 수간주사 놓기, 광합성 작용 실험, 수질 및 토양의 산성화 측정, 산림욕, 새집 달아주기등 다양한 실험학습으로 진행된다”면서 “3박4일이 지나면 숲을 두려워했던 학생들이 모두 둘도 없는 나무의 친구가 된다”고 밝힌다.

 이은욱 실장은 “종래의 ‘최소 비용, 최대 이윤’이라는 경영관념으로 보자면 맞지 않지만 이제는 ‘적정한 이윤과 사회 공헌’이 기업의 경쟁력을 재는 잣대”라고 강조한다. 학교밖에서의 교육은 가정과 사회의 몫이고 특히 환경교육의 경우 어차피 돈 있는 곳(기업)에서 맡는 것이 당연한 책임이라는 말이다.

 최근 서울 YMCA, 홍사단 등 6개 시민단체는 휴가철을 맞이해 ‘녹색휴가 보내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아이들을 따로 환경캠프에 보낼 기회를 놓친 가정이더라도 이번 휴가철을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으면서 보내는 휴가문화를 정립하는 기회”로 삼는다면 이 또한 살아있는 환경학습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돈형 박사는 “학교 안에서는 환경보전을 잘 실천하는 아이들이 학교 밖에서는 ‘일탈행위’를 보인다. 이는 ‘현장학습장’인 가정과 사회에서 쓰레기와 합성세제로 강산을 더럽히는 따위의 일탈행위를 보여주는 탓이다”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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