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족상잔의 비극 객관화
  • 이세용 (영화평론가) ()
  • 승인 1990.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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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감독의〈남부군〉은 6·25전쟁 당시 지리산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좌익 게릴라 집단의 이야기를, 그 집단에 속해 있던 지식인 출신 유격대원(이 태)의 체험수기를 빌어 영화화한 작품. 이 영화는 두가지 면에서 크게 주목된다.

 첫째는 금기시 되어왔던 소재를 영화로 만든 점이다. 이 필름은 동족상잔의 전쟁을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휴머니즘의 시선으로 응시한다. 휴전협정이 체결된 지 36년이 지난 오늘의 시점은 당시의 상황을 역사적 사실로서 객관화할 수 있다. 또 이런 사실을 다루기 충분할 만큼 우리 사회가 포용력을 갖게 되었지만 〈남부군〉은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속단하지 않는다. 나는 섣불리 ‘편가르기’를 시도하지 않은 이러한 연출의 태도를 판단유보가 아니라 객관화의 의지로 본다. 토벌군과 남부군이 대치하여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이 그 좋은 예이다.

 마을 외곽에서 정신없이 총질을 해대던 양쪽은 난데없이 나타난 강아지 한마리 때문에 사격을 멈춘다. 그리고는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다가 ‘두만강 푸른물에~’를 목청껏 불러젖힌다. 이 (거짓말 같은 실화)장면, 戰場의 노래자랑은 동족끼리 왜 총을 겨눠야 하는지를 새삼 묻게 하는데, 기이하기 짝이 없는 희극성으로 해서 비극이 더욱 강조된다.

 남부군 소속 유격대원들이 꿈에도 그리워 한 것은 ‘고향’이었고, 죽음 앞에서 목메어 부른 이름은 ‘어머니’였다. 이런 장면의 묘사가 환기하는 것은 그들이 가진 신념의 허구나 사상무장의 나약함이 아니라 인간 실존의 엄숙함이다. 사실 추위와 굶주림의 극한상황 속에서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목숨을 부지하려는 본능 또는 생명의지일 터이다. 〈남부군〉은 이런 대목을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처절했던 삶의 모습과 인간적인 고뇌의 묘사를 통해, 그 리얼리즘의 성취를 통해, 전쟁이 안겨주는 것은 인간의 비인간화뿐임을 고발한다. 그러므로 〈남부군〉은 휴머니즘을 옹호하는 작품으로 기록되어야 마땅하다.

 둘째는 연기자들을 포함하여 스테프의 영화를 위한 열정과 〈남부군〉이 이룩한 기술적인 완성도이다. 우리 영화 현실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물게 사계절을 담을 이 작품에서 주인공역의 안성기와 소년역을 맡은 배우들의 ‘자연스러운’연기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특히 안성기와 ‘앵두소년’역의 노재희는 주목에 값한다.

 상영시간 2시간40분의 〈남부군〉은 기술적인 면에서도 한국영화사에 기록될 만하다. 〈우묵배미의 사랑〉에서 보았듯이 유영길의 카메라는 사물의 리얼리티를 표출하는 데 있어서 독보의 경지에 이른 느낌이다. 한국영화의 취약점으로 지적되던 녹음도 괄목할 만한 ‘소리’를 들려주는데, 본격적인 돌비 시스템에 의한 녹음은 음악과 음향의 재현에서 거의 외국영화의 수준에 육박한다.

 나는 작품의 소재와 연출이 추구하는 테마, 이를 표현하는 기술에서 획기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남부군〉을 한국영화의 재산목록에 추가하는 데 망설이지 않는다. 원작자의 구체적인 체험과 고증에 입각하여 당시의 상황을 진실되게 담으려는 노력은 빨치산이 된 진보적인 지식인의 내면세계와 역사의 수레바퀴속에서 한 인간이 부딪히는 실존의 문제를 제기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연출자가 의도했던, 분단현실을 극복하는 방법으로서의 휴머니즘의 제시에는 다소 미흡하다고 보았다. 정지영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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