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투기, 일본이 더 극성 여론 무서워 재벌은 자제
  • 이우현(명지대교수·경제학) ()
  • 승인 1990.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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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공개념·민생문제 뒤로 미루다 주택정책 실패

선진국들 가운데 토지·주택정책이 실패한 대표적인 나라로 일본이 자주 거론된다. 우리나라와 국토적 여건이 유사한 일본의 실태는 우리에게 직접적인 교훈을 줄 수 있어 깊은 관심을 갖게 한다.

 일본의 주택가격은 엄청나게 높으며, 일반 근로자들은 전생애의 수입을 다 털어넣어도 도쿄도내에서 주택을 구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평균적인 근로자가 도쿄도 외곽의 수도권에 소규모의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60살이 넘도록 저축해야 하는 실정이다.

 주택가격이 비싼 것은 주로 토지가격의 급속한 상승 때문이다. 일본의 토지가격은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일본 전국토를 시가로 계산하면 미국 전국토의 3배, 영국의 1백배 이상의 토지를 구입할 수 있는 돈이 된다는 추계가 나와 있다. 이와같은 엄청난 토지가격은 주택가격의 앙등을 가져와 주택구입 능력을 저하시켜왔다. 주택구입 능력의 국제비교를 가능케 하는 연수입배율(신축주택의 평균가격을 연간평균 세대수입으로 나눈 수치)을 보면 미국은 3.0(1982), 영국은 3.6(1983), 서독은 5.3(1982)인 데 비하여 일본(1989)은 도쿄권의 경우 8.9, 오사카권은 6.3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일본에서 주택을 구입하기가 영미에서보다 2배 이상 힘들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사유재산·자유거래 지나친 존중이 ‘덫’
 일본에서는 젊은 세대가 작은 주택이나 아파트라도 내집을 마련한다는 것은 거의 환상적인 꿈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 이같은 토지·주택정책의 실패를 가져오게 하였는가?

 첫째는 사유재산권을 보호하고 시장기구를 존중한다는 것에 토지·주택정책의 기조를 둠으로써 투기가 빈발한 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토지에 대한 사유재산권은 공익을 위한 경우에만 부분적으로 제한을 가할 수 있게 하고 시장을 통한 자유거래를 보장함으로써 일본정부는 토지투기에 따른 지가폭등의 경우에도 토지공개념을 확대 도입하는 데 소극적 자세를 지켰다.

 두 번째 이유로는 경제정책의 기조를 지나치게 산업발전에 두어 국민생활를 뒷전에 밀어놓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가계의 높은 저축은 금융기관을 경유하여 기업의 설비투자에 활용됨으로써 빠른 경제성장을 가능케 했지만 기업은 주택과 관련된 사회적 비용을 별로 부담하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식의 경제성장 메커니즘은 국민생활의 질적 악화라는 희생 위에서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가능케 한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토지·주택 및 전월세값의 폭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제기되었다. 우리나라와 유사한 일본의 토지·주택정책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일본은 토지공개념의 도입에 소극적이었고 그 결과 토지 및 주택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는 점이다. 높은 토지가격도 문제지만 “땅값은 계속 상승한다”는 ‘토지신화’가 더욱 큰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의 적극적 도입은 토지·주택가격의 안정과 불균형의 방지라는 점에서 분배정의에 바람직한 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다음으로 일본은 국민생활보다 산업발전에 중점을 둠으로써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주생활을 계속 열악한 상태에 머물게 했다. 경제발전의 궁극적 목표가 국민생활 수준의 향상이라는 점에서 볼 때 만족스러운 주생활의 보장은 절대로 뒷전으로 미룰 수 없는 것이다. 산업발전에만 치우친 불균형 정책은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만드는 데는 성공하였을지 몰라도 국민생활의 질의 향상이라는 면에서 많은 문제를 남겼다. 최근 일본 정부가 생활의 질과 문화를 강조하면서 산업 중심에서 생활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같은 주택문제의 심각성이 한계에 달했음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제도 탓하기 전에 감독부터 철저히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점은 부동산의 투기적 거래가 지가폭동을 야기한 중요한 요인이었음에도 일본의 재벌기업들은 투기에 적극 참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일본관료의 감독과 사회적 감시가 엄격하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1973년 석유파동이 일어났을 때 일본의 금융기관들은 대기업에 대규모 투기자금을 공급하였다. 토지시장 연간 거래액의 3분의1정도에 이르는 규모였다. 그러자 일본 사회는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의 대기업들은 자중하게 되었다.

 최근 말썽이 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재벌기업들의 비업무용 토지는 그 판정기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자세히 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양의 토지를 구입해서 사회의 지탄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그 제도 때문이라기보다도 이를 막고자 하는 정부의 정책의지 결여와 감독소홀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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